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설득(3)
인류의 각성 이후로 던전이 생기고, 마물이 출몰하면서 정부, 가문, 길드의 영향력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대도시가 바뀌거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헌터의 능력치가 성장하면서 던전 공략과 마물 사냥이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초창기와 달리 안전해졌다.
하나, 모든 지역이 각성 시대 전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다. 과거 유혈 사태로 번졌던 지역이나, 던전이 빈번히 출몰하던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었다. 그런 지역을 던전 경계라고 하여 정부에선 출입을 자제시키는 편이다.
무진과 지수는 지금 던전 경계와 맞닿은 구역을 찾았다. 실상 도시 인근에서 멀지 않으면서 인적이 드문 장소로 던전 경계만 한 곳이 없기는 했다.
안개를 헤치고 도착한 장소엔 낡은 건물이 있었다. 겉으론 낡아서 부서질 듯 허름한데 내부는 쓸 만했다. 미리 손을 봤었는지 보안 측면도 해결이 되어 있었다.
“이런 곳을 잘도 찾았구나.”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
“이거 어째 악당들이 모여서 작당 모의하는 기분인데.”
“영웅이거든.”
“뻔뻔하기까지, 대단해. 많이 컸어.”
이 일대의 흐름이 던전의 잦은 출몰로 비틀려 있었다. 아는 길인 줄 알았는데 방향 감각에 혼선을 주었다. 막상 찾으려고 하면 꽤 난해할 수 있었다. 그런 장소를 지수는 막힘없이 걸어 들어갔었다.
“비틀린 흐름이 총 78개고, 시간마다 바뀌는 구간까지 있는 걸 보면 아지트로서 딱이긴 하다.”
“……너 그걸 어떻게?”
아지트 주변에 펼쳐진 안개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잦은 던전 출몰로 차원의 틈이 벌어졌고, 흐름이 왜곡되어 변질되었다. 12년 전 공략 이후로 던전이 생기진 않았지만, 변질된 흐름이 인위적인 기상이변을 일으켰다.
차원 변질로 형성된 안개는 일반 안개와 달리 생명체의 오감을 왜곡시켰다. 던전 경계에 들어온 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간혹, 전설이나 신비를 탐하는 자들이 뭔가 있지 않을까 찾아오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이젠 발길이 끊어졌다. 찾기는 힘든데 막상 들어와 보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왜곡된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며 변화를 했고 강력한 결계를 형성했다.
지수도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빼어난 감각과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아지트를 찾기 요원하다.
하물며 곳곳에 결계를 강화하기 위한 강화석을 박아 놓았었다. 대단치 않은 강화석이긴 해도, 원체 결계가 대단해서 굳이 최상급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걸 한눈에 파악했다고?
상식적이지 않은 강함은 둘째 치고, 말도 안 되는 초월적인 감각이었다.
“놀라긴.”
“너 지금 얼마나 재수 없는 표정인지 알고 있어?”
“하등한 소녀여, 본 공자에게 열등감 가질 필요는 없도다.”
“닥쳐, 그때는 본실력 아니었거든!”
그걸 떠나서 무진을 알면 알수록 미친놈 같았다. 그간 함께해 왔던 추억들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게 대체 뭐지?
“속인 거 아니고, 안 물어봤잖아.”
“속인 거나 마찬가지지!”
“내가 너보다 강해, 그러면 믿었고?”
“……그거야.”
권왕유가의 48대손으로서 지수는 장담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평범한 아이들과 칠대가문의 후예는 격이 다르니까.
“대체 언제부터야?”
“널 만나기 전부터겠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인 걸 어쩌겠어.”
무진이 무가나 길드에 속해 있었다면 모를까, 지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세력에 속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거늘, 미래의 무진을 알기에 고개를 저었다.
“한숨 쉴 거 없어. 동료가 강하면 좋은 거잖아.”
“하나도 이해가 안 되니까 문제지.”
“세상이 변했잖아. 이해의 관점이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네.”
던전과 마물이 튀어나오는 세상이었다. 이전의 세대라면 믿기 힘든 괴이한 현상들이겠으나, 지금에 와서는 어떤 사태가 일어난다고 해서 아예 믿지 못할 영역까지는 아니었다.
“전생, 빙의 아니다.”
“독심술사야!”
“일단 표정부터 관리해라. 너무 티 나.”
“……그럴 리가!”
지수는 인정하지 못했다. 돌아오기 전이라면 모를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돌아왔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니, 수치이자 모욕이었다.
그래서 더 믿어지지 않았다.
회귀, 전생, 빙의가 아니고서야 왜 이렇게 강해!
설마 날 때부터 초천재!
“그게 맞아.”
“뭔 줄 알고?”
“지상 최강.”
“……허, 미친놈!”
뻔뻔함은 지상 최강이긴 했다.
무진은 나름의 조크를 담았을 뿐이었다. 다만, 지수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자 선을 잠시 넘고 말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지상 최강은 너무 나갔을 수도 있었다. 이 세상의 절대자로 분류되는 12명의 초인과는 겨뤄 보지 않아서 확신이 서진 않았다.
‘딱히 질 것 같진 않지만.’
다만, 무력과 달리 특수 속성과 숨겨진 장비까지 고려한다면 단련해야 할 여지가 많았다.
아버지의 뜻대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고려하지 않을 부분이나, 이제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 발을 들였다.
이왕지사 시작한 이상, 최고가 되어야 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존재로서.
