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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4화 (141/150)


 

외전2. 4화

* * *

공작가 분위기는 줄곧 좋지 못했다.

예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은 윈터가 꼭 사고를 치며 소란을 일으켰는데.

최근에는 그럴 만한 일이 생길 수가 없었다.

마력 폭주로 인해 급격히 쇠약해진 윈터가 내내 침대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윈터가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거 들었나?”

“아아, 그 무슨 마법사가 온다는 얘기?”

그 와중에 공작이 어렵게 초청한 마법사가 온다는 소문이 은밀히 돌았다.

원래라면 마구간지기의 아들까지 알 리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숨어서 저들끼리 아는 비밀을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제 아버지를 피해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있기 일쑤였던 메이딜리언은 덕분에 그런 소문에 빠삭했다.

“이미 왔어.”

“왔는데 분위기가 왜 이래? 설마…….”

“아까 응접실에서 큰 소리가 났는데, 못 들었나?”

헉, 하고 속닥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아가씨가 공작 각하가 어렵게 초빙한 마법사를 내쫓았다지.”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허, 몸에 좋다는 약은 죄다 사서 먹여도 병에 차도가 없는데, 그 성질은 여전하시구만.”

“이제 가망은 없다고 봐야 하는 거지.”

“각하께서도 골치 좀 아프시겠어.”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말이 윈터와 관련된 것이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메이딜리언은 충격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럴 리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원래라면 아이셀이 윈터의 치료를 전담해야 하는데.

뭔가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제정신이 아니던 메이딜리언이 천천히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아무래도 당장 윈터에게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빛으로 나온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이 시건방진 녀석! 하루 종일 어디 있었나 했더니 여기 숨어서 농땡이를 부려?”

그의 양아버지였다.

마구간지기는 험악하게 구겨진 얼굴로 제 아들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잡은 채 끌고 갔다.

물론 메이딜리언은 당연히 그를 따라 순순히 갈 생각이 없었다.

“이거 놔요.”

“뭐? 이게 지금 어디서 감히!”

제 멱살을 잡은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의 반항을 용납할 리 없는 마구간지기는 당장에 메이딜리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억센 손길에 입안이 터져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그러나 메이딜리언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놓으라고요.”

“닥쳐.”

험악하게 굳어진 얼굴로 마구간지기가 으르렁거렸다.

살기마저 넘실대는 표정은 어린애를 질리게 하기 충분했으나 상대는 메이딜리언이었다.

머릿속에 당장 윈터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던 그는 그대로 몸을 축 늘어뜨리며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놔! 당장 놔!”

“닥치란 말 안 들려!”

메이딜리언이 악을 쓰며 외쳤다.

그러나 힘없는 그의 몸이 감히 성인 남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되려 더 거세게 멱살을 잡혔을 뿐이었다.

“컥.”

노름에 빠져 희희낙락하기 바쁜 손은 마른 몸을 가볍게 들었다.

순식간에 숨통이 틀어막혔으면서도 메이딜리언은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새빨간 눈동자가 활활 타올랐다.

그 시선을 마주한 마구간지기가 흠칫했다.

어쩐지 눈앞의 메이딜리언이 제가 알던 그 음침하고 비실비실한 메이딜리언과 다른 느낌이었다.

마구간지기는 자신의 생각을 금세 헛소리로 치부하고는 일부러 더 살벌하게 메이딜리언을 을러댔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이리 반항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오늘 네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놔야겠구나.”

“……놔.”

“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

헛웃음을 지은 마구간지기가 그대로 메이딜리언을 바닥에 내리쳤다.

작고 마른 몸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그러자 마구간지기는 메이딜리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그러쥐었다.

바닥을 구르던 메이딜리언이 질질 끌려가는 것을 보며 공작가의 사용인들이 수군거렸다.

“어머, 저기, 저것 좀 봐.”

“무슨 애를 저렇게…….”

“쯧쯧, 또 버릇이 도졌구만.”

“원래도 저래요?”

“암, 손버릇 안 좋기로 예전부터 유명했지.”

평소엔 남들과 그럭저럭 무난하게 잘 지내는 듯한 마구간지기는 제 아들에게만 심하게 손찌검을 하곤 했다.

“누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보기만 해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이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악귀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마구간지기의 눈이 험악하게 번들거렸다.

그 사이 메이딜리언은 이미 마구간 근처에 처박힌 뒤였다.

발에 얻어맞고, 차이는 것도 모자라 주먹질과 폭언, 모욕이 쉴 새 없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잔뜩 몸을 웅크렸지만, 잘못 얻어맞았는지 피까지 토했다.

아무래도 갈비뼈에 금이 간 듯싶었다.

