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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57화 (58/374)

57. 원수를 사랑하라(3)

‘싹수없는 것들까지 키워 줄 필욘 없지.’

무진은 철저히 실익을 따졌다. 서푼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싹을 피우기 전에 잘라내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지수의 머리가 좀 더 똑똑했으면…… 허?’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대로 방관하기보다 뇌를 진화시키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지수의 부족한 지능지수를 끌어 올린다면 잊어버린 기억들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관조자의 영역으로 영안을 개방하여 영혼의 흔적을 읽어 내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이건 잘못 사용하면 백치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억이란 본인의 주관에 의한 자기방어기제로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을 잊으려는 인간의 본능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지수에 대한 고민을 정리할 즘, 소란이 일었다. 예상한 일이라 놀라진 않았다.

며칠 전부터 배준상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제야 결심이 서서 접근하다가 지수, 혜진, 상원, 유정, 4인방에게 차단당하고 말았다.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좀 비켜 줄래!”

“주군께서 할 말이 없으시다.”

무진이 언제부터 4인방의 주군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군단에 늦게 합류해서인지 몰라도, 의식적으로 과잉 충성을 보였다. 그런데 무진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자기들이 결정하고 있었다. 이게 충성돈지, 나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대지 마라.”

“예, 주군.”

이건 못 참지.

무진의 명으로 4인방이 물러서긴 했지만, 배준상에겐 여전히 허들이 높았다. 눈앞에 있지만, 너무 먼 당신이었다.

찌릿!

움찔!

지수, 혜진, 상원, 유정의 노려보는 시선에 지은 죄가 있었던 배준상은 눈을 회피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아카데미는 물론 아버지의 길드에도 영향을 준다. 어떻게든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내야 했다.

“제발, 말이라도 하게 해 줘!”

“우린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는 걸 명심해.”

우여곡절 끝에 배준상은 용건을 밝혔다.

적운길, 정우민, 이민용의 눈 밖에 난 이상 무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미 찍힐 대로 찍혀 받아 주는 파벌도 없었다. 게다가 무진을 옭아매는 계획이 실패하는 바람에 무능력자로 소문이 났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잘못했어!”

“사과를 말로 때우려고? 성의를 보여야지. 내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말이야.”

“길드의 창고를 개방해 줄게.”

“뒤로 다 빼돌렸을지 모를 껍데기일 텐데.”

“……그렇지 않아!”

아버지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혈천 길드, 창황가, 화염가가 당분간은 주변을 의식해서 손을 쓰지 않고 있지만, 차후에는 알 수 없었다. 소원하다는 소문만 나더라도, 중소 길드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어떻게든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든가, 기댈 방수를 찾아야 했다.

“믿어야 하나? 아무래도 쭉정이만 남았을 것 같단 말이야.”

“네가 만족할 만한 물건을 준비해 볼게.”

“만년삼왕 정도는 되나?”

“……그건 좀!”

만년삼왕은 칠대가문이나 대형 길드에게도 부담이 되는 영약이었다. 하물며 타이거 길드에겐 어림도 없는 조건이었다. 그걸 대수롭지 않게 요구하는 무진의 파렴치한에 배준상은 치를 떨었다.

‘젠장,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전에 길드에서 뜯어 간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욕심이 끝을 몰랐다.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쉬울 게 없는 무진과 달리 배준상에겐 미래가 걸린 중대사였다.

“좋아, 네 사정을 봐서 할부로 해 줄게.”

“……고마워.”

만년삼왕을 채울 때까지 영약, 장비, 아이템을 할부로 받아 주겠다는 뜻이다. 시일이 길어질수록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고리대업이었다. 금리가 솟구치는 시기에 영끌로 변동 금리 30년 대출을 받은 꼴이다.

배준상은 걸려도 지독한 놈에게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은 이 정도면 봐줄 만도 한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됐고, 이제 지수 차례네.”

“……뭐?”

무진의 사악함에 배준상은 얼어붙었다. 겪어 보지 못한 미증유의 개새끼가 분명했다.

