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첫 전투 후,제시카를 바라보던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남성 우월주의와 기사에 대한 자 존심이 가득했던 기사들도 제시카 가 보여 준 마나검은 인정할 수밖
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검술 자체는 대단하지 않 다고 헐뜯는 사람도 있었지만,대 다수 기사들은 그녀를 제대로 된 검호로 인정해 주었다.
병사들도 그녀를 선망하는 눈으 로 바라보았고,용병들은 말할 것 도 없었다.
"흐흐흐,짜릿해. 1년 동안의 고 생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저녁에 제이크의 천막으로 온 제시카가 코를 한껏 세우며 잘난 체 를 했다.
"아니,낮에는 마냥 겸손한 척하
더니 왜 여기서 자랑하는 겁니 까?"
루이가 그녀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거기서 잘난 척하면 욕이나 바 가지로 먹지. 누가 좋아할까? 잘 난 척은 친한 사람들 있는 곳에서 하는 거야."
"와,제시카 누님이 달라졌어요. 어른이 됐어!"
"이놈이!"
놀리는 알리바에게 제시카가 달 려들었다.
알리바가 피하다 모닥불을 덮쳤
고,이네트가 질겁을 하며 소리쳤다.
"어머! 조심. 모닥불 쓰러져!" 하지만,모닥불을 덮치던 알리바 는 그 모습 그대로 붕 위로 떠서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중력 역전,이동."
제이크의 마법 때문이었다.
"으하하,잡았다!"
덕분에 그는 제시카에게 잡혀 버 렸다.
"살려 줘요!"
"넌 웬만해서는 안 죽잖아. 걱정 마!"
단검에 마나까지 씌우며 겁을 주 는 제시카의 모습에 알리바가 비 명을 질렀다.
"저 한잔 더 줘요."
그런 푸닥거리를 배경으로 레이 첼이 제이크에게 차를 부탁했다.
제이크는 그녀에게 따뜻한 홍차 를 따라 주었다.
그는 마법사들과 같이 있는 대 신,아스굴론 영지군이 모인 곳에 천막을 폈다.
그를 따라 제시카와 루이,그리 고 두 사제가 파티원이라는 명목 으로 냉큼 다가왔고,뒤이어 영지
군을 살펴보던 레이첼이 천막 앞 에 앉았다.
오랜만에 제이크 파티와 레이첼 이 함께 맞는 저녁이었다.
천막 주변에 있던 영지병들이 그 들이 있는 곳을 힐끔거리기는 했 지만,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나를 뿜어내는 검이 휘둘러지 고,사람이 날아가는 자리에 접근 하려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 제이,아니,제이크 마법 사가 있는 곳에 함부로 다가가는 영지병은 없었다.
물론 그를 존경해서도 그런 것도 있었지만,그보다는 겁이 났기 때 문이었다.
그동안 제이크가 벌인 일에 대한 소문이 좋은 쪽뿐만 아니라 나쁜 쪽으로도 과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를 자기 맘대로 불러들일 수 있다는 소문.
그리고,악의 제국인 고대 마도 제국의 마법사가 부활한 것이라는 소문 등.
물론, 전자의 경우는 사실이었고, 후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아스굴론 영지민들 은 그를 존경하는 것 이상으로 무 서워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편안하게 시간 을 보낼 수 있었지만,겁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조금 떨떠 름하기도 했다.
저녁 차 모임은 상황에 맞지 않 게 무척이나 포근했다.
맛있는 차와 편안한 동료들.
괴물들을 상대하면서도 이런 시 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제이크는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렇게 차 모임이 끝나자 레이첼 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지만,다른 이들은 냉큼 제이크의 천막으로 뛰어들었다.
"지하 세계에서도 이 천막 덕분 에 살았는데,다시 다른 천막으로 는 갈 수 없지."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는데요. 여긴 천국이에요!"
마법으로 확장된 천막은 다른 천 막과 차원이 다른 편안함을 주었 기에,다른 이들은 모두 제이크의 천막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에 제이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뒷정리를 했다.
이제 능수능란한 염력 마법 덕분 에 각종 식기가 스스로 자기 자리 를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산맥에 붙어있는 두 번째 영지까지 방어선을 만들 자,눈치를 보던 영주들이 하나둘 씩 동부 연맹에 참여했다.
