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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95화 (195/222)

195 화

황제가 돌아온 뒤,황도는 고함 과 비명,울음으로 가득했다.

또한 거리에는 병사들로 넘쳐 났다.

병사들은 눈에 보이는 집마다 문

을 부수고 들어가 안을 수색했다. 황제의 명으로 남자들이 모조리 끌려 나오고,식량도 빼앗겼다.

병사들은 귀족과 평민,부자와 빈민,그 어느 것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훗날,역사가들이 제국 역사상 가장 평등했던 시기라고 말할 정 도였다.

사정은 황도 직할령과 주변 영지 도 마찬가지였다.

반항하는 영주들은 목이 잘려 나 갔고,영주성은 불태워졌다.

제국 마탑의 마법사들은 들려오 는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다른 마탑과 달리 제국 마탑은 황실 직속이었지만,이런 비상식 적인 일을 따를 수가 없었다.

의견을 모은 마법사들은 모두 마 탑을 나와 황궁으로 향했다.

어느덧 거리에는 경계를 서는 군 인들만 모습을 보였다.

거리 주변의 집들은 모두 창이 굳게 닫히고 커튼이 쳐져 있었다.

문들이 부서져서 창문을 막는 것 은 소용없어 보였지만,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포식자를 만난 초 식동물처럼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마탑을 나와 황성까지 가는 동안 마법사들은 아무 제지를 받지 않 았다.

귀족이라도 일단 검문부터 했던 병사들이었지만,마법사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듯했다.

건물 안에서 마법사들의 행진을 지켜보던 황도의 시민들은 일말의 기대를 하게 되었다.

황성의 문을 지키는 기사들도 마 법사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 했다.

하지만,내친걸음이었다.

마법사들은 황제가 있다는 중앙 홀로 향했다.

중앙 홀의 문은 열려 있었다.

홀 안쪽 황제의 자리에 그가 앉 아있었다.

황제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 았다.

대표로 몇 명만 나서도 되겠지 만,지금은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마법사들은 모두 함께 홀 안으로 들어섰다.

홀 바닥은 검붉은 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모두 닦아 내기에는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황제는 미소를 띤 얼굴로 마법사 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창백한 황제의 얼굴에 떠오른 미 소는 무척이나 불길하게 보였다.

그사이,대표로 대마도사의 마지 막 제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이힌테일이 죽기 전에 그의 제 자들도 죽어 나갔기에,현재 그의 제자는 그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귀찮은 허식을 치우고. 할 말이 뭐지?"

황제는 의외로 그들의 방문을 반 가워하는 것 같았다.

대표로 나선 마법사는 기대를 품 고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지금 하시는 일 들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 니다. 강압적인 병사 차출과 식량 약탈,그리고 반대하는 귀족과 영 주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제국 영 사 중 어떤 황제도 벌이지 않은

일입니다."

마법사는 말을 하면서도 수시로 황제의 표정을 확인했다.

아직 괜찮았다. 황제의 표정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몬스터들과 싸우기 위해 가로막은 연맹군을 친다는 것은 과한 처사입니다. 칙령을 내리면 충분히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그는 내친김에 연맹군에 대한 이 야기도 꺼냈다.

앞선 이야기와 달리 황제의 권리 를 건드는 이야기였지만,황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용기를 얻은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국 마탑의 모든 마법사는 황 제 폐하께서 여기서 멈춰 주시길 바람니다. 폐하께서는 충분히 결 과를 보셨잖습니까……

그는 말의 마지막에 개인적인 이 야기를 더했다.

황제가 미래를 보고 왔다는 사실 을 아는 몇 안 되는 마법사 중 하 나인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래를 보고 온 황제들은 적어도 폭군은 되지 않았었다.

이번 황제도 성격은 좋지 않았지

만,미래를 보고 온다면 큰 문제 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대마도사와 마법사들의 예상은 틀리고 말았다.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다인가? 반쯤 협박처럼 들 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텐가?"

그 질문에 마법사는 속으로 안도 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부분은 이곳에 오기 전 마법 사들끼리 충분히 이야기한 사항이 었다.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는 마탑 을 탈퇴하겠습니다."

연맹군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 기도 했지만,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제국 역사상,제국 마탑 의 마법사가 이 정도로 나선 것도 처음이었다.

