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This War Game of Vesta
"...그래서 말인데, 조금 도와주지 않을래?"
"당신을 저를 무슨 해결사로 생각하나 보군요."
류 리온이 실실 웃고 있던 헤르메스의 낯짝에 쐐기를 쏘아붙였다. 헤르메스는 아하하, 하고 뭐라 변명도 하지 못하고 웃을 뿐이었다.
실은 오라리오 바깥에서 태양의 전사 솔라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벨의 스승이며, 제우스와의 계약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아폴론도 오라리오 외부의 모험가를 불러오라고 했으니, 그 제약에 맞는 사람이라면 그로 충분했다.
하지만, 벨에게 간만에 스승을 다시 만나게 해줄 겸, 헤스티아에게 빚도 지울 겸, 제우스도 만나볼 겸, 벨이 살던 고향에 찾아갔던 헤르메스는 빈손으로밖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솔라말이냐? 며칠 전에 도시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가버렸는데.'
'엑.'
아무리 사람 찾는데 도가 튼 방랑자 신이라고 해도, 어디 도시로 갔는지도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솔라를 고집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헤르메스는 반쯤 울먹이며 다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라키아 왕국은 질이 떨어진다. 요즘 들어서 랭크가 폭등한 권속들이 우후죽순마냥 늘어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헛소리일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쓸만한 테르스큐라 쪽을 섭외해보려 해도, 그 섭외에 들어갈 공과 이번 전쟁 유희가 끝나고 헤르메스가 얻게될 즐거움을 비교해보면, 명백하게 자신의 손해였다.
애초에 오라리오 바깥에서 살아가는 신들의 아이들 중에선 던전과 던전 바깥의 몬스터 질 차이 때문에 오라리오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는 아이들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칼리가 자기 파밀리아에다가 인공적 생태계를 구현하는 미친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레벨 6이 한계였던 것을 보면...
결국 누굴 찾지. 오라리오 시벽 앞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하늘을 보던 헤르메스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오라리오 바깥에있는 걸로 취급되는 오라리오 외부인, 아니, 외부엘프가 하나 있었잖아.
"에이, 류 쨩. 그러지말고... 시르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한 번만. 응?"
"...윽, 시르의 얼굴을 보라니, 비겁합니다!"
"나도 부탁할게, 류."
"으으윽..."
마음 깊이 고민하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류를 보면서, 헤르메스는 흐음, 하고 웃었다. 이 엘프 검사 역시 정말로 정말로 벨을 돕고 싶어하고 있었다. 시르 플로버의 일이 없더라도, 웬만해선 그냥 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막는건, 그래. 지명수배자라는 신분이겠지.
"서류 조작 해줄게. 류는 전쟁 유희의 그날에 막 오라리오에 들어온 사람이 되는거야."
"...하지만."
"전쟁 유희가 끝나고 나서도, 류가 여기 일한다는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야."
"...으으윽..."
"나도 류를 응원할테니까! 보면서 '플레이, 플레이, 류! 파이팅!'하고 외칠테니까!"
"거절합니다."
""에에엑?!""
만약 시르가 정말 저런 짓을 했다가 류를 아직도 증오하는 몇몇 이들에게 납치당해 류와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고 캐물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 가면 류 자신의 위치가 탄로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르가 납치당한다는 것이 중대한 문제였다.
"시, 시르. 아냐. 류는 방금 오라리오에 왔으니까, 너는 모르는 아이야!"
"에?! 에엣?! 아, 그렇네요! 류 리온? 모르는 아이네요!"
류가 날카로운 눈으로 허둥지둥 만담하기 시작하는 두 명의 신과 인간을 보다가, 눈매를 풀고서 한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벨 크라넬이 걸린 경기고, 시르가 알게되어버린 경기다. 이 시점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졌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정말로 마지막입니다."
"휴, 휴우... 그래야 정의의 여신의 권속이지."
마치 벨을 정의라고 말하는 듯한 헤르메스의 모습을 보며, 류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저 방랑자 신에겐 말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저는 언제까지 준비하면 됩니까? 전쟁 유희의 개최일은 언제인가요."
"3일 남았지만... 마차타고 가는 데 꼬박 하루 정도 걸릴테니까, 내일 떠나야 해."
"......내일?"
"미, 미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까 시간이 촉박해져버렸어! 정말 미안해!"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신의 모습을 보며, 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의로 놀고 먹다가 늦게 온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후려치고 싶어졌겠지만, 이 방랑자 신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보고, 최후의 보루로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류는 짐작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전쟁 유희동안 시르를 부탁해도 될런지요?"
"...음, 나도 신회에서 같이 관람을 해야되어서 무리일지...아냐! 무리 아냐! 내가 아니라 아스피가 맡아줄거야! 솔직히 너도 내가 지켜보는 것보다는 아스피가 지켜보는 것이 더 마음 든든하잖아!"
"우우... 나도 어린애가 아닌 걸."
시르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헤르메스가 손발 내저으며 류를 다시 설득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한 숨을 내쉬고, 류는 몸을 돌렸다.
미아를 설득하고, 장비를 챙기고, 벨을 찾아가, 아니,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단장이라는 자를 찾아가, 곧 있을 전쟁 유희에 대한 작전을 짜야만 했다.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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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깼어?"
벨은 눈앞에 나타난 아이즈의 얼굴을 보고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미노타우로스의 피가 조금도 묻지 않았지만, 새빨간 토마토라고 불려도 아무런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이건 그거다. 저번과 같은 패턴이다. 얻어맞고 날아가, 기절해버린 자신을 아이즈 씨가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뒷목, 여자아이 특유의 살결의 부드러움과 산 사람의 따스한 체온이 벨의 척추를 타고 찌르르 흐르고 있었다.
