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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202화 (202/222)

202화

풍요로운 황실 직영지 중앙에 자 리 잡은 팔라티노 제국의 황도.

속칭 황제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황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벽 위에는 수많은 창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마치 지금 적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는 걸 과시하듯이 말이다.

적은 황도의 성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벌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부 영주들의 연맹으로 시작한 군대.

지금은 동부를 비롯한 남부,서 부를 걸친 거대한 연맹체가 되어 있는 제국 연맹군이었다.

연맹의 수장은 과거 예비 황태자 비였던,루테리아 공작의 딸이자,

지금은 독립해서 두 영지의 영주 가 된 레이첼 아스굴론이었다.

레이첼은 막사에서 마법사 제플 린을 만나는 중이었다.

마법사이자 상단의 주인인 제플 린은 레이첼을 앞에 두고 식은땀 을 닦고 있었다.

제이크에게 낚여서 황도에서 오 랜 시간 스파이 노릇을 한 그였다.

때문에 그는 죽을 위기도 여러 번 넘기고,이번에도 겨우 몸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제이크를 만나면 한마디 하려고

생각했지만,그가 처음으로 만나 게 된 것은 아스굴론 영주,레이 첼이 었다.

물론 레이첼 뒤에 제이크도 있었 지만,제이크에게 뭐라 하기에는 차기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레이 첼이 문제였다.

제플린은 마법사이자 상인이었다.

상인이 되려면 당연히 눈치가 빨 라야 했다.

기존의 황제는 제국을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고,몬스터의 소굴로 사라져 버렸다.

남은 영주들과 귀족들은 전부 도 토리 키 재기. 레이첼 수준의 세 력가는 없었다.

작은 상단의 주인이 미래의 황제 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황도 안은 어떻죠?"

"죽은 도시 같습니다. 젊은 남자 들은 황제에게 모두 끌려가고, 남 은 사람 중에 남자들은 모두 적을 막아야 한다고 수도 방어부대로 데려갔습니다.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과 여자들밖 에 없습니다."

레이첼의 질문에 제플린이 속사 포같이 답을 했다.

셈에 빠른 상인인 그가 차기 황 제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를 놓 칠 리가 없었다.

그는 불만을 가슴 속 깊이 묻어 버리고,아는 것을 빠르게 늘어놓 았다.

"거기다 먹을 것도 거의 없어서 성문을 막은 뒤로는 다들 굶어 죽 기를 기다릴 판입니다. 귀족가나 빈민가나 매일 시체가 나오는 모 양입니다."

제플린이 성을 빠져나온 뒤에도

상단 식구를 성안에 남겨 둔 덕분 에 지금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제플린은 투덜거리는 것 치고는 제대로 첩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지금 황도를 지키고 있는 병사 들은 전부 징집병들이지요. 노인 과 아이들. 남은 근위병들과 마법 사들이 그들을 통솔하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레이첼은 창살이 가득했 던 황도의 성벽을 떠올렸다.

겉보기에는 위협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모두 허세에 불과 했다.

모두 아이들과 노인들이 들고 있 는 창들이었기에 싸움이 나면 바 로 쓸어버릴 수 있는 병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병사라 부르기도 힘든 황도의 평민들.

레이첼은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 았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 에 제이크가 질문했다.

"안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는 힘들 겠죠??"

"그럴 것 같습니다. 대항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플린은 조심스럽게 제이크의

말에 대답했다.

상황을 보니,제이크에게도 함부 로 하긴 힘들어 보였다.

딱 봐도 전에 본 것보다 훨씬 강 해진 것 같았다.

그동안 들려온 황당한 소문을 반 만 믿어도 마도사급 이상의 마법 사가 된 게 분명했다.

거기다,제이크는 아스굴론 영주 가 제일 총애하는 사람인 것으로 보였다.

앰버 마법사라는 친우가 있었지 만,상인의 감으로 보면 확실히 이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어졌다.

