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마법사가 기사를 품에 안고 하늘 을 날다니.
그 어느 시절에도 등장하지 않았 던 방법이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으
면 기사나 마법사 양쪽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효과는 무척 좋았다.
하늘을 날면서 이 많은 병력을 숨기는 것은 제이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일행은 둥지로 가는 동안 몬스터 들의 공격을 받았다.
슈슈숙!
검은 창살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아쉽게도 지상에서 쏘는 것처럼 강한 파괴력을 싣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날개에 구멍을 내기는
충분했다.
공격을 받은 검은 몬스터들이 지 상으로 추락했다.
지상에서도 산성 침과 송곳 털이 쏘아졌지만,마법사들이 나는 높 이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얼마 뒤,일행은 마법사가 정찰 한 둥지를 보게 되었다.
이번 둥지는 국경 지대의 무너진 요새에 있었다.
널찍한 목책 안에 몬스터들의 시
체가 쌓여 있었다.
몸 곳곳이 부풀어 오른 몬스터들 과 반쯤 먹혀 버린 몬스터들.
그리고 뼈만 남은 몬스터들.
그것들은 바로 괴물들의 숙주가 된 평범한 몬스터들이였다.
그리고 몬스터 사체들 사이로 인 간의 흔적도 보였다.
마법사 로브와 판급 갑옷들.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숙주가 된 마법사와 기사의 흔적들이었다.
저 파괴자라고 불리는 검은 괴물 들은 마나를 품은 생명체라면 모 두 숙주로 삼은 것 같았다.
인간의 흔적이 보이자 모두 표정 이 굳어졌다.
죽은 뒤에도 몬스터 알의 숙주가 된다는 것은 죽는 것 이상으로 끔 찍한 일이었다.
"내려 줘."
제시카의 말에 제이크는 허리를 감은 손을 풀었다.
제시카가 지상으로 빠르게 떨어 졌다.
뒤를 이어 다른 마법사들이 아래 로 내려갔다.
빠르게 떨어지던 제시카는 마지 막 순간 속도가 느려졌고,부드럽
게 바닥에 내려섰다.
제이크가 마법으로 도와준 것이 었다.
제시카는 요새의 목책을 박살 낸 뒤,둥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마법사들과 지상에 내려 선 기사들이 그녀를 따라 달렸다.
"실드."
"실드."
M "
뒤이어 지상에 내려선 마법사들 이 기사들에게 실드를 걸어 주었다.
검은 몬스터들에게는 마법 공격
이 잘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어만 한다면 마법은 아 직 쓸모 있었다.
제시카와 기사들이 달려들자,몬 스터들의 시체가 스스로 터져 나 갔다.
터져 나간 시체 안에서 여러 종 류의 검은 몬스터들이 기어 나왔다.
원래의 모습을 한 새끼 몬스터들 도 있었지만,죽은 숙주의 모습을 닮은 몬스터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어 나온 새끼 몬스터들 은 도망가지도,기사들에게 덤벼
들지도 못했다.
과과과과과.
그때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졌다.
검은 몬스터,동족의 뼈로 만든 창살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이제 막 날개를 펴려던 새끼 몬 스터들도,기사들에게 달려들려던 몬스터들도 모두 창살에 꽤 뚫렸다.
"아니,우리 잡을 것도 좀 남겨 둬야……. 에휴,또 뒤처리 담당인 가."
뒤늦게 도착한 기사가 창살에 꿰
인 새끼 몬스터를 보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착실하게 버둥 거리는 새끼 몬스터를 마무리했다.
아직 어린 몬스터라,마나 검은 몬스터의 껍질을 뚫고 들어갔다.
"뒤처리라도 한몫할 수 있으면 되지 뭐."
뒤따라온 기사가 몬스터들을 정 리하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실드나 걸어 주는 마법사들이 기고만장한 꼴을 보기 싫어서 그 런 거지 뭐."
"그럼,너도 저기 가서 한몫하든 가."
기사는 동료가 가리키는 곳을 보 고 입을 닫았다.
요새의 중앙,둥지의 중심부.
제시카가 이 둥지의 보스이자 여 왕과 싸우는 중이었다.
