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어라?"
"무슨 일 있어, 카스티요 쨩?"
"저기..."
광택이 흐르는 갈색 피부의 아마조네스 소녀가 아연한 모습으로 뒷골목을 가리켰다. 오늘따라 일찍 영업을 준비하려고 업소 안에서 대자보를 꺼내던 엘프 선배가 카스티요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렸다.
절반이 깨진 하얀 해골 가면이 뒷골목의 어둠 사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꺗?!"
"카스티요!! 네놈,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 줄 아느냐!!"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해골 가면을 쓴 이가 카스티요의 얼굴을 붙잡았다. 엘프 선배는 깜짝 놀라면서도, 허리에 매달아둔 나이프를 꺼내들며 무례한 이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엘프 선배에게 있었던 호통을 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카스티요의 입에서 검은색의 무엇인가가 쭈우욱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흡혼귀. 숨을 들이킨 엘프 선배가 뒷걸음질쳤다.
"...그거 궁금한데."
뒷걸음질치는 엘프 선배의 발을 막듯이, 해골 가면 속에서 증오를 뱉어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성이 모두 빼앗긴 카스티요의 몸이 생기를 잃고 시체처럼 변해 땅에 툭 떨어진다. 신을 꾀어낼 정도로 아름다웠던 카스티요의 육체가 말라 비틀어진 고목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고, 엘프 선배는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지."
"이, 이슈타르 님이 네놈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카스티요를 땅에 내던진 해골가면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깨어진 절반의 얼굴은, 충분히 피어나게 된다면 신 정도는 간단히 꾀어내고, 영웅이라 불리우는 자들마저 쉽사리 홀릴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것이었으나, 해골 가면의 텅 비어버린 눈알보다도 더욱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이슈타르는 어디 있지? 파밀리아 홈은 어디야?"
"이, 이슈타르 님은 이 거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궁전에- 파밀리아 홈도 같은 곳이야..."
"...프뤼네는 어디있어."
"그, 그 두꺼비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알아?!"
엘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깨닫자 마자, 에스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다크 핸드를 뻗어, 엘프의 얼굴에서 인간성을 뜯어내었다. 두 사람 째의 반 시체가 땅에 내던져지는 순간, 업소 안쪽에서 하품을 하며 한 명의 파룸이 걸어나왔다. 일 끝냈으면 빨리빨리 돌아올 것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파룸은 눈앞의 풍경을 보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스, 습격이다아아아아아!!!"
"귀찮게..."
파룸이 비명을 지르자, 여기저기서무기를 든 이슈타르 휘하의 전투 창녀들이 뛰쳐나온다. 꽤나 진형이 잘 짜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폴론의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달리, 하나하나가 꽤나 귀찮아보이는 상대였다.
처음부터 엘리트들이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보아, 이 거리가 적에게 습격 받은 적은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에스트는 상황 귀찮게돌아가는 것에 한숨을 내쉬고, 봉인의 석장을 꺼내들었다. 머리 주변에 다섯 개의 결정 소울 유도체를 띄우고, 곧바로 지팡이를 휘둘러 그 사이 가까이까지 다가온 아마조네스 도끼전사의 머리를 강타한다. 뼈가 으스러지는 감촉을 느끼며, 에스트는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마술사 나부랭이가!"
"죽어!"
단검을 든 자와 쿠크리를 든 자가 무기를 휘두르며, 적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영창-소리는 없었지만, 비슷한 자세이기에 영창일 것이라고 생각한-을 읊는 에스트에게 실소를 흘렸다. 감히 마술사가 전위에 서서 전투창녀들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겁도 없이 영창을 읊다니-
단검과 쿠크리가 몸에 닿으려는 순간, 에스트의 머리 위에 떠있던 결정 소울 유도 구체 다섯 개 중 두 개가 쏘아져, 그녀들의 손목을 지워버렸다. 사라져버린 자신의 신체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버린다.
"꺄아아아아... 팔이... 팔이이..."
"뭐, 뭐야... 뭐야, 이게,... 이상한게 내 몸에서 자라고 있어어..."
"그 녀석들 탓인가?"
피가 철철 흐르는 그녀들의 손목에서 그녀들을 갉아 먹듯이 작은 결정 조각들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에스트가 준비하던 마법을 취소하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결정 동굴에서 만났던 쌍둥이 마법사의 소울이 에스트의 마법을살짝 변질시킨 느낌이었다.
에스트가 로건에게서 배워 사용하던 결정의 마법은 그저 결정의 힘으로 마법에 물리력을 부과하는 것 밖에 없었다. 저런 저주를 남기는 일은 하지 못했었다.
"아니면, 무심코 배워버린건가..."
