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맛집 투어(1)
-방금 권왕과 창황의 대결 봤냐?
-저건 인간들의 싸움이 아니야, 초고속 카메라가 없었으면 뭘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몰랐을 거야.
-인정, 요즘 애들이 못하는 줄 알았더니, 전대의 괴물들이 너무 강한 거잖아.
-저게 어떻게 환갑 넘은 노인네들의 싸움이냐고! 이러면 우리가 뭐가 돼?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어? 더 강해졌잖아!
-마지막엔 너무 심했어. 하마터면 인명 피해로 번질 뻔했다고!
-그게 왜 권왕과 창황의 탓이야. 한창 대결하는데 김빠지게 멈추란 거야?
-당연히 멈춰야지, 결계가 부서졌잖아! 그러다 사람들이 죽었으면?
-그걸 감안하고 구경하러 간 건 아니고?
-미친놈이네, 사람 죽는 게 장난이야?
대결의 마지막은 위험했다는 갑론을박이 있기는 했으나, 대체로 권왕과 창황의 개세적인 혈전에 혀를 내둘렀다. 한국을 대표하는 십인의 초인다운 격전이었다.
-결국 권왕이 이겼네.
-창황가가 초반에 개발리기에 창황도 한물갔나 했더니, 역시 관록을 무시하진 못해!
-패배를 인정하긴 했지만, 창황의 뒤끝이 장난 아니더라.
-권왕가와 창황가는 이제 물과 불처럼 원수지간이 된 건 확실해!
-당연한 거 아닌가, 지고 나서 헤헤거리는 건 배알 없는 짓이지.
창황은 패배하고서도, 분기를 추스르지 않았었다. 권왕이 내민 손을 쳐 낸 후, 말없이 돌아가 버렸었다. 대인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행동에 설왕설래가 많았었다.
반대로 승리한 권왕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실 장병기와 맨손의 싸움은 권법가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스텟과 속성의 차이가 크지 않은 이상, 장병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리함을 주먹으로 이겨 냈으니 낭만이 도래한 것이다.
-역시 남자는 주먹이야?
-여자도 주먹이거든!
-얼레, 맞짱 한번 뜰래?
-나, 아카데미 5학년 김지수다. 해 보자. 어디서 볼래? 지금 바로 아이피 추적할 거다. 나 사람 찾는 거 되게 잘해.
-……죄송.
-병신, 거짓말인데.
-……이년이!
-사실은 맞아. 너, 부산 살지?
-죄송, 진짜로! 오지 마요. 저 잼미니!
권왕가에 대한 남녀노소의 인지도가 확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권왕과 지수의 활약에 있었다.
나이 들었다고 괄시받는 어르신들에게 권왕의 분전은 활력을 주었으며, 지수의 압도적인 승리는 여자라서 약하다는 편견을 깨부수었다. 이젠 여자도 남자처럼 팔굽혀펴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갔다.
밤이 깊어 가는 와중에도 대결의 여흥은 여전히 남아 사람들에게 안줏거리를 제공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권왕과 창황이 되어 살을 붙였다.
방송국도 이번엔 깜짝 놀랐었다. 전에도 인기가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시청률이 괴랄했다. 전대의 초인들이 나오자, 10대부터 80대까지 시청자의 폭이 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푸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문은 권왕가인가?
-권왕의 무위는 예전과 비교해 훨씬 강해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수양을 쉬지 않는 권왕.
-과연 권왕을 이길 자는?
-젊은 시절의 권왕도 만만치 않았거늘. 무인들이여, 지켜만 볼 것인가?
언론도 이때다 싶어 숟가락을 얹었다.
어떻게든 이런 대결이 성사되기를 바라는 기사로 관심을 유도했다. 화제성을 이어 가기 위해서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를 자극한 것이다. 누구라도 입질에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레기들의 눈빛이 흉흉했다.
온·오프라인을 시끄럽게 했으나, 정작 권왕은 자만하기는커녕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전심전력으로 육체를 단련하고, 권공의 완성도를 높였다.
파파파팟!
눈에 보이지도 않은 속도와 강철을 부수는 파괴력이 난무했다. 어제 대결을 펼쳤던 후유증은 날려 버린 지 오래였다. 마흔만 넘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한 성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회복력이었다.
타앗, 투웅!
빛살 같은 사부의 권영에 무진은 반격을 해 주었다. 그때마다 사부는 휘청이며, 간격이 생겼다. 당연히 가만두지 않았다. 권왕가는 사제 간에도 전력을 다했다.
퍼어억, 커억!
터억!
배를 강타한 발길질에 턱이 들린 사부를 무진은 어퍼컷으로 조져 주었다. 수직으로 이어지는 어퍼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궤적을 그렸다. 잽이나 스트레이트보다 폼이 커지는데도 일관적인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이놈이!”
“죽으세욧!”
무병장수를 기원해도 부족하거늘, 권왕이 발끈했다.
최소 300세는 살아야지.
“안 죽어!”
“어림없습니다!”
무진과 권왕의 대결은 살벌했다. 사방으로 피를 튀기는 생사투에 연무장을 붉게 물들였다. 물론, 모든 피는 권왕에게서 흘러나왔다. 무진의 육체는 초지일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다.
털썩!
힘이 빠지면서 다리가 풀린다. 권왕이 주저앉았다. 보통은 그쯤에서 멈추겠지만, 무진의 발이 미친 속도로 날아왔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노렸다.
뻐억!
쐐애애앵!
거구의 권왕이 연무장의 벽면으로 포탄처럼 쏘아졌다. 놀랍게도 권왕은 벽에 부딪히진 않았다.
