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150)

106화

* * *

델이 떠난 뒤 윈터와 일행들은 밤의 사막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내일이면 다시 제니어스 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윈터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왔네.”

마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윈터가 인기척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마력이 점차 돌아오고는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라 손발이 저릿저릿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래, 들어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마차 문이 열렸다.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던 남자가 곧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부터 벗어 던졌다.

“휴,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네.”

씩 웃은 리어트가 윈터의 안부부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응, 그럭저럭.”

“갑자기 2황자랑 실종됐다 그래서 당황했어.”

“알버트가 탈출 시도를 해서.”

“그래, 그렇다고 하더라. 데보라한테 들었어.”

느슨하게 등을 기댄 채 주변 이야기만 빙빙 돌리던 윈터가 눈을 번뜩였다.

“별동대를 요청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여기까지는 왜 온 거야?”

리어트가 델이나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은 거짓이었다.

윈터는 자신이나 다른 일행이 낙오될 때를 대비해 몇 가지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지만, 그중에 수인족 별동대가 오는 상황은 없었다.

그들이 윈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크비누스가 움직였어.”

리어트가 바로 대답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윈터는 애써 찌푸려지려는 표정을 감췄다.

황도로 급히 돌아가지 않고 사막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윈터와 메이딜리언은 크비누스의 치부를 밝히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선황의 암살범이라는 게 밝혀지면 지금 있는 섭정 자리에서는 내려와야 할 테니 크비누스도 슬슬 본색을 드러내리라 생각했었다.

마침 윈터와 메이딜리언이 만타라스를 찾기 위해 황도를 비웠으니 타이밍도 딱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준비한 건 대체로 다 움직였어. 그런데…….”

“그런데?”

드물게 말끝을 흐리는 리어트를 보며 윈터가 되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리어트가 이내 입을 열었다.

“크비누스가 공작가를 쳤어.”

“……뭐?”

순간 윈터는 제가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그녀가 예상했던 크비누스의 행동은 고작해야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윈터와 메이딜리언을 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거나, 암살자를 보내거나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작가를 쳤다니.

“무슨 명목으로?”

“반역.”

“하.”

어이가 없다는 듯 윈터가 헛웃음을 지었다.

“반역, 반역이라.”

사실 공작가를 수색하고, 귀족들을 구금하는 데 그만큼 완벽한 구실도 없었다.

그러나 설마 크비누스가 정말로 반역이라는 이름으로 공작가에 철퇴를 내리려 할 줄은 몰랐다.

“……리비우스 짓이군.”

끝내 윈터가 와락 인상을 썼다.

군사들을 동원할 그럴듯한 서류와 증거들은 리비우스가 직접 가져다 바쳤을 것이다.

그는 넝마가 된 공작가라도 제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던 인물이었으니.

“그래서, 어머니는?”

윈터가 다급히 물었다.

황도를 떠나며 혹시 몰라 미리 언질을 드리기는 했지만, 크비누스 측도 기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리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고 있던 별동대가 안가로 모셨어.”

“그래, 그랬구나. ……수고했어.”

혹여나 부정의 대답이 들려오면 어쩌나 걱정하던 윈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며 열이 올랐다.

윈터는 침착하게 눈가를 꾹꾹 누르며 상황을 정리했다.

반역으로 엮인 것은 비단 블라디미르 가문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메이딜리언을 지지하는 진영 전체겠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네가 2황자를 앞세워 국가 전복을 꿈꾼다고 하더라.”

“무슨 수로?”

“……수인족들을, 이용해서.”

그 말에 윈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순서가 맞지 않았다.

그녀가 수인족 별동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최근이었다.

“쥐새끼가, 칼리스타에도 있었네.”

“누군지 이미 확인했어.”

그리고 칼리스타 본부 지하에서 고문당하고 있을 것이었다.

리어트는 굳이 그 말을 잇지 않고 삼켰다.

그 전부터 윈터는 물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인족들을 제국 사회에 드러내 그들에게 자리를 주는 것.

그것이 윈터가 리어트와 약속한 것이었다.

그 선두에 황제가 될 메이딜리언이 있고, 공작인 자신이 있을 것이었는데.

교활한 크비누스는 수인족을 윈터의 약점으로 이용했다.

“사회에서 차별받던 수인족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고 하니 귀족님들께서 어찌나 벌벌 떠시던지.”

리어트가 빈정거렸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암암리에 수인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사적으로 사냥을 하던 귀족들이 있었다.