그 전에 동료로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인벤토리.”
“……?”
무진의 영창에 좁은 공간이 생겨났다. 크기는 가로세로 50cm가량으로 대단치 않았다.
반면, 지수의 놀람은 대단치 않은 수준을 초월했다. 동그랗게 번뜩인 동공, 벌어진 입술이 현실을 맹렬히 부정하고 있었다.
“각성한 거야?”
“응.”
“……또또또! 날 속였어!”
“또또또라니! 물어보지 않았잖아.”
대체 얼마나 많이 감추고 있는 거냐고!
얼레, 아무것도 몰랐네!
지수는 머리에서 쥐 나는 기분을 만끽해야 했다. 이 빌어먹을 녀석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갖추었다.
그러고서 본인은 보통이라는 저 표정은, 솔직히 킹받게 했다. 난 원래 대단한 사람이란 자부심까지 전해져 속을 긁는다.
그게 또 사실이라 더 열 받기도 하고.
“너도 마찬가지면서 놀라기는.”
“나하고 너하고 같아!”
“혹시 아줌마의 숨기고 싶은 은밀한 비밀 같은 거야?”
“……시끄러워!”
“조용히 물었어.”
“닥치고 말해.”
“그런 굉장한 속성은 못 들어 봤는데?”
말싸움으로 지수는 무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주먹질을 해 봤자, 결과는 명확해진다.
참고로 무진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주의였다.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이런 점은 좋아졌다. 남녀의 물리적인 힘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각성자의 성별에 따라서 매 맞는 남자도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런가, 아버지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아련함과 난감함이 교차했었다.
“예로부터 싸우면서 정든다고 하잖아.”
“이, 야만인!”
“그러려고 여기 데려온 거 아냐?”
“너 원래 이렇게 재수 없는 인간이었어?”
“맞구나.”
이곳만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훈련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드물었다. 당장 던전을 들어가는 것이 레벨업이나 훈련에 최적이기는 하지만, 아카데미를 정상적으로 수료하지 않으면 어려웠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일정 수준 이상 평가를 받지 못하면 통상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아지트에 데려온 이상 은밀히 몸과 몸의 대화를 해 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솔직히 궁금하기는 했다. 각성자의 진정한 능력은 특수 속성을 발휘할 때이기도 하고.
“대체 언제부터 각성했던 거야?”
“열세 살 때.”
“미친!! 거짓말!!”
“놀랄 일이야?”
“개자식!”
각성 시기는 열일곱 살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했다. 한데, 열세 살이라니 상식적이지 않았다.
무진이 어째서 그토록 강했는지 이해가 되는 한편…… 응?
“그런데 인벤토리가 왜 그 모양이야?”
“1레벨이니까.”
“……?”
이해가 되면서도 안 되는 현실이었다.
열세 살에 각성했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레벨업이 가능했다. 잠재 등급에 따라서 능력치의 비율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레벨업을 했어야 정상이다.
무진의 인벤토리는 1레벨 수준에 불과했다. 일정 단계의 레벨업을 이루지 못한 처참한 상태. 용을 벨 칼로 지렁이도 베지 않은 격이다.
“한 번도 사냥하지 않은 거야?”
“알다시피 준법정신이 투철한 편이거든.”
“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잘 지켰다고?”
“평범한 삶에 굳이 레벨업이 필요하진 않잖아.”
법으로 금지를 했다곤 하나, 가문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각성 후 편법으로 레벨을 올릴 기회를 주었다. 가문의 재력에 의해서 레벨 차이가 벌어지는 연유였다.
이 정도 선의 편법은 강하게 처벌하지도 않았다.
국가의 경쟁력이 헌터가 된 시대이니만큼. 가문과 길드에서 로비를 해 법적인 부분을 약화시켜 놓은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곤 하나, 기득권의 특혜는 달라지지 않아 씁쓸한 부분이었다.
‘열 살 때라고 하면 기절하겠군.’
무진은 지수를 통해 내공의 활용 방안을 알아낸 후 각성 입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몸으로 스며드는 각성 입자의 반응에 따라서 각성 등급과 종류가 달라졌다.
일반인의 경우 각성 입자가 흡수되기는 해도, 그 양이 극히 미미해서 각성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후 각성 입자를 어떤 식으로 해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지를 알아냈고 성공했었다. 그 결과 각성자와 일반인의 신체 능력에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신체 능력이나 공력과 달리 레벨은 던전 공략과 사냥이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각성자와 빌런을 죽여도 되지만, 그런 짓을 독단적으로 할 순 없다.
“특수 속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
“그럴 수도 있나?”
“너무 일찍 각성해서 그럴지도.”
“랜덤인 경우도 간혹 있다고 들었으니까, 실망할 필욘 없어.”
희박하긴 해도 특수 속성이 없거나 정해지지 않는 예가 있었다. 다만, 무진이라면 특별한 속성이 나오지 않았을까 기대했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강함이라서 더는 놀라지 않았을 텐데. 그나마 인간적인 부분을 봐서 안도가 되기도 했다.
‘대충 전능이라고 하면 욕하려나?’
이게 참 묘하다.
정해지지 않았지만, 무한의 속성이었다. 어떤 속성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나의 특성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경우도 수두룩했다.
‘무턱대고 흡수한 덕이 컸지.’
각성 입자의 성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빠르게 흡수하면서 종류의 한계를 정해 놓지 않았다. 그 부작용으로 생겨난 속성이 무속성 전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