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급 서기관의 회귀-179화 (179/222)

179화

일단의 부대가 제국의 황도로 들 어서고 있었다.

아름다운 새가 활짝 날개를 펴고 있는 깃발이 부대를 선도하고 있 었다.

그리고,깃발 뒤로 아름다운 여 기사가 어깨에 귀여운 새 한 마리 를 앉힌 채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녀는 아스굴론과 루테리아 영 주의 영주이자,제국의 여기사인 레이첼 여남작이었다.

그리고,그녀를 따르고 있는 부 대는 전부터 그녀와 같이 다녔던 친위대들이었다.

수많은 싸움과 훈련 덕분에 그녀 의 친위대는 이제 어느 부대와의 싸움에서도 지지 않을 정도로 성 장해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나쁘군요. 볼 때 마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습 니다."

니콜라스 기사단장이 주위를 둘 러보며 말했다.

레이첼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 개를 끄덕였다.

황도는 적막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겁이 질린 표정으로 빠르게 걷고 있었고,집 창문들은 모두 내려져 있었다.

거기다,항상 깨끗하던 대로에도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황도는 피해가 없었을 텐데."

"그동안 계속된 내전 때문이거나 황제 때문이겠죠."

니콜라스의 물음에 앰버가 대답 했다.

"소문보다 더 심하군요."

"이래서야 군대를 어디 보내기는 커녕 황도 방어도 못 할 판이군."

얼마 전 서쪽의 반란군을 모두 정리하는 데 성공한 제국군이었지 만,그 싸움으로 제국군도 큰 피 해를 보고 말았다.

같은 반란 영지인 프랑코 영지의 성채와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반란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분노한 황제의 손에 반 란을 일으킨 서쪽 영지들은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워졌다.

그 일로 황제는 이제 공포의 황 제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니콜라스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레이첼이 황제에게 할 이 야기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꽤 위 험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른 영지들이 레이첼을 대표로 보낸 것이었다.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레이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사단장인 니콜라스,영지 마법 사인 앰버,깃발을 들고 있는 루 이 기사,그리고 친위대들과 신관 들까지.

만약을 대비해서 영지의 정예들 을 모두 데리고 왔지만,두 사람 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6개월 전 대수림 너머로 떠난 제이크와 제시카가 없었다.

기약했던 기간이 지났건만,두 사람은 오지 않고 한 달 전에 감 시역으로 보냈던 기사만 홀로 돌 아왔을 뿐이었다.

대수림을 넘은 뒤 기억을 잃었다 는 기사는 다른 일행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제이크와 제시카는 대수 림에서 실종된 사람들 명단에 포 함되 었다.

물론,레이첼과 두 사람과 가까 운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무사히 돌 아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두 사람을 기다리기 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3개월 전부터 레타니아 왕국에서 쏟아져 나온 검은 몬스터들 때문 이었다.

레이첼과 친위대가 황도에 온 것 도 그 몬스터 때문이었다.

레이첼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황궁으로 향했다.

이제 담판을 질 때가 되었다.

황궁의 대형 홀에는 한참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토론이라기보다 말싸움에 가까웠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피해를 보고 있는 영지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미 완전히 먹혀 버린 영지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미 내전으로 피해가 심합니다. 좀 더 힘을 모은 뒤

"그게 언제란 말입니까! 제국이 망한 뒤에 움직일 겁니까?"

"무슨 망발입니까! 제국이 망하 다니. 황제 폐하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겁니까!"

귀족들이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의 자리에 앉

아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검은 몬스터들이 레타티아 왕국 을 넘어 제국을 침범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대립이었다.

검은 몬스터들에게 피해를 본 영 지들이 황제와 제국에 구조를 요 청했지만,황제는 그간의 내전을 핑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쪽의 영지를 정리한 게 얼마 전이었다.

더구나 영지를 정리하면서 많은 성들을 불태워 버려,황제에 대한 백성들의 반감은 엄청난 상태였다.

처음에는 황도의 귀족들도 참으 라는 말로 남부 영지들을 다독였 지만,이제는 황도의 귀족들도 참 지 못하고 들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레타니아 왕국 국경 부근의 영지 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이 제는 제국 깊숙한 곳의 영지까지 침범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황도에 자리 잡은 귀족들이라고 해도 영지는 있었다.

더구나 결혼으로 사슬처럼 얽혀 있는 귀족들이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지 않는 귀족들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황제에 대 한 두려움에 몸을 사렸지만,이제 는 황제가 있는 앞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일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아무리 소란이 일어도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황제에게 기사 하나가 다가와 속 삭였다.

"오,여남작이 왔다고? 들여보내 라고 해. 무슨 말을 하든지 이것 보다는 재미있겠지."

황제의 허락을 받은 기사가 다시

나갔고,곧 시종장이 외치는 소리 가 들려왔다.

"레이첼 아스굴론 여남작이 입실 합니다!"

갑작스러운 여남작의 등장에 소 란하던 홀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홀의 문이 열리고 레이첼 이 들어섰다.

갑옷을 차려입은 그녀는 황제 앞 에 나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인사가 끝나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저번 일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대수림 너머의 탐사는 반쪽 성공 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탐사원 대다수는 실종되었지만, 기사 한 명이 최초로 대수림을 넘 었다.

귀족들은 레이첼의 성공에 감탄 했지만,미래에 대수림을 넘었던 황제는 시큰둥할 뿐이었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대수림 너머였지,대수림을 넘는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제의 물음에 레이첼이 대답을 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군대를 출병시켜 주십 시오."

레이첼의 말에 황제는 지루하다 는 얼굴로 귀를 후볐다.

