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20화 (21/374)

20. 서열전(1)

“어쨌다고?”

“성질 좀 고쳐 줬어.”

무진은 인벤토리에 넣어 둔 믹스커피를 마시며 유지철과의 다툼을 소상히 밝혔다.

부끄러운 수치 플레이를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동료라면 내막은 알고 있어야 했다.

“하아, 안 봐도 뻔하지.”

“사지 멀쩡하니까, 오해는 하지 마.”

사지만 멀쩡하면 다냐!

무진은 지수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유지철의 사특한 의도에도 몸성히 보내 줬으면, 감지덕지해도 부족했다.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챙겨 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살다 보면 흑역사 하나쯤은 괜찮잖아.

흑역사는 공유해야 제맛이고.

“그리고 이거 보내 줄게.”

“이게 뭔데?”

유지철과 나눴던 대화와 전화 목록이었다. 무진의 바지 끄덩이를 잡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대련에서 졌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추했다. 하지만 일련의 대화를 들어 보니 이해가 되었다.

“협박한 거잖아!”

“난 순수하게 인벤토리의 기능이 궁금했을 뿐이야. 전부터 아카데미에 갈 줄 알았으면 미리 공부했을 텐데. 쯧쯧쯧!”

개개인에 따라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인벤토리의 주목적은 다용도 탕비실과 같은 용도였다.

개인용 저장 도구를 협박 수단으로 사용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극심한 폐소공포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해진 유지철이 불쌍할 따름이다.

“게다가 우린 선후배를 초월한 비밀 친구거든. 친구끼리 도와줄 수도 있지.”

“도움은 무슨, 그건 그냥 빵셔틀이잖아!”

“그거라도 시켜 주면 고마워해야지.”

“하아, 내가 죄인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니다.”

지수는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무진의 사악함이 느껴졌다. 멀쩡한 녀석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았나 후회가 밀려왔다. 한데 이 모습이 자연스러워서 오싹했다.

“다들 정신이 드는 모양이야. 나도 구경 좀 하자.”

“또 뭘 빼먹으려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어련하시겠어요.”

무진은 지수의 능청스러운 대응에 미소를 지었다. 세상 근심 혼자 쥐고 사는 경직된 모습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이었다. 이제야 동료로서 대접을 좀 받는 것 같다.

후우우!

명상을 마친 혜진은 눈을 뜨자마자 지수를 보았다.

지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쉬었으면 다시 해야지.”

“사악해!”

“전혀, 나는 네 깨달음을 응원해. 혹시 겁나니?”

“어서 해!”

무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혜진의 성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도발이었다. 자기 딴에는 감추려고 노력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한 골드미스의 안목을 피하긴 어려웠다.

‘좀 곤란하네.’

사랑엔 국경도 없다지만, 나이 차는 있었다. 한데, 이게 또 애매하다. 지수는 본인 피셜 서른아홉 살인 데 반해 현재 육체는 열일곱 살이었다. 간혹 보여 주는 주책이 귀여울 때가 있기는 해도.

‘80살에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그건 좀.

무진도 감당하기가 벅찬 연령이었다. 솔직히 그 나이에 자신을 노리면 도둑년이지.

그런데 지수가 솔직하게 말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투른 고백을 기대했다가 지수가 작정하고 달려들었으면…… 아찔하다.

채채챙, 꽈아앙!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혜진은 지수의 일방적인 공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검신류를 일검에서 칠검까지 전력으로 펼쳐 내지만 역부족이었다. 검술만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자, 특수 속성 분검(分劍)을 꺼내 들어야 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진 않았다.

“언제까지 기절한 척하고 있을 거야?”

“쳇, 징그러운 자식!”

유정이 일어서며 투덜댔다. 지수와 혜진의 2차전이 시작될 때 의식이 돌아왔었다. 하지만 일어서면 또 대련할 것 같아서 엎드려 있었다. 산에서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하라고 했는데, 그 곰이 손가락으로 기식을 살핀 격이다.

“커피 마실래?”

“이 와중에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좋으면서 투덜대긴.”

“좋기는 어디가? 난 복날 개 맞듯이 맞았다고!”

“솔직하지 못하구나.”

“……너희 둘, 대체 뭐야?”

유정은 무진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압도적인 폭력이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약점을 찾아냈다. 만약 지금 알지 못했다면 후일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난 강무진, 쟨 유지수.”

“누가 그런 걸 알고 싶데! 어떻게 너희 같은 애들이 소문이 나지 않았냐고?”

“관종이 아니니까.”

“……나도 아니거든!”

차마 강력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유정이었다. 여하튼 또래보다 한 단계 이상은 강한 지수의 실력은 놀라웠다. 저 정도면 칠대가문 내에서 소문이 나고도 남았다.

“그러는 넌! 입학시험에서 스쿼트 하는 게 제정신인 것 같아?”

“방심을 유도한 거지.”

유정은 무진의 개소리에 설득당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또 애매하다. 통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엔 강인한 인상을 새겼다.

어느 정도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면이 없는 생도는 다들 힘만 센 무식한 놈으로 알고 있을 거다.

‘그래, 얘는 그래도 약점이라도 있잖아. 그런데 쟤는 너무한 거 아냐?’

혜진이 각성한 후 보여 준 검공은 대단했다. 솔직히 이전과 비교하면 완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반격은커녕 일방적으로 밀린다.

꽈아앙!

권기?

