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화
레이첼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의 1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마법사,제이크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레이첼은 그를 향해 몸을 날리려
다가,마지막 순간 겨우 참아 낼 수 있었다.
"……아뇨. 늦었어요."
대신 한참 뒤에 꺼낸 그녀의 말 은 조금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런 말을 듣고 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곳에 신조가 있는 이상,그녀 의 감정이 어느 정도 전해졌기 때 문이었다.
레이첼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지 만,이어진 신조의 노래로 인해 그 모습을 가릴 수 있었다.
뮤뮤-
그녀의 어깨에 올라 앉아 있던 신조가 제이크의 어깨로 뛰어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이 컸네."
이제는 귀여웠던 어린 모습이 많 이 사라진 신조였다.
"오랜만에 노래하는 걸 보네요." 레이첼은 신조를 보며 미소를 지 었다.
제이크가 떠나고 몇 개월 뒤부터 신조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노래 부를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싸움이 있 을 때도,그녀가 요청했는데도 신
조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싸우던 사람 들의 몸에 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힘이 넘쳐!"
"우와아아!"
"으익! 갑자기 흥분하면 안 돼!" 갑작스러운 버프에 흥분한 병사 들을 말리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연출되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혼란한 모습에 레이첼이 제이크 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크게 외쳤다.
"지원이 왔다! 모두 다른 걱정은 말고 눈앞의 적을 제거해라!"
마나를 가득 실은 외침에 병사들 의 함성이 들려왔고,레이첼은 다 른 병사들을 도와주기 위해 성벽 위 통로를 달렸다.
-아무래도 많이 혼날 거 같은데 公..?
"그렇겠지? 뭐,영주님도 걱정을 많이 했을 테니."
-하긴,혼날 만도 해요. 마법사
가 앞으로 나서는 걸 너무 좋아 해.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는 피식 웃 고는 성 밖을 내려다보았다.
"벌레라고 했나?"
-정말 무슨 애벌레 같은데요.
과연 검은 색 일색의 거대한 벌 레 괴물 세 마리가 성으로 다가오 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 마리다 무슨 이유에 서인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성벽을 무너뜨리고 실드를 공격했던 괴물의 몸에서는 오히려
검은 피가 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의 옆으로 가죽 갑옷 을 입은 여성이 빠른 속도로 달리 며 괴물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있 었다.
마법으로도,마나로 만든 검으로 도 거의 상처를 입지 않는 괴물 껍질이 그녀의 검에 쩍쩍 갈라졌다.
하지만,여성은 불만인 모양이었다.
"더럽게,안 잘려. 뭐 이리 단단 해?"
제시카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불
만이 튀어나왔다.
"몸뚱이는 뭐 이리 두껍고,이거 얼마나 잘라 내야 하는 거야. 이 거 하나 쓰러뜨리려다가 마나 다 떨어지겠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쿠우욱!
벌레 괴물이 비명을 질러 댔지 만,아쉽게도 도와주러 올 괴물들 은 없었다.
먼저 성에 날아간 괴물들은 병사 들에게 붙잡혀 있었고,같이 성을 공격하던 다른 동료들은 땅속에
반쯤 파묻혀 허덕이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마치 늪처럼 변한 땅이 괴물들의 몸무게 때문에 가라앉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이 주변의 땅은 늪이 아 니었다.
괴물들이 땅으로 꺼지는 현상은 모두 제이크의 마법 때문이었다.
지진 마법 형태로 괴물들이 있는 곳만 가라앉히는 바람에 다리가 없는 괴물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거기다 반쯤 파묻힌 덕분에 괴물
들이 입을 벌려도 성을 공격할 방 법이 없었다.
괴물의 벌린 입 앞에는 다져진 땅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방법이 없자, 괴물들은 입 을 벌려 광선을 발사했다.
콰앙!
괴물의 앞쪽에 있던 땅이 터져 나감과 동시에 괴물의 몸이 들썩 였다.
자기 공격에 자기가 당한 꼴이었 지만,대신 막혔던 정면이 다시 열렸다.