에스트가 배려라도 해주는 듯이 두 전투 창녀의 피 흐르는 팔을 짓밟아 결정의 뿌리를 으스러트렸다. 두 여인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리자, 여기저기서 선뜻 에스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독한 년..."
"상처 입은 녀석을 그렇게까지..."
이렇게 되어버리면 백룡의 숨결은 당연히 사용 불가능이다. 백룡의 숨결로 다수를 한 번에 쓸어버릴 생각이었던 에스트는 머리 근처에 떠오른 헤스티아 얼굴의 천사와 악마에게 시달리다가, 한숨을 내쉬고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뭐, 뭐냐... 항복할 셈이냐!?"
전투 창녀 하나가 살짝 기대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에스트가 맨손으로 대답했다. 맨손으로 무엇을 할 셈이냐고, 누군가가 비웃으려 했다.
그녀의 손에 떠오른 새빨간 불길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 셈이였다.
"저, 저걸 막아! 마법이 온다!"
"네? 영창도 하지 않고 있는-"
이것은 이자리스의 마녀가 만들어낸 분노와 증오.
에스트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멍청이가, 하고 자신을 매도하는 스승의 얼굴이 떠오르기 전에 눈을 뜨고, 그대로 불에 휘감긴 팔을 땅에 내려찍었다.
땅이 흔들린다. 이미 늦었다고, 전투 창녀의 리더는 깨닫고 말았다.
대지를 갈아엎으며 솟아오른 수 십 개의 거대한 불기둥이 벨리트 바벨리를 집어삼킨다.
화마가, 일찍이 존재했던 위대한 마녀의 분노가 세계를 일그러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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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일이 발생한거냐!"
파밀리아 홈의 정원에서, 엘리트 바벨리라는 거대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던 여신 이슈타르가 외쳤다. 거대한 불기둥이 몇 채의 건물을 말 그대로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불기둥에서 태어난 꺼지지 않는 불길에 세 자릿수를 우습게 넘기는 건물들이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한 거리를 통채로 집어삼키는 불길.그것만이라면 이슈타르가 놀랄 일은 없었다. 불에 타버리면 재건하면 그만이다. 곧 밤이 깊어지고 만월이 떠오르면, 그녀의 파밀리아는 르나르를 이용한 의식을 거행할 것이고, 프레이야를 쓰러트릴 것이다.그런 뒤라면, 재건할 재와 부는 넘치도록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슈타르는, 여신 이슈타르는, 불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사이에서 두 팔을 벌리고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기뻐하는 이의 형상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의 줄기에 휘감겨, 불길이 휘감긴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불길 그 자체의 생명체를-
혼돈의 못자리.
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그것의 이름은 혼돈의 못자리라고 불리었던 존재였으나, 이 도시에서 그것의 이름을 아는 이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막아라! 당장 막아!!"
"하지만, 이슈타르 님. 의식을-"
"의식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아...! 저걸 막는 게 급선무야! 프뤼네. 믿을 만한 아이 몇몇만 남겨두고 모조리 저쪽으로 보내라!"
"게게겍."
프뤼네가 영문모를 대답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단장이고, 레벨 5다. 이슈타르는 그녀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년이야."
파밀리아 홈의 계단을 내려가며, 프뤼네가 게겍게겍 거친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댄 그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도, 설마 신 이슈타르의 파밀리아 홈까지 정면돌파해서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장대한 불길을 보면 아무래도 불길에 몸을숨겨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아보였다.
"이슈타르 님도 겁이 많다니까... 고작 불길에 놀라서 꼬리를 말기는..."
프뤼네가 웃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불길이 번지지 않은 거리와 불길이 번지지 않을 거리가 어디인지 금방 파악해내었던 것이다. 그 길목길목마다 최고의 전투 창녀들을 배치해두면, 아무리 흡혼귀라고 해도 깎여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비겁한 게 아니라고. 전술이지. 저쪽이 화공이라는 전술을 쓴 것처럼. 게겍. 게게겍."
프뤼네가 계속 계속 혐오스러운 웃음을 남기며 벨을 묶어둔 곳으로 사라져간다.
저것이 도착하려면 조금 걸릴 것이다. 그 때까지만 가지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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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벨 님! 왜 그러시나요?!"
"머, 머리가..."
하루히메가 놀라 벨에게 다가간다. 바깥에서 미친 듯이 웃는 여인-, 아니, 여인을 닮은 불길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바깥에서도 울리고, 머릿속에서도 울리고, 머리가 깨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벨을 보며, 하루히메가 어쩌면 좋지, 하고 생각하다가 벨을 포옥 안았다.
"괘, 괜찮아요, 벨 님. 아무도 없어요. 머리 아플 일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 프뤼네가 오기 전에 도망가도록 해요!"
"..."
벨은 하루히메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 파묻혀, 어버버 하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라... 정말로 머리 아픈 게 조금 가신 듯한...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