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07화 (108/374)

107. 간 보기(1)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청명함의 깊이가 남달랐다. 내려다보는 백록담과 주변의 정경이 실로 아름다웠다. 물론,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감흥보다는 낮았다. 자고로 산은 높을수록 멋과 운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등산가들의 로망은 생겨나지 않았다.

“공기도 좋네요.”

던전이 공략된 후의 여유였다. 이때는 공략 시 파생되는 에너지의 파장으로 일대의 기후가 안정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지 않기에 소중하기까지 했다.

위이이잉!

무진은 인벤토리에서 드론을 꺼내 허공으로 날렸다. 이럴 때 아니면 찍기 힘든 광경이고, 세상에 남는 건 사진뿐이란 아버지의 격언을 마음에 새겼다.

찰칵, 찰칵!

백록담 일대를 한 바퀴 돌고, 내려가도 보았다. 저공의 허공답보를 사용해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한라산은 국립공원이기에 함부로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더럽혀선 안 되었다. 한데, 캠핑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해도 ‘나는 괜찮겠지’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역용을 풀어 사진을 찍었다. 같이 찍고 싶은데, 당장은 얼굴이 팔리면 곤란했다.

‘드론을 날리려면 허공섭물은 기본이지.’

배터리를 절약하는 데 허공섭물만큼 유용한 수법도 많지 않았다. 하나, 시야에서 벗어날 때는 자율 비행으로 놔두어야 했다. 허공섭물과 배터리를 병행한 친환경 하이브리드였다. 차후, 에고를 장착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드론 비행이 가능할 것이다.

‘발칸을 박아 넣을 걸 그랬나?’

검과는 달리 날아다닐 수 있고, 세상을 내려다볼 관측용 망원렌즈라면 발칸도 분명 기뻐서 날뛸 것이다.

백록담을 추억에 담은 무진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괜찮은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투귀와 김삼진은 망연자실한 현실을 실감하다, 무진의 행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맑은 백록담은 처음 봅니다. 정말 아름답네요. 어르신도 찍어 줘요?”

“그걸 말이라고, 우린 안중에도 없느냐?”

“그래도 산 사람은 재밌고, 즐겁게 살아야죠. 더욱이 개새끼들 때문에 우울해하고 싶진 않습니다.”

무진은 사부를 배신한 인간말종들로 인해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보란 듯이 즐겨야 했다.

하물며 투귀와는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혹, 위로는 못 해 줄망정 얌전히라도 있으란 건가? 같은 직장 동료로서 부조는 해 주겠으나, 딱히 동정하진 않았다.

“인정머리가 없으면 눈치라도 챙겨야 하지 않나?”

“뭔가 착각을 하시는데, 제가 어르신의 상삽니다. 혹시 나이가 어리다고 막 대하시려는 겁니까?”

“……뭐?”

“저도 어른으로서 대접은 해 드리겠지만,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마세요.”

아직 투귀에 대해서 온전히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제자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동 학대가 의심되었다. 모른다고 해서 아동 학대의 죄가 사라지진 않았다. 그걸로 패륜이 정당화되어선 안 되겠지만, 투귀도 어른으로서 본을 보여야 했다.

“이대로 떠난다면 어쩔 테냐?”

“오늘의 일이 동네방네 소문이 나겠지요.”

“그러면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되긴 했지만, 네놈은 진정 겁이 없구나.”

“그럴 분이 아니니까요.”

사부나 부모로선 꽝이지만, 투귀는 맺고 끊음은 확실했다. 내뱉은 말을 되돌릴 만큼 뻔뻔하지도 못하고. 그저 작금의 답답한 현실과 본인에 대한 자괴감에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하나, 무진은 화를 받아 줄 만큼 투귀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 감정이란 전염병과 같아서 매번 공감을 해 주다 보면 자신도 옮아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가족, 친구, 동료 간에도 마찬가지다. 감정의 교감이 중요하긴 해도, 조건 없는 공감을 바라며 감정 쓰레기 처리반을 원한다면 단칼에 거절해야 했다.

“정리 끝났습니다. 강 과장님.”

“수고했습니다.”

무진을 뺀 남은 2명의 짐꾼도 제인 누나가 심어 놓은 심복이었다. 그들은 투귀의 동태를 확인하고, 뒤처리를 해 왔었다. 오늘처럼 자연스럽게 합류하기 위해서 박아 놓은 것이다.

그들이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연유는 던전이 변화할 때 무진의 지시를 받고 가장 먼저 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놀고만 있진 않았다. 던전 밖에서 뒷정리하며 투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었다.

“뭘요, 언제든 시켜만 주십시오!”

“일 처리가 아주 훌륭합니다. 이제 제 자리를 넘겨줄 때가 되어 가는군요. 과장님들.”

쉐도우 길드에서 그들의 실제 직위는 대리였다. 사원으로 들어와서 대리를 단 지 얼마 되지 않은 걸 고려하면 초고속 승진이었다. 빨리 승진해서 임원이 되고 명예퇴직당…… 흠.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강 부장님.”

“눈치도 아주 빠르군요.”

“그저 따를 뿐입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겁니다.”

라인을 탈 줄 아시는 분들이다. 직장에서 공과 사는 중요하지만, 인맥을 무시할 순 없다. 게다가 빠릿빠릿한 일 처리와 눈치 백단의 안목은 길드에 필요한 재능이었다.

불끈!

대화에서 소외된 투귀가 발끈했다. 어린 녀석이 자신을 앞에 두고 허수아비를 만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이게 바로 사회생활입니다.”

“사회생활?”

“어렵지 않을 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사람의 본 모습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고 하는데,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행위야말로 위선이다. 직장 동료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이다. 동료로서 서로 할 일을 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던전에서 네가 한 짓을 모르는 것이냐?”