"협박이 맞군."

황제는 미소를 띤 채로 무시무시 한 말을 꺼내 놓았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협박이라는 단어에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 러보았다.

황제를 협박하다니,바로 목이

달아날 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몇몇 마 법사는 감지 마법을 펼쳤다.

황궁에 펼쳐진 마법이 감지 마법 을 방해했지만,홀 주변에 기사들 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황제 혼자였다. 최악의 경우 황제를 인질로 삼아 황도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황제를 암살하는 것……

마법사들 사이에 그런 생각이 떠 올랐지만,그 생각은 이어진 황제 의 말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잘 들었어. 꽤 귀찮은 짓이었지 만,이걸로 모두 제 발로 찾아온 보답은 충분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황제는 일어나 상 의를 걷어 올렸다.

"상의를 꼭 올려야 해? 다른 놈 들은 대충 들고 다녀도 되던데."

마법사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황제가 상의를 걷어 올리자,그 의 맨몸이 드러났다.

그의 왼쪽 가슴에 갑옷 조각 같 은 것이 붙어 있었다.

심장이 있는 자리에 육각형으로

붙어 있는 금빛 판.

판 곳곳에 빛나는 마석이 박혀 있었다.

[대규모 세뇌 마법을 쓰려면 중 간에 걸리는 것이 없는 편이 좋습 니다.]

묵직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말소리가 들리는 동안,마석들이 마치 눈처럼 번들거렸다.

"에고 아이템?"

마법사 중 한 명이 자기도 모르

게 중얼거렸다.

"오,바로 맞췄군. 역시 제국 마 법사들이야. 근위 기사 놈들은 한 참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말 이야."

황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법사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저런 에고 아이템은 들어 본 적 도 없어!"

"세뇌 마법을 쓴다고?"

"이럴 수가,마법이……

"젠장,마법 시전이 안 돼! 메시 지 마법도 불가능해."

세뇌 마법이라는 말에 급하게 방 어 마법을 시전하려던 마법사도, 메시지 마법으로 이야기를 나누려 던 마법사도,도망가기 위해 가속 마법을 쓰려던 마법사도,모두 마 법을 펼치는 데 실패했다.

[황궁에 펼쳐진 마법 방해진을 강화했습니다. 다른 계열의 마법 은 50퍼센트,동일 계열의 마법은 100퍼센트 실패합니다.]

"그 한번 살아 봤던 생에서 이놈 을 찾느라 엄청 고생했다니까. 거

기다 겨우 말년에 찾았는데,제대 로 써먹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지."

황제는 피식거리며 번들거리는 마석들을 쓰다듬었다.

겁에 질린 마법사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뒤쪽에 선 마법사들은 아예 뒤를 돌아 달아나려고 했지만,어느새 홀의 문은 닫혀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는 일 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문으로 달려간 마법사들은 닫힌 문을 열 수 없었다.

"왜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려고 하지? 대답은 들어야 할 것 아 냐."

황제는 마석을 쓰다듬던 손을 들 어올렸다.

"시작해."

[세뇌 마법을 펼치겠습니다. 대 상자는 동일 계열 마법 기술자 85명. 모두 세뇌 가능자입니다. 대상자는 긴장을 풀고 세뇌를 받 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껍,겨우 제국 마탑 놈들과 황

실 마나 심법을 익힌 근위 기사들 만 세뇌할 수 있다니. 성능이 나 빠."

[세뇌 마법은 제 주기능이 아닙 니다. 부가 기능으로 이 정도 효 과를 발휘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에고 아이템이 퉁명스럽게 대답 했지만,황제는 낄낄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한편,에고 아이템의 말이 끝나 자마자 마법을 시전하려고 애쓰던

마법사도,도망가려고 문을 밀던 마법사도 황제를 바라본 채로 멍 하니 서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전부 바보로 만든 것 같다니까."

[주인님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가 치관이 머릿속에 자리 잡을 때까 지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금 뒤에는 가치관만 바뀐 원래의 대 상자들로 돌아올 겁니다.]

"그딴 건 설명할 필요 없어. 그 리고 완전히 전과 같지는 않던 데."