저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혜진이도 검기를 쓰고 있지만, 지수의 권기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같은 기운이라도 내력의 운용 능력에서 격이 벌어졌다. 도저히 같은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노련함이었다. 번뜩이는 날카로움과는 다른 관록이 느껴졌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유정이도 만으로 서른아홉 살이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새파랗게 어릴 때는 모른다.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꼭 지나고 나서 후회했다. 막말로 미용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20대와 40대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뭔 개소리야!”

“싫으면 일단 맞자.”

이 새끼가!

무진의 도발에 유정은 발끈했다. 비록 지수에게 일방적으로 처맞다가 기절하긴 했어도, 무진에게 무시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내기하자고 할 땐 도망치고선!!”

“여긴 보는 사람이 없잖아.”

보는 사람이 많아서 실력을 숨겼다는 신비주의에 유정은 콧방귀를 뀌었다. 다들 주인공 본색을 원하나, 현실은 조연도 안 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이상과 망상으로 현실을 착각하면 불행할 뿐이다.

“내기를 원한다면 좋아, 일전에 한 내기를 더해서 이기면 까 줄게. 단, 내가 이기면 계속이야. 자신 없으면 얌전히 뒈지시든지.”

“와, 이 망할 새끼야!”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럴 줄 알고, 무진은 선공을 양보하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내지른 권격에 풍압이 발생했다. 맞았으면 안면이 박살 날 위력이었다. 종잇장 차이로 무진의 선수를 피한 유정은 신색을 회복하고 반격했다.

“죽엇!”

“어딜.”

오른 주먹이 내지른 방향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발을 쓰려고 했다. 순간 유정은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어느새 무진이 방향을 잡고,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쐐액!

파앙!

당기지 않고 제자리에 내지른 무진의 레프트가 유정의 어깨를 노렸다. 그 즉시 유정은 기류를 타듯 공간을 벌리려고 했다.

퍽!!

무진의 섬광 같은 레프트를 피하려고 했을 때, 오른쪽 팔꿈치로 내지르다 멈췄던 유정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세게 친 것 같지 않은데, 팔꿈치가 돌덩이였다. 다리에 감전을 당한 고통보다 먼저 든 감정은 의문이었다.

퍽!

퍼퍽!

무진의 공격이 연이어 적중했다. 전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운 가벼운 펀치, 팔꿈치, 킥이 유정을 두들겼다.

“어째서?”

“속도가 전부는 아니니까. 지금도 속도만으론 네가 더 빨라. 하지만 그뿐이야.”

“어디서 건방을 떨어!”

“그리고 넌 너무 정직해.”

자기 딴에는 도발에 넘어간 척 유도했겠지만, 무진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에 지나지 않았다.

유정의 가장 큰 단점은 회피력에 대한 의존이나, 자잘하게 살펴보면 거리 싸움의 무지에 있었다. 본능으로만 싸우다 보니, 계산적으로 싸워 보지 않은 티가 났다.

무진은 속도로 유정을 잡아채지 않았다. 스텝으로 간격을 조절하고, 표정과 몸짓으로 페이크를 걸었다. 유정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하여 방향을 잡고 움직이니 빠를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유정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결정타를 피하고는 있었다. 재능만 놓고 보면 유정도 최상위 티어였다.

휘리리릭!

현란한 움직임을 무진이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초조한 쪽은 유정이었다. 어디로 움직여도 무진이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이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반격이 들어와서 손해만 보았다.

파앗, 큭!

뭔 놈의 몸뚱이가!

어쩌다 공격이 들어가도 몸뚱이가 금강불괴였다. 어지간한 공격으론 흠집도 나지 않는데, 정확한 타격이 현재로서 불가능했다.

무진은 어중간한 공격은 몸으로 대 주고, 필요할 때만 회피와 방어를 했다. 현재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효율적인 공수였다.

어?

왼쪽이었는데, 오른쪽이다.

아, 진짜!

그러다 보니 결계의 끝에 몰렸다. 왜 이곳으로 왔는지 눈치를 못 챘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는커녕 허둥댔다.

이제는 알았지만, 늦었다. 예측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회피 공간을 갉아먹힌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유정이는 백두산 천연 암반수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백치미가 있어.”

칭찬 같은 욕이었다.

아니 욕 같은 칭찬!

쌍욕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어제 먹은 걸 토할 뻔했다. 여태 노렸던 몸통의 외곽이 아닌, 무진의 리버블로우가 유정의 복부를 두들겼다.

맞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왜 권투를 오래 배우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아닌 복부를 가리는지 알게 되었다. 얼굴은 헤드기어의 도움이라도 받지, 간장치기에 걸리면 숨도 못 쉰다.

툭!

힘이 빠져서 쓰러지려고 할 때 무진의 레프트훅이 유정의 턱을 깔끔하게 스쳤다.

풀썩, 허어어!

호랑나비 스텝을 추다 자리에 주저앉은 유정은 허망한 눈으로 무진을 보았다. 다시 일어서기는커녕 눈깔이 흔들려서 균형조차 잡지 못했다.

“정령을 쓰지 않았으니 비겼다고 해 줄까?”

“됐거든.”

유정도 속도가 전부가 아니란 걸 체감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체감과 실제는 엄연히 달랐다. 개나 소나 다 할 줄 알면 명함 내밀고 다니지 못하지.

“그렇다고 너무 수 싸움을 하면 안 될걸.”

“방금까지 수 싸움이 안 된다고 했으면서 어째서?”

“직감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도 없겠지만, 장점을 버리면서까지 단점을 극복하다간 죽도 밥도 안 돼.”

“그래서 어쩌란 거야?”

“지수가 이럴 땐 그러더라고.”

“뭐라고 했는데?”

“잘.”

“……지랄을!!”

그것도 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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