"그럼,결국 밖에서 공략해야 한 다는 말인데……

안타깝긴 했지만,소년병들 덕분 에 적 병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대제국의 중심이 된 황도인 만큼 병력만으 로 지켜 왔을 리가 없었다.

"역시 방어 마법들이 문제군요." 제이크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연맹군은 진지를 정리하고 황도 로 다가갔다. 높은 성벽이 연맹군 의 눈앞에 펼쳐졌다.

성벽 위로 많은 창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모르고 봤다면 많은 병력에 걱정 했겠지만,진실을 아는 레이첼은 우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다른 영주 들은 기쁜 표정이었다.

"방어 마법을 후딱 깨 버리고 밀 고 들어갑시다."

"저런 병사들이면 반나절이면 충

분히 쓸어버리겠습니다."

평상시 싸움에서는 멀리 후방으 로 물러서 있던 영주들과 귀족들 이 레이첼이 있는 곳까지 몰려와 있었다.

황도의 방어가 약하다는 점과 제 국을 차지하기 위한 마지막 순간 이기 때문에 겁 많은 영주들이 앞 으로 나선 것이었다.

레이첼은 몰려온 영주들을 외워 두었다.

예상대로 제이크가 추천한 영주 들은 이곳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주의하라고 한 영주들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 앞으로 나설 리가 없고,제대로 욕심을 냈다면 전부터 나섰겠지.'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자들은 겁은 겁대로 많고 욕심은 욕심대 로 많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가야 할 자 들.

레이첼은 계산적인 자신의 모습 에 울적한 얼굴이 되었다.

"괜찮아요?"

옆에 있던 제시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공격을 시작하죠."

레이첼이 표정을 굳히고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말에 깃발이 하나 올라왔다.

연맹군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 했다.

사정거리 밖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부대가 천천히 성벽으로 다 가갔다.

이천 걸음.

천오백 걸음.

천 걸음.

공격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 선 뒤에도,활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도 공격은 없었다.

"가짜가 맞았어!"

"역시! 황도는 텅 비어 있었던 거야!"

긴장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던 영 주와 귀족들은 적의 공격이 없자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기사와 방패병을 세워 놓았 던 영주들도 허리를 펴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무척이나 한심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레이첼은 그들이 뭘 하든 관

심이 없었다.

그녀는 성벽에서 오백 걸음 떨어 진 곳에 병력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일제 발사!"

궁병이 일제히 활을 쏘아 올렸다.

동쪽에 있는 부대가 아직 합쳐지 지 않았지만,지금 있는 연맹군도 수만 명이었다.

준비하고 있는 궁병의 숫자도 수 천 명.

수천 발의 화살이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검은 폭포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그 폭포는 성벽에 닿지 않았다.

파파파팟!

화살은 성벽 앞에서 허공에 물결 을 만들어 내고는 튕겨 나갔다.

수천 발의 화살 중에 성벽에 닿 은 화살은 하나도 없었다.

"계속 싹!"

처음 화살이 계속 날아갔지만, 성벽 앞에 실드가 있다는 것만 알 려 주었을 뿐이었다.

레이첼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는 마법이었다.

슈우우웅!

각종 마법이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한곳을 향해 쏘아 낸 마법들이었다.

쾅! 과앙!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저 높고 튼튼한 성벽도 충분히 부술 만한 폭발이었다.

하지만 화염이 걷힌 뒤 보인 성 벽은 흠도 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드에 막힌 것이다.

영주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 가 들려왔다.

황도의 방어 마법이 그들의 예상 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레이첼의 표정은 변하 지 않았다.

"기사단을 출발시켜요."

그녀는 조용히 다음 공격을 지시 했다. 기사단이 움직였다.

"모두 출발!"

기사단 앞쪽에서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기사단으로 가 있던 제시카의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그녀도 다른 기사들처 럼 말을 타고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손을 내밀며 말을 달리자,기사들이 모두 그녀의 뒤 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연맹군의 기사들이 모여 만든 기 사단은 기사단장이 없었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영지의 기사 들이라 기사단장을 뽑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따로 기사단장을 뽑을 필요가 없었다.