허!

유정, 혜진, 상원, 4인방마저 혀를 내둘렀다. 사람의 피를 말리는 최악의 정석 루트였다. 아카데미 내내 배준상의 험악한 미래가 그려졌다.

‘……어쩌다가!!’

***

수업을 마치고 교관실로 돌아온 사내는 교보재를 탁상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하아!

피곤함이 묻어 나오는 한숨이었다. 의자에 앉은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의 그를 아는 교관이나 생도라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하고, 충실한 교관으로 인망이 좋은 편이었다. 실제로도 아카데미에서 다툼은커녕 언쟁조차 하지 않은 온화한 교관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근래엔 한숨과 분노가 번번이 차오르고 있었다. 개인 교관실 밖에선 보여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놈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눈에 띄지라도 말 것이지, 앞에서 알짱거리니 속이 뒤집혔다.

‘이 새끼는 내 수업을 왜 듣는 거야?’

수업엔 충실한 편이나, 환술은 인기 많은 수업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배우기는 까다로운데, 잡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배워 두면 현장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업이긴 하다.

어쨌든 가르치긴 해야 했다. 성실한 교관으로서 이름을 알렸으니, 합당한 능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수업이란 수업은 전부 듣고 있으니, 나만 노렸다곤 할 수도 없고!’

인기의 유무에 상관하지 않고 전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관점에 따라서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사람의 몸이 하나인 이상 모든 수업에 완벽을 기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한데, 수업을 대충 듣지도 않았다. 내용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부족해 예습, 복습이 완벽했다.

평소라면 잡학으로 치부해 다른 교관들의 무시를 받는다. 따라서 적당히 가르치면 그만이었다. 수업을 듣는 생도들도 그 이상을 바라진 않는다.

그런 대다수 생도와 달리 이놈은 학습의 질, 양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

어이없게도.

‘내 밑천을 빼먹고 있다니!’

우등생이라며 칭찬해야 마땅하나,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데, 잘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맘에 들지 않았다. 교관다운 교관이란 평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전적으로 자신이었기에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 했다.

이걸 두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 하는 건가?

병신 같은 자가당착이라 더 화가 치밀었다.

스마트한 일 처리로 정평이 난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어서 연산 시 적당히 허수를 넣어 환술을 꼬이게도 했었다. 이러면 보통은 포기하거나, 질려 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된 놈이 불완전한 술식을 완성해 버렸다. 그날 일부러 잘못 알려 준 거냐고 따져 물었을 때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교관님, 혹시 일부러?

-당연하지, 네 실력을 시험해 보려던 것이다. 아주 훌륭하구나.

-저도 장난이었습니다.

-하하하, 유머도 타고났구나.

보는 그대로 건방진 놈이었다.

하나, 겉으로는 훈훈한 사제지간으로 비쳐야 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엔 어찌나 놀랐는지, 그다음부턴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

‘환몽은 가르칠 생각이 없었는데!’

일이 꼬이다 보니, 횡설수설하다 내뱉고 말았다. 차라리 포섭한 생도들이라면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때문에 가지고 있는 패를 날리고, 활동 범위마저 좁아졌다.

그뿐인가, 상부로부터 질책과 위협을 받았다. 다음에도 실패한다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죽이고 싶다!’

한순간도 죽이고 싶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살심(殺心)이 치솟았다. 그런데 성질대로 행동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교장이 은밀히 교관들의 뒤를 조사하고 있었다. 자칫 꼬리를 잘라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젠장!!’

설상가상으로 상부로부터 당분간은 자중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너 때문에 긁어 부스럼이 됐다는 뉘앙스가 풍겼었다.

‘하필이면!’

창천 길드의 길드장이 죽으면서 그나마 파도를 피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그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 결과적으로 악수였다.

‘이 새끼를 어쩐다?’

