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54/71)



〈 54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이슈타르의 왕국이 불타는 모습을 보는 단원들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오늘밤이 지나면 르나르와 살생석의 힘으로 오라리오 1위의 자리를 탄환할 것이라고 그들의 주신이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까지 화려하게 불타버리면, 과연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달도 보이지 않겠구만."

"무슨 상관이야, 게겍."

하늘마저 가려버리는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르나르의 요술은 달빛을 받아 강해진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아이샤는 걱정을 내비쳤지만, 프뤼네는 그런  다 헛소리라며 아이샤를 비웃었다.

"야, 여우. 시간이다, 올라가."

프뤼네가 하루히메에게 그르렁대었다. 바로 몇 분 전에, 프뤼네가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잡아놓았던 벨 크라넬과 야마토 미코토를 홀라당 놓아버린 여우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제단에 오르기시작하는 하루히메를 보던 아이샤는 입술을 세게 깨물더니, 하루히메에게서 등을 돌렸다. 한 때, 산제물이 될 예정이었던 르나르를 동정해 살생석을 깨부쉈던 아이샤는 여신 이슈타르의 매료에 영혼이  그대로 표백되어버릴 정도로 괴롭힘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아이샤는 줄곧 이슈타르의 결정에 더이상 반기를 들  없는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에로 르나르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던 탓이였다.

"나는 방어하러 갈게."

"어딜? 이미 바깥에 잔뜩 깔아두었다고. 그러니 너도 여기서 지켜봐라, 아이샤."

"습격자 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벨 크라넬이야."

"그 꼬맹이가~?"

여우의 뒤에 숨어 도망쳐버린 토끼의 모습을 떠올리며 프뤼네가 게겍 게게겍웃었다. 그게 돌아오면 손에 장을 지질 거라며 폭소하는 프뤼네였지만, 아이샤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 소년은. 그 남자는 돌아온다.


"어차피 네가 있으면 여길 뚫을 수 있는 녀석은 없잖아? 한 번만  줘."

"흐으음... 좋아, 보내주지. 대신, 처음은 내가 가져가는 걸로 하겠어."

"상관없어."

지금의 아이샤가 원하는 것은 투쟁이었다.
과거, 내걸었던 신념을 주신의 과분한 사랑에 의해 꺾여버린 아마조네스 여전사는 웃기지도 않는 신념을 내걸고 지금을 걸어 나아가는 벨 크라넬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이샤가 공중정원  쪽의 나선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때를 맞추었다는 듯이, 다른 한 쪽의 나선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곳으로 오는 길은 설령 같은 파밀리아의 단원이라 할지언정 통과하지 못하도록, 모두 통제 중이었을 터다. 프뤼네는 고개를 갸웃이더니,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은빛의 전투도끼를 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겍, 설마."

"여기 있었구나."


피를 뒤집어쓴 소녀가 나선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은빛 에스토크의 끝에서 방울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아래쪽에서 길을 통제하던 단원들이 모두 당했음을, 그 자리의 모두가 깨달을 수 있었다.

"찾고 있었어."

"서, 설마...정말로 홀몸으로 그 많은 병력을 뚫고 왔다는 소리냐!!"

"자, 네가 원하던 대로 찾아왔어."

해골 가면의 반쪽이 웃었다. 프뤼네는 등뒤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십 년 전, 레벨 3으로 승격했던 이후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저, 저 녀석을 쳐라!! 하루히메, 너는 나에게 당장 요술방망이를 걸어!!"

"프뤼네 님? 그래서야 의식이-"

"시, 시끄러워어어어어!!!"


프뤼네가 도끼를 쥐고 있던 팔을 휘둘러, 부하의 머리통을 쳐날렸다. 같은 이슈타르의 총애를 받은 아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하고 땅에 떨어졌다. 그  까지도 상황을 파악 못하고 있던 단원들은, 머리를잃은 몸이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명을 지르며 에스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에스트는 코웃음을 치더니, 다가오는 이슈타르의 엘리트 단원들을 한 명에 에스토크 지르기  번으로 모조리 쓰러트려 버렸다. 그나마 사지가 멀쩡하게반 죽여 놓은 것은 외압에 의해서 원치 않는 싸움을 하게 된 그녀들에게 대한 에스트의 최소한의 온정일지도 몰랐다.

