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괴물들이 달려오는 산 중턱에서 두 사람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제시카의 허리를 감은 제이크가 비행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지상에서 돌과 나뭇가지,마법
까지 날아왔지만,제이크는 여유 있게 피하며 더욱 위로 올라갔다.
"이대로 날아가려고?"
"절벽 근처까지는요."
"하지만 지상에 바글바글 몰려 있잖아. 어떻게 지나가려고? 입 구가 다른 곳에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제시카가 수직 벽을 연신 살폈다. 하지만 지상 에 난 틈 이외에는 틈 비슷한 것 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틈은 없을 겁니다. 아무 리 봐도 저 유적들은 지상으로
나 있는 균열이나 틈에만 있는 모양이니까요."
제이크의 말에,제시카는 몇 개 월 전에 봤던 균열 및 검은 유적 을 떠올렸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음…… 그냥 돌입하는 것은 힘 드니,지원군을 좀 만들려고요."
"지원군?"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 느덧 제이크와 제시카는 수직으 로 된 벽에 접근해 있었다.
제시카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잘 잡고 있어! 뭘 할지는 모르 겠지만,떨어뜨리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제이크가 그동안 벌인 일을 생 각하면 한껏 주의를 주어도 부족 할 따름이었다.
"절. 대. 놓지 않을게요."
제이크의 말에 더욱 불안함을 느꼈지만,이어지는 제이크의 주 문에 제시카는 더 이상 말을 꺼 낼 수 없었다.
"마나여,너의 힘을 이곳에 펼 쳐라. 너는 열기가 되고,힘이 되 고,분노가 된다!"
제이크의 주문에 거대한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나가 완드에 모여 주변의 마나 를 끌어모았고,모여든 마나는 다시 완드에서 빠져나와 변형되 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제이크 와 제시카 앞에 거대한 불덩어리 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야!"
말도 안 되게 커지는 불덩어리 에 제시카가 놀라 소리쳤다.
"이걸 날리려고?"
오래전 본,앰버가 오랜 시간에 걸려 만든 불덩어리보다 훨씬 커 다란 불덩어리였다.
"아뇨,놈들의 저항력이 꽤 강 해서 직격을 받은 놈들만 피해를 볼 거예요."
"그럼?"
제이크 말에 제시카는 불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대답 대신 완 드를 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쿵!
그와 동시에 묵직한 소리를 내 며 화염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아-
화염은 꼬리를 달고 전방으로 달려 나갔고,그대로 벽에 충돌 했다.
쿠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수백 걸 음 떨어져 있는 제이크와 제시카 가 있는 곳까지 파편이 날아왔다.
"아니,기껏 만든 걸 왜 벽에다 날려?"
실드 덕분에 날아온 파편은 튕 겨 나갔지만,제시카는 제이크가 왜 마법을 벽을 향해 날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잠시 뒤 화염이 걷히자 그녀도 곧 알 수 있었다.
화염이 걷힌 벽은 수많은 균열 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펼쳐진 균열은 점점 더 넓어졌다.
투툭. 툭. 쿠쿠쿵.
그러다 결국 절벽 일부가 무너 져 내리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마치,산의 일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작은 돌덩어리부터 거대한 암석
까지 수많은 돌덩어리가 지상으 로 쏟아져 내렸다.
그에 지상에 모여 있던 괴물들 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달아 나기 시작했다.
"자,그럼 우리도 가 볼까요?"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바위를 보며 제이크가 다시 한번 제시카 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설,설마…… 그건 아니겠지?" 제시카가 겁에 질려 물어봤지 만,제이크는 이미 자신의 몸에 중력 마법을 걸어 버린 뒤였다.
휘익.
이내 두 사람이 아래로 추락했다.
"떨어뜨리는 것보다 더 심하잖 아!"
제시카가 떨어지면서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제이크는 같이 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느라 제시카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쾅! 콰앙! 쿵!
지상은 떨어지는 바위와 돌로 난장판이었다.
수많은 괴물이 바위에 깔려 버 렸고,괴물들이 달아나다가 서로
부딪쳐 싸우기도 했다.
더구나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 지는 바람에 낙석이 떨어지는 범 위가 엄청 넓었다.
