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Invasion - Iron Golem (31/71)



〈 31화 〉Invasion - Iron Golem

헤스티아가 벨을 구하기 위해서 아르카넘을 개방시킨 순간.
에스트를 업은 나자가 비명을 지르며 18계층에 떨어진 그 순간.

수정의 하늘이 열렸다.
18계층이 암전하고, 거대한 거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새까만 가죽을 덮어쓴 거인의 모습은 17계층의 몬스터 렉스, 골라이어스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모든 사람이 침묵한다. 신, 인간, 이종, 직위와 레벨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발사태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전계층이라는 말을 개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검은 골라이어스가 높게 포효를 지른다. 넓은 18계층이 모조리 울릴 정도로 거대한 포효였지만, 어딘가 뒤가 없어 보이는 듯한 느낌- 그래, 우렁찬 포효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비명을 지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든 것이었다.

"...헤르메스 님."

"아냐, 아스피. 이건 아냐."


던전은 신을 증오한다. 어떤 멍청한 신이 자신의 뱃속에서 아르카넘을 내뱉는다면 그 신을 처단할 첨병을 내보내는 것이 정상이다. 고로  모습은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아르카넘을 뿜어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모습.
오히려 다른것을 찾고 있다는 모습.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 우라노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헤르메스는 혀를 차며 이곳에 없는 신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골라이어스가 벽을 향해 돌진한다. 19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거대한 벽을 향해서, 멈출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돌진한다.
검은 골라이어스의 맞은 편에서, 먼저 벽을 부수며 흑철의 장갑으로 몸을 에워싼 거대한 거인이 뛰쳐나왔다. 검은 골라이어스가 휘두른 팔이 사람보다 몇 배는 거대한 도끼에 잘려나가 하늘을 난다.
강철의 거인. 그것은 모험가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체의 몬스터였다. 왼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전신을 감싼 중갑옷을 자랑하는 그것은 그대로 골라이어스와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일방적인 공세였다. 검은 골라이어스의 공격은 강철의 거인의 장갑을 뚫을 수 없었지만, 골라이어스의 살은 너무나도 쉽게 저며졌다. 비록 검은 골라이어스가 압도적인 재생력으로 번번히 재생하고는 있었지만, 그저 재생만 할 뿐이었다. 반격도, 방어도 하지 못하고 베이고 또 베이고, 재생하고 또 베이고-

한 순간, 강철의 거인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오른손이 골라이어스의 상처를 향해서 번개같이 내질러졌다. 강철의 손가락들이 재생하던 골라이어스의 살점 사이를 다시 찢으며 파고 들어가, 그대로 무엇인가를 움켜쥐었다.


"끝났군."

그 싸움을 지켜보던 벨프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듯이 말했다.
벨프 뿐만이 아니라, 그 괴수 대혈전과 같은 광경을 멍하니, 혹은 지진과도 같은 땅울림에 덜덜 떨며 보고 있던 모든 모험가들은 본능적으로 싸움이 끝났음을 알  있었다.

마석이 뽑혀져 나온다, 골라이어스의 거대한 신체가 그대로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강철의 거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거대한 마석을 지긋이 보다가, 그대로 땅에 내던져 산산이 깨트려버렸다.


침묵이 흘렀다. 본 적 없는 몬스터가 몬스터 렉스, 그것도 강화종으로 보이는 검은 골라이어스를 간단히 쓰러트렸다.
어째서 몬스터가 몬스터와 싸우는가.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은 없었다.


"......"

십자가가 달린 풀 페이스 헬름이 삐걱삐걱 돌아간다. 시선따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인데도, 모든 모험가들이 노려보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중갑옷이 움직여, 모험가들을 향한다. 도끼를  왼팔이 높게 올라간다. 누구에게 휘두를 셈인가. 모든 모험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과 저 괴물 사이에는 수  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방패를 들어올릴 수밖에 없어서, 회피하기 위해서자세를 취할  밖에 없어서-

"피해-!"

강철의 거인이 팔을 휘두른  순간, 바람과 친숙한 엘프, 류 리온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거대한 강철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식한 파괴가 공기를 잡아찢고 진공의 칼날이 되어 수 십 미터 멀리의 모험가들에게로 쇄도한다.

""으아아아악!?""


비명이 일었다. 사지가 날아간 이들, 방패가 부서지고 하늘을 나는 이들, 갑옷이 찢어지고 피분수가 되어 쓰러지는 이들. 단  번의 일격에 작게 잡아  댓명의 인간이 맥없이 쓰러진다.


"구, 구해야 해!"

벨이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커다란 몬스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 커다란 몬스터가 19계층의 동굴을 박살내며들어온 탓에, 19계층의 몬스터들이 18계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중간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같아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너무 먼 곳이라 잘못  것이겠지-, 하고 넘겼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쓰러진 사람들 모두가 19계층에서 올라온 몬스터의 밥이 되어버릴 것이다.