방어선을 포함하고 있는 영지들 은 물론,그 후방의 영지들까지.
영주가 직접 오거나, 적어도 특
사를 보내는 것으로 참여를 선언 한 영지들은 연맹군에 자신의 영 지군을 참여시켰다.
덕분에 방어선이 길어지면서 줄 어들었던 군대의 규모가 다시 커 졌다.
더구나 후방 영지들의 참여로 보 급이 원활해진 덕분에 연맹군의 기세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다.
한편,군대는 검은 몬스터에 점 령된 영지 근처에 도착했다.
쭉 이어진 산맥이 중간에 끊어 져,남부 영지와 다른 왕국과의 교통로로 풍요로웠던 영지.
벤도르 영지는 지금 검은 몬스터 들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기사들이 산맥의 중턱에 서서 아 래쪽 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옆에 서 있던 기사 중 한 명이 제시카에게 질문했다.
처음 활약을 보인 이후,제시카 는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습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계속 처리하자 기사들의 존경은 더욱 커졌고,이제는 나이에 상관 없이 그녀에게 존대를 했다.
"흠,제가 보기에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
점잖은 제시카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루이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짐짓 내숭을 떠는 그녀의 모습을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그녀의 본성을 모르는 다른 기사들은 전혀 이상하게 여 기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말을 동의하기 어려 웠을 뿐이었다.
"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제시카 님 정도면 하나씩 처리할 수 있겠 지만,그동안 몰려오는 숫자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기사의 말에 제시카는 다시 한번 눈앞의 벌판을 살펴봤다.
멀리 보이는 산맥을 배경으로 수 십 마리의 몬스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벌판에도 검은색 몬스터들이 보 였고,아직도 연기가 올라오는 마 을에는 여러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거기다, 멀리 작게 보이는 영주 의 성은 성벽이 반쯤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무너진 성벽으로 거대한
검은 벌레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백 이상 이군요. 소란이 나서 몰려들기라 도 하면 피해가 장난이 아닐 듯합 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도움이 안 되니,답이 없을 것 같은데요. 거 기다 마법사들도 참여 안 할 모양 이던데."
전과 달리 몬스터들을 잘 떨구는 마법사들이었지만,제시카 덕분에 기세가 등등해진 기사들에게는 쓸 모없는 이들일 뿐이었다.
하지만,이번 싸움은 주력은 마
법사들도 기사들도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해요."
제시카는 루이와 함께 산 아래로 달려갔다.
산 아래쪽에는 아스굴론 영지군, 루테리아 영지군. 그리고 레이첼 친위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점령된 영지의 토벌 은 레이첼 영주의 영지인 아스굴 론과 루테리아 영지군이 선두에 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연맹군 본 대의 병사들도 기사들과 같은 생 각이었지만,영지민들과 용병들로
이루어진 두 영지의 영지병들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동안 레이첼 아래에서 전투를 경험한 단련된 정예병이 된 영지 병들이었다.
다른 때라도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었었지만,이번은 특히 기적의 마법사가 같이 있었기에 더욱 사 기가 올랐다.
루이와 제시카가 선두에 자리를 잡자,그 뒤로 방패를 든 친위대 들이 옆으로 늘어섰다.
레이첼은 친위대와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지병들이 창 을 들고서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수천의 영지병들 뒤에는 커 다란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제이크가 그린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은 여러 겹의 원형 고리로 만들어져 있었고,고리 중 하나는 지금도 빛을 뿌리는 중이었다.
레이첼이 말을 몰아 부대 앞으로 나갔다.
그녀의 어깨에는 이제는 어린 티 를 벗은 신조가 자리를 잡고 있었
고,그녀의 손에는 아름다운 검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부대 앞에 선 레이첼의 모습은 마치 전투의 여신 같았다.
"다른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모 두 살아남으세요. 가족이 기다리 고 있습니다!"
마나를 실어 외친 그녀의 음성은 영지군 전체에 퍼져나갔다.
언제나처럼 영지민과 가족을 생 각하라는 레이첼의 말에 영지군 전체가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모두 준비가 된 듯하자,레이첼 은 높이 검을 치켜들었다.
뮤우-!
동시에,신조가 소리를 높였다.
병사들은 자신의 몸에 힘이 넘치 는 것을 느꼈다.