“어르신을 도왔죠, 제자분도요. 아닌가요?”

젠장, 맞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현실화되었다. 투귀는 어느 것 하나 이득을 챙기지 못했다. 말로도 안 되었고, 현재 몸 상태로는 주먹으로도 안 되었다.

결국, 부르르 떨며 화를 삭여야 했다.

허!

김삼진은 반문조차 못 하고 쩔쩔매는 사부님의 모습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사부님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저토록 말이 많고, 투정도 부리는 사부님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비록 배신했다고는 하나, 사형 사제를 죽인 원수였다. 그런데도 단 한 차례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단호한 손속만큼이나 사태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실로 경이로웠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거나, 한두 살 많아 보이는 것 같았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다.

‘보기와 달리 동안이시구나.’

저 나이에 볼 수 없는 관록이었다. 사부님을 무공과 말로 쌈 싸 먹으려면 최소한 반로환동은 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너무 순식간에 끝나서 그렇지, 사형 사제를 그토록 간단히 처리할 무인은 많지 않았다.

김삼진은 마음을 다독인 후, 현실을 받아들였다. 지나간 일을 거론해 봤자 의미가 없으며, 저분이 아니었으면 살아 있지도 못했다.

“저, 형님!”

“형님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강 과장이면 족합니다.”

“알겠습니다. 강 과장님. 늦었지만 살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잘해 보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인 낫긴 한가?

김삼진이 무진과 악수하며 감정을 털어 내자, 투귀는 탐탁지 않은지 입이 댓발은 나왔다. 뭔가 맘에 들지는 않는데, 구명지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화를 내 봤자,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적반하장이었다.

‘나이는 직급과 무관하지.’

무진은 나중에 책잡힐 짓은 사전에 차단했다. 지금 형님으로 불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조만간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궁색한 변명은 원치 않았다.

더욱이 불만 가득한 투귀를 협조적으로 나오게 하려면 당근도 조금 주어야 했다.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나중에 결과에 상관없이 시원하게 한판 붙으실래요?”

“너야말로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이때다 싶은 투귀는 곧바로 수락해 버렸다. 제자의 암습에 본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꼴사나운 모습만 보였다. 전투의 귀재인 투귀로서의 체면과 기강을 바로 세우려면 이 얄미운 녀석을 두들겨 패야 했다. 또한, 사적인 감정이 아님을 누차 천명하는 바이다.

“저야말로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일은 고 대리와 송 대리에게 맡기면 알아서 처리해 줄 겁니다.”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더냐?”

“제가 방학……이 아니라 휴가 중입니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확실히 아직은 어렸다. 어디가 인조인간미냐고? 무진은 인간미 없다는 지수의 말을 반박했다.

“방금 방학이라고 한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그렇겠지.”

“아무렴요, 저 강 과장입니다.”

투귀와 김삼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생도 따위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단 말인가? 더욱이 의식을 잃은 김오진에겐 긴고아가 씌워져 있었다. 저토록 철두철미한 녀석이 생도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왜 투귀인지를 깨닫게 해 주마.’

투귀는 다음 대결을 기대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하나, 무진이 내준 당근은 순수하게 당근일까?

I say mouse!

You say drug!

feat, 권왕.

***

“뭔 놈의 조깅을 아침 내내 하는 거냐?”

“백록담의 정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아버지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속은 괜찮으세요?”

“숙취 따위에 아침을 버리다니, 나도 많이 늙었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이 있잖아요.”

빈말로 치부하지 않았다. 산하는 아들의 진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설상가상, 금상첨화로 나날이 공력이 상승하고, 심득(心得)이 차곡차곡 쌓였다.

“지금도 종종 오빠 소리 듣는단다.”

“민증 검사하게 해 드릴게요.”

“이놈아, 대체 어디까지 할래?”

“남자의 눈은 20대에서 멈춘다고 하더군요.”

“그건 주책이지!!”

사회의 시선을 아예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남의 눈은 실제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 삶이고, 남이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인생은 100세부터라지만, 젊은 시절은 짧았다. 아까운 세월을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인생은 원래 이불킥과 주책의 연속이라고 했어요. 막말로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서로 좋다면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최소한의 잣대는 필요한 법이란다. 너무 그렇게 법대로만 따져서 될 게 아니야.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이,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눈치는 챙겨야지.”

“그거야 아버지의 취향이고요.”

“지나치게 합리성만 따지면 나중에 큰코다칠 거다. 때로는 공감을 해 줄 필요가 있어.”

무진은 아버지와 무지성의 언쟁이 아닌, 올바른 의사를 피력하는 건전한 토론을 했다. 본인의 의견이 전부가 아니듯, 아버지의 의사를 되새겼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인간관계에 있어선 아버지에게 많이 배우고 있었다.

서론은 마쳤다.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한라산 던전은 목적을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제주도에 온 목적에 충실해야 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늦은 만큼 전력을 다해야지. 뚝배기 어떠냐?”

“과연 해장엔 뚝배기죠.”

“혹시 아침부터 남의 뚝배기 깨고 온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백록담의 정경이 담긴 사진은 명백한 알리바이였다.

산하는 사진이 아닌 시간을 확인했다. 비록 무공은 아들에게 뒤처져도, 아비의 짬밥을 무시하다간 된통 당하는 법이다.

‘하나 건졌구나.’

산하는 다음을 위해서 킵해 놓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다. 무진의 빌드업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 단계씩 밟아 가며 상대를 조이고, 마지막엔 단숨에 숨통을 끊어 내는.

‘뭐지?’

방금 굉장히 찜찜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