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급 서기관의 회귀-221화 (221/222)

221 화

제국의 황도는 대관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길가에 화환이 늘어서 있었고, 성벽 위에는 아름다운 새가 그려 진 깃발이 휘날렸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엇을 준비하는지 바쁘게 움직이고 있 었다.

그중 제일 분주한 곳은 황성 앞 광장이었다.

광장은 이미 축제 중이었다.

많은 노점상이 열리고,광대와 음유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 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용병들은 대낮부터 술을 먹고 주먹질을 하 는 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광장의 중앙에 마법사들이 모여 처음 보는 장치

를 설치하고 있었다.

과거 대관식 때에는 보지 못한 장치였다.

과거에는 반 강제로 모인 황도 의 시민들이 대관식을 끝낸 황제 의 연설을 이곳에서 들었었다.

모두 이번 대관식도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지만,새로 운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제국의 새로운 지배자,레이첼 아스굴론이 황도에 들어선 지도

벌써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레타니아 왕국에 있던 고대 숲 은 호수로 변해 버렸고,지상에 남아 있던 검은 몬스터는 모두 소탕되었다.

레이첼의 군대,즉 새로운 제국 군이 마지막 몬스터까지 모두 소 탕한 것이다.

그와 함께 레이첼은 혼란한 제 국을 안정화시켰다.

새로운 지배자를 거부하는 영주 와 반란군을 와해시켰고,불안에 떠는 귀족들을 회유했다.

또한 제국민들을 가족과 국가라 는 새로운 국가주의 사상으로 물 들였다.

새로운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귀족과 영주들도 많았지만,레이 첼의 말을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 황제가 사라진 지 반년.

영주들과 귀족들은 레이첼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매일같 이 청원을 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지상에서 검은 몬스터가 모두 사라지고,제국이

안정될 때까지 대관식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 덕분일까.

예상보다 빨리 몬스터들이 정리 되고,반란 세력도 모두 일소되 었다.

물론 제국 밖은 아직까지도 무 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멸망한 레타니아 왕국에 겨우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동쪽의 히베루니아 왕국은 나라 의 반이 파괴되어 군벌들끼리 남 은 국토를 갈라 먹었다.

남쪽의 페카폴라스 왕국은 어떻

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 이었고,서쪽의 브리티 왕국은 수많은 영지들이 모두 스스로 왕 국을 선언하고 내전에 돌입한 상 황이었다.

다른 때보다도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레이첼은 새로운 대마도 사가 검은 몬스터 소탕을 선언하 자,국외로 나가 있는 모든 제국 군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그녀에게는 대륙을 통일하는 것 보다 망가진 제국을 되살리는 것 이 더 중요했다.

검은 몬스터가 모두 사라지자, 피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폐허가 된 영지들은 하나둘 복구 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많은 영주와 귀족들은 계속 황도에 남았다.

언제 치러질지 모를 새 황제의 대관식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영지를 관리하는 것 도 중요했지만,새로운 황제의 눈에 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들의 새 황제는 제국민을 사 랑하고,자애가 넘치는 여성이기 도 했지만.

강력한 기사였고,적을 남겨 두 지 않는 강력한 군주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 주위에는 대 검호인 백작과 처음으로 소드 마 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검후,그 리고 수많은 강력한 기사와 용병 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영주와 귀족들이 정말 로 무서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 었다.

새로 대마도사로 올라선 젊은 마도사가 진정한 공포의 대상이 었다.

그동안 그가 보여 준 말도 안 되는 마법들과 수많은 유언비어 들이 젊은 대마도사를 현세에 나 타난 마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죽했으면 반년 전에 고대 숲 에서 벌어진 대재앙도 그가 일으 킨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이 안 돼."

"사실일지도 모른다니까? 거래 를 하는 상단주한테서 흘러나온 이야기야."

대로가에 서서 성문을 지켜보던 두 늙은이도 마침 그 소문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요즘 잘나가는 마법사 상단 말이야?"

"어,실세들하고 꽤 잘 알고 있 는 모양이더라고."

"그럼 정말인 건가……. 암튼 자네도 운이 트였어."

