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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81화 (181/222)

181 화

그동안 벽은커녕 기둥도 볼 수 없었던 지저 세계였다.

거기다 천장은 구름 위에 있어, 비행 마법으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한 제이크가 몇 번 구름 을 뚫고 올라가 보기도 했지만, 천장은 위로 통하는 구멍 하나 나 있지 않았다.

대신 구름 위를 나는 거대한 괴 물의 습격을 받아 제이크마저도 죽을 뻔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동쪽 벽 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말 그대로 천장까지 이 어진 수직 벽이 끝없이 늘어서 있 었다.

지저 세상의 동쪽 끝이라는 느낌 이 여실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곳에,틈이 없이 단단한 바위 로 되어 있는 수직 벽 사이에 금 하나가 그어진 것처럼 보이는 곳 이 있었다.

제이크와 제시카가 있는 곳에서 보기에는 실선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상당 히 큰 틈이 분명했다.

그 틈 아래에 얼마 전에 보았던 검은 유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틈을 막아서는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지만,건물 위로 나 있 는 틈으로 많은 괴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제이크와 제시카 두 사람은 벽과 멀리 떨어진 낮은 산 중턱에서 유 적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뚫고 가야겠 네."

제시카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에 비슷한 유적에서 도망 쳐 나온 두 사람이었다.

그때는 더 접근할 이유가 없었지 만,지금은 저 유적 뒤로 나 있는 틈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정말,무시무시하네요."

그녀와 함께 유적을 보고 있는 제이크도 질린 표정이었다.

"정말 지나갈 수 있긴 한 거야?"

비행 괴물들이 장악하고 있던 유 적과 달리,눈앞에 보이는 유적은 특정한 괴물이 둥지로 삼은 것 같 지 않았다.

다만 유적 주변에 있는 괴물들의 숫자가 너무,너무 많았다.

수백,수천의 괴물들이 유적 주 변에 버글거렸다.

더구나 몰려든 만큼 괴물들끼리 의 싸움도 심해,유적 주변은 완 전 난장판이었다.

"대충 방법은 있을 것 같아요. 꽤 빡빡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포 기할 수는 없죠."

"그야 당연하지. 먹을 것도 거의 다 떨어졌다고."

마법 가방에 넣어 둔 식량이 결 국 끝이 보였다. 물론 이 지저 세 계의 식물도 먹을 수 있을 듯했지 만,그렇다고 직접 시험해 볼 생 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그 공간 이동 마법은 문제없는 거야? 기껏 올라간 뒤에 또 튕겨 나오면 답 없잖아."

"그때야 예상 못 해서 당한 것뿐

이에요. 이번에는 절대 안 당합니다."

나름 공간 이동 마법에 자신 있 는 제이크였다. 똑같은 마법을 두 번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때,아래쪽에 있던 나무 뒤에 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여기 와서 기다린 게 정답 이었군요."

이 지저 세계에서 서로의 목소리 말고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분명 그 음성은, 두 사람 말고는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

쿠사라의 목소리였다.

커다란 나무 뒤에서 쿠사라가 모 습을 드러냈다.

쿠사라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제이크와 제시카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쿠사라가 나무 뒤에 숨어있 다는 것을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다.

이 지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제이크는 물론이고 제시카의 감각 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금 그녀의 감각은 과거 지상에 서 제이크가 가졌던 감각 수준에

가까웠다.

그렇게 쿠사라가 있다는 것을 미 리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쿠사라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습을 드러낸 쿠사라는 그들이 알고 있었던 모습과 달랐다.

아니,그보다 인간으로 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한쪽 팔은 길게 늘어져서 바닥에 끌리고 있었고,다른 팔은 마치 돌로 만든 거대한 해머처럼 변해 있었다.

또한 그의 다리는 사람과 반대

방향으로 관절이 굽어 있었다.

거기다 뼈와 근육이 겉으로 드러 나 있어 보기가 불편해질 정도였다.

또한,상체는 완전 누더기로 변 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 여기저기에 뿔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고, 근육이나 혹 같은 것이 사방에 붙 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도 반 이상 일그러져 있었다.

옷 한 가닥도 걸치지 않은 그 모 습이,어쩐지 전혀 이상하게 보이

지 않았다.

