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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216화 (216/222)

216화

강으로 일차 저지선을 만들고 수만의 병사들로 방어선을 쳤지 만,제국군이 무너지는 것은 일 순간이었다.

기사단과 마법사들 역시 정신이

없었다.

특히 제이크와 제시카 같은 실 력자가 없는 군대는 검은 몬스터 들에게 무력했다.

헤엄쳐서,또는 강 아래 땅을 걸어서 강을 넘은 몬스터들은 나 무로 만든 방책을 그냥 뭉개 버 렸다.

병사들과 남은 기사들,그리고 레이첼은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진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는 학살에 가까웠다.

몬스터들의 일부는 방어를 뚫고

황도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일부 몬스터들은 그 자 리에서 인간들을 먹어 치웠다.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나마 레이첼과 친위대들이 있 는 곳은 가까스로나마 몬스터들 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그들의 노력은 의미가 없었다.

진형이 무너져,오히려 그들이 몬스터들에게 포위된 것 같았다.

"탈출하셔야 합니다!"

니콜라스 단장이 레이첼에게 외 쳤지만,이미 달아날 곳은 없었

다.

그리고.

레이첼은 달아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탈출해 봤자,어디로 간 단 말인가.'

이미 제이크에게 이야기를 들었 었다.

미래에서 모든 인간들은 검은 몬스터들에게 대륙 끝까지 쫓겼 다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버틸 수도 있겠지만,레이첼은 그러고 싶지 는 않았다.

제국의 신민을 지키는 것도 중 요했지만,다른 소중한 것을 잃 은 지금,삶을 포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던 레이 첼은 어느 순간 주변에 몬스터만 가득한 것을 알게 되었다.

탈출하자고 닦달하던 다른 영주 와 귀족들도 이미 몬스터들의 뱃 속에 들어가 버렸고.

친위대와 니콜라스도 결국 죽고 말았다.

"제국은 끝인가. 아니,인류는 이제 끝난 건가."

레이첼은 검을 내리고 남쪽 하 늘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은 레이첼을 서로 먹겠 다고 으르렁거 리는 중이었다.

그때 였다.

웅-

남쪽 하늘로 빛 하나가 솟아올 탔다.

마치 빛으로 만든 기둥처럼 보 였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숲에도,강에도,북쪽 하늘에도, 그리고,싸움터에도.

레이첼은 빛으로 변하는 몬스터

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제이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다행이야."

그녀는 자신의 몸이 빛으로 변 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같은 시각.

괴물이 된 황제는 황당한 표정 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사방에서 빛이 솟구치고 있었다.

본 적은 없었지만,이게 어떤

현상인지는 그도 잘 알았다. 그리고,지금 나올 리가 없는 현상이었다.

단지,마법사 하나를 죽였을 뿐 이었다.

[말도 안 돼. 이게 지금 나오면 안 돼. 이 세상은 내가 멸망시켜 야 한단 말이야!]

괴물의 목소리가 하늘을 울렸지 만,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죽인 마법사에게서 시작한 빛의 기둥은 이제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마지막으로 괴물도 빛

으로 변해 갔다.

괴물이 된 황제가 발버둥을 쳤 지만,때는 늦었다.

그의 몸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빛으로 변했다.

그리고,세상 자체가 허물어지 기 시작했다.

세상은 멸망했다.

죽었던 제이크가 다시 눈을 떴

을 때,가장 처음 본 것은 환하 게 빛나는 마법진들이었다.

그리고,처음 듣게 된 소리는 파티마의 음성이었다.

-갑자기 연결이 끊어졌어요. 주 인님,괜찮아요?

제이크는 멍하니 빛나는 마법진 을 바라보았다.

지하 광장을 가득 메운 마법진 들은 이제 빛을 잃고 있었다.

-설마,마법진을 가동한 거예요? 그냥 테스트해 본다고 하셨 잖아요.

-이것 봐요. 결국,망가졌잖아

요. 마법진을 쓴 지 얼마 안 돼 서 무리라고 말씀드렸는데…….