상처투성이인 얼굴을 뚫어 놓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괴물들이 었지만.
푸아아악.
이번에는 주변의 홁이 쏟아져 들 어왔다.
괴물은 다시 흙에 파묻히기 시작 했다.
시간이 지나고,결국 제시카는 벌레라고 불리는 괴물을 쓰러뜨리 는 데 성공했다.
괴물의 머리 위로 올라가 껍질을 도려내고,속에 있는 뇌를 산산이 찢어 낸 덕분이었다.
"으,씻고 싶어. 기껏 돌아왔는데
웬 난리야."
뇌수로 범벅이 된 몸을 보며 제시카는 한탄을 했다.
하지만,아쉽게도 그녀의 고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잡아 놓은 거 둘 더 있으니까 부탁해요.
머릿속으로 제이크의 마법이 들 려온 것이다.
그의 말에 제시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좀 하면 안 돼? 힘들어 죽 겠다고!"
-여기도 좀 바빠요. 부탁할게요.
"아이고,내가 무슨 영광을 보려
고 저 인간하고 같이 다니는 건 지."
품에 안겨 하늘을 나는 게 즐거
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대수림 전체를 날아서 넘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기껏 영지에 도착한 뒤에 공간 이동으로 여기까지 날아오고 만 탓에 몸이 너무도 피로했다.
섬에 있는 시설에서 공간 이동 마법을 연구한 덕분에 마법진이
없는 곳으로도 날아올 수 있었다
고 제이크는 자랑했지만,제시카
에게는 쉴 틈 없이 싸움터로 내몰 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솔직히 내키는 대로 했으면 귀를 틀어막고 신나게 자고 있었을 텐 데.
정이 뭐라고,거절도 못 하고 계 속 끌려다니고 있었다.
제시카는 한숨을 내쉬고는 먼지 가 풀풀 날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좀 전까지 괴물들이 보이던 곳은 이제 괴물의 등 일부만 흙 사이로 보일 뿐이었다.
괴물들은 한참 발버둥을 친 덕분 에 힘이 빠져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제시카는 다시금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
제시카가 땅을 향해 검을 내리꽂 는 동안,제이크는 하늘을 향해 창살을 날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실드를 공격하는 중인 검은 몬스터가 목표였다.
제이크의 뼈 창살 공격은 전과 달리 무척이나 능수능란했다.
가방에서 빠져나온 창살의 수도 몇 개 되지 않았고,창살의 가속 방법도 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염력과 가속 마법으로 속도를 올렸었다.
하지만,지금은 공중에 떠 있는 뼈 창살 뒤로 폭발이 일어나며 화 살이 튀어 나갔다.
뼈 창살의 주변에 원형의 공기 터널을 만들고,그 뒤에 화염 마 법을 터트린 것이다.
전생의 무반동포나 로켓포와 비 슷한 방식이었다.
창살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몬 스터의 몸과 날개를 뜯어냈다.
과거 겨우 구멍을 냈던 창살이 아니었다.
몇 개의 창살은 괴물들을 뚫고 실드까지 깨 버릴 정도였다.
"이크. 조심해야겠네."
추가로 펼쳐 놓은 실드가 남아있 어 완전히 실드가 사라지지는 않 았지만,앰버의 놀란 목소리가 들 리는 것 같았다.
제이크가 실드를 공격하는 괴물 들을 모두 처리할 때쯤,성벽 위 의 괴물들도 모두 쓰러뜨릴 수 있 었다.
오랜만에 펼쳐진 신조의 노래 덕 분이었다.
병사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
를 보다가 성 밖과 새로 나타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나 성 밖에서 괴물들 때려잡고 있는 용병과 여기사 옆 에 나타난 마법사가 그녀가 말한 지원이 분명했다.
뭔가 지원의 규모나 결과가 뜻밖 이라 어찌할 줄 모르던 병사들은 곧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 었다.
그냥 기뻐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겼다!"
"와아!"