이 둥지의 보스는 날개 달린 쌍 두견이었다.
마찬가지로 검은색 일색의 커다 란 괴물.
제시카와 괴물은 일전일퇴의 공 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제시카의 검이 괴물의 한쪽 머리
에 상처를 내고,다리를 반쯤 잘 탔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금방 멀쩡해 져 버렸고,쌍두견의 두 입에서 냉기 폭풍과 화염 폭풍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쌍두견의 공격은 마법 부츠를 신은 제시카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약이 오른 쌍두견이 날개를 펄럭 여 하늘로 떠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쌍두견이 비웃는 얼굴로 제시카를 내려다보았다.
제시카도 쌍두견을 비웃고 있었
다.
"어딜 올라와."
이어 머리 위에서 들려온 인간의 음성.
쌍두견은 급하게 머리 하나를 위 로 들어 올렸다.
화염을 머금은 몬스터의 입이 막 열렸지만,그 전에 엄청난 힘이 쌍두견을 후려쳤다.
쿠앙!
쌍두견은 곧 바로 지상으로 처박 혔다.
"네가 날 비웃었지?"
그렇게 말하며 제시카가 쌍두견
에게 달려들었다.
목책 밖에서 마법사들은 질린 얼 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맙소사. 힘으로 후려갈겼어."
"마법사가 무식하게 마나 자체로 공격하다니."
"그래도,마법이 잘 안 먹히면, 저렇게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 는데요."
"좋은 것은 둘째치고,마법사가 저래도 된다고 생각하나? 그럼 자 네도 저렇게 공격할 텐가?"
"아니,전 저렇게 강한 마나도
없고……. 아뇨. 절대 못 하죠."
"고대 마법사라서 그런가,도무 지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구 먼."
"저래서 마탑 장로들이 위험하다 고 하는 건가?"
물론 고대 마법사도 쓰는 방식이 아니었지만,제이크 때문에 고대 마법사에 대한 오해는 점점 깊어 졌다.
"그래도 타이밍이 좋았어요. 평 상시였으면 한바탕 싸웠을지도 몰 탔을 텐데."
"마탑들이 현상금을 걸거나,척
살령을 내렸을 수도 있죠."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젊은 마법사의 질문에 대다수 마 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흑탑도 박살 나고,대 마도사가 죽어 제국 마탑도 휘청 거리는 데다가 백탑도 내분으로 엉망이니 신경 못 쓰는 거지. 나 중에 꽤나 골치 아프게 될걸?"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이는 어리지만,성격도 나쁜 것 같지 않고…"
젊은 마법사의 말에 다른 마법사 가 피식 웃었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당연하죠. 그런 명령 나오면 대 륵 끝까지 도망가서 숨어 있을 겁 니다. 저런 마법사랑 싸운다니,마 탑이 오히려 박살 날걸요?"
다른 마법사들은 그의 말에 동의 하지 않았지만,그렇다고 부정하 지도 않았다.
저 강해 보이는 둥지의 지배자가 젊은 마법사와 여자 용병의 손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탑에 하려던 보고 를 앞으로도 계속하지 않기로 다 짐 했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둥지를 차례 로 정리하고,연맹군이 방어선을 굳건히 지키는 동안, 제국군은 이 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많은 영지가 분통을 터트리고, 귀족들이 연맹군에 줄을 댔다.
제국 황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 았다.
물론 다른 영지들과 달리,그들 은 제국군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 를 알고 있었다.
황제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검은 몬스터들을 처리할 무기를 가져오겠다는 이유로 황제는 자리 를 비웠다.
그리하여 제국군은 국토가 유린 당하는 동안에도 움직일 수 없었다.
황도의 시민들은 그런 이유도 모 르고 황제만 욕하기에 바빴다.
한편,황제가 없는 홀에 모인 귀 족들은 돌아오지 않는 황제 욕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이미 남부 영지들은 쑥밭이 되
었어요!"
"연맹군이 아니었으면 황도까지 밀렸을지도 몰라요!"
"레이첼 여남작의 앞을 내다본 결정 때문이지요."