"어,어떻게 된 거야?"

놀란 제시카의 물음에 제이크가 대답했다.

"너무 많이 죽었군요. 재생 마법 이 따라가지를 못한 거예요."

제이크의 말에 쿠사라는 일그러 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정답입니다,마법사."

그는 제이크와 제시카를 보며 고 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당신들은 너무 멀쩡하군요.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 던 거죠? 아무리 고대 마법사라고

해도 멀쩡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 을 줄이야. 혹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무척 놀랍군요."

두 사람은 제이크의 은신 마법과 감지 마법 덕분에 싸움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지만,쿠사라는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의 강력한 마법은 괴물들에게 잘 통하지도 않았고,결국 그는 수많은 죽음과 재생 끝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갈가리 찢겨 나가기 도 했고,몸 일부를 먹히기도 했 고,독에 중독되어 썩어 가기도

했다.

"아니타는 어떻게 되었죠? 죽었 나요?"

"아니,그녀가 없었으면 여기까 지 오지도 못했겠지요. 그녀도 여 기 있습니다."

쿠사라의 말에 제시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과 달리 그녀의 감각에도 아니 타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에 숨어 있군요."

하지만,제이크는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맞혔다.

다만,제이크의 표정은 그리 좋

지 않았다.

제이크가 쿠사라가 숨어 있던 나 무를 가리키자,나무가 변하기 시 작했다.

이파리들은 쏟아져 내리고,가지 가 줄어들었다.

뿌리가 바닥에서 뽑히고 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가지도 줄어들어 양팔이 되었다.

결국,거대했던 나무는 여성으로 변했다.

"맙소사,아니타 마저……

제시카는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두 손으로 입을 감쌌다.

비록 형태는 아니타의 모습을 하 고 있었지만,그렇다고 인간으로 볼 수는 없었다.

피부는 모두 나무껍질 그대로였 고,얼굴은 눈,코,입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나무를 구부려 만든 분재같 이 보일 지경이었다.

"저야 재생 마법으로 살아날 수 있었지만, 아니타는 숨는 것밖에 는 방법이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 는 대부분 시간을 나무에 동화해 서 지냈어요. 나무가 된 그녀가

감싸 준 덕분에 저도 마지막 순간 에 살아남은 경우도 많았고. 그렇 게 우리 둘은 이곳까지 오게 된 거죠."

그녀는 너무 오래 식물로 지낸 탓에 인간의 정체성을 잃고 나무 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거 죠?"

울컥한 제시카가 소리쳤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보냈는데,선물을 남기고 두 사람 이 기운차게 떠나 버렸잖아요. 그 뒤에 아무래도 두 사람이 이곳을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 었어요. 그래서 혹시 몰라 이곳까 지 달려온 거죠."

그는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른 두 팔을 펼쳤다.

"그리고,제 예상이 맞았어요. 당 신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에요. 제가 직접 죽이지 않으면 지상에 있는 우리 종족이 위험해요."

고대 마도 제국의 마법사를 보았 었던 쿠사라의 편견이었지만,제이크나 제시카로서는 그의 편견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말을 마치자, 쿠사라의 돌 해머

처럼 보이는 팔에 빛이 흐르기 시 작했고,채찍 같은 팔에서는 녹색 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는 수없이 파괴되었 다가 재생되면서 인간 이외의 능 력을 지니게 된 듯했다.

그러는 사이 아니타는 다시 나무 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구나 나무로 변하는 그녀 주위 로 수많은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 했다.

다만 이 나무들은 모두 채찍 같 은 가지들이 휘청휘청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여기서 죽는 겁니다. 그러 면 지상은 안전해져요."

지금 지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 는 비행 괴물들은 몰랐지만,그래 도 아인족을 침입한 괴물에 대해 알고 있었던 쿠사라였다.

하지만 그는 고의적으로 그 괴물 을 외면하고 있었다.

천 년 이상을 섬에 있는 시설을 지켜 온 그는 그곳 시설만 멀쩡하 면 된다고 생각하고,또 믿고 있 었다.

그런 믿음으로 그는 제이크와 제시카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상체에서 튀어나온 뿔과 가 시가 제이크를 향해 튀어 나갔고, 채찍 같은 팔이 녹색 연기를 내뿜 으며 제시카를 후려쳤다.