"가이아시여, 모두에게 당신의 능력을 빌려주세요."
이어진 이네트의 기도는 친위대 와 영지군 선두의 창에 신성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친위대 중앙에 서 있던 루이가 자신의 방패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반투명한 방패가 원래의 방패를 넘어 크게 펼쳐졌다.
이어서,선두에서 늘어서 있던 친위대들은 커다란 방패를 바닥에 세우고 몸으로 방패를 기댔다.
뒤이어 뒤쪽 친위대가 그의 몸을 받쳤고,영지군들은 빛나는 창을 친위대 사이로 찔러 넣을 준비를 했다.
그때,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마법 캔슬."
쨍!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고리 중에 빛나던 고리가 깨져 나갔다.
그 순간,세상의 소리가 들려오
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대의 모습과 소리가 세 상에 퍼져 나갔다.
이제껏 부대에 걸어 놓았던 은신 마법을 깨 버린 것이다.
평야에 내려온 이 많은 인원이 걸리지 않은 것은 모두 제이크의 마법진 때문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냄새,소리가 들리자,벌판 을 거닐던 검은 몬스터들이 고개 를 돌렸다.
잠자던 놈들,하늘을 날던 놈들 도 모두 한곳에 모여 있는 인간들
을 바라보았다.
캬아아아악!
사방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윽고 검은 몬스터들이 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이 검은 몬스터들 은 서로 괴성으로 정보를 주고받 고 있었다.
소리가 점점 멀리까지 퍼져 나가 더니, 멀리서도 몬스터들이 하늘 로 솟솟구치기 시작했다.
결국,성벽 한쪽이 다시 무너지 며 벌레 몬스터들도 모습을 보였다.
벌판에 먼지가 피어오르고,하늘 에는 수백 마리의 검은 몬스터들 이 군대를 향해 날아왔다.
"너무 많은 거 아냐?"
"젠장,마법사님만 믿어야 하는 건가?"
"믿어야지 어쩌겠어. 역시 마법 사님 오면 고생 시작이라는 친위 대들 말이 맞았어."
병사들 사이에 겁에 질린 대화가 들려왔지만,다행히 도망치는 병 사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나는 놈들 숫자를 줄여야 겠지?"
밝은 귀 덕분에 병사들의 말을 엿듣게 된 제이크는 좀 더 서두르 기로 했다.
"나와라."
마법진 중앙에 서 있던 그는 자 신 옆에 세워 둔 가방을 발로 툭 툭 찼다.
그러자 가방이 열리고 검은 뼈 창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창살들은 마법진의 원형 문양을 따라 천천히 원형으 로 돌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검은 창살들이 원형으 로 마법진 위를 도는 모습은 무척
이나 장관이었지만, 영지병들은 자신들의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했다.
다만 멀리 산맥 중턱에서 그 모 습을 보던 기사들과 마법사들만 눈이 휘둥그레졌을 뿐이었다.
"마법진 활성화! 깨어나라,너의 마나여. 너는 이 화살을 감싸 옳 은 길을 부여하라. 목표를 놓치지 말고,끝까지 따라가라!"
제이크의 주문과 함께 마법진의 고리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검은 창살들 주위로 무언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화살,혹은 창살 자체 가 빛나야 했지만,마법을 잘 받 아들이지 않는 소재라 창살 전체 를 마나로 덮어씌운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평상시보다 몇 배 이상의 마나가 필요했지만, 제이크는 목걸이의 마나와 마법진 의 마나를 강제로 욱여넣어 성공 시켰다.
그렇게 창살들에 마나가 씌워지 는 동안,허공을 맴도는 창살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이제는 원형으로 이어진 수백 개
의 검은 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제이크는 정면의 하늘을 바라보 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발사,패트리어트."
-하아,이제는 맘대로 하세요. 파티마는 이제 주문 명에 딴지 거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파티마는 한숨을 내쉬었지만,결 과는 전혀 달랐다.
원형을 돌던 창살들이 정면을 향 해 대각선으로 발사되었다!
수백 개의 검은 선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각각의 선들은 날아오는 검은 몬
스터의 정면.
거리가 멀어서인지 몇몇 몬스터 는 급하게 몸을 피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날아가는 창살의 방향이 바뀌었다.
유도 미사일…… 아니,유도 화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