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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74화 (174/222)

174화

수직으로 떨어지던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끝에 도착했다.

일행이 내려선 곳은 평범한 동굴 바닥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일행이 내려온

구멍 이외에도 여러 군데가 뚫려 있었다.

적어도 네 개는 넘어 보이는 동 굴.

일행이 내려왔던 곳은 동굴의 그 림자에 숨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예 막아 버리는 게 좋지 않나요?"

제시카가 내려왔던 곳을 보며 쿠 사라에게 물었다.

차라리 아예 막아 버리면 이런 고생도 할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쿠사라는 고개를 저었다.

"길은 있어야 합니다. 길이 없으 면 임의로 길을 만들 가능성이 있 습니다. 그 지네로 변한 디스트로 이어도 그렇게 도망친 거고요."

그랬다.

지네 괴물은 이미 나 있는 길로 빠져나오지 않고,땅을 뚫고 섬의 다른 곳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그 덕에 호족과 다른 종족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대수림 너머까지 도망갈 수 있었다.

"이 미로 전체에 적용된 마법은 길을 바꾸는 마법뿐만 아니라,자

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믿게 만 드는 마법도 같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디스트로이어들은 끝 까지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죠."

제이크는 쿠사라의 말에 의문이 더 커졌다.

'왜 마도 제국은 멸망한 거지?' 이렇게 제대로 준비했던 마도 제 국이.

별을 떨어뜨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던 마도 제국이.

대체 왜 멸망했을까.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문을 뒤로한 채로 일행은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개의 동굴 중 한 곳으로 쿠 사라가 일행을 이끈 것이다.

"마법사님도 느끼실 겁니다. 강 력한 마나가 나오는 것을."

"제이크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크는 멀리 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느끼고 표 정을 굳혔다.

"그런 게 느껴져?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제대로 된 마법사나,저처럼 오 래 산 마법사들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기척이니까요."

제시카의 질문에 답하면서 제이크는 아니타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 역시도 마나의 기척을 느끼 지 못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계 속 걷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걸었을까.

제이크는 이상한 느낌에 문득 뒤 를 돌아봤다.

스르르륵.

일행이 왔던 통로가 변하고 있었다.

기존에 왔던 통로가 막히고,다 른 벽이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동

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제이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제시카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무 소리도,느낌도 없었는 데……. 환상 아냐?"

반면,쿠사라는 다른 의미로 놀 라고 있었다.

"길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거였군요. 저는 그 오랜 시 간 동안 다니면서도 길이 변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드는 말에 아니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

다.

그에 쿠사라가 웃으며 그녀를 안 심시켰다.

"하하,괜찮습니다. 조금 부러웠 을 뿐입니다."

천 년을 살았던 그였지만,서포 트라는 한계는 넘어설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마법사를 다시 보게 된 그는 오랜만에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그 질투는 금방 억누를 수 있었다.

오랜 시절 고통과 함께 살아온

그에게는 그런 감정은 사치일 뿐 이었다.

제이크를 보며 살짝 웃은 쿠사라 는 다시 일행을 이끌고 동굴을 걸 어갔다.

동굴은 정말 개미굴처럼 보였다. 두꺼워졌다,가늘어졌다,올라갔 다가 내려갔다가.

거기다 갈림길이 계속 나타나 정 신을 어지럽혔다.

"난 항복. 이게 뭐야!"

1시간 정도 지나자,제시카는 손 을 들며 울상을 지었다.

수많은 던전을 다닌 도적으로서

길을 외워 보려고 했지만,그녀의 뛰어난 감각으로도 더는 현재 위 치를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더 아래로 내려왔는지, 지금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 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거기다 방향이나 깊이를 알려 주는 마법 아이템도 모두 맛이 가 버렸어.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곳 이네."

제시카는 제이크가 만들어 준 마 법 아이템을 보며 혀를 찼다.

방향을 알려 주는 마법 나침판과 높이를 알려 주는 마법 고도계 모

두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주변을 둘 러봤다.

확실히 이상했다.

제이크의 뛰어난 감각으로도 이 곳이 어디쯤인지 겨우 알 수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거의 1킬로 이상 내려온 지점.

거기다,호수 바로 아래였다.

"정말 미로군요. 여기다가 제대 로 가고 있다고 믿게 해 주면 정 말 절대 벗어날 수 없겠네요."

제이크의 말에,제시카는 그런 마법이 없더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이미 수십 번 이상 통로가 사라 지고 나타났다.

처음 통로가 사라진 것을 본 이 후로는 감각으로만 확인했지만, 이제 제이크도 벽을 뚫지 않고는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내려오자 일행 이외에 제이크의 감각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전방에 500걸음 정도에 괴물,

아니,디스트로이어입니다."

제이크의 말에 쿠사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아직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 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의아한 얼굴로 제이크를 바라봤다.

"마도 제국 때 마법사도 그 정도 감각을 가진 마법사가 없었는 데……

-그야 당연하죠. 마나 사용자급 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사가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

갑자기 걸어온 파티마의 말에 제

이크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어서 잠자고 있나 했네. 좀 충격이었나 보네.

-뭐,그 당시 때 서포터를 봤으 니까요. 하지만,서포터는 서포터 죠. 어차피 본 적도 없는 서포터 니.

그래도 뭔가 회상에 잠긴 것 같 은 목소리였다.

이럴 때면 제이크는 파티마가 단 순한 에고 아이템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제이크는 시선을 돌려 쿠사라에 게 대답했다.

"제가 좀 특이한가 보군요."

"확실히 그렇네요."

쿠사라는 제이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걸어갔다.

그렇게 다시 얼마 동안 걷자,일 행은 다가오는 검은 생명체를 보 게 되었다.

