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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Spotlight : Realis phrase (14/71)



〈 14화 〉Spotlight : Realis phrase

벨 크라넬

Lv1

힘 : G221 → E403
내구 : H101 → H199
기교 : G232  E412
민첩 : F313 → D521
마력 : I0

전 스테이터스 상승 합계지수가 600 이상. 에스트는 벨의 스탯을 보며 슬쩍 웃었다. 헤스티아가 휘휘 휘파람을 불었다.


"헤스티아.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줄 수 있을까?"

"그거다, 그거. 성장기-라는 녀석인거다!"


성장기. 좋은 말이지. 실버 백에게 얻어맞은 피로에 아직도 잠들어있는 벨을 보며 에스트가 생각했다. 성장기가 올 만도  나이지.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말이었다. 에스트가 던전을 내려가던 사이, 벨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스테이터스는 이미 솔라가 가르치고, 벨 스스로도 노력해 얻은 대가를 아득하게 추월하고 있었다.


"애초에 너야말로 요 며칠간 어디 있었던 것이냐! 걱정했지 않-"

"헤스티아, 말 돌리는 거 보니까 숨기는 거 있나봐?"

"자, 잠깐-"


지이이 노려본다. 신이라는 것이 야수에게 노려보아지는 소동물마냥 바들바들 떤다. 지금 이건 내가 화내야 하는 상황 아닐까? 왜 혼나고 있는 걸까? 헤스티아는 엄청 섭섭했지만 에스트가 무서워서 섭섭함도 마음 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서 집어넣었다.


"뭐어어, 에스트라면 말해주어도 없다고 생각하느니라...."

헤스티아가 기죽은 듯 어깨에 힘을 쭈우욱 빼고 엎드려 자고 있는 벨의 등에 종이를 다시  장 더 붙였다. 방금 전까지 비어 있었던 스킬 란에,확실하게 스킬 하나가 적혀 있었다.

동경일도
리아리스 프레제

- 조숙한다.
- 마음이 이어지는 한 효과 지속.
마음의 강도에 따라 효과 강화.

탐욕의 은사반지 같은 건가?
에스트는 무한의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는 반지를 생각해내며 중얼거렸다.

"어디 가서 알리면 안 된다, 에스트."

"동경...? 누구를?"

"아이즈 발렌뭐시기. 그리고... 아니다, 말  필요는 없겠구나."

아이즈 발렌뭐시기라면 분명 로키 파밀리아의 검희인가 뭔가 하는 것일 터다. 그 당시 벨의 시선을 생각해보면, 거의 스토커의 그것이었으니 이런 스킬이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에스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트?"

"이런 건 진짜 강함이 아냐."


에스트가 중얼거렸다. 힘이 세고 튼튼하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니다.빠르다고 해서 강하다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기교가 좋다고 해서 강하다고 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은 수 없이많은 전투를 통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래, 쌓아 올리는 것이다. 그것이 팔나로 승화한 엑세리아건,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죽여 갈취한 소울이건. 업보를 쌓고 쌓아 올리면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배우고 또 배운 자들만이 진정 강한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었다.

에스트는 초대 장작의 왕, 그윈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록 그 당시 에스트는 심연에 잠식되어 빛도 어둠도 분간하지 못하는, 망자보다도 더욱 망자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태양과도 같이 빛나던 그윈의 모습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초의 불꽃에 자신을 태워, 위대한 신들의 왕인 주제에 한낱 인간의 망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떨어져-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던 그윈의 모습을.

그는 매의 눈보다 강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나?
그는  사냥꾼보다 빠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는 왕의 칼날보다 뛰어난 기교를 가지고 있었던가?
그는 늑대 기사보다 날카로운 검술을 가지고 있었던가?

가진 모든 힘들은 남은 자손들과 휘하의 기사들에게 넘기고서, 순례의 길을 홀로 떠난 왕에게 남은 것이라고는평범한 검 한 자루, 그리고 수 많은 고룡들을 선두에서 쓰러트리며 얻은 굳건한 의지와 전투 센스,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누구보다 무거웠고,  누구보다 재빨랐으며,  누구보다 틈을 찔러왔고, 그 누구보다도 날카로웠다.

"이건 편법일 뿐이야. 눈속임이야. 끼워 맞추기일 뿐이라고."

"에스트..."

에스트는 보기 드물게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지고 싶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래서야마누스를 깨운 우라실의 인간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나.

영웅은 빛으로 가득한 자다. 눈이  것만 같은 빛을 뿜어낸다.
하지만, 그 빛은 누가  것이 아니야. 몇 천,  만 번의 단련을 통해 갈고 닦아서 그렇게나 아름다운 광채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다 눈 앞의 목표를 놓치는 일이 있다면-, 죽으면 되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망자들처럼, 자신의 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며 저주하며 죽으면 그만이다.


죽으면, 그만이야?
심장이 울렸다.


"......상관, 없나."

"에스트?"

"아무것도 아니야, 헤스티아. 나답지 않았어."


저들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죽음을 안식이라 칭하며 갈구해 못지 않는 불사자들은이미 근본부터가 인간과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한 묶음 장작으로써 수명이라는 불길이 저들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루는 것이 좋으리라.
어쩌면, 그 탐욕과 욕심마저 지금의 짧은 시간만을 살아가는 인간의 강함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디 가느냐, 에스트."

"나무 깎으러."

자신은 퇴물이다.
 싸울 필요도 없었고, 더 시련이니 뭐니하는 세상일에 얽힐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나무나 깎는 것이다. 에스트는 명예로운 거인 기사를 떠올리며 웃었다.

"에스트, 한 가지만 들어다오."

"응?"

"...걱정했단다. 다음 번엔 어디 나가기 전에  말해다오."

에스트가 입을 살짝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해, 헤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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