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Interval
"16."
"...윽!"
에스트의 나직한 목소리. 벨은 거대한 몽둥이에 맞아 그대로 날아갔다.
에스트의 말대로, 만약 실전이었다면 벌써 16번의 죽음을 맞이했을 벨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에 감사를 느끼며 헤스티아 나이프를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이걸까."
에스트가 나무 몽둥이를 저 멀리 던져두고, 대충깎아 만든 나무 직검 하나와 버클러 하나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도무지 어떻게 싸워야 좋을지 감이오지 않는 대형 무기에 비하면,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되는 무기류였다.
"갑니다!"
"그런 거 말하지 말래도."
벨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속의 속도로 에스트에게 달려 들었다. 뒤를 포기하고, 모든중량을 헤스티아 나이프의 끝에 실어서 에스트에게 찔러넣었다. 어중간하게 덤비면 그대로 반격 당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반격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로 때려넣을 생각이었다.
"물러."
벨이 쥔 헤스티아 나이프의 끝이 버클러에 닿은 그 순간에, 찰나라고해도 좋을 바로 그 순간에, 버클러가 바퀴 구르듯이 살짝돌아갔다. 정말 아주 살짝 돌아 갔을 뿐인데, 헤스티아 나이프, 단검으로 이어진 벨의 몸이 중심을 잃고, 무게를 잃은 듯이 허공에서 허우적대었다.
에스트가 옆으로살짝 몸을 피하자, 벨은 꼴사납게 땅을 굴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벨이었지만- 등허리에 올라오는 소름에, 아주 잠깐만 더 땅에 누워있기로 결정했다.
에스트의 직검이 벨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당황한 벨이 후속타를맞지 않기 위해서 곧바로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던 에스트는 키득 웃음 지었다.
"악?!"
조금늦게 일어나려는 벨의 허리에 킥을 날려주었다. 데굴데굴 굴러가 구석에 몰린 벨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당황해, 허둥지둥 일어나려다가-
"17."
미간에 들이밀어진 나무 칼의 끝을 보며 숨을 헉, 하고 몰아쉬었다. 나무라고는 하지만 잘 갈아진 그 끝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아무래도 심장에 좋지 않았다.
"벨."
"헉, 허억, 네... 에스트, 씨."
"방패를 부술 생각이었지?"
"...네."
벨은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에스트의 말대로, 한 순간이나마 조잡하게 만들어진 나무 방패 정도라면 간단히 쪼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토록 강한 무기, 강한 방어구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했던 에스트였다. 벨이 움츠러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상관 없어. 마음대로 해."
"네?"
"나는 너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까."
다음. 에스트가 벨을 재촉했다. 벨은 잦아 들어가는 가슴에게 아주 조금의 안식만을 더 취하게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흡을 가다듬고, 버클러 뒤에 몸을 숨긴 에스트를 보았다. 조그만 버클러일뿐인데, 여느 중갑 전사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거대한 타워 실드들과 다를 것이 없는 물건처럼 보였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저 단단한 성을 공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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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은 던전에 갔느냐?"
"응."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될 터인데. 그렇게 열심히 하다 몸이 상할까 걱정이니라."
"응. 헤스티아, 칠리맛 감자돌이 하나 더."
"매번 감사합니다! ...가 아니잖아!"
4시간째 헤스티아가 조리하는 감자돌이 점포 앞에서죽치고 앉아 계속 계속 감자돌이를 쉬지 않고 시켜대는 에스트에게, 헤스티아가 드디어 빽하고 소리질렀다. 돈을 쓰려면 좀 더 의미있는 일에 쓸 것이지-
"헤스티아의매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
"너희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건 내가 온전히 갚아야 할-"
"응,헤스티아 귀여워. 귀여우니까 이번엔 치즈맛 감자돌이 하나."
"매번 감사합니...! 야, 에스트!"
하계의 아이는 신을 봉사하고, 신은 하계의 아이들에게 은혜의 징표로써 팔나를 내린다.
그래야 할 것이 어째, 신이 하계의 아이를 위해 감자돌이를 조리하고, 하계의 아이가 감자돌이의 값으로써 신에게 발리스를 떨어트리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알거나 알지도 못하는 여러 신들이나 모험가들이어머어머하며 지나가는 모습에 헤스티아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 돈을 너에게 쓰란 말이다!"
"치즈맛도 맛있어. 앙꼬맛은 어떠려나. 하나 줄래?"
"감사합니다, 고객님아!"
그래, 헤스티아가 조리한 감자돌이지만, 에스트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에스트는 에스트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쓰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지 않나. 더 덧붙이면, 이렇게 에스트가 헤스티아의 노점에서 감자돌이를 죽치고 앉아서 먹어 봐야 헤스티아가 받을 일급에는 변함이 없을 터이며, 결국 헤스티아를 괴롭게 하는 일일 뿐이었지만-일급이니 월급이니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에스트에게는 좋은 일도 하고, 배도 부르고- 하는 꿩먹고 알먹고 둥지태워 불때우고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감자돌이 하나. 크림 반, 팥 반."
"겍, 발렌뭐시기."
검희.혹은 지젼 무쌍의 칭호로 불리우며, 벨 크라넬이 동경해 못지 않는 Lv5 소녀, 아이즈 발렌슈타인이였다. 쉬는 날인 것인지, 천 겹의 평상복에 검 한 자루라는 상당히 간단한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헤스티아는 무척이나 태평한 모습의 아이즈에 눈을 가늘게 떴다. 벨에 대한 걸 모르고, 헤스티아 파밀리아에 대한 것을 모르는 아이즈로써는 당연한 행동거지였지만, 그런 거 헤스티아가 알 리가 없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척 할 수 있을리가없다.
"여기, 나, 나왔, 습니다."
"고마워."
'반말이라니! 좀 더 경의를 표해라, 발렌뭐시기! 네 존재로 인해서 사랑스럽고 사랑스런 나의 아이 하나를 완벽하게 빼앗겨버린 기분이 들고 있느니라! 그런 기분을 참으며, 또 참으며, 꾸우욱 버틸 수 있는 이 나에게 좀 더 경의를 표하란말이다-!'
"언제나 감샇니다!"
"발음이 새었어, 헤스티아."
신 > 모험가 > 상업계 종사자 파밀리아 > 서포터 > 단기계약직(신 포함)
오라리오의 기묘한 구조에 태클을 걸 수는 없었다. 헤스티아는 부글부글 미어 터질듯 끓어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해맑은 얼굴로 떠나가는 아이즈에게 인사했다. 에스트는 그걸 보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헤스티아? 섞을 수도 있는거야?"
"...너, 말이다..."
"어디 그럼 나도 크림 반, 팥 반으로 하나."
감자돌이를 꺼내 먹으려던 아이즈가 뒤를 돌아보았다. 감자돌이를 다시 집어넣고서, 네 발자국 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구체적으로는 미아 아줌마네 주점에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의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도도도 다가가-
""예이.""
느닷없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둘 다 무표정이었다.
헤스티아는 심장병으로 죽을 지경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