한 명에서 터져 나온 환호가 옆
으로 퍼져 나갔고,곧 성 전체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동안 겨우 버텨 내다가 쫓아 보내기만 했던 싸움이었다.
이렇게 공격을 온 모든 적을 쓰 러뜨린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다,나타나기만 하면 성이 무너진다고 하는 괴물을 쓰러뜨리 다니.
사람들 마음에 희망이 생기지 않 을 리가 없었다.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사이에 사 제와 성기사가 제이크를 향해 달 려왔다.
"제이크 님!"
"마법사님!"
그 뒤를 이어 성 안쪽에서 마법 사 한 명이 비행 마법으로 날아오 고 있었다. 앰버였다.
그리고,마지막 몬스터를 쓰러뜨 린 레이첼이 후련한 얼굴로 제이크를 향해 걸어갔다.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이들이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모두 웃으며 서로 바라보았다.
"근데,제시카 씨는 어디 있어요?"
하지만,앰버의 물음에 제이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이크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성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른 두 벌레형 몬스터도 머리가 뚫린 채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전보다 훨씬 많은 뇌수 를 뒤집어쓴 제시카가 성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뇌수를 뒤집어쓴 제시카의 모습에 놀란 듯했다.
"으아,기분 엄청 나쁘겠다."
알리바가 생각 없이 느낀 바를 말했고,다른 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제이크도 난감한 표정으로 제시카를 보는 중이었다.
'거기 가만히 있어. 나도 너를 꼭 껴안아 줄 테니까.'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녀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제이크는 급하게 그녀에게 메시 지 마법을 날렸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날린 메시지에 제시카는 한껏 소리를 질렀다.
-고생 많았습니다. 너무 자꾸 힘 들게만 했군요. 바로 가서 쉬세요.
영지로 보내 드릴게요.
"야! 이 나쁜 놈아!"
아쉽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제이크까지 오지 못했다.
그녀의 발아래로 마법진이 펼쳐 졌다.
수욱-
그렇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사라 졌다.
아스굴론 영지로 공간 이동이 된 것이다.
"고생하신 것 같아서 아스굴론 영지로 보내 드렸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모두 황당한 표정
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내도 되는 건가요?" 아네트 사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럼요. 씻고 쉬고 싶다는 걸 억지로 데려온 거니까요. 한숨 잔 뒤에 데려오면 될 겁니다."
'전보다 훨씬 더 친해진 모양이 네요.'
제이크의 말에 레이첼이 떠올린 생각이었지만,그녀는 겉으로 말 을 꺼낼 수 없었다.
"아니,그것보다 따로 마법진을 그리지도 않고 아스굴론까지 공간
이동이 가능해요?"
앰버는 다른 사람과 다른 쪽으로 놀라고 있었다.
"뭐,지금은 나하고 제시카만 가 능하긴 한데. 어쨌거나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좀 더 실력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아니,그 여러 가지 일이 뭔데 요!"
앰버는 당장 제이크를 끌고 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맞다. 도대체 왜 실종되었는 지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앰버와 다른 이유였지만,레이첼 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고 보니,이곳에는 여러분 밖에는 없나요? 레이첼 영주님이 이 성에 갔다는 이야기만 듣고 바 로 날아와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모르겠네요."
루이와 니콜라스 기사단장도 보 이지 않고,친위대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도 설명해야겠네. 우선 아 래로 내려가죠."
레이첼의 말에 일행은 우르르 성
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 는 병사가 있었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뒷정리 를 해야지."
"아,어디선 본 것 같아서."
"뭐,새로 나타난 마법사?"
"어,내 소꿈친구하고 많이 닮은 것 같아서 그랬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상한 창을 날려 괴물들을 떨구는 것 봤 잖아. 그런 무서운 마법사를 네가 어떻게 알아."
다른 병사의 말에 데이브는 고개 를 끄덕였다.
물론 소굽친구도 귀족이라 평범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런 마법사 는 아니었다.
데이브는 한숨을 내쉬며 반지를 쓰다듬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제이크는 한숨 을 내쉬는 데이브 쪽을 잠시 바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