"잠깐."

"류 씨?"

"정말로 구하러 갈 셈입니까?"

 파티로. 류가 사태를 먼저 파악하라는 듯이 말을 끊었다.
타케미카즈치 파밀리아의 세 명, 벨프와 류, 그리고 벨 자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여섯 명.
적은 벨이 언젠가 쓰러트렸던 산양머리 몬스터와 같은, 정보가 없는 몬스터 렉스 급의 몬스터. 단 칼에 열이 넘는 모험가를 쓰러트리는 강철의 괴물.

전력차는 명확했다. 하물며 쓰러진 인간들의 절반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짓밟아놓겠다고 난리를 피우던 인간들이었다.
파티의, 동료의 목숨과 저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면, 어느쪽이 더 중요한가. 파티 리더로써, 너는 그것을 생각해보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벨은. 벨이란 인간은. 영웅을 동경하는 벨이란 머저리는-

"도우러 가겠습니다."

"당신은 리더 실격입니다."

"...괜찮아요.  억지일 뿐이니까, 굳이 어울려 주실 필요는-"

"당신은 저들을  구하려 하는 거죠?"

류의 날카로운 물음에, 벨은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그뿐이었다.


"그래, 당신은 미숙하기까지 해."


류의 두번째 비난. 벨은 가까운 이가 건네는 익숙하지 않은 비난에 가슴이 아팠다.
어느쪽이건 손해보는 일뿐이다. 벨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친우를 포기하고 모르는 무뢰배를 구한다니, 멍청이도 그런 멍청이가 없다.

그래도,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모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잘못되지는 않았어."

그것이 옳아. 네가가는 길이 옳은 길이야.
미숙하고 부족한 벨을 격려하겠다는 듯이, 류가 산뜻한 미소를 건넨다. 그리고, 그대로 류는 검은 거인을 향해서 달려나갔다. 어떻게든 발을 묶어볼 생각이었다.


"저, 두번째 말하는 거지만, 무리해서 따라올 필요는 없-."

"그게 무슨 소리냐, 벨!"


살짝 위축된 벨을 격려하듯이 벨프가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릴리도 멀리서 어쩔수 없는 사람이라며 웃고 있었다. 오우카, 치구사, 미코토- 아직은 이름을 텄을 뿐인 사이였지만, 그들 역시  그리 미안해하고 있냐며 피식 웃고 있었다.

그리고 헤스티아.
화롯불의 여신은 자신의 권속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가 옳아. 가고 싶은 길로 가려무나.
벨은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주었다.


"가죠!"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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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스!! 보르스!!"

"안드로메다 씨?! 마침  왔습니다. 저건 뭡니까! 저런 것 들어본 적도-"

"일단 침착하고. 무기와 실력자들을 당장 모아주십시오. 저걸 토벌합니다."


아스피는 리뷔라 마을의 제일가는 상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안대를 쓴 가게주인은 순간 얼빠진 모습으로 아스피를 바라보았다가, 그녀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임을 깨닫고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미쳤소?! 우리가 뭣하러 우리 재산 쏟아부어가며 저걸 토벌해야하오!? 아니, 우린 도망칠거요."

"도망칠 곳이 있을 때의 이야기겠죠. 17계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골라이어스가 떨어질 때 같이 떨어진 수정이 막아버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보르스! 보르스 씨!"


오늘따라 찾는 인간이 많구만, 보르스는 고개를 돌렸다. 몇  전부터 던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시앙스로프, 나자 에리스에스가 사람 하나를 짊어지고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신 헤스티아가 여기 있습니까?!"

"헤스티아 신이라면..."

"기다려봐, 안드로메다 씨. 당신, 분명 길이 막혔다고 했는데, 에리스에스 씨는 어떻게  계층에 들어온 거야?"

"느닷없이 길이 막히는 탓에 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신 헤스티아를!!"

나자가 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19계층을 돌파할 때쯤 정신을 또 잃어버린 에스트는 지금  와중에도 죽어가고 있었다.
다만, 덕분에 보르스는 도망칠 길이 없어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들었냐, 자식들아!! 길이 없어졌댄다! 저걸 안 죽이면, 우리가 모두 다 여기서 뒈진다 이거다!! 무기랑 지팡이를 들어라, 안 싸우는 쫄보새끼들은 오늘부터 이 거리에 발 한 발자국도  내대딜 줄 알아라!!!"

여기저기서 병장기와 지팡이가 들어올려진다. 이내 악에 받친 기합소리로 바뀌어 리뷔라 거리를 가득 울린다. 싸우지 않으면 뒈진다는데 싸워야지.


"따라오세요,  헤스티아에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아뇨, 이쪽이  감사하죠."

아스피는 생각보다 더 간단히 보르스를 구워삶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표할 겸 나자를 헤스티아에게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무엇 때문에 찾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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