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Invasion - Iron Golem (33/71)



〈 33화 〉Invasion - Iron Golem

본래 골렘의 육체라는 것은 창조주의 모습을 베껴 만든 것.
그래, 골렘이란 만들어진 것.

그렇다면 만들어진 것에게 영혼이란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영혼이란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애매모호한 것이기에.

영혼이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몸 바깥에 있는 것인가?


저 아이언 골렘에게 한해서는 그 대답이 너무나도 간단했다.
육체는 강철로, 영혼은 사냥당한 고룡의 것으로. 그것을 잇는 것은 신들의 기적으로.

하지만, 던전에는 몬스터에게 기적을 내릴 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영혼 없는 육체와 육체 없는 영혼을 어떻게 이은 것인가.
그것은-


수 십명의 마술사가 발한 대마술을 가슴팍에 얻어맞은 강철의 거인이 무릎을 꿇는다. 그대로 정지해 움직이지 않는 거인은 가슴팍에 난 구멍으로부터 시뻘겋게 녹아내린 철을 흘리고 있었다.
마법이 통한 것이다. 모험가들이 적을 쓰러트린 것에 기뻐하며 만세를 외친다. 보르스는 자신을 구해준 방패를 퉁퉁 치며 한숨을 내쉬는 마술사들에게 감사하라며 큰 소리를 치고 있었고, 벨프와 오우카는 벨의 등을 퍽퍽 치며 수고했다며 껄껄 웃었다.

다만 아스피와 류만이 무기를 아직 집어넣지 못하고 있었다. 중층 몬스터 따위는 단번에 불사지를 아스피의화염병에도 그을린 자국 하나 남지 않던 것이 저 강철 거인이었다. 바깥의 강철 장갑과는 다르게 구멍 내부는 무른 육체라서 녹았다고 한다면 이해는 가지만, 저건 고깃덩어리나 마석이 녹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철이 녹은 것이었다.  바깥 장갑과도 같은 재질의 것이 무시무시한 고열에녹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있는 모험가 중에서, 그런 것이 가능한 모험가는 없었다. 적어도 류와 아스피가 아는 한에는 없었다.


"중간에 위로 뛰어올랐을 때는 정말 놀랐다고, 짜샤."

"미안, 벨프.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도록 할테니까..."

"걱정했다고."


오우카와 벨프에게서 등짝을 얻어 맞던 벨은 사죄를 하면서도 헤헤 실 없이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종을 울려보려무나, 아이야.'

언젠가 들었던 것만 같은 소리. 목소리가 아니라,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이며, 그러면서도 명백한 의지를 가진 소리가 벨의 뇌리를 관통했다. 매섭게 치솟아오르는 불길의 이미지이면서도, 소리 자체는 따스한 여인의 것과도 같았지만- 그렇기에 어딘가 불길한 소리였다.

'종을 울려보려무나. 너의 자질을 증명해보려무나.'

"모두 물러서어어어어어어!!!"

벨이 외쳤다.  뒤로 사태를 파악한 류와 아스피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서 뒤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기린이 도망치는 것을 본 얼룩말처럼, 모험가들은 뭣도 모르면서 일단 뛰었다.

콰앙-하고, 강철의 거인의 몸 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거인의 몸 속에서 피어오른 무시무시한 열기가 사방을 불태우고, 발이 느렸던 모험가들의 몸에 불을 붙였다. 갑옷의 틈새 사이로 불길이 치솟고, 완벽하게 정지했다고 생각했던 강철의 거인이 삐걱삐걱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요컨대-, 가슴에서 액체화 강철이 줄줄 흘렀던 이유는 마술에 직격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인가의 이유로, 핵이, 고룡의 뼈가 타올랐기 때문이었다.

"....끄, 끝장이야."

보르스가 덜덜 떨며 말했다. 강철의 거인에게서 피어오른 열기가 18계층의 수원을 메마르게 하고, 수목을 불태워 대지를 못쓰게 하며, 쓰러진 모험가들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열기만으로도 저 정도인데, 강철의 거인의 육체에는 손상된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 움직인다!!"

"살라맨다 울을 가져와! 죽는다!"

"끝장이라고! 우린 다 끝장이야!"

모험가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져나간다. 발밑의 개미들이 무슨 생각으로 바둥대는지,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이 강철의 거인은 거대한 도끼를 두 손으로 잡아 높게 들어올렸다가, 그대로 망설임 없이 내려찍었다.

그것만으로, 18계층의 대지가 모조리 갈아엎어졌다.
그것만으로, 겁먹으면서도 용케싸워나가던 모험가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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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진형을 유지해! 위쪽에선 다시 마법을 준비할테니까!
헛소리 마! 저런 걸 어떻게 이겨! 다가가기만 해도 타죽는다고!
살라맨더 울은 장식이냐!
너무 가까이붙으면 그것마저 타버린다고!

벨은 사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몽롱한 의식을 각성했다.

"여, 깼냐."

"어라... 오우카 씨?!"