그리고 바닥에서는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두 사람을 찌르려고 했다.

콰과과광.

하지만,모든 공격은 반투명한 막에 막혀 튕겨 나가고 말았다.

"실드인가?"

쿠사라는 몸을 날려,돌망치처럼 보이는 팔을 반투명한 막에 휘둘 렀다.

쩍!

빛나는 돌망치는 실드를 부수는 데 성공했다.

쿠사라의 얼굴은 밝아졌지만,금 방 다시 어두워졌다.

부서진 실드 뒤로 다른 실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계속 팔을 내려쳤지만,중 첩된 실드는 끝이 없었다.

그사이,제시카는 실드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무뿌리를 잘라 냈다.

그리고,제이크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잠시 뒤,쿠사라는 이해가 안 된 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물러선 그의 몸은 전보다 더 엉 망이었다.

채찍처럼 길었던 팔은 잘려 나가 있었고,상체에 나 있던 혹과 뿔, 가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빛나던 돌망치도 금이 간 채로 빛이 사라졌고,두 다리도 휘청거 리고 있었다.

나무뿌리로 공격을 했던 아니타 역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 와 있었다.

제시카에게 모든 뿌리를 잘린 탓 에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상대가 안 될 리가 없는 데……

쿠사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몸을 포기하다시피 만든 몸이었다. 괴물에게도 이긴 적이 있는 몸이었다.

그런데,이렇게 처참하게 밀리다고……

"잘못 생각했군요. 마법이 안 먹 혀서 몸을 개조하려고 한 모양인 데……. 난 저 괴물들이 아니라

인간,마법사입니다."

차라리 인간의 몸을 한 채로 마 법을 사용했다면,이런 결과는 나 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곳에 도착하 지도 못했을 테니,그런 생각은 무의미했다.

게다가 이미 쿠사라는 정상적인 생각이 불가능해 보였다.

무너진 것은 몸만이 아니라 정신 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한 가지 목표만 가슴에 새 긴 채로 이곳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질 리가 없어. 난, 널 막아야 해."

망가진 몸으로 그는 다시 제이크 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제이크가 먼저 움직였다.

수많은 재생 끝에 쿠사라의 가슴 에 파묻혀 있는 마석이 모습을 보 였다.

마석은 이미 색이 바래 검게 물 들어 있었다.

가속 마법으로 쏘아진 제이크는 쿠사라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마석이 잡혔다.

그는 쿠사라와 마석 사이의 마나 연결을 끊어버리고 마석을 뽑아 버렸다.

"커억……!"

마석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쿠사라는 무너져 내렸다.

마석이 몸 밖으로 나오더라도 마 력으로 연결되어 재생할 수 있는 쿠사라였지만,제이크가 마력마저 끊어 놓았기에 그는 더 이상 재생 할 수가 없었다.

몸을 이루는 부분이 하나하나 무 너져 내려 바닥에 흘러내렸다.

마치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 대신 아니타,아니,아니타의 모습을 한 나무가 허물어지는 쿠 사라에게 다가갔다.

아니타는 허물어지는 쿠사라의 잔해를 품에 안았다.

그와 동시에 아니타는 인간의 형 태를 버리고 나무가 돼 자라기 시 작했다.

슈우욱

쭉쭉 뻗어 올라가는 줄기와 가 지,그리고 퍼져 나가는 뿌리.

잠시 뒤,쿠사라가 있던 곳은@

곳에 거대한 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어,어떻게 된 거예요?"

놀란 제시카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좀 전과 달리,더 이상 아니타 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건 그 냥…… 나무입니다."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멍한 표 정으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끝이 뭐 이래.?"

모르는 이가 들으면 동화 같은 결말이라 생각할 법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그녀에게는 슬프고,짜증 나는 일일 뿐이었다.

"음유 시인의 노래는 다 이런 거 야?"

"글쎄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 만,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 잖아요."

"그럼,난 절대 음유 시인에 나 오는 사람은 안 될 거야."

이미 늦었을 것으로 보였지만, 제이크는 뭐라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그들이 싸우는 소리

를 듣고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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