얼마 전까지 마음대로 연맹을 맺 었다고 욕을 하던 귀족들이었다.
연맹의 세력이 커지자,이제는 서로 앞을 다투어 칭찬했다.
이런 식으로 매일같이 벌어지는 쓸데없는 귀족 회의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쾅!
갑자기 닫혀있던 홀의 중앙 문이 박살 나듯이 열렸다.
아니,한쪽 문이 덜거덕거리는 것이 거의 박살 난 듯했다.
"무슨 짓이냐! 귀족 회의에 난입 하다니!"
한 고위 기족이 문을 향해 소리 쳤지만,바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황제 였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황제가 들 어오고 있었다.
홀 안에 들어오는 황제의 모습은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잘생기고 하얀 얼굴 위로 특유의 잔인해 보이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홀 전체에 한기가 일었다. 귀족 들의 팔에 소름이 쭉 돋았다.
평상시에도 광기에 찬 카리스마 가 흘렀지만,지금은 살기와 한기 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황제는 말없이 귀족들 사이를 뚜 벅뚜벅 걸었다.
황제의 뒤로 황제와 함께 황도를 떠났던 근위 기사들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근위 기사들은 표정을 보이지 않
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황제의 뒤를 따 르던 그들은 황제가 자리에 앉자 황제의 뒤에 쭉 늘어섰다.
황제가 귀족들을 쭉 훑어봤다. 항상 보이던 귀족들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귀족들도 있었다.
황제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귀족 들을 보다가 한 귀족을 가리켰다.
문을 향해 소리쳤던 귀족이었다.
"죽여."
황제의 말에 당사자는 물론 홀에 있던 귀족 전체가 놀랐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고위 귀족
을 바로 죽인다니!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황제의 명령은 바로 이 루어 졌다.
근위 기사가 바람처럼 달려 나가 귀족의 목을 베어 버렸다.
"크윽!"
"헉!"
짧은 비명과 함께 귀족은 허물어 졌고,곳곳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홀의 공기가 꽁꽁 얼어 붙었다.
"멀리 갔다가 왔더니, 이상한 소
리가 들려오더군."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황제의 욕을 한 것도 사실이었지 만,그것보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날아가 버린 것을 눈앞에서 보았 기 때문이었다.
반면 황제는 죽은 귀족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툭 튀어나온 가슴을 쓰다듬 으며,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입 에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칙령을 내리겠다. 최대한 빨리 제국군 출진을 준비해라."
"예!"
황제의 말에 근위 기사들이 바로 대답을 했고,귀족들은 놀라 서로 를 바라보았다.
황도를 떠나기 전에도 출진을 미 적거리던 황제였다.
그런데 황도에 도착하자마자 바 로 제국군을 움직이다니,떠나기 전에 그가 한 말대로 필요한 무기 를 구한 듯했다.
"폐하! 정말로 몬스터들을 죽일 무기를 구해 오셨군요! 경하드립 니다!"
눈치가 빠른 귀족 하나가 바로
황제에게 아부했다.
곧이어 여러 귀족이 아부를 이어 갔지만,황제는 흥미를 보이지 않 았다.
"황도와 주변 영지의 민간인 및 용병들을 강제 소집해라. 불응할 시 참살해도 좋다. 군량도 모두 징발하라."
더구나 이어진 명령은 도무지 받 아들일 수 없는 명령들이었다.
황제에게 늦은 아부를 하려던 귀 족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황제의 말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제국군의 적은 연맹군이라는 이 름을 한 반란군이다. 디스트로이 어와의 길을 막은 그들을 모두 죽 여 버려라."
그 말에 귀족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폐하,멈춰 주십시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연맹군이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고는 하지만,고작 그 런 이유로 바로 반란군으로 만들 어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황제는 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 밖으 로 걸어 나갔다.
"디스트로이어로 가는 길을 열어 라. 내가 놈들을 갈 것이다."
황제의 뒤를 따라가던 근위 기사 들이 다시 대답했고,황제는 문밖 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이 시끄러운 놈들은 모 두 죽여 버려."
황제가 문을 나선 뒤, 홀의 문이 닫혔다.
홀 안에 남아 있던 근위 기사들 이 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