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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211화 (211/222)

211화

끝없이 펼쳐진 밀밭 중 한 곳이 맨땅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엔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뒤,제이크가 시

간을 들여 만든 마법진이었다.

벤도르 영지의 마법진과 연결된 공간 마법진.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제이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만 큼 많은 인원을 이동시킬 수 있 었다.

마법진 위에는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올라서 있었다.

제시카와 루이,두 어린 사제와 마법사,기사들.

그리고,호족을 비롯한 아인족 들.

그중에는 오페우스 백작도 보였

다.

이들은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레이첼의 요청에 뒤로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 병력으로는 지평선에 보이는 검은 물결을 막 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방어선이 무너 지면 제국은 저들에게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무너지면 대륙은 끝이었

다.

망해 버린 레타니아와 반쯤 붕 괴한 뒤 연락이 끊어진 히베루니아.

그리고 섬들의 왕국이라 원래 연락이 되지 않았던 페카폴라스.

그나마 브리티 왕국과는 연락이 되었지만,브리티 왕국도 이미 왕국으로 불리기 어려웠다.

아마, 페카폴라스 정도만이 제 국이 망한 뒤에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법진 밖에는 귀족들과 영주,

그리고 레이첼이 그들을 배웅하 기 위해 나와 있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제이크 가 레이첼 앞으로 걸어갔다.

레이첼이 제이크를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이런 때에도 걱정스러 운 표정을 짓지 않는군요."

제이크의 얼굴은 무척이나 담담 해 보였다.

적은 인원으로 적 수뇌에게 직 접 공간 이동을 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거겠

죠?"

하지만 제이크는 레이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성공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 습니다."

"하지만,당신 표정을 보면 믿 음이 가는걸요."

레이첼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이크의 대답에 레이첼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뇨. 꼭 살아서 오세요. 명령

입니다."

레이첼이 처음 그에게 내리는 명령이었다.

제이크는 놀란 얼굴로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레이첼의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있 었다.

그녀는 불안했던 것이다.

제이크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제이크의 약속에 레이첼은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제이크의 윗옷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엉겁결에 고개를 숙인 제이크에 게 레이첼이 입을 맞췄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내 약속이에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이크도 뒤로 물러서는 레이첼 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얌전한 고양이가 식탁 위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주인님이 잠꼬대로 썼던 말이

에요. 지금 같을 때 딱 좋은 말 인데요.

파티마 덕분에 놀란 가슴이 진 정되 었다.

제이크는 소란스러워진 귀족들 과 영주들을 보고 쓰게 웃었다.

레이첼의 키스 덕분에 귀족과 영주들의 셈법이 복잡해진 모양 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뭐라 하는 사람 은 없었지만,나중에 레이첼이 황제가 된다면 이 일로 무척이나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제이크는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에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미리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사람 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다채로웠다.

두 손을 모으고 꿈속에 잠긴 것 같은 이네트 사제와 감탄한 얼굴 로 제이크를 바라보는 알리바 사 제.

기사 중 일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친위대들은 질투의 눈으로 제이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차마 루이 옆으로 고

개를 돌릴 수 없었다.

제시카가 어떤 얼굴일지 확인해 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나하고 이야기 좀 하 지."

더구나 오페우스 백작이 검을 쓰다듬으며 꺼낸 말은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긴장된 분위 기가 조금 완화되었다.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앰버의 손 을 꼭 붙잡고 그를 바라보고 있

었다.

제이크는 마법진을 가동했다.

거대한 마법진이 환한 빛을 뿌 리기 시작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 번에 이동시키는 마법진이었다.

목걸이의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 마법진 속에 스며들었다.

화악!

환한 빛이 밀밭을 넘어 하늘로 치솟았고,눈이 부신 사람들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잠시 뒤,빛이 사라지고 텅 빈

공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 았다.

사람들도,마법진도…".

잠시 공터를 바라보던 레이첼이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모두 전투 준비. 남은 인원으 로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레이첼의 말이 방어선 전체에 전달되었다.

강물 뒤에 선 병사들은 모두 무 기를 들고 남쪽을 노려보았다.

마법진에서 사라진 이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무너진 벤도르 영주

성 지하였다.

영주의 두 자제가 숨었던 창고 로,또다시 벌어진 몬스터들의 공격에도 잘 버텨 냈다.

다만,입구가 무너져 문으로는 나갈 수가 없을 뿐이었다.

"파내려면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입구를 확인한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제이크도 목걸이의 마나가 채워 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제이크는 걱정하는 얼

굴이 아니었다.

"빈크루"

"네,부르셨어요."

아름다운 요정이 땅속에서 솟아 올랐다.

"와,여신인가?"

"요정이야."

반투명한 빈크루의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었다.

제이크는 그들의 반응에도 아랑 곳 않고 그녀에게 할 일을 내렸다.

"나갈 통로를 만들어."

"네. 바로 만들게요."

다시 무너졌지만,이 성은 아스 굴론 영주성처럼 빈크루의 영역 이었다.

이윽고 흐린 선들이 벽과 천장 을 가로질렀다.

쿠릉.