지하 광장에 그려진 마법진과 마석들은 힘을 잃고 있었다.

문양은 지워지고 있었고,마석 들은 갈라지는 중이었다.

그녀 말대로 이제 황궁 지하 유 적은 그 힘을 완전히 잃었다.

모두,너무 빨리 마법진을 가동 한 제이크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만족스러웠다.

겨우 정신을 차린 제이크는 몸 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킨 곳은 지하 광

장 중앙에 있는 제단이었다.

움푹 팬 세 개의 빈자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세 소년이 이곳에 누 워 미래를 보고 왔었다.

그리고,지금 그중에 한 소년이 청년이 되어 다시 짧은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제이크는 손을 올려 눈을 닦았다.

손에 물이 묻어 나왔다.

-울었어요? 뭘 보고 온 건데 그래요.

걱정스러운 파티마의 음성에 제

이크는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욱신.

심장이 아팠다.

세 번째 복제 세상이었지만,고 통은 줄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은 의외로 고통스럽 지 않았다.

하지만,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달랐다.

그를 믿고,좋아하고,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그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과연 복제 세상의 생명은 살아 있는 것인가…….

그러나 또다시 철학적인 고민을 떠올리는 대신,제이크는 움직이 기로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법진 가동에 문제가 생길까 봐 한쪽에 놓아두었던 에고 완드 를 다시 잡았다.

완드는 멀쩡했다.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지하 광장의 문을 향해 걸 어갔다.

그는 광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유적을 돌아보았다.

제국 팔라티노의 힘의 원천이

자,제이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이제 그 힘을 잃 게 되었다.

급하게 가동하느라 제이크가 이 곳저곳 고친 마법진은 이제 수리 마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제이크는 지하 유적의 문을 닫 았다. 그러자 보호 마법들이 다 시 가동되었다.

이제 제이크 이외에는 유적 안 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가도 평범한 유적밖에는 남 지 않았지만…….

층계를 올라간 뒤,제이크는 숨

겨진 문을 통해 복도로 빠져나왔다.

이곳은 황성 임페리얼의 제일 안쪽 복도.

제이크가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갔다.

마법진을 고치느라 한참 동안 씻지 못해 지저분한 모습이었음 에도,그가 걸어가자 복도를 걸 어가던 내관과 하녀,관료들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 황도 상공에 떠 있는 제이크를 본 이들이었다.

그들뿐이 아니라 황도에서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제이크는 사람들의 인사를 무시 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한참 복도를 걸었던 그는 황성 의 한 방 앞에 멈춰 섰다.

과거 총리대신이 사용했던 집무 실이었다.

나름 중후한 느낌이 나는 문 양 쪽에는 기사 두 명이 자리를 지 키고 있었다.

"계시는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말하지 않았

지만,기사들은 재깍 알아들었다.

"넵."

"내가 방문했다고 알려 드리도 록."

기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를 했고,바로 허락이 떨어 졌다.

제이크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바빠 죽겠는데 며칠 동 안 뭘 하다 온 거야? 아이고,그 꼴은 다 뭐야!"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한 제시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가 연구에 빠지며 앞뒤

안 본다는 것은 알지만,제시카 말대로 좀 씻는 게 좋지 않을까 하네만."

오페우스 백작도 그녀 옆에서 혀를 찼다.

"맞아요. 평상시에는 깔끔하던 인간이 가끔 저렇게 엉망이 돼서 나타난다니까요."

오페우스 백작의 맞장구에 제시카가 말을 이었다.

레이첼도 걱정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몸 생각하면서 하세요. 그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레이첼의 말에 앰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제이크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항상 뭔 일이 있던데."

이어서 놀란 얼굴로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제이크는 자리에 앉았다.

복제 세상에서 들었던 말과 똑 같았다.

'내가 똑같이 행동하면 결국 똑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절대로 그래선 안 되었다.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잠깐 정찰을 다녀와야겠습니

다."

복제 세상에서는 북쪽 얼음의 마탑으로 간다고 했지만,지금은 그곳에 갈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복제 세상 때와 달리 아무 설명 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우선 좀 쉬는 게 어떻겠나."

