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검은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황폐 해진 제국의 남부 영지.
그곳의 높은 하늘에 마법사 한 명이 떠 있었다.
마법사는 무척이나 높은 곳을 날
고 있었지만,남쪽 땅을 보고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도대체 몇 마리야."
지상을 검게 물들이며 몬스터 떼 가 다가오고 있었다.
"큰일인데. 막기는커녕 잠깐이나 마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그는 굳은 얼굴로 메시지 마법을 시전했다.
-몬스터 무리를 확인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제이크 마도 사의 예상대로 대부분의 몬스터가 이쪽으로 오는 모양이다. 이상.
-제길.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알
겠다.
그의 메시지 마법은 북쪽에서 대 기하고 있던 마법사에게 전달되었다.
그 마법사는 더 북쪽에 있는 마 법사에게 전달했다.
그런 식으로 차례로 소식이 전달 되었다.
먼 거리까지 전달되지 않는 메시 지 마법의 약점을 보완한 새로운 통신 방법이었다.
마법사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법 을 쓴다고 불만을 표했지만,제이크가 강하게 밀어붙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덕분에 사령부에서는 몬스터 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 * *
같은 시각.
벤도르 영주성은 무척이나 소란 스러웠다.
연맹군,아니,이제 제국군이라고 불리는 군대의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방금 검은 몬스터의 대군
이 이 영지 방향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에,이제는 시끄 러운 정도가 아니게 되었다.
"몬스터 숫자는 최소 4만. 그 이 상이 분명하지만,파악할 수 없답 니다."
"비행 몬스터는 소수이고 대부분 지상 몬스터입니다. 대신 대형 종 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원거 리 공격이 가능한 몬스터도 보인 답니다."
"영지 주변의 방어선 병력은 최 대한 벤도르 영지로 이동시켰습니다."
"후방 영지들의 피난은 예상보다 더 진척이 힘듭니다. 특히 귀족들 이 더 말을 안 듣고 있습니다."
난장판에 가까운 회의실의 모습 에도 오페우스 백작은 담담한 얼 굴을 유지했다.
상황은 안 좋았지만,그럴 때일 수록 사령관은 침착해야 했다.
"우리 쪽은 지금 몇이지?"
"영지에 모여 있는 병력은 병사 4만,기사와 마나 사용자 300, 그 리고 마법사 200. 용병 5천 명 입니다. 그리고 아인족 200명입니다."
"숫자는 우리 쪽이 조금 많은 건 가?"
백작의 반 농담에 참모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그동안 전투로 보면 거 의 교전비가 10 대 1이 넘었습니다."
그것도 기사와 마법사 덕분에 겨 우 만들어 낸 사망자 비율이었다.
병사만 있었다면 100 대 1 이상 으로 벌어졌을 게 분명했다.
백작도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근데 아인족이라는 자들은 쓸 만한가?"
"체계는 다르지만,마법사 계열 이 100명,그리고 기사 계열이 100명 정도입니다. 아스굴론 영지 본진에는 수천 명이 있다는데 시 간에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겨우 4만 5 천으로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 지."
백작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히 도움
이 되겠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지원군들을 데리고 온 건지 모르 겠군."
백작의 말에 참모는 따로 대답하 지 않았다.
백작도 대답을 원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첫 진격을 막아 낸 뒤 차례로 후퇴를 하며 시간을 번다. 그리고 귀족들이고 뭐고 상관없이 강제로 퇴거를 시 켜. 예외를 봐줄 시간이 없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시를 내리던
백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남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왔군."
백작의 중얼거림에 참모들이 의 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회의실 안으로 병사가 뛰어들었다.
"몬스터가 보입니다! 지평선이 검게 물들었습니다."
병사의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벽으로 가지."
검을 찬 백작이 회의실을 나갔 고,기사와 참모들이 허겁지겁 그 를 따랐다.
벤도르 영지 경계에 있는 토벽에 서도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지평선을 까맣게 물들이며 다가 오는 몬스터들.