사건의 중심이었던 생도이니만큼, 손을 대는 순간 잠잠해지기는커녕 화를 키우는 꼴이 된다. 그건 상부에서도 원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렇더라도 기분 나쁜 놈임은 분명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사건건 방해가 되고 있었다. 이번 일도 사실은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안해 낸 계략이 아닌가.

‘게다가 만만치가 않아.’

내력과 속성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판도, 정확히 따져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최상위권과 비교하면 부족할 뿐이지, 그렇게까지 떨어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그런데 무공, 마도, 정령, 주술, 환술,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제법 놀라운 성취였다.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최상위라고 하기엔 형편없지만, 그 모든 걸 조합해 놓으면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어쩌면 속성이 강화, 조합, 합성일지도.

무엇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단 말이야.’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익히게 되면 정작 토대가 되는 기반이 무너지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방향을 잃고 가진 재주마저 잃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반면에 이놈은 여러 가지 능력을 복합적으로 최적화하는 데 빼어났다.

‘그래도 무공이 기반이란 건 변하지 않겠지.’

무공을 토대로 하여 다른 여러 능력을 부수적으로 사용했다. 실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 헌터에겐 통하지 않겠으나, 생도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무공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도 너무 많아서 대비하기가 어렵다. 타 능력이 아예 비루하면 모르겠지만, 평타는 치니 환장할 수밖에.

‘빌어먹게도 배경이 나쁘지 않아.’

권왕가에서 전폭적으로 투자하고, 아카데미 교장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더욱이 이놈은 이런 유착 관계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자기한테 이득이 되도록 유도하며, 적정선을 넘지도 않았다. 불리한 형국을 유리하게 이끄는 아주 영악한 놈이었다.

‘공부머리만이 아니군.’

현재를 알려면 과거를 살피기 마련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선입견은 항상 존재하며. 과거를 잘못 살면 현재의 불이익도 당연했다. 반성하고, 죗값을 치렀으니 끝난 거 아니냐는 말은 본인의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여하튼 초등학교, 중학교 성적이 완벽했다.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이며, 교내의 상이란 상은 전부 휩쓸었다. 그야말로 공부로는 초엘리트였다. 그대로만 커도 대기업의 임원은 될 만한 자질이었다.

원래는 아카데미에 오지 않으려고 했단다. 생활기록부에도 장래 희망이 대기업 임원이었다.

‘어떤 연놈이 바람을 넣은 걸지도.’

하나, 공부와 현실은 괴리감이 크다. 공부 잘한다고 일까지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물며 아카데미는 공부와는 별개의 분야였다. 전투 수행 능력은 속성, 경력, 센스가 결합이 되어야 했다.

보통은 미숙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놈은 그런 점이 거의 없다. 내력과 속성에서 최상위 생도들보다 떨어져 발전 가능성이 부족할 뿐. 그마저도 배경, 인맥, 교섭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나?’

그래서 더 짜증이 치밀었다. 자신의 안목이 통하지 않은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판단을 보류하게 했다.

알면 알수록 화가 치미는데, 이놈은 개인으로 치부하기에는 덩치도 커졌다. 생도들을 합법적으로 패면서 자기 파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조군단이라니!’

그로서도 어이가 없는 파벌이었다.

문제는 파벌에 속한 생도들의 개화에 있었다. 아직은 개화할 시기가 안 됐거늘, 맞다 보니 잠재력이 격발했다. 서열의 수직 상승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차후, 요긴하게 쓰일 재료들이 이놈 때문에 이상한 물이 들어 버렸다.

‘화가 나긴 해도, 쓸 만한 놈이야.’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열불이 터지게 하는 놈이지만, 회유할 수 있다면 그간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었다.

무진을 환술로 회유하여 마조군단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지금으로선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도였다.

‘그래도 죽이고 싶다!’

효율을 따지기 전에 감정이 앞섰다. 그만큼 무진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이놈이 들어오고 나서 원활하게 돌아가던 실타래가 뭉텅이가 되어 버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고통을 맛보게 해 주마!’

당장은 지켜보기로 했다.

발등을 찍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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