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수제자(3)
권왕에겐 예상치 못한 외통수였다.
‘이 녀석, 볼수록 대단한 녀석이구나.’
단련된 신체만으로도 굳건한 신뢰를 주건만, 재밌는 구석까지 있었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재미없는 장남보다 대화도 잘 통하고.
“하나, 마도를 잇는 일이 가볍지 않느니라. 이제 막 무공을 익혀 나가는 녀석이 욕심이 많구나.”
“형님과 달리 주변의 시선이 좋지는 않습니다. 다들 굴러들어 온 놈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고 보겠지요. 하지만 제가 형님의 수제자가 된다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보기보다 영악한 구석이 있군. 그렇다 하나, 가볍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지.”
“다 떠나서 형님을 만나기도 편하고, 운동도 맘껏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크흠, 그건 그렇지.”
운동은 혼자 할 때보다 둘이 할 때 효율적이었다. 같이 들어 주면서 자세도 봐 주고, 경쟁심도 생기고. 근래에 근육량이 정체기에 들어선 권왕으로선 무진과의 운동이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었다. 반년간 변함없던 근육량이 요 며칠 0.2g이나 늘었다.
“아니면 말고요. 저도 싫다는 분께 매달리진 않습니다.”
“……누가 싫다고 했느냐, 한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다, 이놈아!”
“화염마도의 가치는요?”
“그딴 거야 적당히 하면 돼.”
“알겠습니다.”
권왕은 차마 가르치기 귀찮다고는 하지 못했다. 더욱이 아까 운동할 때 무진의 트레이닝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다. 체계적이면서도, 근육에 스트레스를 적당히 주었다. 간극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럼 맛보기로 보고 싶습니다.”
“오냐, 화염마도의 신세계를 보여 주마!”
무진의 청에 권왕은 쾌재를 불렀다. 여기서 이론적인 가르침을 달라고 했으면 무척이나 난감했을 것이다. 실제로 권왕의 화염마도는 6계식까지 가능한 중위급의 마법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능력 자체가 특수 속성으로 얻어진 것이라 던전 공략과 사냥이 아니었으면 5계식도 어림없었다.
당연히 이론적으론 초보 마법사를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다. 그것도 마도사를 건전하게 데리고 와서 과외를 받은 결과였다.
화르르르르!
불주먹!
불발차기!
불니킥!
불팔꿈치!
등등…… 이런 식이다.
권왕가의 무공에 화염을 도금한 형식이라고 할까. 이럴 거면 하나만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누가 봐도 내력과 마력의 낭비였다.
압도적인 내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마력을 어거지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치지 않는 것은 평소 웨이트, 유산소 트레이닝의 효과였다.
‘어떤 차이인지는 알겠어.’
개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공과 마법의 차이를 책으로 공부했었다. 내부에 힘을 쌓는 무공과 외부의 힘을 가공하여 사용하는 마법. 그러나 일정 경지를 초월하면 무공도 마법과 같은 외력을 쓸 수 있었다.
‘스킬적인 면이 강한데.’
무진도 이론적인 설명을 기대하진 않았다. 특수 속성은 각성자 고유의 능력이었다. 스킬처럼 각인되는 형식이라, 이론적으로 풀어내기가 어려웠다.
‘동화율은 비슷해도, 실제 구현하는 방식은 달라.’
스킬로서 형성이 되었기에 그 안에 풀어 가는 과정인 마법의 수식을 모르면 어려웠다. 단, 모든 일이 그렇듯 수식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무진은 수식의 흐름을 읽어 내며 복사와 검토를 병행해 나갔다.
‘재밌네.’
무공은 경지에 도달한 상태여서 완숙해지는 단계였다. 더 강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깨달음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그에 반해 마법과 정령술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알아 가는 재미가 있었다.
“어떠냐, 나의 화염마도가?”
“대단합니다. 닿기만 해도 맞아 죽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제야 제대로 볼 줄 아는 녀석이 나타났구나!”
“돼지 눈에 돼지가 보이고, 마법사 눈에 마법사가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럼.”
칭찬이 이어지지만, 핀트가 약간 이상하긴 했다. 화염 마법을 사용했으면 타 죽어야 마땅할 텐데, 맞아 죽는 것부터가 언밸런스였다.
“다행히 감은 잡았습니다.”
“호오, 아주 제법이구나.”
“그렇습니까?”
“아무렴, 실제로 무인은 마도를 익히기가 훨씬 까다로워.”
궁극에 이르면 권능의 영역이 되기에 무공과 마법이 비슷할 수도 있으나, 입문의 방식 자체가 다르기에 무인은 배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종의 선입견과 방식의 차이로 오는 부적응이었다.
화르르!
응?
권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무진의 주변으로 형성된 화기가 느껴졌다. 무공으로 이룬 삼매진화였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는다. 이 기운의 흐름은 자신의 화염마도와 결이 같았다. 완숙하지 않다고 해도, 이 자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어떻게?”
“제 나름대로 형님의 마도를 따라 해 보려고 한 건데,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요?”
“지금 보고 따라 했다는 말이더냐?”
“그런데요.”
딱히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무진의 덤덤함에 권왕은 순간 주먹을 날릴 뻔했다. 이런 거 보면 지수의 피가 어디에서 유전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격세유전의 좋지 않은 예였다.
“좀 하는구나.”
“단지 느꼈을 뿐입니다. 체계적인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사부님.”
이제 넌 내 사부다.
호칭부터 바꾸어 버렸다.
무진의 강력한 올가미에 권왕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어느 정도 보여 주고, ‘어떠냐?’ 하며 우쭐해하려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끄응!