선황 미쉘라가 대대적으로 그런 이들을 잡아 처벌하고 수인족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그들이 살 터전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격리에 불과했다.

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생 갇혀 사는 생활이 달가울 리 없었다.

“윈터.”

“응.”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해.”

어릴 적부터 지독한 차별을 겪어 왔던 리어트의 눈이 어두워졌다.

“정말로 그자를 믿어?”

윈터가 메이딜리언을 황제로 만들고 수인족들에게 제국 사회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리어트는 여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메이딜리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여자의 아들이잖아.”

선황 미쉘라는 수인족을 해방시켰으나 완전하지는 않았다.

제국 사회와 융합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분리했으니까.

심지어 윈터가 지지하는 메이딜리언은 선황보다도 더 지독한 인간처럼 보였다.

애초에 그자에게 윈터 이외의 다른 인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수인족이라니.

“리어트.”

“네가 죽어 버리면 세상 사람들 죄다 죽여 버리겠다고 날뛸지도 모를 놈이야.”

그러나 윈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메이가 달라졌다고, 달라질 거라고 말하지는 않을게. 그걸 믿어 보라고 너희에게 강요하지도 않을게.”

“…….”

“하지만 내가 믿어 주지 않으면 누가 그 애를 믿어 주겠어.”

사막의 별처럼 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따스한 시선이, 굳건한 믿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리어트는 자꾸만 속이 뒤틀렸다.

잔혹한 2황자도 윈터가 간곡히 요청한다면 뭐든 들어줄 것이다.

리어트가 믿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얄팍한 감정을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수인족들의 세상을 열 거야.’

새파랗게 타오르던 눈빛.

어린 시절 마주했던 그때와 윈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리어트는 기꺼이 거기에 제 몸을 내던진 거였다.

첫눈에 반했으니까.

“미리 말하지만 나는 너희를 숨길 생각이 없어.”

윈터는 어느 때보다도 단단한 시선으로 리어트를 마주했다.

그녀의 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리어트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수인족을 가지고 반역을 들먹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주먹을 꽉 틀어쥔 윈터가 말했다.

오랫동안 제국에서 핍박받던 수인족들을 가지고 감히 그들이 국가 전복을 꿈꾼다고 한 크비누스는 다시 생각해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누트라 섬 근처에 사는 수인족들은 윈터의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개중 호전적인 몇 명만이 칼리스타에 합류했고, 윈터는 그들을 별동대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제국의 그늘에 가려져 신음하고 있는 수인족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몇몇 학자들이나 관리들이 그런 의견을 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겠지.”

무려 반역이 언급된 사안이었다.

함부로 나섰다가는 제 목이 잘릴 판이니 누구도 쉽게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크비누스가 반역에 수인족까지 엮었으니 앞으로 활동이 더 힘들어질 거야.”

“어쩔 수 없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잖아.”

걱정스러워하는 윈터의 눈빛을 받으며 리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동대 모두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 곳곳에 혐오가 만연해 있었다.

이제 와서 반역이니 뭐니 하며 없던 죄까지 뒤집어씌우는 것은 좀 열 받지만, 원래부터 혐오하던 자들이 그럴싸해 보이는 정당성을 얻었을 뿐이었다.

“약속대로 우리는 계속 구조를 진행하겠어.”

이번 일로 감시가 좀 삼엄해지겠지만 구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 행동해야 했다.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윈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리어트가 물었다.

“이 밤에 어디 가려고 일어나?”

“메이한테.”

“……지금?”

“그래. 지금 이 상황을 공유해 줘야지.”

리어트는 말없이 윈터의 옷을 살폈다.

소매 부분을 접었지만 한참이나 큰 옷이 누구의 것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보다 망설임이나 거리낌도 조금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게 또 새삼 거슬려서 리어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리어트?”

“아, 미안.”

윈터의 부름에 얼른 손에서 힘을 푼 리어트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뭐가?”

“이 늦은 밤에 마차에 찾아가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려나 싶어서.”

“……어?”

리어트는 속으로 기도했다.

그의 말에 윈터가 그럴 리가 있냐며 그저 웃으면 좋겠다고.

“그, 그런가?”

그러나 윈터는 이번에도 그의 바람을 비껴갔다.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는 그녀를 보며 리어트의 심정은 참담해졌다.

이 늦은 시간에 저와 있는 건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서, 메이딜리언은 의식을 한다는 사실이 뭘 의미하는지는 이미 명백했다.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다음 계획이나 짜자.”

“알겠어.”

윈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리어트가 애써 웃었다.

입맛이 영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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