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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83화 (183/222)

183화

성지 바빌로니아는 혼란에 빠졌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도시에 디 스트로이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갑작스럽

게 나타난 검은 몬스터들은 도시 를 공포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곳곳에서 디스트로이어와 아인족 의 싸움이 벌어졌고,그 여파로 도시의 피해도 커졌다.

한편,성지 중앙에 있는 호수 섬 에도 디스트로이어가 나타났다.

상당히 커다란 거미 형태의 디스 트로이어였는데,아쉽게도 나타나 자마자 팔다리가 날아가 버린 채 로 목이 잘리고 말았다.

놈이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제시카가 박살을 내 버렸기 때문이

었다.

"흐음-! 지상의 공기다. 정말 좋아."

제시카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표정만 보면 향긋한 바람 냄새를 맡는 모습이었지만,그녀 발밑에 는 몸뚱이만 남은 검은 괴물이 깔 려 있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이 었다.

"살아 있었군요."

두 사람을 발견한 베른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제이크의 표정 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일을 벌인 이가 쿠사라 혼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아무래도 아 인족 전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생 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디스트로이 어들과 같이 온 거냐?"

그 와중에 주술사는 침중한 목소 리로 물었다.

제이크는 짧게 생각을 정리한 뒤 에 대답했다.

"공간 이동으로 탈출할 때 상층 에 있던 괴물들이 같이 이동되었 나 봅니다. 핵에 있는 제어 장치 는 방향밖에는 지정이 안 되서 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공간 이동이 될 미로 상층 에 있는 괴물들을 미리미리 줄여 놓았으면 두 사람만 이동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고 생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이번 기회에 한번 고생 해 보라고 일부로 놔둔 채로 공간 이 동의 방향 좌표를 바꾸어 버렸다

물론,아예 망가뜨린 것은 아니 고 이번 1회에 한해서 바꾼 것이 지만.

제이크와 제시카가 밖으로 나간

뒤,미로는 다시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갔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 만……

주술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선착 창을 향해 달려갔다.

"이놈들 없애고 나중에 이야기하 자!"

호족인 그로서는 성지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헐레벌떡 달리는 주술사를 지켜 보는 제이크에게 베른이 조심스럽 게 물었다.

"혹시,쿠사라 님과 아니타 님은

어떻게 되셨는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이크의 표정이 나빠졌다.

옆에 서 있던 제시카도 코웃음만 홀릴 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제이크는 고개를 저어 대답 을 대신했다.

"그렇군요. 두 분은 돌아오지 못 했군요."

그를 본 베른은 어두운 안색이 되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제이크가 그에게 질문을 던 졌다.

"그동안 밖은 어땠습니까? 기사 는 돌려보냈습니까?"

"너무 오래 있어서 영주님도 걱 정하셨을 텐데. 혹시 죽었다고 생 각하신 거 아닌지 몰라."

제이크와 제시카의 질문에 베른 은 난감한 표정이 되어 페이샤에 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자기 손만 핥았다.

"저,그게…… 많은 일이 있었습 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의 눈 치를 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

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레타니아 왕국에 서 쏟아져 나온 비행형 디스트로 이어들.

그로 인해 레타니아 왕국은 내전 을 멈추고 놈들과 싸움을 시작했 지만,얼마 버티지 못한 것.

왕국을 지원했던 국가들은 모두 병력을 물렸고,왕국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왕국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는 사실.

그 탓에 왕국 전체가 디스트로이 어의 소굴이 되어 버린 것까지.

문제는 디스트로이어들이 거기서

멈춘 게 아니었다.

인간들처럼 나라를 정복하고 한 숨을 돌릴 필요도 없었고,하늘을 날기에 거리도,지형도 큰 상관이 없었다.

피해는 곧 주변 국가들로 퍼져 나갔다.

동쪽,서쪽,남쪽에 있는 왕국들 또한 피해를 보기 시작했고,제국 도 놈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제국 황제는 영지들 이 피해를 입어도 움직이지 않았 습니다. 결국,참다못한 동부 영지 들이 연맹을 만들어 디스트로이어

들을 저지하는 중이입니다. 그리 고 연맹의 수장은 아스굴론 영주 님이십니다."

음유 시인이라서 그런지 베른의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지만 제이크와 제시카는 자신 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기 때 문이었다.

"잠깐만,레타니아 왕국에서 시 작했다고요? 혹시 고대 숲에서 시 작했나요?"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한창 내전 중이 라서. 다 소문일 뿐이죠."

직접 확인하기 위해 타국으로 정 보원을 보내긴 힘들었다며 변명을 하는 베른이었지만,제이크는 그 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고대 숲,균열에서 나온 비행형 괴물이라..

제이크는 미로에 들어가는 동안 쿠사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네 괴물의 원래 모습이 고대 숲 균열의 비행 괴물과 같았다는 말.

그리고, 지네 괴물이 마지막 순

간까지 가려고 했던 서쪽. 마지막으로 지저 세계에서 보았 던 균열과 텅 빈 둥지.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졌다.

"설마? 땅속에 있던 그놈들이 야?"

제시카도 제이크의 말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해서 바뀌 는 것은 없었다.

다만,베른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서둘러야 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서두르자."

제시카의 말에 제이크는 한 손으 로 제시카의 허리를 감았다.

"바로 가려고?"

"뭐 가져갈 거 있습니까?"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는 아직도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칫,알아서 하겠지. 가자."

제시카도 동의를 하자 제이크는 어깨에 앉은 고양이 페이샤를 보 았다.

"같이 갈 거야?"

냥-

-그럼요.