백작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지만,레이첼과 제시카는 말 없이 제이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뒤,레이첼이 그에게 질문 했다.

"얼마나 걸리죠?"

"왕복하면 한 몇 주 걸릴 겁니다."

그 말에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 지만,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그 도 알아차린 것이다.

"꼭 가야 하는 거죠?"

"네."

제이크의 말에 레이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녀오세요."

제시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역 시 여성들의 촉은 무서웠다.

제이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에 바로 방을 나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그는 우 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몸을 씻은 뒤에야 복제 세 상의 잔재를 모두 떨친 것 같았다.

제이크는 책상에 앉아 레이첼에 게 남길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이야기와 대응책들.

그리고…… 제이크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글이었다.

조금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는 편지를 마무리했다.

그는 편지를 다 쓴 뒤,사람들 몰래 레이첼의 침실로 숨어들었다.

누가 보면 도둑으로 오해할 법 한 행동이라는 생각에 제이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침실에 들어선 그는 조금은 삭 막한 레이첼의 방을 둘러보았다.

황제가 될 사람의 방처럼 보이 지도 않았고,아름다운 여성의 방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갈한 방의 모습은 레 이첼과 무척이나 어울렸다.

제이크는 침대 머리맡에 편지를

내려놓았다.

이곳에 두면 적어도 그가 떠나 기 전에 읽지는 못할 것이었다.

-핑계는 좋아요.

파티마가 간만에 딴지를 걸었지 만,제이크는 완드를 슬쩍 쓰다 듬을 뿐이었다.

파티마의 딴지마저 듣기에 나쁘 지 않았다.

제이크는 레이첼의 방을 빠져 나와 황성 앞 연병장으로 향했다.

연병장에는 기사들이 훈련하고 있었지만,은신 마법을 쓴 그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연병장을 둘러보았다.

루이가 기사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그였지만,기사들은 그를 모두 자신들의 동료로, 한 사람의 기사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

실력으로는 한참 전에 뛰어넘었 지만,다른 면에서도 그가 꿈꾸 는 기사단의 기사가 된 모습이었다.

그리고,연병장 구석에는 이네 트,알리바 두 사제가 바닥에 주 저앉아 훈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서로 장난을 치는 두 사제의 모 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 사 제들이 었다.

그들이 있을 곳은 연병장이나 싸움터가 아니라 신전과 어려운 사람들 앞이었다.

제이크는 두 사제를 보고는 마 음을 다시 한번 다잡을 수 있었다.

연병장에는 니콜라스 기사단장 과 레이첼 친위대들도 보였다.

모두 같이 싸워 왔던 전우들이 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보지 못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더 찾을 시간이 없었다.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눈 에 담고 몸을 돌렸다.

"안녕!"

제시카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 었다.

제이크가 놀란 눈이 되었다. 자 신은 지금 은신 마법을 걸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그는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시카의 손에는 추적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은신 마법을 걸고 있었지만,자신이 준 추적 아이 템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죠?"

제이크의 물음에 제시카가 씩 미소를 지었다.

"같이 가려고 왔지."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정찰에 방해가 됩 니다."

"홍,정찰은 무슨. 싸우러 가는 거잖아."

역시, 속일 수 없었던 것일까.

제이크의 머릿속으로 그녀의 죽 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제이크가 다시 고개를 저으려고 할 때였다.

제시카가 그의 가슴을 꾹 눌렀다.

"그리고,혼자서 자신 있어? 내 가 있는 편이 훨씬 좋을걸?"

제이크는 멍하니 제시카를 바라 보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감정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녀가 필요했다.

하지만,약속을 받아 내야 했다. "내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해요. 약속하지 않으면 혼자 갑니다."

제시카가 자신의 단검을 들고 맹세했다.

"맹세할게. 내 모든 것을 걸고." 제이크는 한숨을 내쉬었고,제시카는 그의 목을 휘감았다.

"빨리 가자고."

제이크는 제시카의 허리를 안고 마법을 시전했다.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이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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