흐물거리는 거대한 푸딩처럼 보 이는 검은 몬스터였다.

"스웨잉이군."

'슬라임이네.'

쿠사라의 말과 동시에 제이크가 괴물의 이름을 떠올렸다.

과거 마도 시절에는 스웨잉이라

고 불렀을지 모르겠지만,제이크 는 놈을 슬라임이라고 불렀었다.

전생에 봤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 던 제일 약한 몬스터.

하지만,검은색 일색인 이 괴물 은 그런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먹고,어떤 공격도 막아 내는 괴물.

덩치를 키워 성 하나를 뒤덮은 놈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다가오고 있는 괴물은 그리 강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제이크는 그 이유를 단번에 알아

챘다.

"굶었군요."

물론 황소 하나는 거뜬히 삼킬 크기였지만,흐느적거리는 괴물의 모습은 미래에 봤었던 그 무섭던 놈이 아니었다.

"잘 아는군요. 괴물에 대해서도 전수를 받으신 건가요?"

쿠사라의 물음에 제이크는 어깨 를 으쏙였다.

미래에서 봤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쳇,덤터기는 다 나한테 씌우고……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너도 괴물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시대가 다르다곤 하지만,이 정 도 시설들이 만들어졌다면 아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파티마는 침묵했다.

그에 제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입을 닫고 있으면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는 말 없는 파티마에게 신경을 끄고 앞을 바라봤다.

어느새 쿠사라가 다가오는 슬라

임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파이어!"

쿠사라의 손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화염 방사기 같았다.

불은 동굴을 뒤덮고,괴물도 뒤 덮었다.

크루루루룩.

불 속에서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 와 함께,듣기 거북한 괴물의 음 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괴물은 불에도 굴하지 않 고 일행을 향해 다가오려 하고 있

었다.

제이크 말대로,오랜 시간 미로 를 헤맨 괴물이었다.

뜨거운 불에 고통스러웠지만,오 래간만에 만난 먹이를 놓치고 싶 지 않았다.

하지만 불은 열기만 있는 게 아 니었다. 열기와 함께 괴물을 계속 뒤로 밀어냈다.

괴물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 갔지만, 얼마 뒤 불이 멈췄을 때 는 오히려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괴물의 검은 피부 전체가 마구 갈라져 있는 게 보였다.

다른 몬스터 같았으면 온몸에 화 상을 입었을 것 같은 모습.

아무리 마법에 내성이 있는 괴물 이라고 해도,기운을 다 잃은 상 태에서 마도사급 이상의 마법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슬라임을 닮은 괴물은 결국 일행 에게 닿지도 못하고,쓰러지고 말 았다.

슬라임 괴물을 쓰러뜨린 뒤,일 행은 여러 차례 괴물과 맞닥뜨렸다.

제이크의 감각으로는 더 많은 괴

물이 스쳐 지나갔지만,미로처럼 꼬여 있는 동굴에서는 그렇게 쉽 게 마주치지 않았다.

홀로 있는 괴물은 일행이 힘을 합쳐 처리하고,여러 마리가 모여 있으면 다른 동굴로 방향을 틀었다.

덕분에 일행은 그리 오래지 않아 미로의 핵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속도군요."

목적지에 도착하자,쿠사라가 놀 란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서포터

인 그로서는 엄청나게 놀랐다는 표현이었다.

"적어도 이 세 배 이상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한 감 각은 정말 대단하네요."

"쿠사라님 의 마법도 대단하던데요. 몬스터 대부분을 쿠사라 님이 잡으셨잖습니까."

"맞아,나도 나설 틈이 없었다니 까."

제이크와 제시카는 그리 도울 필 요도 없었다.

아니타가 만든 덩굴로 괴물을 묶 고,쿠사라가 마법을 퍼부어 괴물

을 죽이는 방법으로 거의 모든 괴 물을 없앨 수가 있었다.

덕분에 다른 두 사람은 뒤쪽에서 화살 몇 개만 날렸을 뿐이었다.

확실히 혼자 핵이란 곳에 다니곤 했다는 쿠사라의 말은 거짓이 아 니었다.

"여기가 그 핵이란 곳이군요." 제이크는 도착한 지하 광장을 둘 러봤다.

반구 형태의 커다란 지하 광장이 었다.

바닥에는 마법진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중앙에는 거대한 마석이

공중에 떠 있었다.

"예쁘다."

제시카는 넋을 놓고 광장을 바라 봤다.

빛을 뽐고 있는 마법진 때문일 까. 광장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 였다.

하지만 제이크는 마법진을 보자 마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의 흐름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고,마법진의 색도 온전하지 않았다.

곧,그는 어디가 문제인지도 알

게 되었다.

광장 한쪽에 괴물의 시체가 있었다.

거대한 검은 지네가 몸이 파먹힌 채로 광장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 지네 근처의 마법진이 온통 헤집어져 있었다.

"괴물들 간의 싸움으로 마법진이 망가진 거군요."

"원래 이곳에 들어올 수 없는 괴 물들인데. 외부에서 온 괴물에게 는 소용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걸 고쳐 내면 되는 겁니까?"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제이크는 마법진 위를 성큼성큼 걸어, 괴물의 사체가 있 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마법사들도 그를 따라 마법 진 위를 걸어갔고,제시카도 울상 이 된 얼굴로 조심조심 마법진 사 이로 발을 옮겼다.

사체 옆에 도착한 제이크는 유심 히 마법진을 살펴봤다.

그런 후 그는 광장 전체를 둘러 봤다.

마법진의 흐를이 하나하나 느껴 졌다.

그동안의 노력과 훈련이 그에게

마법진을 알려 주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 지만,그는 자신이 마법진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칠 수 있습니다."

제이크는 처음으로 미래에 보았 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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