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반전(1)
퍽, 푸스스스스!
무언가 날아왔다는 걸 상기하기도 전 옆에 있던 동료의 머리통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슈웅!
푸스스스스!
지정수에 이어 백사근, 조탁경, 이청민의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반응은커녕 동료의 머리 없는 주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주춤, 주춤!
살아남았다고 하기엔 초라했다. 정혼기는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본능처럼 물러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총관의 살인 명령이 떨어진 후, 의기양양하게 무진을 에워쌌었다. 어리다고 죽이지 않을 줄 알았나?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었으니 고통스러운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한데, 능지처참 구속구가 엿가락처럼 찢어지더니, 동료들의 대가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 일련의 사태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부조리가 심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아마추어처럼 왜 그러실까? 무인답게 굴어야지.”
“……다가오지 마!”
“가만히 있었어.”
무진은 구속된 장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주먹을 내질렀을 뿐이다. 하나, 권풍의 대표 명사 격인 소림의 백보신권을 모르는 무인은 없다.
“……신입생도 따위가 어떻게?”
권풍의 잔향을 정혼기도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납득이 안 된다. 1학년 생도가 무형권풍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탑을 등반하지도, 성좌의 선택을 받지도 않았기에 비현실적이었다.
“사술…… 그래. 사술을 썼구나!”
“맞아.”
“그럼 그렇…… 헉!”
“잘 가.”
대화는 숨어 있는 녀석을 끌어내기 위한 시간 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용도를 다했으니 폐기 처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차라리 말로만 떠들었다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푸스스스스!
무진은 정혼기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다. 먼저 간 동료들처럼 차별 없는 대우였다.
저승에선 평등하게 살라고.
권풍을 날린 직후, 무진은 신형을 숨겼다.
휙!
목표물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숨어서 관찰하던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떻게?’
속성, 스킬, 마법, 아이템을 사용했다면 아무리 미세해도 마나 파동이 생긴다. 사내는 마나 감지력에 있어선 매우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파동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의문이 들었다.
‘이놈은 대체 뭐지?’
그는 마스터의 명을 받아 권왕을 감시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 그 옆에서 깔짝대는 애송이는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유경운의 직속 무인들이 머리 없는 시체가 되었다. 착시 현상인가? 예상을 벗어난 돌연한 사태였기에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때 마침 정혼기의 머리통이 사라졌고, 애송이마저 시야에서 놓쳤다. 이전에 보고받은 내용과는 판이하기에 판단이 늦었다.
만약, 이 사태가 우연이 아니라면 이 애송이는 위험했다. 반드시 마스터에게 보고해야만 한다.
‘어디 있는 거냐?’
“여기야.”
……?
속으로 말했다.
대답이 들려와서 안 되었다.
그것도 등 뒤에서.
“……어떻게?”
“Goodbye.”
잠깐, 이라고 외치기도 전 무진의 두 손에 사내의 머리가 돌아갔다. 180도가 아닌 1,090도로. 세 바퀴 반 정도에서 각을 정확히 쟀다. 역으로 재차 돌려 제자리는 찾아 주었다.
화르르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라 방심하지 않았다. 스킬, 아이템, 속성 중에 부활이 있으면 곤란했다.
그런 특별한 속성을 중계자로 쓰지는 않겠지만.
푸스스스스!
화염마도와 삼매진화의 융화였다. 아직은 시범에 불과하나, 족히 2배는 진전이 있었다. 완전한 융합이 된다면 9계식의 화열지옥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무진은 중계자를 소거한 후에 사부님의 전장을 돌아보았다.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사부님의 간절한 소망은 처참하게 박살 났다. 꿈보다 해몽이 좋았을 뿐인가? 아들에 대한 신뢰는 참혹한 배신으로 돌아왔다.
무진은 사부님의 바람대로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까지 기다렸었다. 유경운이 악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살수를 펼치지 않았을 텐데. 이 모든 불행한 사태는 유경운이 자초한 것이다. 속된 말로 배가 부르니 주제를 망각하고 딴마음을 품은 거다.
“가주가 대체 뭐라고.”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유경운의 선택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가주가 되려고 했다면, 애초에 사부님을 뛰어넘었어야 했다.
“아니면 세계 최고가 되든가.”
