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Ending 1. Until only Ash remains (70/71)



〈 70화 〉Ending 1. Until only Ash remains

막을 수 없다.
내버려두면, 모조리 태워버릴 것이다.

세계의 끝까지 집어삼켜, 살아가는 이가 누구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한 걸음, 걷는다.
불길에 휩싸인 나뭇가지가 뻗어오기 시작한다.

두 걸음, 나아간다.
왕들의 소울이 집어삼켜져, 재가 되어 사라진다.

세 걸음, 내디딘다.
저항하지 않고, 불길을 받아들인다.


“원한다면, 어디 가져가 봐-!”

외친다.
혼돈에게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몸을 온전히 휘감기 직전에, 모든 소울을 바쳐, 최초의 화로에서 옮겨 붙어온 잔불을 피워 올렸다.
꺼지기 직전의 양초가 가장 거세게 타오르듯이, 거대한 불길이 피어오른다. 혼돈의 화염에 타오르던 나뭇가지의 끝이 장작의 왕에게 옮겨 붙은 잔불에 그을려, 검은 숯이 되어 떨어진다.

나뭇가지들이 의문을 표하듯이 잠시멈춘다.
그 모습은, 그만한 힘이 있으면서,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가져갈 수 있다면, 어디 가져가 봐.”

그런 것인가. 혼돈 깊은 곳에서, 대답이 흘러나온  했다.
어둡고 일그러진 화염 속에서  없이 많은 나뭇가지의 무리가 뻗어져 나온다.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은 해일처럼 몰아쳐, 넓은 공간을 휘감아, 거대한 감옥을 만들어 장작의 왕을 가두었다. 장작의 왕은 안에 든 것이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얽히고설킨 나뭇가지들을 보며, 혼돈의 못자리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이자리스의 마녀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 때의 혼돈의 못자리가 이자리스의 마녀가 가진 왕의 소울을 지키기 위한존재였다면, 이번에는 제 발로 들어온 장작의 왕을 도망가게 두지 않도록 가두는 역할을 하게  정도의 차이 뿐이다.

“도망칠 생각 같은 건,   없다고.”

다만, 버틸 뿐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다 꺼져가는 불길도, 장작이 있다면 간단히 피어오르고 만다. 최초의 화로에서 한 번 해보았던 일이기에, 장작의 왕은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작을 쉽사리 내줄 수는 없다. 지금 이 혼돈의 불꽃에게 장작을온전히 내준다면, 혼돈은 기뻐하며 장작의 왕을 집어삼키고, 그렇게 거세어진 자신의 불길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그것만큼은 사양이다.

그렇기에 버틴다.
나의 장작이 잔불에 타올라 재가되어 흩어질 때까지.
아니면, 장작의 왕이라는 장작에 눈이 팔린 혼돈의 불씨가 흐트러질 때까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장작의 왕을 삼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쇠약해져갈 혼돈의 불꽃이, 언젠가 장작의 왕을 집어삼킬  없다고 판단해버리는 날이 온다면, 그 날에, 혼돈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서 지상으로 올라가버릴 것이다.

“헤스, 티아.”


화로의 여신.
그녀는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기에, 기쁘게 기다릴 수 있다.


남은 것은,

최초의 화로에서 가져온 이 잔불이 얼마나 버틸  있을 것인지.
장작의 왕으로서의역할을 얼마나 계속해나갈  있을 것인지.

이것으로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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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던전.
오라리오가 괴멸하고, 라키아가 멸망했던 날. 옛 던전을 부수고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를 부르는 용어였다. 그 높이는 옛 바벨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높아, 기둥을 넘어, 본격적으로 잎사귀가 나기 시작하는 어린 나뭇가지가 자라는 곳부터 이미 구름이 걸리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곳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으면 세계가 모두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의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오라리오 바깥에서 퍼지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위쪽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옛 던전은 더 이상 몬스터를 낳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를 통해 옛 던전이 있던 곳으로 내려가면, 오라리오 바깥이 흔히 그렇듯이,  던전 심층부에서 태어났던 몬스터들이 번식해 올라와, 상층부를 점령하고 있다. 나무가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오라리오 바깥의 야생몬스터들보다는 강하지만, 예전의 그 던전 몬스터들 보다는약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옛 던전의 심층부가 있던 곳은 이야기가 달랐다.
데몬, 이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항시 옛 던전의 심층부를 배회하고 있고, 상층으로 진출하지 않고 계속해서 심층부에서 살아가기를 결정한원주민 몬스터들은 그 데몬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의 육체를 끝없이 진화시켰고, 그 결과, 옛 던전에 비하면 난이도가 더럽게 높아져버렸다는 것 같다.