졸지에 사부가 되어 버린 권왕이었지만, 형제애를 내세우기엔 무진의 마도가 범상치 않았다. 마법을 아예 모른다면 모를까, 권왕도 수박의 겉은 닳도록 핥았다. 상근이 현역보다 군대를 많이 알듯, 어설프게 알고 있어서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천재겠지.’
마법을 구사하는 녀석들이 봤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인재가 분명하다. 어설프게 아는 자신도 이럴진대, 마도사급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재능이 있는 녀석이 제 발로 찾아온 이상 응당 반가워야 하는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거라!’
무진의 존경 가득한 초롱초롱한 시선에 권왕은 차마 싫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졌다. 여기서 난 그냥저냥 마법사라고 하면, 여태 한 말들 전부 개소리가 되어 버린다.
집에서만 떠들었다면 모를까, 대외적으로도 화염의 마도사라고 떠벌렸었다.
‘어디 거절해 보세요.’
무진은 권왕의 복잡한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사는 분이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자아도취에 빠져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이 있는데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무진의 예상대로 권왕도 거절치 못했다.
“좋다. 이제부터 너는 화염마도의 정식 계승자다.”
“사부님의 위명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데, 이것도 구배지례 같은 걸 올려야 되나요?”
“흠, 올려야 되지 않을까?”
“마도는 서양에서 유래가 되었는데요.”
“……그렇지.”
동양의 주술이 비슷하다고는 하나, 마도학은 서양에서 발달이 되었다. 그런 공인된 진실까지 외면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마나의 맹세 같은 걸 하면 될까요?”
“오오, 그렇지. 그렇게 해라.”
“그러려면 마나를 쌓는 이론적인 방식이 필요한데, 바로 할까요?”
“크음! 이런 중요한 일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법이다. 그 문제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무공이 아닌 마도를 가르치게 될 줄 몰랐기에 권왕은 준비가 필요했다. 이 자리에서 이론을 설명했다가는 바로 실력이 뽀록날 수가 있었다.
이제 막 사부가 되었는데, 본전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권왕이 뻔뻔하기는 해도, 본인 입으로 개털이라고 자백하진 못했다.
“형식이 뭐가 중요합니까. 사제지간이 됐으면 족하죠. 하물며 우리는 한 형제잖아요.”
“그렇지. 예로부터 껍데기를 신봉하는 놈치고 알맹이가 성한 놈들을 못 봤다.”
무진이 대충 그러자고 하니, 권왕은 넙죽 받아넘겼다. 본인도 형식을 그리 중시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되레 반기기까지 했다.
‘됐어, 아주 좋아.’
믿음직스럽지 못한 스승을 얻는다면 제자로서 앞날을 걱정해야 마땅하나, 무진은 권왕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단언했다.
‘마법은 돈이 많이 든다고 했지.’
무공도 공력을 키우려면 돈이 들기는 해도, 마법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다. 무공으로 자수성가하는 비율이 높은 것만 봐도.
비교하자면 축구와 야구 같았다. 축구는 공만 있으면 되지만, 야구를 하려면 장비부터 챙겨야 했다.
무진은 굳이 돈 드는 방식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여태까지 모든 일을 독학으로 해냈었다. 독존적인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진은 권왕의 마도를 탐색하고, 이론적으로 갖추어 나갈 계획이었다.
‘함께 배워 갈 필요가 있지.’
권왕의 화염 마법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정말로 수박의 겉만 핥고 있었다. 일례로 화염 마법을 보여 주기에 급급했다.
무진은 화염 마법을 단순히 형태만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융합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지수의 걱정을 덜어 줄 필요도 있고.’
사실이든, 아니든 지수는 혼자서 모든 걸 떠안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함께할 동료라면 조금은 믿고, 의지할 수도 있어야 했다.
“사부님 예습을 할 겸 마도서적을 구해야 합니다.”
“예습은 중요하지…… 얼마면 되느냐?”
“저야 모르지요.”
“알아보고 구해 주마.”
마도서적의 가치는 일단 비쌌다. 무공서적처럼 시중에 나도는 삼재공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법의 입문이 어려운 연유였다.
사실 마법은 스승이 마나의 길을 터 주지 않으면 입문부터 난항에 빠진다. 무진처럼 처음부터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권왕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문은 이런 점이 좋아.’
과외를 받으려면 학습 자료를 학생이 구매해야 했다. 아니면 돈을 내고 과외 선생이 준비하거나. 반면 무인가의 사제 관계는 조건 없는 베풂을 기본으로 한다.
왜냐? 스승은 어버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는 스승을 부모님처럼 대하고, 스승은 제자를 자식처럼 대한다.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돈 달라고 할 수 있겠나, 양아치가 아니고서야.
학문적 수양이라면 무진도 돈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살 돈이 있었다. 반면 마도서와 재료를 사려면 어지간한 중견 기업이 아니고선 어림도 없었다.
무진은 아낌없이 주는 호구…… 사부님을 구입…… 사제지간을 맺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쪼록 권왕가의 넉넉한 인심이 기대되었다.
“오늘같이 좋은 날은 이대로 끝낼 순 없지요. 등을 조지죠.”
“기특한지고, 오늘 한번 등을 쪼개 보자!”
방금까지 난감해하던 권왕은 근심 걱정을 털어 냈다. 등을 조질 수 있는데,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들이쉬고, 내쉬고.
사제 간의 호흡까지 완벽했다. 단순히 외근만 키운다고 보면 오산이다. 무진과 권왕은 내근이 튼튼했다. 독자적인 헬스심결을 운용하여 기반부터 조졌기에 일반적인 운동 능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후, 헬스심결은 몸 만드는 기본으로 자리를 잡게 되리라.
순수하게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심공이기에 보편 지급이 가능했다. 다만, 사전에 특허등록은 필수였다. 보편 지급이 된다고 해서, 표절은 옳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