"-커져라 뚝딱."

"그래, 이거다... 이거야...! 이 힘이라면  같은 건...!"

그 사이, 몸을 사슬로 구속당해있던 여우 수인의 영창이 끝나 있었다. 프뤼네 자밀은  몸에서 은빛의 마력을 흩뿌리며 에스트를 향해 으르렁대었다. 평소의  배나 솟아오르는 힘에 취한 듯한 모습이었다.

"게게게겍! 게겍!!"

프뤼네가 괴성을 지르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범용한 자라면, 저런 거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릴지도 모를 만큼이나 무지막지한 움직임이었다.
프뤼네는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에스트를 보며,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모습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뭐야."

에스트가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팔나에 의해 강화되고, 산죠노 하루히메의요술에 의해서 또 한 번 강화된 프뤼네의 청력은, 에스트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포착하자, 프뤼네의눈은 자연스레 에스트의 얼굴로 향했고, 그제서야 에스트가 자신이 가속하기 이전부터 자신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움직임을 눈치채지못한 측은에스트가 아니라 프뤼네였던 것이다.


"고작 이거야?"

"게겍!! 게게겍!!!"

이미 가속할 대로 가속한 프뤼네는 어차피 도망칠 구석도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허리를 굽혀, 너무나도 간단하게 도끼를 피해내고, 매서운 찌르기로도끼를 든 프뤼네의 손목을 베었다. 사람 크기의 도끼를 쥔 사람 머리두께의 팔목이 피를 흩뿌리며 하늘을 날았다.

에스트는 프뤼네의 팔목을 날려버리자마자 검을 돌린 뒤, 곧바로 몇 번이고 다시 내질렀다. 팔꿈치 아래, 팔목 위의 살덩어리가 하늘을 날고, 연이어 팔꿈치 위, 어깨 아래의 살덩어리가 잘려나간다.
순식간에 오른팔을 해체당한 프뤼네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구, 아와아아아악!!"

계속 따라붙어, 프뤼네를 해체하려던에스트였지만,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니면 죽음의 공포가 잊고 있었던 전투 본능을 깨운 것인지, 프뤼네는 왼팔을 뻗어 에스트의 에스토크를 붙잡았다.
에스토크란 찌르는 무기. 붙잡는다면 간단히 빼앗을 수 있다. 프뤼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풀어진다. 무기가 없어진다면, 한 쪽 팔로도 이런 녀석,묵사발로 만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멀었어."

레벨 6의 보정을 받은 근력이 밀려난다. 왼손이 에스토크를 붙잡은 채로 천천히 썰려나간다. 나이프가 스테이크를 썰어내듯이, 천천히, 천천히 날붙이가 손을 찢어낸다. 손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팔의 절반이 잘려나간다. 팔나로 강화된 신체도 더 이상 고통을 버틸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괴... 괴물...!"

"맞아. 괴물이야."

두 팔을 잃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에스트를 비난하는 프뤼네. 프뤼네의추한 모습을 보면서, 에스트는 빙긋, 하고, 잔혹한 미소를 띠었다.
스스로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불사의 괴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에스트였지만, 이번만큼은 불사자로서의 의미로 괴물이라는 단어를 입에 낸 것이 아니였다.

"너 역시 릴리에게 괴물이었겠지?"

작은 등에 고문도구로써 새겨진 글씨.
프뤼네는 릴리를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명예도 없이,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대항해 싸운 이에게 대한경의도 없이, 그저 자신보다 약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간을 죽이는 놀잇감으로써 사용했을 뿐이었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릴리? 뭐, 뭐야... 모른다고, 그딴 녀석!!"

"그래,  역시  이름 같은 건 몰라."


에스트가 에스토크를 휘둘러 프뤼네의 목을 쳤다. 에스토크가 살집이 뒤룩뒤룩한 목의 절반까지 파고 들었다가 빠져나가자, 수도꼭지가 터진 듯, 살들 사이로 피가새기 시작했다.

"히, 히이이익... 히이이기기기..."


