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제이크와 제시카가 지하 세계에 서 벌인 싸움은 몇몇 사람만 아 는 일로 끝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고대 숲에서 일 어난 거대한 자연재해를 보고 신
이 인간을 지켜 준 것으로 생각 했다.
마지막 싸움 뒤에 고대 숲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깊고 깊은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지상에 남아 있었던 비행형 디 스트로이어들은 제이크 일행과 제국군이 결국 정리했다.
제국 내에도 안정화가 되어 있 지 않았지만,검을 치켜든 레이 첼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덕분에,오히려 제국도 금방
안정화가 되었다.
여자라고,혹은 남작에 불과하 다고 깔보던 영주들이 모두 그녀 앞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멸망한 레타니 아에도 피난민들이 돌아오기 시 작했다.
다른 왕국과 제국으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부터 토굴과 숲속에 숨어 살아남은 이들까지.
비록 살아남은 이들의 수는 얼
마 되지 않았지만,하나둘씩 사 람이 모이자 제국에도 조금씩 활 기가 돌아왔다.
과거 레타니아의 왕도였던 도시 도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이 사 는 곳처럼 느껴졌다.
물론 대부분의 건물은 폐허로 남아 있었지만,천막이 쳐진 시 장도 만들어졌고,많은 건물들이 수리되고 있었다.
"아니,도대체 그 정보가 맞긴 한 겁니까? 도시가 코앞인데 강 도들이 들끓고 있잖아요!"
직원의 말에 제플린은 흐르는 땀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제국 안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장사만 해도 떼부자가 될 텐데, 이런 험한 곳으로 상행이라니. 이러니 우리보고 미쳤다는 소리 가 나오는 거라고요."
상단주의 난처함에도 또 다른 직원이 말을 보탰다.
제플린 상단주는 다시금 두꺼운 볼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낼 뿐이 었다.
제플린 상단은 지금,레타니아 의 수도 앞에서 강도들과 대치하
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도적이나 강도들과 여러 번 마주쳤지만, 이번처럼 제대로 갖춰 입은 강도 들은 처음이었다.
이들에 비하면 그동안 만난 도 적과 강도들은 평범한 일반인(?) 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고향으로 돌아오던 피난민들과 먹을 것이 없어서 도 적들로 변한 사람들이었다.
싸울 것도 없이 제플린의 마법 만 보여 줘도 우르르 도망쳤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이번에는 달랐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탈영 병이나 패잔병 같았다.
가죽 갑옷을 차려입은 사람도 반은 되었고,그중 한명은 판금 으로 만들어진 흉갑을 걸치고 있 었다.
제플린이 손 위에 불덩어리를 띄워 강도들을 겁주었을 때도 흉 갑을 입은 강도가 일을 망쳤다.
"걱정 마! 대충 보니까 공격 마 법사는 아니야!"
그가 고함친 덕분에 물러서려던 강도들은 제자리를 지켰고,제플
린은 계속 땀만 닦게 되었다.
다행히 강도들도 마법사를 상대 로 싸울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반만 놓고 가! 그럼 보내 주겠 다!"
강도들은 상단에 덤벼들지 않고 나름 협상을 했다.
그에 제플린은 고심했다.
그가 공격 마법사는 아니지만 제플린과 상단 인원만으로도 충 분히 강도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아직 갈 길이 많이 남
아있었다.
괜히 싸움이 붙었다가 상단 인 원 중에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오면 곤란했다.
그렇다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수도 없었고,이렇게 대치만 하 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젠장,이 정도 인원이면 수도 에서 한자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단 따위가 마법사 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이 야?"
그 와중에 흉갑 강도가 작게 중 얼거리는 소리가 제플린의 귀에
들려왔다.
역시 어디선가 굴러먹던 패잔병 이 모여 만든 강도들인 모양이었다.
제플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높은 사람들과 엮여서 고 생이었다.
덕분에 상단은 다른 내로라하는 상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 게 되었지만,정작 자신은 이런 오지로 상행을 가는 처지였다.
제플린은 땀을 닦으며 도시를 바라보았다.
"마중 나올 때가 되었는데,왜
안 오는 거야?"
그래도 제국의 현 지배자의 밀 명으로 상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도시에서도 도움을 받을 사 람이 있었다.