"재미없군. 결국,그 이야기를 하 러 온 건가? 그런 이야기는 벌써 상소문에도 가득하고,벌써 몇 주 동안 귀족들이 떠들던 거다. 그런 쓸데없는 말을 추가하느라고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긴장한 얼굴로 레이첼과 황제를 바라보던 귀족들도 이내 서로 속 삭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레이첼과 같은 이유로 황도로 찾

아온 영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실질적인 피해가 없는 영지 의 영주로서는 처음이었지만,그 녀의 성격으로 보면 이해하지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미 넘치고 넘친 요청인 터라,귀족들은 레이첼에게 관심 을 꺼 버렸다.

그에 레이첼은 속으로 한숨을 내 쉬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청한 것이 었지만,역시 소용없는 일이었다.

제이크의 말이 맞았다. 황제는 제국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레이첼은 고개를 들고 황제를 똑 바로 바라보았다.

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 자,레이첼은 목소리에 마나를 실 어 선언을 했다!

"제국법에 의거,아스굴론 영지 와 루테리아 영지,그리고 그 주 변 영지들은 독립적으로 영지를 방어하겠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귀족들은 놀란 얼굴로 레이첼을 바라보았고,지루했던 황제도 표 정을 바꾸었다.

"제국법에 의하면,제국군의 지

원이 힘들 때 각 영주는 힘을 합 쳐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 금 제국군이 절대 움직이기 힘들 것으로 보이니,저희들은 따로 몬 스터를 막아 내겠습니다."

그녀 말대로 제국의 영지들은 자 신의 영지병으로 적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내고,적 국의 침입을 막아 내는 것은 과거 에도 있었고,지금도 계속 일어나 는 일이었다.

그 가운데 옆 영지가 도와주기도 했고,두 영지가 힘을 합쳐서 적

을 무찌르기도 했다.

하지만,지금 그녀가 말한 내용 은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반란인가?"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적막했던 홀의 공기가 딱 딱하게 얼어붙었다.

철컥,철컥.

그사이 황제 뒤에 서 있던 근근 위기사들이 슬쩍 옆에 찬 검을 잡 아 갔다.

영지가 홀로,혹은 둘이 함께 영 지병을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되

지 않았다.

하지만 셋 이상의 영지가 모여 군대를 운영하는 것은 황제의 말 처럼 반란으로 불리기 딱 좋았다.

그래서 제국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임에도 관행적으로 셋 이상의 영지가 같이 군대를 운영하는 일 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레이첼이 그 관행 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반란을 생각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첼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미,제국 여러 곳에 몬스터들 이 침입해 있습니다. 저희 동부 영지들은 제국군의 도움을 받기에 는 너무 멀리 있습니다. 그리고 폐하와 제국의 오해를 살 생각도 없습니다. 저희 군은 제국군의 장 군이 통솔할 것입니다."

"호,그건 또 무슨 이야기지?" 황제의 얼굴에는 그간의 지루함 이 다 사라져 있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쥔 것 같 은 반가운 표정만이 가득했다.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을 숨기 느라 레이첼은 더욱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황제의 질문에 대한 대답 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제가 그 부대를 관리하고 싶습 니다."

지긋한 나이가 느껴지는 음성. 바로 수도 방위 부대장인 대검호 오페우스 백작이었다.

귀족들의 눈이 옆으로 획 돌아갔 고,황제도 고개를 돌려 백작을 바라보았다.

"수도 방위대는?"

"그 일은 내려놓고 싶습니다. 유 능한 기사들이 많으니 이제 길을

터 놓을 때도 되었지요."

다를 때 같았으면 평범하게 퇴임 하고 싶어 하는 노장의 덕담이 되 었겠지만,지금은 전혀 다른 이야 기가 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란으로 치달 을 수 있는 부대를 제국의 장군이 통솔하겠다는 이야기였지만,다르 게 보면 그도 반란에 참여하겠다 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레이첼과 오 페우스 백작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전선이 너무 넓습니다. 저와 동

쪽 영지들이 제국의 동부를 막아 내는 동안 다른 곳을 우선 정리하 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적은 하늘을 나는 몬스터였다.

지상으로 다니는 변형 몬스터들 도 보였지만,아직 대부분이 비행 몬스터였으니 인간과 싸우는 방식 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다.

거기다,꼼짝도 안 하는 황제였 던 만큼 영지들로서는 솔깃한 이 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제국의 황제가 그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내가 반대를 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반란을 일으킬 건가?" 황제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물 어보았다.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소에 홀 전체가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레이첼의 표정은 변하 지 않았다.

얼굴을 맞댄 것은 많지 않았지 만,황태자였을 때부터 황제에 대 해 많이 듣고 봐 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이크에게 미래 에 황제가 벌인 일에 대해 모두 들었다.

지금으로서는 레이첼이 황제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는 황제는…….

레이첼이 황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서 반대를 하실 건가요?"

담담히 대답하는 레이첼의 말에 귀족들은 모두 귀를 의심했지만, 황제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그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허락하지. 나 대신 제국을 침입한 몬스터들을 없애준 다는데 싫어할 리가 없지."

마치 아량이 넓은 것처럼 말하는

황제였지만,레이첼은 그 안에 흐 르는 피를 느낄 수 있었다.

말과 달리 황제의 눈은 어서 그 소를 살찌워 가져오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출발 전 제이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황제는 뒤로 갈수록 광기에 휩 싸여 버렸습니다. 제국도 백성도 의미가 없고,단지 더 많은 싸움 과 더 많은 피를 원할 뿐이었지요. 아마 아인족의 세상을 찾아갔 던 이유도 세상을 멸망시킬 방법

을 찾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그녀는 제이크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한 달 뒤.

아스굴론 영지를 중심으로 제국 동부 영지군이 출범했다.

그리고 그 시각,제이크와 제시카는 괴물들에 쫓겨 도망치고 있 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