멀리서 웅장한 소리가 들려오 고,벽과 바닥이 흔들렸다.

이어서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천장에 커다 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멀쩡한 천장이 움직여 통로를

만드는 모습에 모두 놀랐다.

그중에서도 마법사들의 놀람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고대 마법의 일종인가?"

"그럴 리가,마나의 흐름이 전 혀 달라."

"마나 흐름이 던전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긴 성이 라고."

"그보다 그 반투명한 정령은 뭐 지? 그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마법사들은 눈을 반짝이며 제이

크를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상황을 가리지 않는 마법사들의 호기심에 한숨이 절 로 나왔다.

-주인님이 오히려 이상하다고요. 마법 기술자들이 저렇게 열 심인데,정식 마법사가 호기심이 이렇게 없어서야.

-일이 먼저야.

-그게 이상한 거라니까요!

파티마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천장 아래쪽 바닥이 원형으로 솟 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솟구치는 기둥 둘레에

원형 계단이 만들어졌다.

"이리로 올라가면 됩니다."

무척이나 울퉁불퉁한 계단이었 지만,올라가기는 충분한 계단이 었다.

제이크가 먼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사람들이 쭈뻣거리며 그를 따랐다.

원형 기둥은 계속 위로 솟구쳤다.

천장까지 도착한 기둥은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계속 위로 을라 갔다.

그렇게 기둥은 무너진 성 밖까

지 솟아올랐다.

지하 창고는 꽤 깊은 곳에 있었 지만,일행은 금방 지상으로 빠 져나올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제이크 옆으로 빈크루가 다가왔다.

반투명한 그녀의 모습은 밝아졌 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나를 모두 소모한 것이다.

그녀는 이 많은 인원의 공간 이 동을 지원하고,거기다 지상까지 통로를 만들었다.

던전 전체로 마나를 모으는 그

녀라도 마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더는 도와 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수고했어. 이제 쉬어."

제이크의 말에 빈크루가 고개를 숙였다.

"몸조심하세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의 모 습이 사라졌다.

마나를 모두 사용해서 잠이 든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마나가 채워질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볼 수 없

을 게 분명했다.

몇 주가 될지 몇 개월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문제는 이제부터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일까지 생각하기 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제이크는 빈크루가 남긴 마나의 선을 확인했다.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선.

바로 황제가 간 방향이었다.

"출발합시다."

제이크의 말에 모두 굳은 얼굴 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무척이나 지루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혼자 날아가 버릴까 고민했다.

거대 디스트로이어의 속도는 그 리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그렇 다고 하늘을 나는 것만큼 빠른 것도 아니었다.

아니,말이 달리는 속도보다도 한참 느렸다.

이런 느려터진 몬스터 위에 앉 아 망해 버린 세상을 구경하는

것은 무척이나 지루한 일이었다.

하지만,황제는 꾹 참았다.

괜히 미리 날아가서 인간들을 보게 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인간들을 신나게 학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기껏 이 런 거대한 군세를 모은 상황이었다.

인간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한꺼 번에 쓸어버리는 재미를 놓칠 수 는 없었다.

"황후는 얼마나 군대를 모았나 모르겠네. 최대한 끌어모아 줬으

면 좋겠는데. 슬쩍슬쩍 져 주다 가 마지막에 확 뒤집는 것도 재 미있을 것 같고."

"아무튼,이렇게 부부싸움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줄 정말 몰랐군.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 서 그나마 즐거운 일인가."

-그게 즐거운 일인지는 잘 모 르겠습니다.

"다른 에고 아이템들은 재치 있 는 대답도 잘한다는데,이놈은 영 재미가 없어."

황제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가슴 에 달린 쇠뭉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다 쓸어버리고 에고 아 이템들이나 찾아봐야겠다. 모아 놓고 잡담이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디스트로이어가 된 황제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인간이었을 때 보였던 광기 대 신에 그의 눈빛에는 공허함이 자 리하고 있었다.

"뭐,그 전에 쥐새끼부터 처리 하고."

허무하던 황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의 눈이 뒤쪽을 향했고,날개

가 달린 몬스터들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황제는 하늘의 한 점을 노려보 았다. 계속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가 먹어치운 디스트 로이어 중에는 은신 마법을 간파 하는 놈들도 있었다.

덕분에 그는 하늘에 떠 있는 마 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황제가 보고 있는 곳으로 몬스 터들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제일 먼저 날아갔지만,메뚜기들은 텅 빈

하늘에서 날아온 검은 화살에 꽤 뚫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텅 비어 있던 하늘에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로브를 입은 젊은 마법사.

황제는 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네놈이 왔군."

황제는 하늘에 떠 있는 제이크 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었어. 상황을 다 꼬아 버린 것도,황후를 된 것도."

제이크는 황제가 알아차린 것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이제는 별 상관없었다.

아니,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레이첼의 입술은 꽤 부드러웠어.

제이크가 비웃는 표정으로 황제 에게 메시지 마법을 날렸고,황 제는 어이없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다음 순간,황제의 얼굴은 검붉 게 변했다.

"날 화나게 하려는 건가? 그건 성공했군."

황제는 거대 몬스터 위에서 몸 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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