전혀 고민 없는 페이샤의 말에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자,잠시만요! 우선 장로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베른이 급하게 막아섰지만,제이크는 이미 주문을 외운 뒤였다.

"플라이."

휘익!

제시카를 껴안은 제이크가 공중 으로 치솟았다.

신기하게도 페이샤는 그의 어깨 에서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한껏 하늘로 치솟은 제이크는 바 로 서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

다.

과거 같았으면 마나가 부족해 오 래 날지 못했지만,지금이라면 한 껏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두 사람과 고양이의 모습은 순식 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얼빠진 표정으로 서쪽 하늘을 바 라보던 그는 곧 정신을 차렸다.

"큰일이네. 일이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다행히 바빌로니아에 상주하고 있던 호족들과 전사형 아인족들 덕분에 디스트로이어들은 하나둘

정리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들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자신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아인족들이 가 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소극적이던 이들도 싸우자고 나 설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줄이 만들 어진 인간 영주와의 사이가 더 나 빠질 게 분명하니..

제이크와 제시카는 레이첼 영주 가 무척이나 총애하고 있었다.

더구나 제이크 마법사는 영주의

애인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돌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법보여도 보통 밉보인 게 아니었으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려고 했지만,예상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페이샤가 따라붙었긴 한데,하아. 페이샤라니……

페이샤를 생각하자,머리가 두 배는 아파지는 베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숨만 쉴 때가 아니었다.

베른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위

해 선착장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 만 이미 모든 배가 떠난 뒤였다.

성지를 구원하기 위해 모두가 배 를 타고 섬을 떠난 것이다.

베른은 배가 다시 오는 걸 기다 려야 할지,수영해서 건너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남동부.

레타니아 왕국과의 국경에서 동 북쪽 두 개의 영지를 지나야 만나 게 되는 영지,볼로뉴.

그곳은 따뜻한 남쪽에 자리를 잡 고 있어서 황도 주변의 거대한 곡 창 지대 다음으로 유명한 곡창 지 대였다.

작년 가을에는 내란으로 힘든 다 른 영지와 달리 풍작으로 축제까 지 벌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올봄은 상황이 달랐다.

하늘에서 새로운 풍년을 알리는 봄비가 내리는 대신에 검은 몬스 터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미 레타니아와 가까운 두 영지 가 지난겨울 괴물들에게 점령을 당해 버렸다.

그리고 봄이 되자,괴물들은 이 영지에까지 진출했다.

미리 성에 영지민들을 피난시키 고 성에 모여 검은 몬스터들에게 저항하고 있었지만,시간이 갈수 록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젠장,하루도 쉬지를 않냐."

멀리서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 는 검은 몬스터들을 보며 병사 하 나가 우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우리랑 달리 별로 피해도 입지 않았으니,한숨 자고 일터로 나오는 거겠지."

다른 병사의 대답은 성벽 위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물론 검은 몬스터들도 상처를 입 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이상하 게도 놈들은 웬만한 상처는 하룻 밤이면 멀쩡해져 버렸다.

신관의 기도와 포션을 퍼부어서 겨우 회복시키는 인간들에 비해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야. 서 쪽이나 중앙 쪽 영지들은 벌써 한 참 뒤로 밀렸다잖아."

물론 동쪽 영지들도 여러 영지가

검은 몬스터들에게 점령을 당했지 만,중앙과 서쪽 영지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선방한 셈이었다.

제국의 서쪽은 이미 삼분의 일 이상이 밀려 버렸고,중앙도 이미 황도 아래쪽 영지는 영주들이 영 지를 버리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황제가 황도에 처박혀서 안 움 직여서 그렇잖아."

"뭐,움직인다고 소용 있겠어?"

"그래도 이 영지처럼 버텨 낼 수 는 있겠지."

병사들의 말에 처음 말을 꺼낸 병사가 성벽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피가 가득 묻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긴 머리를 질 끈 묶은 채로 날아오는 몬스터들 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의 어깨에는 귀여운 모습을 조금 벗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 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그 모습과 더불 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럴 때에도 정말 멋있네."

"레이첼 기사님이야 대단하신 분 이지,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들 모두는 그녀의 지휘 아래 전투를 치른 덕에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가 싸우는 모 습도 전부 목격했다.

원래 이 영지는 레이첼 영주가 수장으로 있는 동부 연합에 들지 않았었다.

황제의 위세에 겁을 먹은 영주는 납작 엎드려 상황을 지켜보았지 만,코앞에 다가온 몬스터들의 소 식에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는 아름답고 강한 여기사를

보며 우울한 얼굴로 반지를 쓰다 듬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 결혼을 약속한 소꿈친구를 마을에 놔두고 떠났지 만,결국 이렇게 평범한 병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그렇다고 지금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 영지가 밀리고 또 밀리면 결국 그가 살던 마을도 위험해 질 게 뻔했기 때문 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

그때 여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듣 고,병사 데이브는 창을 굳게 잡

았다.

뒤이어 어린 여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에게 축복을!"

동시에 그와 다른 병사들의 창에 은은한 빛이 어렸다.

병사 일부는 급하게 한 손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그들 앞에 번쩍이는 갑옷 을 입은 소년 한 명이 모습을 드 러 냈다.

"오늘도 제 말을 따라 주세요. 저한테 쏟아지는 공격은 신경 쓰 지 말고,틈을 보아 창을 내지르

세요!"

자신들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소 년의 지시였지만,병사들 중 누구 도 그의 말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사제 이네트와 성기사 알리바는 이 레이첼 여기사 다음으로 이 성 에서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의 말에 모두 한목소리를 대답 했다.

"넵! 불멸의 성바퀴님!"

아쉽게도 그의 별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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