정신이 들자, 입가에 피를 가득 문 오우카의 모습이 보였다. 등을 강철의 거인에게로 향하고, 얼굴을 이쪽으로 향한 것이 꼭 자신을 지키려고 자신의 몸을 버린 것 같아서-

"...한심한 녀석이지? 방패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아뇨... 아니에요."

"네 활약은, 쿨럭... 들었지.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레벨 2가 되었다며?"


오우카는 감기려하는 눈을 억지로 뜨고서 말을 이었다. 허리에, 팔에, 등으로부터 이어지는 시꺼먼 깜댕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우카의 등이 모조리 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벨은 그가 제발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어딘가 그 모습이 모조리 타버린 양초가 검은 그을음을 피어올리고 있는 모습 같아서-

"저거, 이겨버려라. ...리틀 루키."

오우카가 뒤로 벌러덩 쓰러진다. 상처가 땅에 긁혀 더럽게 아플텐데도, 자신이 희망을 넘긴 리틀 루키에게 괜히 상처를 보여 걱정을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우카가 눈을 감았다. 동료가 쓰러진 모습에 벨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서-


"...맞아. 쓰러져 놓고서 계속 말하는 건 더 꼴불견이긴 한데, 나 때문에 울지는 마라, 리틀 루키."

"안 울거든요. 멀쩡한 사람 앞에 두고 안, 훌쩍. 울어요."

"그래,  멀쩡하다- 자식, 아..."

오우카가 입을 닫았다. 입가는 호선을 그었다. 저 멀리서 치구사와 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앞에선, 류와 아스피가 더욱 빨라지고 더욱 흉악해진 적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

"벨 님! 벨 님!!"

릴리가 다가와 앞으로 나아가려는 벨을 멈춰세웠다. 앞으로 나서려는 그를 걱정해서 멈춰세운 것이 아니었다.

"이것, 받으세요. 이거랑 그때 인펀트 드래곤을 한 번에 날려버린 그 푸른빛이랑 결합하면-"

릴리가 건넨 것은, 폐허가 되어버린 리뷔라 마을 구석진 곳에서 찾은 검이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작은 검은 손잡이에 작은 해골무더기가 박혀있었으며, 어째서인가 만지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해질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지만, 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받아들었다.


검은 아이즈 발렌슈타인이 심층에서 리베리아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힘겹게 사냥에 성공한 몬스터 렉스, '강화종' 우다이오스가 드롭한 무기였다. 이름은 묘왕의 검이라 하여-, 최초의 죽은 자, 묘왕 니토가 가진 힘의 편린이었으나,  사실을  수 있었던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녀올게, 릴리."

"응원하고 있을게요! 자, 치구사 씨도 어서 도망치자구요. 여기 있으면 오우카 씨도 위험할 거예요."

무기를 받아든 벨이 웃으며 릴리네를 보냈다. 그리고 불길하기 그지 없는 검, 하지만 이 상황을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웅이라 하였는가?

영웅이란 무기를 든 자가 아니다, 방패를 든 자도 아니다.
하물며 위안을 주는 자라 할지언정, 영웅이라 불리기에는 부족하다.

죽음을 휘감은 왕이 묻노라. 영웅이란 무엇인가.

성기사 리로이, 짐의 아들딸인 페니토와 밀파니토, 어느 쪽도 부족했다.
대답하거라,쉽게 부서지는 이여. 영웅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건 사람."

그러한가. 스스로를 걸 수 있는 자야말로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가.
짐은 불의 시작과 끝을 보았다. 망집이 낳은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도 보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걸고, 스스로를 잃어 스러져 갔는지,  수도 없다.
영웅이 되고 싶다 하였는가?


"영웅이 되고 싶어. 저 너머의 것을 보고 싶어."


무른 생각일지어다. 무르기 그지없는 생각이니라.
너에겐 동경 뿐이더냐? 그렇다면 말해주마. 저 너머에 있는 것은 절망 뿐이니라.

나의 친우, 태양의 왕이 그리되었느니라.
어리석은 자, 드랭글레이드의 왕이 그리되었느니라.
스스로를 포기하고 불길에 몸을 던진 수 많은 이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느니라.

자신을 잊고 심연과 싸운 자는 심연에 먹히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신을 먹은 자는 끝내 이형의 괴물이 되었으며, 백성에게 자신을 건 성군은 도시와 백성들을 잃고 미치게 되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정녕 절망을 위해서 스스로를 걸 것이냐?

"상관 없어. 꺾여도 상관 없어. 절망해도 상관 없어. 한 번 울고서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야. 일어나 다시 나아가면 그만이야."

벨 크라넬은 평범한 자다.
누구보다 하나 나은  없는 평범한 자다.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영웅이 되고 싶다는 어린 아이의 꿈.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나은 점이었다.

묘왕의 파편은 웃었다.
대답이라고 할 가치도 없는 대답이었건만, 충분하다 여겼다.


그러한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나는 네가 쓰러지는 날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쁘게 기다리도록 하겠다.

목소리가 흩어진다.
동시에, 벨이 쥔 칠흑의 검에 빛이 모인다. 벨의 등에 새겨진 각인이 새하얀 빛으로 타오른다. 팔나를 불사지르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다.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걸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종이, 울린다.
불길이 기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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