무엇이 그리 어렵다고 패륜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 중얼거림을 유경운이 들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상식적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1등 하겠구먼.”
1등 그까이꺼, 어렵지 않잖아. 대충 해도 1등 잘만 하더구먼. 무진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털썩!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강철 같은 육신도 힘에 부쳤는지 무릎을 꿇었다. 대지를 버팀목 삼아 일어서지만,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권왕은 억누른 저주와 독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죽어 가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검게 변하는 권왕의 참상에 창황은 환호했고, 유경운은 편치 않은 심경을 보였다.
“네놈은 쪽팔리지도 않는 것이냐!”
“이렇게 된 게 나 때문인 것 같지? 아니야,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것이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비하지 못한 네놈의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다.”
큭!
권왕은 부정하지 못했다.
궤변이라면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오판이자 오만이었다.
‘녀석의 말을 들었어야 했구나!’
제자의 말을 부정하고, 자식을 제대로 보지 못한 대가는 뼈아팠다. 이 모든 것들이 창황의 말대로 자신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당했으니 병신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자책하진 말게. 곧 자네의 아들과 손녀도 뒤를 따를 테니까.”
“나로 끝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랬으면 저항하지 말았어야지.”
“이 새끼가!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맘대로 하게. 어차피 네놈의 심득은 내가 가질 테니까.”
창황의 눈빛에 서린 탐욕을 본 권왕은 섬뜩함을 감지했다. 죽음보다 더한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설마 금기인 흡성대법을?”
“그렇다면 어쩔 텐가?”
창황은 권왕을 무릎 꿇린 후, 그가 가진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했다. 흡성대법으로 진기만 흡수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흡수한 진기에는 죽은 자의 기억도 포함이 되었다. 흡성대법을 사용할수록 사기에 오염이 되어 광인이 되는 연유였다.
창황은 그러한 부작용을 막을 [용의 정심(淨心)]이 있었다. 하물며 심권의 영역에 도달한 권왕의 기억을 온전히 흡수하여 녹여 낼 기회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을 넘어 세계 최강의 무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창황의 말대로 아버지의 탓입니다!’
어긋나 버린 현실에 유경운도 맘이 편치는 않았다. 죽음까진 바라진 않았으나, 모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강자지존의 순리대로 가주를 물려주었다면 오늘 같은 참상은 벌어지지도 않았다.
“정녕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천하의 권왕이 하늘을 찾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크하하하하…… 헉!”
웃다가 사레에 걸렸다고 하기엔 흉측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권왕의 진기를 흡수하려고 했던 창황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선 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봐야 했다.
주르르르!
명치를 뚫고 나온 검날이 보였다. 부지불식간 암습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감으로 감지할 사이도 없이 등을 관통했다.
“……도대체 누가?”
권왕을 제압한 후 방심했다곤 해도, 창황으로선 예상하지 못했던 기습이었다. 이 자리에서 기습할 수 있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저놈은?”
분노로 돌아선 창황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배신한 줄 알았던 유경운을 탓할 수 없었다.
커억!
바닥을 짚고 겨우 일어선 유경운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역시 무방비로 암습을 당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허둥지둥댈 때가 아니다. 반격하지 않으면 위험하단 경고음이 뇌리를 강타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암습을 가한 놈을 노렸다.
슈우웅!
유경운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허망한 손맛 이후로 옆구리에 주먹이 들어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유경운은 재차 쓰러졌다. 버텨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내력이 엉망진창이었다. 이미 첫 기습에 내부가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기습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상대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권왕을 농락했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다.
뻐어억!
크어억!
반사적으로 일어서려는 찰나, 무진의 발이 턱을 들어 올렸다. 유경운이 피를 분수처럼 뿌리며 수직으로 치솟았다. 하늘에 기둥을 세우듯 별이 되려고 했다.
슈웅!
상공 100m, 대류의 흐름에 유경운의 끊어졌던 의식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자 급히 상대를 찾았다.
“……없어?”
“여기야.”
화들짝 놀란 유경운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무진이 내려다보며 주먹을 뻗었다. 효자의 진심 펀치는 무적이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린 유경운을 찍듯이 내리꽂았다.
무진의 주먹은 뼈를 관통하여 유경운의 뇌에 효심을 새겨 주었다.
뻐어억!
