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Spotlight : Liliruca Arde
"나는 멍청이! 바보! 으아아아아앙!!"
"벨 구운... 잠 좀 자자구나-"
"나는 멍청이야! 구제불능이야아아 우아아아아아앙!"
벨 크라넬. 처음 마인드 다운을 경험한 날.
원심고리 진화 후 아이즈에게서 꼴사납게 도망치고 말았던 어느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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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뎌진 회화수호자의 곡검의 날을 세우기 위해 무한의 상자를 찾아서 아래로 내려온 에스트에게, 은근히 보기 힘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벨이 헤스티아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었다.
본래 하계의 아이들이 신들에게 구해야한다고는 하지만, 헤스티아 파밀리아에 한해서는 에스트 자신이나 벨이 자립심이 강한 편에다가 오히려 헤스티아가 파밀리아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니트에 가까웠던지라 저 반대의 상황이 자주 연출되던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릴리루카 아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제 서포터를 맡고 있는 착한 아이에요."
"그래, 알고 있다. 착한지 어떤지는 둘째 치더라도."
헤스티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릴리에 관한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벨과 외간여자의 밀회로 착각해 미아흐의 앞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었고, 그 다음에는 벨에 대한 걱정 때문에 길드의 어드바이저, 에이나 튤에게 소마 파밀리아에관한 것을 물어보았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단원을 믿겠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
"그 아이가 지금 위험에 처한 것 같아요, 주신님.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좋으니까 우리 파밀리아에서 그 아이를 보호할 수는 없겠습니까?"
"...벨 군."
헤스티아는 벨을 불러 고개를 들게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친자식이라고 해도 좋은 파밀리아의 아이들이 어머니의 역할을 할 터인 주신에게 저렇게 엎드려 비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너는그 아이를 믿을 수 있겠느냐?"
"네?"
"생각해보거라. 너는 나이프를 잃어버린 것이 확실하느냐?"
"...하지만."
나는 조금 미심쩍구나. 헤스티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물론 그녀는 벨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려니, 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기로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욱 마음이 여린 자신의 아이의 모습에, 마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진 것이었다.
"네 어드바이저는 그녀가 소마 파밀리아의 아이라는 것만으로도 걱정해 마지 않더구나. 너에게 색안경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너의 어드바이저가 그리 걱정해하는 만큼 네가 조금 더 그 서포터에게 대해서 알아보았으면, 할 뿐이니라."
"네..."
벨이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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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오늘은 내 부탁을 요로코롬 확실히 잘 들어주었구만!"
새빨간 머리카락의 빈유 여신, 로키가 가슴이 평평하게 깎인 헤스티아의 조각상을 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아무리 보아도 밋밋한 가슴 없는 헤스티아의 조각상을 보며 웃고, 직접 평평한 빨래판 가슴을 만져보며또 웃고, 평평한 절벽가슴을 볼에 문질문질 문질러보며 또 웃다가-
"...크흑..."
"......?"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파왔다. 평평한 자신의 가슴이 아파왔다.
이 조각상은 잘 만들었지만, 고작 조각상일뿐이다. 커다란 가슴이 달린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가는 엄청난 회의감이 들 것만 같아서, 헤스티아를 놀려볼 생각으로 가슴 없는 헤스티아의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것인데- 회의감이 드는 것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 어찌하여 하늘은 이 로키를 낳고 또 헤스티아를낳았는가!"
엉엉 통곡한다.
에스트는 이해 못 할 눈앞의 상황을 좀 더 두고보기로 했다.
"뭐, 뭐어... 이젠 조금 진정댔다. 얼마 쳐주면 되는기고?"
눈물을 닦고, 보면 볼수록 오히려 회의감만 드는 헤스티아의 조각상을 보며, 로키는 괜히 조각해달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의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누더기 소녀를 보며 계산을 부탁했다.
"뭐, 뭐꼬. 맴 변하기 전에 어서 계산해달라꼬 안 카나."
"......"
에스트는 로키를 빤히 보았다.
에스트가 로키를 만난 적은이걸로 세 번째였다. 처음은 미아의 주점에서. 두 번째는 며칠 전에 친구 신에게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로키가 커스터마이징 나무 조각을 주문했을 때였고, 세 번째가 지금이다. 즉, 계산을 치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마음대로."
에스트가 첫 손님을 만날 때마다 항상 말했던 한 마디였다.
처음 조각상을 팔았을 때, 금전 감각이 하나도 없었던 에스트가 대망의 첫번째 손님에게 요구했던 것이고, 어느새 뒷골목 조각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대사였다.
에스트는 모르지만.
"이 맘큼이면 되나?"
"상관없어."
"익. 배고픈 예술가라 카더니만 진짜 욕심없구만. 자. 더 주꾸마."
로키는 엄청난 푼돈을 제시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에스트의 모습에 당황하며 처음 올린 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웃돈을 올려주었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읎나. 로키가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에스트가 로키를 불렀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꼬?"
"소마 파밀리아에 대해서."
"이놈이고 조놈이고... 요즘 소마, 뭔 일 났나?"
로키는 바로 어제 만났던 길드의 어드바이저, 하프 엘프 에이나튤을 생각해내며 머리를 잡았다. 구석에 틀어박혀서 술만 맹글던 그 무책임 히키코모리 신이 어쩌다가핫 이슈로 떠올랐는지, 로키에게 있어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니 이칼 맴으로 이런 구석진데서 장사하나?"
"취향."
"것참 말 짧데이."
로키가 입술을 삐죽이며 에스트의 모습을 보았다. 처음 볼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어딘가 본능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아이들이 던전에서 고생고생하면서 모아온 물건을 빼앗아갈 것만 같이 생겼던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모조리 다 제외하더라도. 어딘가 공허해보이는 암자색 눈동자 속에서 신살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 것이었다.
"마, 착각이겠제. 여튼, 정보를 원한다켔나?"
에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실실 웃었다.
"카믄 니, 여신 피아나의 신상을 맹글수는 있겠나?"
"피아나?"
"파룸의 여신이라 안카나. 그딴 녀석, 천계에는 읎다고 몇 번이고 캐싸도 문디같은 파룸 자식들은 들어 쳐먹지를 않는 금마말이다."
즉, 로키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 신의 신상을 만들어보이라는 소리였다.
로키는 이 조각사의 역량을시험해보고 싶었다.
뭐, 헤스티아의 조각이 그랬듯이, 여기저기 난 칼자국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고, 나무를 보는 눈도 없던지라 아주 좋게 말해주어도 잘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조각상에는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힘이 '아주 조금' 깃들어 있었다.
아마, 기억을 잃은 끝에,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 인간정도가 되어야만 그 힘을 깨달을 수 있겠지. 로키는 그런 녀석이 진정 존재한다면 저 조각상이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여튼. 나무는 내가 준비하고, 돈도 듬뿍 얹어주고, 소마 파밀리아에 관한 것도 지금 당장 알려주꾸마. 그라믄 만들 수 있겄나?"
"노력은 해볼게."
존재하지 않는 신의 신상. 난제라면난제였다.
하지만 걸어오는 도전은 피하지 않는 법. 에스트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에스트의 모습에 로키는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을 지었다.
"카믄... 머라캤더라... 소마 녀석말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