정식 기사도 아니었고,여자 용 병에 불과했지만,검후 제시카를 따르지 않는 기사는 없었다.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제시카

는 연맹군의 기사단장이었다. 기사들은 성벽 앞까지 말을 달렸다.

그리고 성벽 앞에서 성벽을 끼고 방향을 바꾸었다.

실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 로 옆. 기사단은 실드 옆을 달리 기 시작했다.

말을 달리며 기사들은 검을 꺼내 들었다.

"마나를 끌어모아!"

제시카가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기사들의 검이 빛을 뿌리 기 시작했다.

맨 앞에서 달리는 제시카의 단검 은 다른 기사와 달리 검이 없는 부분까지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찔러 넣어!"

제시카의 말에 일렬로 달리던 기 사단 모두가 성벽 쪽으로 검을 찔 러 넣었다.

파파파팍!

허공으로 밀어 넣은 검에 불꽃이 튀어 올랐다

"크윽!"

"익!"

검들이 튕겨 나가고,깨져 나갔

다.

검을 강하게 쥐지 않은 기사는 검을 놓쳤고,깨진 검을 쥔 기사 는 손아귀가 찢어졌다.

끝까지 버티던 기사 중에는 말과 함께 굴러 떨어진 기사도 있었다.

그사이 기사들이 실드에 만든 흠 은 바로 사라졌다.

허공에는 단 하나의 선만 남았다.

제시카가 만들어 놓은 선이었다.

홀로 실드를 잘라 내던 제시카는 뒤쪽을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가 만든 선이 점차 사라지

고,잘려 나간 실드가 복구되고 있었다.

이래서야 실드를 잘라 낸 뒤,안 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제시카도 포기하고 말았다.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베 어 내며 기사단은 되돌아올 수밖 에 없었다.

영주들과 귀족들 사이의 소란이 더욱 커졌다.

"기사들도 못 뚫었으니,병사들 을 밀고 들어가도 소용없겠군."

"이래서야 황도로 못 들어가는 거 아냐?"

"결국 장기전인가?"

"안 돼,며칠 뒤에는 다른 놈들 도 들이닥쳐."

"어쩌겠어. 저런 마법진이 있는 데 방법이 없잖아. 황도에 있는 놈들이 모두 굶어 죽거나,마법진 의 마나가 다 소모해야 할 판인 데."

"제길,다른 세력하고 협상해야 하나."

"운 나쁘면 황도를 앞에 두고 싸 워야 할지도 몰라."

레이첼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맘대로 넘겨짚고 자기들끼리 뒷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 연맹군은 최강의 패를 꺼내 놓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 최강의 패가 내놓은 작전이 전보다 더 뜬금없고 무시 무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패를 사용해야 했다.

- 부탁해요.

레이첼이 머릿속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순간,황도의 하늘에 사람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 마법을 걷어낸 제이크였다.

"수백 년을 이어 온 제국의 힘을 모아 만든 방어 마법이라."

제이크가 발을 아래로 까닥였다. 징,징.

그때마다 반투명한 막이 나타났 다가 사라졌다.

"제시카의 검이 안 먹히면 내 화 살도 안 먹히겠지."

물론 가지고 있는 마석을 모두 터트리면 뚫릴 수도 있겠지만,잘 못하면 황도 전체를 날릴 수도 있

었다.

제이크는 계획했던 마법을 쓰기 로 했다.

그는 우선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마나여,너의 모습을 드러내라." 제이크가 완드를 아래로 향한 채 로 주문을 외었다.

그의 말에 따라 반투명한 막이 그의 발아래서부터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반투명한 막은 결국 황도 전체를 감쌌다.

황도를 감싼 실드가 모습을 드러

낸 것이다.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맹 군의 모든 병사와 황도의 모든 병 사,그리고 황도의 시민도.

그들은 모두 하늘에 떠 있는 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마법사는 다음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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