"운이 아니야. 그 미친 황제가 있을 때,얼마나 고생했는데."

때아닌 스파이짓을 하느라 수명 이 몇 년은 줄었다고 생각한 노 인이었다.

"꼬맹이,아니,젊은 놈 소개로 그 상단주하고 손을 잡은 걸 얼 마나 후회했었다고. 이렇게 풀렸 기에 망정이지. 죽을 뻔했다니 까."

"소개한 젊은이는 또 어떻게 알 게 된 건데?"

과거 빈민가 골동품상으로 하다 가 이제는 대로 옆에 큼지막한 대형 삼정을 차리게 된 노인.

루벨은 꼬맹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몇 년 전이더라. 전 황제의 대 관식 며칠 전이었을 거야. 한 꼬

맹이가 거지꼴을 하고 고대 금화 를 들고 찾아왔지 뭐야……

노인 루벨이 이야기를 하는 사 이에 성문에서 소란이 일었다.

"아인족이야! 정말 아인족이 야!"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길게 내밀고 성문을 바라 보았다.

신비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성문 안으로 인간과 다른 종족들 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변장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으로 등장한 아인족들이었

다.

아름다운 얼굴에 동물의 귀를 달고 있는 아인족들과 여신과 요 정처럼 보이는 자들.

그리고 몬스터로 보일 정도로 험상궂게 생긴 자들까지.

그들을 본 사람들은 놀라고 신 기해했다.

전설과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했 던 아인족들이었다.

미리 올 것이라고 듣기는 했지 만,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한편,아인족 맨 앞에서 성을

들어서고 있던 음유 시인도 감회 가 남달랐다.

언제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숨 어 다녀야 했던 과거와 전혀 달 탔다.

천 년 마도제국의 노예였을 때 와도 달랐다.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 만,아인족도 이제는 떳떳하게 인간 앞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도 인간형으로 변하지 그 래?"

-흥,싫어. 이것도 내 모습이야.

그가 탄 말머리에 앉은 고양이 가 길게 하품을 했다.

-제이크나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잠자기에는 제이크 품이 제 일 편한데.

묘족 소녀의 말에 여우족 음유 시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뿐 이었다.

아인족 뒤로도 많은 이들이 성 에 들어섰다.

다른 나라들의 축하 사절과 마 법사들,여러 교파의 사제들.

요근래 먹고살 만해진 덕분에 축제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

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대관식 날이 밝아왔다.

일반인들은 황성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고,대관식에 참여할 사 람들은 황성 임페리얼의 중앙홀 로 향했다.

모두 새로운 황제의 탄생에 기 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드레스 룸에는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차마 드레스 룸에 들어가지 못 한 내관들과 니콜라스 기사단장 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드레스 룸 안에서는 새롭게 하 녀장이 된 힐다가 황제에게 화를 내는 중이었다.

드레스 룸에는 그녀보다 오래 황실에 있었던 하녀들과 귀족 자 녀들인 시녀들도 있었지만,그들 은 황제의 기행에 차마 말도 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 대관식을 한다니

요! 여태 그런 황제는 없었다니 까요! 아름다운 드레스를 놔두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에요!"

힐다의 말처럼,레이첼은 드레 스 대신에 판금 갑옷을 입고 서 있었다.

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판금 갑옷과 부드럽게 흘러내리 는 그녀의 금발 머리.

그리고,아름다우면서도 의지가 가득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마 치 이야기 속의 전쟁의 여신처럼 보였다.

한참 잔소리를 듣고 있던 레이 첼이 입을 열었다.

"평화로운 시대의 여제라면 드 레스를 입어도 돼. 하지만 지금 은 자애로운 예제가 아니라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일 때야. 과거 의 관례는 죽은 전 황제들 것일 뿐이야."

레이첼의 말에 힐다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레이첼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주인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그건 절대 안 돼요."

힐다가 푸념하듯이 꺼낸 말에 레이첼이 화들짝 놀랐다.

덕분에 경색되었던 분위기가 조 금은 풀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죠. 이 상태에서 최 대한 꾸미는 수밖에."