그는 옛 던전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고작 레벨 3, 18층까지밖에 도달할 수 없었으니,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같다.

벨 크라넬과 그의 파티는 옛 던전 심층부를 넘어, 한없이 깊은, 그러면서도 어째선지 중간이 끊어져 있는 듯한 계단을 내려가, 마침내 작열지옥에 발을 내디뎠다.
바닥은 흑요석. 사방에서  대신 용암이 끓고 있었고,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살아있는지 아닌지  모를 나뭇가지들과 데몬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뭐어, 데몬들은 있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흑요석의 대지와 용암의 바다 속을 방황하던 데몬들이 벨 쪽을 눈치 챈 것인지, 소머리 데몬 마리가 산양머리 데몬들을 이끌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들어서자마자냐...... 환영이 과격하구만.”

자신의 머리 색깔만큼이나 시뻘건 대검을 쥔 벨프가 침을 퉤 뱉으며, 벨의 앞으로 나아섰다. 그의 키나가시가 흔들리자,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익숙한 검은 장갑이 눈에 띄었다.

“체력은 보존해 둬.”

바람을 감은 아이즈 발렌슈타인이 잇달아 걸어 나간다. 뒤이어서 카타나를 뽑아든 미코토가, 대검을 휘두르는 티오나와 나이프를 꺼내든 티오네가, 마검을 신발에게 먹인 베이트가,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뛰쳐나간다. 옆에선 나자와 릴리가 대궁에 대화살을 매기고 있었고, 하루히메가 요술을 영창하고, 리베리아와 레피야가 마법을 영창한다.


“흔들리지 마. 너는 네 할 일을 기다려, 리더.”

은발의 늙은이가 헤스티아 나이프에 손을 올리려던 벨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손목을 붙잡은 손은 늙은 고목같이 말라있어서, 모험가라고 하기에는 힘든 모습일지도 몰랐지만, 벨은 이런 모습이기에, 그가 더욱 모험가답다고 생각했다. 금색 눈동자는 예전보다 색이 바랬을지언정, 여전히 힘이 넘쳤고, 늙어버린 몸으로도 이런 지옥 속까지 찾아오는 모습이, 진정 생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가의 모습 그 자체였다,

“곧 왕이 온다. 충격에 대비해.”

오탈이 중얼거렸다. 벨은 곧바로 선배의 말에, 목소리를 높여 파티원들에게 위험을 알렸다. 아니나 다를까,어디서 뛰어오르기라도 한 것인지, 하늘 높은 곳에서 불길을 휘감은 데몬의 왕이 떨어진다. 크고 작은 데몬들을 상대하던 모험가들이 무기를 들어 거대한 충격파를 막아내자, 그들의 눈에 몇 마리의화염의 사제가 데몬의 왕을 보필하듯이, 천천히 용암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가겠다.”

“같이 가지, 오탈. 데몬의 왕에게는 나도 원한이 있어.”

끝까지 그곳에 있어야 한다, 고 핀이 벨에게 명령하듯이 조언하고, 오탈과 함께 뛰쳐나간다.

“벨.......”

“괜찮아요, 분명.”

마법과 불길이 일고, 무기와 무기가 부딪친다. 벨은 끓어오르는 투쟁심을 힘겹게 갈무리하고, 자신의 소매를 잡아오는 주신을 안심시켰다. 티오나가 불길에 휩싸여 쓰러져도, 벨프의 의수가 박살나도, 아이즈가 검을 놓치고 무릎을 꿇어도, 벨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에서 멀어져 있는 먹이를 찾아 다가오는 데몬 몇 마리를 벨 뿐, 주신의 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얼마간의 싸움이 종식되고, 몇 번이고 도망쳤던 데몬의 왕은 또 한 번 도망치며, 모험가들은 탈진해 쓰러진다.
벨은 성직자의이야기가 가져온 기적을 그들 모두에게 나누고, 앞을 보았다.