[맹목적인 충성심이 자리 잡기

때문에 창조적인 면과 융통성이 조금 약해집니다. 개인의 성장에 는 불리한 면이 있지만,다른 사 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는 아닙니다.]

"과연,고리타분하게 일 처리를 하는 게 그런 이유였군. 쳇,한 번만 잘 쓰면 되는 거니까. 상관 없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마 법사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문 앞에 있던 마법사들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들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지

만,황제를 바라보는 표정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 눈은 황제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저런 눈들을 보면 쇠꼬챙이로 찔러 버리고 싶은데. 안 되겠지."

[눈을 잃으면 제대로 쓰기 힘들 겁니다.]

"뭐,나중에 해 보도록 하겠어. 그보다 마법사들을 어떻게 세뇌하 나 걱정했는데,쉽게 되었어."

[마법사들의 마법을 봉쇄하기에 는 황성이 제일 좋았습니다.]

황제는 걷어 올린 상의를 다시

내렸다.

"그럼,이제 움직여 볼까."

황제는 마법사들에게 지시를 내 렸다.

"근위 기사들을 도와 출발 준비 를 해라. 마법 병단을 만들고,숨 은 놈들을 끄집어내."

"예!"

마법사들은 황제의 말에 한목소 리로 대답했다.

* * *

황도 시민들의 기대는 몇 시간

만에 깨졌다.

황성으로 쳐들어갔던 마법사들은 잠깐 사이에 모두 황제의 충실한 개가 되어 버렸다.

마법사들은 근위 기사와 병사들 과 함께 황도와 영지들을 수색했다.

병사와 기사의 손을 피했던 사람 들도 마법사는 피할 수 없었다.

애써 숨겨 놓았던 식량은 모두 빼앗겼고,몰래 숨어 있던 사람들 도 끌려갔다.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마법사 들 때문에 황제에 대한 소문이 더

욱 무시무시하게 퍼져 나갔다.

악마가 씌웠다느니, 마왕이 변한 거라느니,세상을 멸망시킬 거라 는 등의 온갖 말들이 흘러넘쳤다.

그러자 피난민들이 황도와 영지 들을 떠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 기느니,죽을 것을 각오하고 영지 를 벗어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동쪽으로 향했다. 먹을 것이 쌓여 있고,몬스터의 습격도 없는 영지.

자신과 가족,그리고 마을과 친 우를 먼저 생각하라는 영주가 있

는 영지.

그들은 레이첼 여남작이 다스리 는 영지로 향했다.

한편,제국군 또한 남쪽과 동쪽 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연맹군에게 전 해졌다.

"이틀 전,저희 연맹군을 반란군 으로 지정한 제국군이 두 갈래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래를 위해 황도에 가 있던 제 플린 상회의 마법사,제플린이 패

밀리어 편에 전해 온 소식이었다. 물론 거래는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이었고,실은 정보를 얻기 위해 황도로 간 것이었다.

성안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우울한 표정을 하는 사람,분노 하는 사람,그리고 기회로 생각하 고 눈을 반짝이는 사람.

하지만 황제가 연맹군을 반란군 으로 선언한 때부터 이들이 취할 행동은 오로지 하나였다.

"그럼,오늘부터 난 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네."

오페우스 백작이 연맹군 수장 자 리에서 물러났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황제가 앉힌 자리였다. 황제가 연맹군을 부정한 이상,백작이 자 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다음에 앉을 사람은 추 천할 수 있겠지. 난 레이첼 여남 작을 연맹군의 수장으로 추천한다 네."

이번에도 백작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 사람은 오히려 백작에게 눈 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것보다 백 작이 추천하는 것이 보기에 좋았 기 때문이었다.

레이첼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영주와 귀족들이 그녀를 바 라보고 있었다.

제이크 역시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이크를 보았던 그 녀는 모두 앞에서 선언했다.

"나,레이첼 아스굴론은 연맹군 의 수장 자리를 승낙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몬스터에게서 우 리 영지민을 지키고,패악한 황제 에게서 제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그리고 레이첼은 검을 뽑았다.

에고 검이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크게 소리쳤다.

"나를 위해,영지민을 위해,가족 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쳤다.

"제국을 위해!"

그 말에 모두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제국을 위해!"

그 이후로,연맹군도 진격을 시 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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