힐다의 말이 끝나자 하녀들이 레이첼에게 달라붙었다.

갑옷을 입고 있어도 꾸밀 수 있 는 곳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멀찌감치 서서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시녀가 다른 시녀에게 조심 스럽게 물었다.

"힐다 하녀장은 황제 폐하가 무 섭지도 않은가 봐요. 어떻게 폐 하께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 죠?"

의문을 표하는 시녀에게 다른 시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힐다 하녀장이 이곳에 오기 전 에 어느 분 하녀였는지 알아요? 그 대마도사님 하녀였었대요."

질문을 했던 시녀가 질겁한 표 정을 지었다.

"히익,정말이에요? 와,그 마 왕,헉. 아니,마도사 밑에 계셨 었다고요? 그럼,정말 무서운 게

없으시겠네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레 이첼의 귀에는 전부 들릴 수밖에 없었다.

레이첼은 쓴 미소를 짓고 말았다.

대관식은 성황리에 치러졌다.

갑옷을 입고 등장한 레이첼의 모습에 많은 귀족들이 놀라워했 지만,소란은 크지 않았다.

다만,몇몇 기회를 엿보던 대영 주들이 나지막이 혀를 찼을 뿐이 었다.

레이첼의 모습에 감동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갑옷을 입고 어깨에 신조를 앉 힌 레이첼의 모습은 초대 루테리아 공작과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 이었다.

대관식에는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영주들과 귀족들은 물론,전쟁 에 참여했던 기사와 장군과 용병 대장들.

그리고 내전으로 버려진 백탑 대신에 제국 마탑의 탑주가 된 제노와 마법사들.

과거 미래에 쓸 만한 인재들과 귀족들로 채워졌던 대관식과 달 리,현재의 실세들과 전쟁 영웅 들이 홀에 가득했다.

레이첼과 가까운 이들도 식장 한편을 차지했다.

검후 제시카와 방패 기사 루이. 그리고 성녀로 불리는 이네트와 성바퀴기사 알리바.

오페우스 백작도 앞자리에서 그 녀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오랜 친우 앰버도 그 옆에서 활 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홀 구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있 었지만,그녀가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레이첼은 그가 떳떳하게 앞자리 에 앉아 그녀를 축복해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나서면 대관식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게 뻔했다.

황도에 살고 있는 시민 모두는 황도가 점령당하던 날,공포스러 운 대마도사의 마법을 모두 경험

했었다.

한순간에 죽음에 가까운 기절을 경험한 이들 모두는 대마도사를 마왕과 동일시할 정도였다.

늙은 사제에게 홀을 받고 왕관 을 쓴 뒤,레이첼은 구석에 서 있는 제이크를 먼저 바라보았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자,그 녀는 모두를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나 레이첼은 제국 팔로미노의 황제로……

"오케이. 1번 화면으로. 그리고

乂 "

W.

레이첼의 연설을 들으면서 제이크는 자신 앞의 반투명한 창들을 빠르게 움직였다.

각각여러 방향에서 레이첼을 바라보는 화면이었다.

제이크는 정면을 보는 화면을 선택하고 화면을 확대했다.

"음량은 괜찮고."

제이크는 만족한 얼굴로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잘 되고 있지?

-네,또렷하게 잘 보입니다.

제이크의 머릿속으로 답변이 들

려왔다.

황성 밖 광장에 있는 마법사가 보낸 메시지였다.

지금 황성 앞 광장에서는 거대 한 화면으로 황도의 시민들이 대 관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국 최초의 실시간 중계 방송 이었다.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황제의 새로운 사상은 이 세상 에서는 무척이나 과격하고 위험 한 사상이었다.

제이크 자신이라면 절대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지만,그녀가 결

심을 했으니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법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황제의 새로운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국과 나 황제 레이첼은 제국민을 위해 생명과 시간과 열 정을 모두 바치겠다. 그대들도 나 자신과 가족,그리고 제국을 위해 힘을 모아 주길 바란다!"

"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레이첼의 말이 끝나자 황성 밖 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관식에 참여한 귀족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머리 가 좋은 자들은 이제 변화할 제 국을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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