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Spotlight : Naaza Erisuis
(30/71)
〈 30화 〉Spotlight : Naaza Eris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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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Spotlight : Naaza Erisuis
눈앞에서 박살나고 있는 헬하운드들을 보며 나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몬스터를 눈앞에 둔 그녀가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게 레벨 1이라고?'
뒷골목의 히어로. 괴상한 가면을 쓴 조각상인, 혹은 방랑자. 에스트가 레벨 2 정도 되는 무뢰배들을 혼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자는 알고 있었다. 레벨 1이라지만 실제 전력은 레벨 2나 3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반신이 수정에 먹힌 상태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컹."
"히, 히야아아아악?!"
에스트의 검무에 넋을 놓고 있던 나자를 다시 현실로 끌어들여준 것은 옆에서 나타난 헬 하운드였다. 나자는 자기도 모르게 헬 하운드에게서 수 십 미터 뒤로 도약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지.
"모, 목표를 세, 센터에 놓고, 시위를 놓기... 목표를 센터에 놓고 시위를 놓기..."
패닉.
화살을 잡은 은의의수는 한치도 떨리지 않고 있었지만, 활을 잡은 나자의 왼손은 지진이 났을 때 포션의 수면이 흔들리는 것처럼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은의 의수 역시 흔들리지 않을 뿐이지, 나자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목표를 센터에 놓고-"
"그르르르!!!"
"히익..."
헬 하운드가 아가리를 가득 벌리고 불을 입가에 머금기 시작했다. 둥글둥글 화기와 열기가 구체를 이루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썩어도 레벨 2인 나자는 저 개가 불을 뿜기 전에 어서 활을 쏘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위를 놓았다. 놓을 수는 있었다. 소유자의 감정을 커트한 은의 의수는 정밀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였지만, 나자의 왼손은 그렇지 않았다. 사정없이 흔들린 조준은 당연히 빗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나자의 의수를 벗어난 화살은 어디에도 꽂히지못한채 힘없이 땅을 굴렀다.
화살이 허망하게 땅을 구르는 순간, 화염의 구체가 임계점을 벗어난 것이 나자의 눈에 보였다. 이대로 나자는 불타오를 것이다. 샐러맨더 울로 만들어진옷 같은 편리한 물건, 허겁지겁 던전으로 따라내려온 나자에겐 없었다.
이것이 마음을 굳히지도 못한 채,죄책감이니 책임감이니 뭐니 하는 것에 얽매여서 던전에 따라 들어오기만 했을 뿐인 머저리의 최후인가. 나자는 은의 의수와왼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미아흐님 죄송해요, 겁을 잔뜩 먹은 어린아이처럼 도망치고 말았다.
"...뜨, 겁...긴 한데."
"뭐하는 거야."
나자가 팔을 내리고 눈앞을 보았다. 헬 하운드가 시꺼멓게 타 죽어 있었다. 분명 불을 뿜어낸 것은 헬 하운드이고, 불타야 하는 것은 자신인데, 어째서 헬 하운드가 불타버리고 자신은 멀쩡한 것일까. 나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살아남았기에 기뻤지만- 그 실감이 오는 것보다 이해를 찾는 본능이 빨랐을 뿐이었다.
옆, 절반이 수정으로 변한 손에 자그마한 불길을 쥐고 있는 에스트가 보였다. 화염을 던지는 마술 같은 걸까...
"흐, 으으으윽..."
"나자?"
"언니이이이이!!"
나자가 에스트에게 엉겨붙었다. 살았다, 라는 실감이 터져나왔다. 에스트를 뒤따라 내려오며, 몬스터를 마주하며 쌓여왔던 공포들이 댐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던전에 들어오지 말 걸 그랬어. 차가운 은의 의수가 자리한 곳에 잃어버린 팔이 욱신거렸다. 지독하고 지독한 기억이 아픔과 함께 뇌를 몇 번이고 쑤시고 있었다.
지지대가 필요했다. 마음의 안식처가-
"나자...?"
"으흑... 흐윽...."
에스트와 함께 이곳 중층까지 내려오면서, 에스트가 보이는 몬스터들을 족족 다 처리한 탓에 그때의 기억이, 그때의 트라우마가 시간에 녹아 나아버렸다고 생각하고 계속계속 멈추지 않고 내려왔던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선명한데. 손가락 끝부터 조금씩 조금씩 씹어먹어가는 몬스터의 모습이 이렇게 선명한데. 어째서 잊어버렸을 것이라생각한 것일까.
"...미안해."
"언니가 미안할 건 없잖아. 오히려 내가 민폐지..."
나자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해주었다. 아직도 무섭고 두려워서 에스트에게서조차도 떨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지금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계속 나아가는 수 이외에는 없지 않나. 여전히 몬스터와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한 번 쏟아내었으니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자가 결심했다.
나자가 에스트의 품에서 떨어진다.
파삭, 하고 에스트의 오른쪽 다리가 깨어져 흩어진다.
"아."
"어, 언니?!"
"이건, 조금 문제가 될지도."
나자가 울부짖고, 에스트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걷지 못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안 돼... 안 돼...! 나 때문에...!"
"네 탓 아냐."
나자가 머리를 감싸쥐고 울부짖는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잘못이었다. 에스트를 결정 동굴에 데려간 것. 이렇게 몬스터 하나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자신 때문에 에스트의 던전 돌파가 한참이나 느려지고 있는 것도 또한 그녀의 잘못이었다. 비록 에스트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실제로도 그녀의 잘못은 없었지만, 나자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르르르. 던전 저편에서 개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나자는어느새 떨어트리고 만 자신의 활을 다시 주워 한 손에 들고, 에스트를 들쳐메었다.
"...헤스티아 님을 만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을 수 있어."
"확실하게 나을 수 있는거지?"
아직도 무섭고 덜덜 떨렸다.
하지만, 겨우 몬스터 한 마리에게 스스로를 잃고, 미아흐 님을 슬프게 만들 뻔 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언니까지 잃게 될거야.
나름의 각오였다. 그렇기에, 각오를 위한 확답이 필요했다.
"확실하게 나아."
"...알았어. 노력해볼게."
나자는 달리기 시작했다. 던전 15계층을 내려오며 에스트 덕분에 체력이 거의 소모되지 않았던 차였다.
안전지대는 18층. 계층 두 개만 넘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