실제로 깔리는 괴물은 예상보다 많지 않았지만,대신 혼란은 더 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떨어지는 바위 사이로 제이크와 제시카의 모습도 보였다.
"으악,멈춰! 바닥에 부딪힌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비행 시물 게임을 많이 해 봤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머릿속에서 파티마의 한숨이 들 리는 듯했지만,제이크는 전부 무시하고 주문을 외웠다.
"중력 캔슬! 그리고, 너의 날개 를 펼쳐라.,망토 확장! 마나의 날 개!"
그러자 망토가 활짝 펼쳐지고, 그 뒤로 마나로 만들어진 반투명 한 날개가 넓게 이어졌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삼각형 형 태의 날개는 제이크와 전생에 보 았던 비행기 날개와 똑같았다.
"마법을 썼는데 왜 안 멈추는
거야! 더 빨라졌잖아!"
빠르게 다가오는 지상을 보며 제시카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꽉 잡아요! 중력 가속도가 엄 청 걸릴 테니까!"
"뭐가 걸려?"
"그냥 꽉 잡아요!"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제시카 는 자기도 모르게 제이크를 꽉 껴안았다.
동시에 제이크가 마나로 만든 날개의 방향을 급격하게 꺾었다.
"꺄악!"
"으윽!"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있던 날 개가 방향을 틀자,엄청난 충격 이 제이크와 제시카를 강타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눈이 붉게 변했다.
"세상이 빨개!"
눈에 피가 몰리면서 세상이 붉 게 보이자,제시카가 놀라 소리 를 질렀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 말에 대꾸 할 겨를이 없었다.
마법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지 만,마나 사용자만큼 중력 가속 도를 버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었다.
과과과과.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두 사람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속도는 그대로였지만, 점점 수 평으로 방향이 바뀌더니 결국 지 상 바로 위에서 수평으로 변했다.
주변에는 계속 바위가 떨어져 내렸지만,두 사람은 그것을 인 식하지도 못했다.
두 사람은 마나의 날개에 실려 엄청난 속도로 유적 위로 난 틈 으로 쏘아졌다.
다행히 절벽에 난 틈은 예상보 다 엄청 넓었다.
거대한 홀 이상의 넓이라,제이크와 제시카가 뛰어들어도 주변 벽에 부딪힐 염려가 없었다.
지상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괴물 들이 보였지만,다행히 위를 올 라가 보는 놈들은 없었다.
제이크는 틈 안으로 들어선 뒤, 점차로 속도를 줄였다.
벽 사이에 난 틈은 안에서 볼 때는 작은 동굴들로 이어진 큰 동굴이었다.
중간마다 난 작은 동굴들이 지 상으로 통하는 동굴들이 분명했다.
이윽고 둘은 드디어 괴물이 보 이지 않는 작은 동굴 앞에 내려 섰다.
"아이고,어지러워."
제시카가 땅에 내려서자마자 투 덜거렸다.
하지만 그 이상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땅에 내려선 뒤,제이크가 그대 로 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네가 더 힘들어하면 화
를 낼 수가 없잖아."
"헉,헉,중력이 걸리는 게 이렇 게 힘들 줄 몰랐……
게임으로만 해 봤으니,중력 가 속도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으 싸!"
고개를 갸우뚱하던 제시카가 이 내 그를 등에 업었다.
"우리 마법사님이 고생하셨으 니,지금부터는 내가 힘내야지."
괴물들이 없는 동굴 앞에 내려 섰지만,어느새 눈치를 채고 멀
리서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키 차이 때문에 제이크의 발이 땅에 끌릴 지경이었지만,제시카 는 그를 엎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로 달리면 되지? 방향만 알려 줘."
"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제이크가 대답했고,제시카는 마법 부츠에 마나를 가득 불어넣었다.
제이크를 업은 제시카가 동굴 안으로 쏘아졌다.
아인족의 성지 바빌로니아에 다 시 봄이 찾아왔다.
대수림 너머 인간들의 세상은 온통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다 행히 아인족들은 평화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인간들 세상에 쏟아져 나온 디스트로이어들이 대수림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수림에 사는 몬스터들 덕분인 지 아니면 이곳에 있는 다른 디 스트로이어의 통로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그 덕분에 아인족
들은 담 넘어 불구경하듯이 인간 들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기다,작년 여름 선도자 쿠사 라의 희생 덕분에 더는 섬에서 디스트로이어가 나올 걱정을 하 지 않을 수 있었다.