"휴,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멀리서 다가오는 사제들을 보고 제플린이 중얼거렸다.
젊은 여자 사제와 그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 사제.
두 사제가 사제복을 펄럭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둘 중 남자 사제는 제플린도 아
는 사람이었다.
"하아,하아,
여기서 붙잡혀 있으셨군요."
처음 보는 여자 사제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아,처음 뵙겠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레이 사제님."
제국 기사단의 최고의 기대주인 루이 기사의 누나였으니 제플린 이 깍듯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자네도 오랜만일세. 이네트 사 제는 잘 있나?"
제플린의 말에 알리바가 인사를
했다.
"네,일이 많아서 이네트는 나 오지 못했습니다."
"하하,바쁠 수밖에." 사람들에게 성녀로까지 불리는 이네트였다.
그녀에게 기도를 드리고,치료 를 받기 위해 모이는 사람이 아 침부터 저녁까지 끝이 없었다.
"근데,그래서야 대관식에 갈수 나 있나?"
"시간을 내기로 했습니다. 어차 피 제국에 도움을 받을 일이 많 아서요."
알리바의 말에 제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는 세 사람을 멍하니 보던 강도들은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네놈들은 우리가 보이지도 않 냐!"
흉갑을 입은 강도의 고함에 세 사람은 대화를 멈추었다.
"어차피 사제들일 뿐이야. 그냥 묶어 버리고 일을 처리하면 돼."
아무리 악당들이라도 사제들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
다.
강도 두목도 차마 사제를 죽이 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다른 강도들이 주춤거리며 두 사제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레이 사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환자가 늘겠군요. 공짜로 치료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 는데."
뒤이어 알리바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겔드의 이름으로 공평 해야 하니까요."
휘이익,척.
앞으로 나서는 그의 몸 위로 어 디선가 날아온 갑옷이 하나둘 달 라붙었다.
제이크가 보았으면 강철맨이라 고 외쳤을 모습이었다.
두 걸음 정도 걸었을 때,알리 바의 모습은 판금 갑옷을 갖춘 기사의 모습이었다.
가이아 신이 준 마법 갑옷이 소 환된 것이다.
"맙소사,신전 기사였어?"
"아니,기사면 갑옷을 입고 있 어야지 왜 사제복을 입고 있어!"
"저거 마법 갑옷이야!"
비명같은 외침들이 강도들 사이 에서 터져 나왔다.
강도들의 말에 알리바가 손을 들어 투구를 긁적였다.
"싸우는 것보다 구호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사제복을 입고 있었 습니다. 오해하게 해서 죄송하네요."
말을 마치고 알리바가 앞으로 달려갔다.
검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건를 릿을 낀 기사의 주먹을 낙오병들 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도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레이 사제가 하늘을 나는 강도 들 사이를 지나 제플린에게 다가 왔다.
"도시에는 얼마나 머무실 건가요?"
"한 이틀 정도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안내인은 찾으셨나요?"
"네,다행히 페카폴라스에서 돌 아온 피난민이 계십니다. 충분한 사례를 하면 안내를 해 주시겠답 니다."
레이의 말에 제플린이 땀을 닦 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긴 하네요."
솔직히 찾지 못했으면 하는 마 음도 있었지만,안내인이 있으니 이제는 레이첼 영주의 밀명을 수 행해야 했다.
검은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끊어 진 왕국들 간의 통로를 다시 만 들라는 밀명이었다.
나름 이득이 무척이나 큰 상행 이긴 했지만,도처에 도사린 위 험 탓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 이에 주변은 정리가 되었다.
강도들은 이리저리 날아가 바닥 을 구르고 있었다.
"우리 사제님이 다치게 했으니, 결국 제가 공. 짜. 로. 치료를 해 야 하네요."
레이 사제는 우울한 표정으로 쓰러진 강도들에게 다가갔다.
알리바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강 도들을 묶고 있었고,레이 사제 는 강도들을 하나하나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시의 훌륭한 노동력이 될 사람들이었다.
잘못된 정신 상태는 지금처럼,
알리바와 교단의 치유법로 금방 고쳐질 게 분명했다.
제플린은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 으로 도시를 향해 움직였다.