불길  멀리서 혼돈의 못자리가 솟아오른다.
언젠가 불타는 사창가에서 보았던, 던전으로 틀어 막힌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기뻐하는 여인의 모습을 한 불길을, 벨은 똑바로 노려보았다.

벨은 한 걸음 걸었다.
헤스티아는 어느새훌쩍 커버린 자신의 아이를 따라 걸었다.


『아이야, 너는 이제 필요하지 않단다.
나에게는 이미 장작의 왕이 있단다.
아름답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장작의 왕이.』


“에스트 씨를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벨은 헤스티아를 공주님을 안는 것처럼 안아들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모험을 하다,세계의 끝에서 스스로를 포기한 채 괴물로 변한 라키아 인들의 고통을 짊어진 심연의 공주님을 성 바깥에서 끌어낸 적도 있었던 벨이었다. 아주 안정적인 자세로, 헤스티아의 머리가 휘날리는  말고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혼돈의 못자리를 향해서 곧장 달려 나간다.

불에 휩싸인 낫과 나뭇가지 손아귀를 피해낸다. 헤스티아를 안고 있는 터라 구를  없다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의 등에 열두 번 정도 승화시킬 수 있을 만큼 쌓이고 쌓인 팔나가 어떻게 피할 수는 있게 만들어 주었다.


『주지 않아.』

“빼앗을 겁니다.”

땅이 무너지고, 절벽 아래로 벨과 헤스티아의 신형이 떨어져간다. 던전의 가장 깊은 곳보다도 더 깊은 곳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이쪽.]

하지만, 벨은 떨어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루벨라이트 색의 눈동자는 스러져간 이들의 조언을 보고 있었고, 조언에 따라, 절벽 사이에거대하게 이어진 나무뿌리를 밟고 곧장 달린다. 세계를 태우는 불길이 길을 막아서도, 하벨의 이야기가 불러온 기적에 몸을 맡기고, 절대 멈추지 않는다.


혼돈의 못자리가 황급히 불길을 피워, 몸을 가리는 결계를 생성하고, 불길의 낫을 휘둘러 벨이 달리는 나무뿌리의 길을 찢어발기려 한다. 벨은 카타리나 기사의 이야기에서 태어난 기적을 쏘아내, 불길의 낫을 밀쳐내고, 길에 적힌 조언을 따라, 척, 척, 하고 오른팔로 혼돈의 못자리 양 쪽을 가리켰다.

먼 곳에서, 그 간단한 수신호에 대답하듯이 릴리와 나자가 쏘아낸 대화살 두 자루가 날아와 혼돈의 못자리가 만들어낸 결계의 근원을 깨트린다. 나무뿌리의 길의 끝에서, 벨과 헤스티아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결계를 향해 높게 뛰었다. 저절로 얽히고 섥히며 길을 막는 나뭇가지들을 검으로 박살내어가며, 혼돈의 근원을 향해서 계속해서 달렸다.

 근원에, 새장을 닮은 감옥이 있었다.
그 가운데, 화톳불에 무릎을 꿇듯이 앉아, 나뭇가지에 온 몸을 휘감긴 에스트가 있었다.

“에스, 트.”


벨은 말없이 헤스티아를 내려주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장작의 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불은 예전에 꺼져 있었다.
거대한 소울은 혼돈의 장작이 되어, 거의 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성은 남아있는지.
기억은 남아있는지.

표정 없는 얼굴은 인형의 것과도 같아서, 벨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헤스티아는 앞을 향해 걷는다. 천천히.

“데리러 왔단다, 에스트.”

“잘 버텨주었구나.”

“내가 이 불을 거두겠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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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남았을까.”


잔불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뜬 에스트가 중얼거렸다.
다가오지도 못하던 나뭇가지들은 어느새 살갗을 간질이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달콤한 꿈이었어.”


혼돈의 불길이 사그러들 기색은 없다. 얽히고 섥혀 길을 막은 나뭇가지들이 흩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포기한다고 하면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다.
따뜻함을 갈구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일 것이다.

이젠 움직이려 들지도 않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그을은 무한의 상자에서 귀환의 뼈조각을 꺼내어, 깨트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에스트는 킥킥 웃으며, 다시 눈을 감을 뿐이었다.


“무리야."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그런 즐거운 꿈을 보아 버렸는걸.”


다음번에 눈을 뜨면 헤스티아가 앞에 있을 것이다.
분명, 돌아가자며, 손을 내밀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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