방책 위의 병사들은 반쯤 얼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특히,얼마 전까지 검은 몬스터 들과 싸웠던 병사들은 허탈한 표 정이 되었다.
"맙소사. 이건…… 살기 힘들겠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병사의 말에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정 도였다.
"정신들 차려! 아무도 싸워 이기 란 사람 없어! 시간만 벌면 돼!"
하지만,그 가운데에서도 버럭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검후 제시카의 목소리였다.
마나를 실은 낭랑한 목소리에 병 사들은 정신을 차렸다.
"무기와 장비 확인해!"
"한두 번 싸웠어? 빨리 움직여!"
"싸우는 건 기사님들이 하는 거 야! 지금 걱정하면 뭐 해!"
선임들과 기사들이 나서서 다른 병사들을 닦달했다.
조용하던 군대가 바쁘게 움직이 기 시작했다.
"하암,역시 검후님이 말하는 게 최고네요."
잠이 덜 깬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눈을 흘겼다.
"쪽팔리니까 그만해. 다들 멍청 하게 있어서 한마디 한 것뿐이 야."
제이크에게 투덜거린 그녀는 이 어서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근데,이거 정말 괜찮은 거야? 아무래도 답이 안 보이는데."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했 지만,그녀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제이크가 지긋이 남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 과거,아 니 미래에 보았던 광경이 겹쳐졌다.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그 때는 괴물들이 저렇게 뭉쳐 다니
지 않았다.
"답이 없어도 싸워야죠. 어차피 뒤가 없는 전쟁입니다. 도망갈 곳 도 항복도 할 수 없습니다."
대륙 끝까지,살아 있는 마지막 한 명까지 죽이는 놈들이었다.
아쉽게도 복제 세상보다 상황이 그리 많이 좋아지진 않았지만,그 래도 싸워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밀리 더라도,최대한 병력을 유지하면 나중에 반격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전처럼 제국이 갈가리 찢 긴 상황이 아니었다.
병력만 제대로 모을 수 있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지금은 도와주는 사람들 도 있지 않은가.
인간으로 위장한 호족 전사들이 방벽 뒤에 대기 중이었다.
병사들은 건장한 그들의 모습에 감탄할 뿐이었지만,기사들은 계 속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여우족과 다른 종족의 주 술사와 마법사도 토벽 위에 모여 있었다.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에 이런 상 황에서도 힐끔거리는 병사들이 있
을 정도였다.
검은 물결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지평선에서 보이던 검은 그림자 는 어느새 벌판을 덮고 방벽 앞까 지 다가왔다.
사람 크기에 불과한 작은(?) 몬 스터가 대부분이었지만,마차 크 기의 중형 몬스터와 웬만한 저택 크기의 대형 몬스터까지 모습을 보였다.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고 겁에 질 린 병사들이 여럿 보였지만,다행 히 달아나는 병사는 없었다.
"그럼,지시를 내리시죠. 마법사 님."
제시카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말했다.
그동안의 조언과 전투 덕분에 현 장 지휘관 역할을 맡게 된 제이크 였다.
제이크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안개 마법 전개."
-안개 마법 전개.
말하는 동시에 메시지 마법으로 명령을 전달하자,안개 마법이 가 능한 수십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마법을 펼쳤다.
"포그!"
방벽 앞에서부터 짙은 안개가 남 쪽으로 퍼져 나갔다.
안개 마법은 배우는 사람이 얼마 없는 지원 마법이었지만,이곳에 는 수백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여러 명이서 합동하여 펼친 안개 는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뒤덮었 고,그 뒤로 계속 퍼져 나갔다.
이윽고 하얗게 덮인 안개 위로 대형 몬스터들의 모습만 보이게 되었다.
시간이 되자 제이크가 다음 지시 를 내렸다.
"지진 마법 전개."
-지진 마법 전개.
이번에는 원소 마법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웠다.
"어웨이크!"