인간들 세상에 다른 디스트로이 어들이 나온 탓에 빛이 바래지긴 했지만,그래도 모두 그의 희생 을 감사했다.
"모두는 아니다. 내가 알았으면 절대 뜯어말렸을 거다."
"그거야,다들 모르지 않았습니
까."
호족 주술사의 말에 음유시인 베른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아니,고양이 한 마리 까지 포함해서 세 사람은 바빌로 니아 중앙에 있는 섬에 와 있었다.
섬은 전에 제이크가 들어갈 때 처럼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다.
대신 섬 한쪽에 커다란 위령탑 이 만들어져서 순례자를 받고 있 었다.
주술사와 베른,그리고 고양이
페이샤는 인간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위령탑을 방문한 것이었다.
다만,그들은 다른 순례자들과 달리 쿠사라와 아니타를 추모하 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이 위령탑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두 인간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홍,알았어도 가만히 있을 놈 들도 많았을걸? 아니,미리 알고 있었던 놈들도 있지 않았을까?"
지난 가을.
쿠사라와 인간들이 유적 아래로 내려가고 얼마 뒤,유적의 마법
이 천 년 만에 다시 제대로 가동 이 되었다.
유적의 마법이 다시 가동되자 그제야 사람들은 유적 안으로 들 어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유적 안에 들어간 사람들 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희생한 것이었다.
아인족 모두는 그들의 희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위령탑을 만 들었다.
그를 떠올리며 주술사가 중얼거 렸다.
"희생은 개뿔,인간들은 알지도 못했을 텐데."
더구나 그들이 생각하기로,제이크나 제시카가 희생할 인간들 도 아니었다.
특히 인간 마법사는 어떻게 하 든지 살아 나갈 방법을 만든 뒤 에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다.
"뭐,이미 늦은 일이니까요."
베른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 지만,주술사의 투덜거림은 멈추 지 않았다.
"거기다,지금 인간 세상에 벌 어지는 일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
다고? 대수림이 지켜 주느니,이 섬에 있는 통로 때문에 넘어올 수 없느니 헛소리만 해 대고 말 이다."
주술사의 말에 베른은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인간 세상으로 나가 본 적이 없 는 아인족들은 지금 벌어지는 일 들을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물론 경계는 강화하고 있었지 만,설마 대수림 너머까지 디스 트로이어가 넘어올 것이라고는 믿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그냥 죽게 놔둘 수
는 없고. 문제는 인간 마법사가 죽어 버렸으니 영주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냐……
잠들었던 기사를 보냈을 때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디스트로이어들과 싸우고 있는 여자 영주에게 말이라도 붙이려 면 인간 마법사에 관해 이야기하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술사의 말에,직접 말을 해야 하는 베른은 다시금 깊은 한숨이 절로 났다.
"두 사람이 살아서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졌으면 좋겠네요."
그 순간.
화악!
일행의 위쪽 하늘에서 환한 빛 이 터져 나왔다.
놀란 두 명의 아인족과 고양이 가 위를 쳐다보았다.
야옹!
고양이가 하늘로 뛰어올랐다.
"하하! 페이샤,네가 제일 먼저 반겨 주다니. 기쁜데."
그리고 하늘에서 제이크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쿵.
"아야! 마법 좀 걸어 주지. 그
냥 떨어졌잖아."
그리고 일행 앞에 제시카가 내 려섰다.
"이런,페이샤하고 인사하다가 놓쳤네요."
뒤이어 제이크도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주술사와 베른은 두 사람을 보 며 눈을 끔벅였다.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두 사람이 놀랄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화악! 화악!
섬 위에 나타났던 빛과 같은 빛 이 섬과 성지 상공 곳곳에 나타 났다.
쿠아아아아!
그리고,검은색 일색의 몬스터 들이 지상에 떨어졌다.
"디스트로이어?"
베른이 놀라 소리쳤고,제이크 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검은 괴물 들을 바라보았다.
"이런,딸려 온 모양입니다."
말과 달리,절레절레 고개를 흔 드는 제이크의 입가에는 열은 미 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