목에서 새는 피를 보며, 프뤼네가 울부짖었다.  손은  수가 없게 되었기에, 목을 부여잡아 피가 새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그저 생명이 철철 흘러나가는 모습을 그저  수밖에 없었다.


"아냐, 싫어... 싫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가아..."

프뤼네는 땅에 엎어져 목을 땅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열린 상처가 닫히기라도  것처럼, 아니면 땅에서 손이 나와 상처를 막아주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해서 비볐다. 비비면 비빌수록 피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잊은 것만 같았다.

"간만에 느껴보는 약자의 기분은 어때?"

"흐히이, 히으이이익, 으헤히이익... 새어.. 철철 새애에에..."

에스트는 발버둥치는 프뤼네에게서고개를 돌리고, 사슬에 묶인 채 겁에 질려 말도 잇지 못하는 여우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강한버프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묶여있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사정이 있어 보였다.


"...구할까나."


에스트는 에스토크를 집어넣고, 여우 소녀에게 다가갔다.
에스트는  걸음  발자국 걸어나갈 때마다, 여우 소녀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진다. 열 발자국 정도 남은 시점에선 에스트의 입모양이 아예 세모가 되어있었다. 사람 하나 해체해버린 데다가 피범벅인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겁먹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무기를 넣었는데-


"뒤, 뒤를 보세요!!"


제딴에는 용기를 내었다는 듯, 눈을 세게 감은 하루히메가 에스트에게 외쳤다.
에스트가 설마 그 몬스터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뱀 모양의 거대한 칠흑의고깃덩어리가 채찍처럼 날아와 에스트의 몸을 거세게 쳤다. 에스트가 전신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이슈타르 공중정원의 한쪽 끝까지 쳐날려진다.


"크, 윽."

"게에에에에에..."


에스트가 피를 한 번 토하고, 자신을 후려친 것의 모습을 보았다.

칠흑의 고깃덩어리는 프뤼네의 상반신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인간보다 두 배는 거대한 프뤼네의 몸이었지만, 저 고깃덩어리는 프뤼네를 숙주로 삼은 모습을 하고 있는 주제에 프뤼네보다도 몇 배는 거대했다.

에스트는 고깃덩어리의 모습을 분석하며, 에스트 병의 뚜껑을 열어 화톳불의 온기를 마셨다.  모금을 다 마시고도 몸이 온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일격이었다.
...아니, 로드란 기준으로는 평범한가.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사, 살생석이에요! 프뤼네 씨가 살생석을 먹어치웠어요!"

살생석.
뭐야 그건. 에스트가 입에 고인 피를 퉤 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뤼네였던 것은 에스트가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게겍 게게게 비명을 지르고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에스트는 에스토크를 집어넣고, 흑기사의 특대검을 꺼내려다가-

-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에스트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달려오는 프뤼네의 발 밑을 보았다.

그것의 발 밑에, 짙은 청색의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에스트는 어디에서인가 본 적이 있었다.

이 냄새를, 너무 익숙해져서 눈치 채지를 못하고 있었던 이 냄새를, 에스트는 기억하고 있었다.

우라실의 대지에 나타난 균열의 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괴물을.
작은 론도 유적의  모를 절벽 아래에 봉인당했던 네 왕의 모습을.
심연에 물들어버려 소중한 이들을 모조리 참살했던 자신의 모습을.


"게게게게, 게게게게!!!"

"...어째서."


에스트는 이를 빠득 갈았다.
처음으로 증오를 내보이며, 망설임 없이 아르토리우스의 대검을 꺼내들었다. 옅었던 감정은 둑을 무너트리고, 타오르는 분노가 되어 흩날린다.

증오, 미움, 분노.
인간답다면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 에스트의 모습을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인간성에게서, 인간의 본질에서탄생한 검게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가 웃음소리를 한껏 늘렸다.

"어째서!!!"


가장 증오하는 적을 마주한 위대한 장작의 왕이,
순례를 마치고 달콤한 꿈을 꾸고 있던 장작의 왕이,

몸에서 불길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프뤼네를 집어삼킨 심연의 존재가 웃었다.
 가련한 장작의 왕에게 태양이 있기를. 축복하며, 너무나도 기쁜 모습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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