쿠궁!
땅이 크게 흔들렸다.
수십 명이 동시에 펼친 어웨이크 는 방책마저 흔들었다.
병사들이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안개 속에서 몬스터 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쿠악!
괴성은 특이하게도 몬스터들의 선두에서 나란히 들려왔다.
그와 함께 선두에서 달려오던 대 형 몬스터 머리가 안개 속으로 푹 꺼졌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진 행되 었다.
이제는 싸울 때였다.
"공격 개시! 화염 마법과 불화살 을 퍼부어!"
-화염 마법 전개.
불화살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그 사이로 백 개가 넘는 화염구가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간 불화살과 화염구 는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과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며 안개 속 에서 일자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화염에 의해 마법으로 만 든 안개가 앞뒤로 밀려났다.
불길이 치솟는 땅이 모습을 드러 냈다.
평야 가운데 방백과 나란하게 땅 이 깊게 패어 있었다.
며칠 동안 수천의 병사들이 힘을 합쳐 파낸 구덩이였다.
구덩이 안에는 연맹군이 준비한 기름이 가득 뿌려져 있었고,그 기름은 지금 불길이 되어 있었다.
안개로 몬스터들의 눈을 가리고, 지진으로 몬스터들을 구덩이 속에 떨군 뒤,불화살과 화염 마법으로 몬스터를 불태우는 작전은 훌륭하 게 성공했다.
수백,수천의 몬스터가 구덩이에 처박혀 불타고 있었다.
물론 인간이나 평범한 몬스터처 럼 불에 약한 놈들은 아니었지만,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언젠가는 숨이 끊어질 게 분
명했다.
안개가 걷힌 뒤 드러난 광경에 병사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구덩이 위로 치솟는 불길을 뚫고 검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충분히 넘을 수 있는 몬스 터들이 많이 있었다.
강력한 점프력으로 뛰어넘는 놈 들도 있었고,불타는 몬스터들을 밟고 넘어온 놈들도 있었다.
거기다,날다시피 넘어온 놈들과
불길을 무시하고 구덩이를 기어오 른 놈까지.
전보다 줄었지만,아직도 많은 몬스터들이 불길을 넘어 달려왔다.
"자유 사격! 멈추지 마!"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마법을 갈겨!"
"창수 대기! 방벽 위로 올라오는 놈들만 찔러!"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마법과 화 살이 쏟아졌지만,아쉽게도 그리 효과가 없었다.
다만,달려오는 몬스터들 중 일
부가 검은 창살에 맞아 바닥에 나 뒹굴 뿐이었다.
뼈 화살을 쏘아 내던 제이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더구나 한 곳에 너무 많은 몬스 터와 마법사가 모여 있었다.
아무리 제이크라도 이런 상황에 서 는 창살을 모두 회수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창살의 숫자가 점점 줄 어들었다.
다른 곳은 더 심각했다.
몇 마리 쓰러뜨리지도 못하고 몬
스터들이 방책에 도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광채가 흐르는 검을 들고 기사들 이 방책 위를 달렸다.
방책 위로 올라오는 몬스터들의 괴성과 기사들의 기합 소리, 병사 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제시카의 광검이 사방에서 휘둘 러졌고,제이크의 동료들이 큰 활 약을 했다.
하지만,제일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것은 아인족들이었다.
호족들이 전장을 내달리자,기사
의 검을 버티던 몬스터들의 껍질 이 깨져 나갔다.
주술사와 아인족 마술사들의 마 법은 대륙의 마법사들보다는 제이크의 마법에 더 가까웠다.
나무뿌리가 움직여 몬스터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땅이 늪처럼 변해 몬스터들을 잠기게 했다.
하지만,아쉽게도 아인족의 지원 만으로는 대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방벽에서 버티기 시작한 지 3시 간 뒤.
뒤쪽에 있는 영주성에서 노란 연 기를 쁨는 화살이 하늘로 솟구쳤다.
퇴각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