그는 도시를 넘어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동부의 작은 시골 영지. 다행히 이곳은 이번 재앙에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군대가 지나가기도 하고,남자
들이 징집을 당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무사히 돌 아왔다.
무사히 돌아온 사람 중에는 안 나의 소굽친구이자 애인인 데이 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데이브는 한몫을 잡는다고 스스로 마을을 떠났었지만,다행히도 그는 몸성 히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돌아온 그는 제일 먼저 안나를 찾아갔고,그녀에게 신나 게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안나는 그의 가슴에서
펑펑 울었다. 다행히 안나는 그 를 기다려 준 것이다.
무사히 돌아온 데이브였지만, 아쉽게도 멋진 용병이 되어 한몫 을 잡아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지 키지 못했다.
시골 마을의 젊은이가 꿈을 이 루기에는 세상의 벽은 너무 높았 던 탓이다.
"결혼은 살 집을 마련하고 제대 로 된 반지를 구한 뒤야.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청혼을 받아 주지 않을 거야."
덕분에 데이브의 청혼은 잠시
보류되고 말았다.
만약 얼마 뒤에 나타난 둘의 소 굽친구가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 몇 년 동안 결혼을 하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며칠이 흘렀을까.
어렸을 때 마을을 떠난 귀족 도 련님이 멋진 청년이 되어 마을에 나타났다.
그를 알던 마을 사람들이 다들 놀라워했고,결혼 안한 마을 처 녀들은 다들 눈이 뒤집혀졌다.
하지만,정작 그와 가장 친했던 데이브는 그를 보고 딱딱하게 굳
어 버렸다.
데이브는 언젠가 모습을 보인 영주님을 대하는 것처럼 그를 대 했다.
데이브와 그의 소굽친구 제이크 는 마을 밖에서 서로 만났었던 모양이었다.
당연히 안나도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제이크는 전과 달라지 지 않았다.
"두 사람한테 선물을 주려고 왔어."
제이크는 품에서 반지 두 개를
꺼냈다. 반짝이는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결혼 예물이야. 바빠서 결혼식 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가져왔어."
안나의 눈이 보석같이 반짝였다.
"반지가 없는 걸 어떻게 알았 어…… 아니,알았어요? 용병들 에게 약혼반지를 빼앗기는 바람 에 얼마나 속상했다고요."
안나와 데이브는 알지 못했지 만, 그 반지를 보상으로 빼앗았 던 용병 중 한 명이 제이크였다.
실제로 반지를 갈취한 것은 예
시카였지만…….
제이크는 오래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 이곳을 찾아온 것 이다.
"그리고,우리 옛집도 두 사람 이 써."
"아니,그럼 너,아니,제이크 씨는 어디서 지내려고요? 거긴 엄청 큰 저택이잖아요. 수리만 해도 귀족들이 사려고 달라붙을 거예요."
반지와 달리 집을 준다는 말에 안나가 펄쩍 뛰었다.
"데이브,너도 말려! 저 정도
집은 함부로 받을 수 없어. 영주 님도 뭐라 할지 몰라."
옆에 있는 데이브를 잡고 흔드 는 안나였지만,데이브는 그냥 고마워할 뿐이었다.
이 영지의 영주를 한 손에 잡고 흔드는 마법사였다.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데이브는 반지를 걱정스 립게 바라보았다.
"저 이거,평범한 반지겠죠?"
그 말에 제이크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흠,어떤 것 같아?"
당연히 평범한 반지가 아니었다.
주겠다는 고향 집보다 몇 배, 몇 십 배 비싼 마법 반지였다.
반짝이는 보석은 보석이 아니라 마석이었고,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대 마법으로 마법진을 새긴 반지였다.
저택이 아니라 성을 살 수 있을 지도 모를 만큼 비싼 마법 아이 템인 것이다.
"마법이 걸려 있어. 서로 상대 방을 찾을 수 있는 추적 마법 이."
물론 다른 여러 마법도 걸려 있 지만,제일 중요한 마법은 추적 마법이 었다.
제이크의 말에 안나는 믿지 못 하는 표정이 되었고,데이브는 얼굴이 검게 죽었다.
이제는 도망칠 수도 없게 된 것 이다.
그렇게 고향 마을을 한차례 뒤 집은 뒤에 제이크는 마을을 떠났다.
대관식이 열리기 일주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