슈우우웅, 꽈아아아앙!
빳빳하게 솟아오르다 시들어 버린 청춘처럼 패륜을 저지른 유경운은 별안간 추락했다. 지면에 크레이터가 형성되며 사방으로 균열이 번졌다.
착!
허공을 대지처럼 밟고 선 무진의 오른쪽 장심(掌心)에서 콩알만 한 강환(剛丸)이 백광을 번쩍였다.
슈슈슈슝!
빛이 번쩍일 때마다 광선이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백색의 광선은 아름답지만, 자아내는 광경은 아름답지 않았다.
꽈아아, 퍼퍼퍼퍼펑!
융단폭격을 하듯 빛의 포화를 이루었다. 대지를 붕괴하는 괴멸적인 파괴력이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지면은 속살을 드러내며 구덩이가 면적을 넓혀 갔다.
푸아아앙, 꽈아아앙!
무진은 느긋하게 강환을 쏟아 내며 지상을 관찰했다. 벌레 같은 생명체의 살기 위한 발버둥은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 맛에 강환을 쏘지.”
허!
멍!
권왕은 저주와 독에 망가지고 있었고, 창황은 명치에 검날이 튀어나와 있는데도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난 사태였지만,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공상이 지나쳐 망상에 빠지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입을 다물지 못한 창황은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적으로 간주조차 하지 않은 하찮은 미물이 알고 보니 끝판왕이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저 괴물이 네놈의 제자라고?”
“……당연하지, 어떠냐?”
“믿을 수 없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저런 괴물 같은 제자를 키워!”
“그게 너와 나의 안목 차이지!”
“네놈도 놀랐으면서 개소리는 그만 지껄여!”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번에는 권왕도 많이 놀랐는지 표정 관리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무진의 비범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 까맣게 몰랐다.
앞서 장차 큰일을 할 지수를 잘 보조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지금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하아, 너무 무리했구나!’
저주, 독, 스킬을 내력으로 억누른 상태에서 심권을 무리하게 쓰는 바람에 운신이 불가능했다.
그렇다 치고.
‘대체 언제까지 쏠 셈이더냐?’
권왕은 제자의 강함을 확인하자 아들이 걱정되었다. 당장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자의 집중포화는 멈출 줄 모르고 낭비되었다.
이제는 생사를 확인할 때도 됐건만, 꺼진 강환도 다시 보았다. 제자의 철두철미함에 소름이 돋는 반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어쩐다?’
말릴 방도도 염치도 없는 권왕이었다. 더욱이 강환의 포화가 일대의 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제자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제자를 멈춰야 하기에 다급해진 권왕이었다.
“아들을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네놈은 끝까지 치졸하구나!”
다급해진 쪽으로 따지면 창황이 더했다. 내력의 소모가 심한 강환을 텀 없이 날리는 괴물이었다.
유경운의 생사보다 창황은 본인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권왕과의 난전과 괴물의 암습에 내외력의 소모가 컸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이상, 저 괴물을 이긴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제 한 몸 건사하려면 권왕을 인질로 잡아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오냐, 얼마든지 오너라!”
“허세 따윈 통하지…… 쿨럭!”
창황은 일보를 내딛지도 못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육신을 관통한 검이 생기를 빨아들였다. 황급히 빨려 들어가는 생기와 내력을 막아섰지만, 되레 기혈이 역류했다.
-하등한 인간이여, 얼마든지 발버둥 쳐 보거라.
“이게 무슨…… 내 몸에서 떨어져!”
생기를 흡수하는 에고소드라니, 악마가 깃든 마검이 분명했다. 검을 빼면 상처가 벌어질 걸 우려해서 권왕부터 인질로 잡으려다 일이 틀어진 것이다.
-나와 하나가 되어라.
“닥쳐, 검 따위가 감히 나를 우롱해!”
창황은 영혼을 장악하려는 마검의 악의에 저항하는 동시에 검을 빼려고 했다. 마검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점점 더 조여 오는 마검의 사악한 의도에 창황은 기겁했다.
이대로는 온전한 자신이 아닌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어떻게든 마검을 빼내야 했다.
다급해지자, 창황은 사리 분별도 하지 않았다.
“……검을 빼 줘!”
“미친놈이! 갑자기 쌩쇼를 하고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