메이딜리언이 기억하는 과거에도 이만한 폭력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평소와 달리 대든 것이 마구간지기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잔뜩 열이 올라 욱신거리는 몸으로, 메이딜리언은 멍하니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꿈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어떤 꿈이 이토록 생생하단 말인가.

“악몽이야.”

어떤 악몽이 이토록 오래 과거를 되풀이한단 말인가.

“……으윽.”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퉁퉁 부은 눈이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아팠다.

금이 간 갈비뼈 쪽을 애써 부여잡은 채 메이딜리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실컷 저를 두들겨 팬 마구간지기는 에른스트 가에서 온 후원금을 받자마자 술과 노름을 하러 나가 버렸다.

메이딜리언은 절뚝거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윈터에게 가야 했다.

아이셀은 당신의 희망이라고, 당신이 살려면 그래야 한다고.

“……아니, 아니야.”

멍한 머리로 걸음을 옮기던 메이딜리언이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아이셀도, 심지어 그 대현자도 윈터의 병을 늦출 뿐 완전히 고치진 못했다.

궁극적으로는 윈터의 심장이 문제였으니까.

메이딜리언은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약하고 마른 손.

아직 마력을 채 개화하지도 못했으니 정말 쓸모라곤 어디에도 없는 어린애였다.

“끔찍하군.”

“그거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홀로 중얼거리던 소리에 누군가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흠칫 놀란 메이딜리언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고개를 돌린 윈터가 와락 인상을 썼다.

“뭐니, 그 몰골은?”

반사적으로 윈터에게 다가가려던 메이딜리언이 움찔하더니 다시 뒷걸음질 쳤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윈터가 ‘몰골’이라고 표현할 만큼 피와 먼지, 흙으로 가득한 험한 꼴이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야 처음 만났을 때랑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누구한테 맞았어?”

그러나 윈터는 메이딜리언이 감히 제게서 멀어지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큼 다가선 그녀가 이리저리 메이딜리언을 살폈다.

어린 얼굴로도 하는 짓은 꿈이나 현실이나 똑같아서, 메이딜리언의 얼굴에는 또 바보처럼 웃음이 번졌다.

“설마 머리도 다쳤어? 왜 웃어?”

“그냥요. 좋아서요.”

“좋기는 뭐가 좋…….”

버릇처럼 핀잔을 주려던 윈터가 흠칫했다.

지난번에 메이딜리언이 했던 말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메이딜리언이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좋…….”

“쓰읍, 그만. 거기까지. 더 말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했다.”

눈을 부릅뜨며 을러대는 모습이 퍽 능숙했다.

진심을 가득 담긴 했어도 윈터를 놀리려는 의도가 컸기에 메이딜리언은 킥킥 웃으면서도 굳이 말을 잇지는 않았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세요?”

“가 보고 싶은 데가 있어서.”

“어디요?”

“흐음. 말을 해 줄까 말까.”

윈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른 입술을 축인 메이딜리언이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말해 달라는 뜻이었다.

픽 웃은 윈터가 순순히 대답했다.

“약초를 잘 아는 데를 찾아가 보고 싶어.”

갑작스러운 약초라는 말에 메이딜리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 돌팔이 같은 것들이 찾아와서 이 병은 절대 고칠 수 없다는 둥, 성년을 못 넘긴다는 둥 자꾸 헛소리를 하잖아.”

입술을 삐죽이며 윈터가 고개를 숙였다.

발치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들을 하나하나 공들여 발로 차는 모습이 영 심술 맞았다.

그녀가 말하는 소위 돌팔이들의 말이 무척이나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나라도 나서 봐야지.”

메이딜리언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윈터는 아이셀을 놓쳤다.

놓친 건지, 그냥 놓아준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의 태도로 봐서는 아이셀의 도움을 받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윈터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방법.

가장 확실한 것은 역시 골드 드래곤의 심장이었지만, 거기에 닿기 위해서는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다.

“제가 괜찮은 데를 알고 있어요.”

“어디?”

“같이 가실래요?”

“그냥 알려 주기만 하면…….”

“저랑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전 말 안 할래요.”

괜찮은 곳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 빛내던 윈터가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은 당연히 혼자 가고 싶은 듯했으나 바깥에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뻔히 알고 있는 메이딜리언이 그녀 혼자 내보낼 리가 없었다.

“너, 아주 건방지구나. 내가 몸이 이래도 너 하나 어떻게 하는 건 일도 아니야. 알아?”

“그러면 안 알려 드려도 괜찮다는 뜻이죠?”

당연히 아니었다.

저택에서는 다들 윈터를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했지만, 윈터가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직접 나서서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건방진 마구간지기의 아들이 없다면.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윈터가 자존심 때문에 멈칫하는 사이 메이딜리언은 보란 듯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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