"으으, 으으으..."
"피곤했지? 조금만 쉬어."
"으으으으으.... 으으으으...."
쉬라는 말과함께, 아이즈는 현재진행형으로 터질 듯 계속해서 붉어지고 있는 벨의 모습에서 얼굴을 떼었다. 그녀의 황금빛 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벨은, 얼굴이 붉어지다가도,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매료한 것인지 무심코 궁금해져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으와아아아?!"
"티오나, 무기 조심!"
"어쩔 수 없잖아! 무거워서, 잘 못 쓰겠- 히야아악?!!"
티오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일 보 후퇴, 그대로 몸을 지키듯이 쌍수에 든 마체테를 교차시켰다. 재빠르게 달려들어온 에스트는 그대로 교차한 마체테의 중앙을 노려, 흑기사의 대검으로 거세게 찔렀다. 레벨 5의 근력으로도 에스트의 무지막지한 일격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몇 번이나 맞아서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던 것인지, 방금 기절에서 회복한 벨은 잘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일격에, 쌍수로 몸을 가리고 있던 티오나가 말 그대로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시벽 바깥으로.
"히, 히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티, 티오나 씨이이이이이이이?!?!?!?!?"
도플러 효과를 내며 티오나가 아래로 사라져간다. 벨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아이즈의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아이즈가 드물게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혹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벨의 모습을 보았다.
"하아앗!!"
그 순간, 티오네가 시벽 아래로 떨어져가는 자신의동생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지, 레벨 2인 벨의 눈으로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로 에스트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잡았다. 그 직후 두 손에 들고 있던 쿠크리 나이프를 벌처럼 찔러넣으려 하는 티오네의 모습에, 벨은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트는 등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뒤를 보지도 않고 찔러넣었던 자세 그대로 대검을 한 손 만으로 반월을 그리듯이 등 뒤로 휘둘렀다. 일반 직검이나 벨이 사용하는 단검 같았더라면, 티오네는 간단히 피하고, 그대로 에스트의 등에 바람구멍을 내놓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흑기사의 특대검을 묘사하자면, 장대한 검신을 가졌다는 것도 부족했다. 검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두껍고, 무겁고, 그렇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흑철의 검, 그것이 흑기사의 특대검이었다. 그저 등 뒤로 넘기는 것만으로도, 등 뒤의 적을 썰어버리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무기였던 것이다.
"윽?!"
그래도 레벨 5라고, 티오네는 등 뒤로 넘기기만 했을 공격에 썰리지는 않았다. 에스트의 등을 찌르려던 쿠크리 두 자루를 곧장 돌려 교차시켜 특대검을 막았다. 용의 이빨로 만들어진 두 자루의 쿠크리는 비명을 질렀다. 맞닿았을 뿐인데도 검신의 이가 나가는 것이 티오네의가는 팔을 타고 전기 흐르듯이 흘렀다.
"언니, 알아서 피해에에에에!!!"
언제 시벽을 타고 올라온 것인지, 데몬의 마체테 한 자루 만을 양손으로 든 티오나가 하늘 높은 곳에서 태양을 가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검에 힘을 넣어, 그대로 티오네의 쿠크리를 박살내버릴 생각이었던 에스트는, 칫 하고 혀를 차며 대검을 들어 티오나를 막을 준비를 했다.
"가라아아앗!!"
검이 빠졌으니, 떨어지는 티오나와 협공할까-, 생각하던 티오네는 얌전히 에스트에게서 멀찍히 떨어졌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연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에스트가 떨어지는 티오네의 참격을 막으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 큰 대검을 한 손만으로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쪽 역시 연습이란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자신이 치고 들어가려 했다면, 곧바로 몸을 돌려 티오나의 참격을 간단히 피하고, 그대로 반격당했을 것이다. 연습이니 저렇게 헛점 많고, 빈틈 많은 내려찍기를 받아주려 하는 것뿐이었다.
"태양궈어어어언!!!"
"윽?!"
"그거, 방금 지은 이름이지...?"
티오나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회전시켰다. 태양을 가리던 티오나가 회전함과 동시에, 태양의 강렬함이 에스트의 눈을 가렸다. 대련 내내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던 에스트가 처음으로 혀를 차며 이를 악물었고, 티오나는 씨익 미소지었다. 그것을 보며, 자신의 동생이 저렇게 전략적으로 행동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티오네가 중얼거렸다.
쾅.
중력, 레벨 5인 티오나의 근력, 회전력, 그리고 마체테의 무지막지한 무게, 이 모든 것이 조합된 무식한 일격이 에스트의 검에 그대로 떨어진다. 우지직 하고, 대검을 들고 있던 에스트의 두 팔에서 들려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흑기사의 대검이 에스트의 손 안에서 떨어졌다.
"완벽한 가드 브레이크야."
"칭찬, 고마- 에엑?!?!"
에스트는 언제 꺼낸 건지 모를 에스토크로 맘껏 방심하고 있던 티오나의 엄지 힘줄을 끊어 대검을 떨어트린다. 곧이어 티오나의 배에 니킥이 들어가고, 목에 에스토크의 힐트를 내려찍혀, 힘 없이 쓰러진다.
"항복."
"......"
티오네는 사태파악이 빨랐다.
조금 열 받았네, 저거.
벨은 그 모든 것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