의식을 차렸나?
이런, 아니구나.
무진이 따라붙어 턱주가리를 날렸다.
“……야, 인마!”
“왜요?”
답을 듣기는커녕 권왕은 턱을 또 맞았다. 이번에는 영혼이 버티지 못하고 육체에서 가출하려고 했다. 간신히 육체를 부여잡았지만, 무진의 맹공이 이어졌다.
사방(四方), 탈혼권(奪魂拳).
동서남북에 무진이 있었고, 권왕은 오행성의 피구 공이 되었다. 쉬지 않고 주먹을 뻗으며, 무진보의 위용을 과시했다. 동서남북잔상이 권왕의 정신은 물론, 내외력까지 깎아 먹었다.
“죽으세욧!”
“……그만해, 이놈아!”
“예.”
방금까지 죽일 듯이 팼던 무진이 거짓말처럼 멈춰 서며, 사부를 일으켜 세웠다.
옷을 털어 드렸다.
주르르!
코피가 흘러내렸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진은 치료 마법으로 사부의 육신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권왕도 지체하지 않고 운기요상에 들어갔다.
30분간 치료가 이어졌다.
무진은 사부의 머신을 돌렸다. 30분이면 100회씩 100세트를 하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30분이 1분처럼 빨랐다.
사부가 눈을 떴다.
“너는 적당히란 걸 모르냐?”
“그런 가르침은 받아 본 적이 없는데요.”
“그렇긴 하지.”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미치겠구나.”
권왕도 봐주기를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매번 두들겨 맞는 게 좋을 리 만무했다. 그것도 손자뻘의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처맞으면 굉장히 서럽다.
무진은 눈만 높아진 사부의 잣대를 낮춰 주었다.
“제법 고전하시던데요.”
“다음엔 어림도 없어.”
“그래도 조심하세요. 걔도 원래의 전력은 아니었으니까요.”
“진짜?”
“마계 군주였다고 하니,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겠죠.”
권왕은 초조함을 느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님을 실감하고 있었다. 제자의 부하란 놈은 아직 창술에 완벽히 적응되지 않았을 뿐, 창황보다 강했다. 만약 창술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 본래의 전력을 회복한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제자야, 이건 내가 봐도 좀 반칙 같다.”
“세상이 어디 공평하게 돌아가나요. 원래 될놈될이라고 하잖아요.”
권왕은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겸손하게 살았어야 했다.
“겸손하게 살면 호구 잡힌다면서요.”
“널 호구 잡을 인간이 어디 있다고?”
“저는 아버지한테 잡혀 살고 있습니다.”
“뻔한 거짓말을 잘도 하는구나.”
제자가 대답하지 않자, 권왕은 아버님을 만나 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떻게 키웠기에 이런 녀석이 되었나? 훈육 방법을 알아낸다면 권왕가는 세계 제일이 될지도.
물론, 망상이었다.
최강의 무공, 잠재력, 속성은 좋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도구를 타고나고, 수련하고, 사용하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달리 말하면 제자는 강했고, 더 강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친 일대종사였다.
일정을 마친 무진은 사부와 함께 가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가주와 지수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어제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넷이 전부, 아직은 모두에게 알릴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부의 첩자를 골라내기는 했어도, 확신은 금물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무진은 가주에게 따져 물었다.
“굳이 소문을 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만나려면 이러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느냐.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정말 명분 때문인가요?”
“당연하지.”
“후우우, 안심했습니다.”
별안간 지수가 뒤통수를 노렸다. 무진은 가볍게 피하며 팔꿈치 중앙 곡지혈을 콕 찔러 주었다.
찌리리릿!
까악!
연약한 비명은 속임수였다. 지수는 아파하는 척하더니 검결지로 거골혈을 노렸다.
파팟!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있는 자리에서 지수와 무진은 십합을 겨루었다. 이득을 챙기지 못한 지수가 콧바람을 강하게 불더니 매섭게 노려보았다.
“네 혼삿길을 걱정해 준 건데, 탁자 속 불알차기는 너무한 아니냐?”
“그래서 찬 거야.”
그건 또 뭔 개소리지?
나만 찰 수 있다는 건가? 차도 왜 거길 차? 대대손손, 자손만대를 이루어도 부족하거늘. 재수 없는 소리로 들리겠으나, 유전의 힘은 위대했다.
보통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방만하리란 생각은 편견이었다. 재능은 유전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만으로 역경을 이겨 낸 사람을 세상이 찬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극소수거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으리란 의지가 빛을 보는 예는 극히 희박했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넌 내 사위다. 지수야, 걱정하지 말거라. 이 아비만 믿으면 된단다.’
유경중은 잦은 만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는 딸과 가문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누가 채 가기 전에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하나, 성급해선 안 된다. 속내를 철저히 숨긴 채, 유경중은 의심스러운 부분을 물었다.
“어떻게 안 게냐?”
“실패가 쌓이면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작 그런 이유로?”
“놈들은 여태 암중으로만 조심스럽게 움직였어요. 그걸 증명하듯 같은 편조차 모르고 있었죠.”
“최근의 사건들이 놈들에겐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이거군.”
그래, 이거야.
유경중은 대화할 맛이 났다. 가문에선 이게 잘 안 된다. 아버지는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지수도 디스커션은 쥐약이었다. 사람이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설득해도 안 되면 그땐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집안 핏줄이 어딜 가진 않는다.
유경중도 말로 해서 안 통하면 주먹을 선호했다. 다행히 우리 사위는 말도 잘 통하고, 강력한 주먹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