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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08화 (109/374)

108. 간 보기(2)

휘리리릭!

아이돌 외모의 여인이 회전의자를 돌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슬쩍슬쩍 보이는 각선미와 의외의 볼륨감이 넘쳐 흘렀다.

“재밌네.”

이리저리 발을 차고 의자를 돌리는 여인의 앞으로 길게 늘어선 탁자가 있으며 좌우로 사내들이 기립해 있었다.

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삭막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질식할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멍청한 녀석은 아니었는데, 실패가 쌓이더니 정신 나간 짓을 했네.”

여인이 의자의 방향대로 좌우를 돌아볼 때마다 사내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름다운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사신이었다.

로즈.

9명의 그리드 중 서열 4위의 여인, 죽음을 부르는 장미로 불린다. 아이돌의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잔혹한 성정과 손속을 지녔다. 그녀의 미소를 본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렇기에 웃을 때마다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나마 신색을 유지하는 자들은 그리드8, 마이트와 그리드9, 썬더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로즈를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위 서열 내 그리드 간의 격차는 크지 않으나, 상위 서열은 차원이 달랐다.

“몇 년 동안은 쪽팔려서 얼굴 들고 다니지를 못하겠는걸.”

동북아를 담당하게 된 로즈는 그들의 면면을 넌지시 훑었다. 자신을 이런 변두리까지 오게 만든 원흉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결정되기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마른침만 조용히 넘어갔다. 지금은 설렁탕의 섞박지도 씹지 말고 꿀떡 삼켜야 했다.

“물갈이해야 하려나?”

무능한 것들을 데리고 있어 봤자, 조던처럼 실패를 반복할 따름이다. 싹 다 갈아엎은 후 새롭게 정비를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하나, 테이블 위에 놓인 보고서를 살펴보니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그간의 실패를 나름대로 정확히 분석해 놓았다.

“농담이야, 정색들 하기는.”

오기 전부터 조사한 자료가 있었다. 비교하여 빠뜨린 항목이 있거나, 실수를 감추려고 했다면 살려 두진 않았을 것이다.

“됐으니까, 그만들 나가 봐.”

“예, 로즈 님.”

로즈는 마이트와 썬더만 남기고 모두 내보냈다. 어차피 조던의 명령에 따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을 쳐 내 봤자, 시일만 더 늘어나는 셈이다.

“어떻게 생각해?”

“반년 사이에 실패가 연이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론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이지만, 조던에겐 심각한 사태였을 겁니다. 우연이 겹쳤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것이 아닐 시엔 상대가 우릴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우연이냐, 고의냔데. 후자라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황상 노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전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조던이 실체를 드러냈을 리 만무합니다.”

“맞는 말이야. 나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봐. 한데, 전자로 가정했다가 또 실패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까? 누차 말하지만, 나는 아니야. 그러고 싶지 않거든.”

“……후자를 가정해서 사태를 면밀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그래야지, 힘들다고 쉬운 길을 택하면 인생 쉽게 가는 거야.”

아이돌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아재 개그였지만, 마이트와 썬더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들이 아는 로즈는 순진한 미소로 죽음을 부르는 흑거미였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어도, 후일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교류전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계획을 잘 세워 보라고. 잘 만들면 내 침대 위에 올라올 영광을 줄게. 어때?”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두 사내는 감히 싫다고 할 자신이 없었다. 한데, 잘해도 문제고, 잘못해도 문제였다.

‘암거미는 수거미를 잡아먹잖아!’

보고서 올리기 전에 누가 할지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래서 상사 앞에서 ppt가 어려운 것이다.

능력이 있으면 따먹히고, 없으면 목이 따이고.

***

제주도 맛집 기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4박 5일 동안 100곳을 탐방했는데 3분지 1은 맛집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캠핑하면서 고기를 구워 먹는 맛으로. 여행을 왔으니까 사 먹는 거지, 굳이 추천하진 않았다.

무진은 평소 하지 않는 인생 낭비 sns를 개설하고, 사진을 다량으로 방출했다.

맛이란 개인의 주관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무진은 절대미각을 가지고 있었다. 맛을 분석하여 양념과 소스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그램으로 세세하게 표기했다.

다음 날도 방학인 무진과 달리 아버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잡은 휴가 일정이라, 한시라도 빨리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 아버지의 피로 회복을 위해서 천도복숭아를 드렸다.

“아버지의 금강불괴와 불로장생을 위해서라면 못 할 건 없지.”

천도복숭아는 시작에 불과했다. 바탕을 마련한 수준이지, 끊임없는 단련만이 금강불괴와 불로장생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던전 공략 시 다른 건 몰라도 영약은 가급적 팔지 않고 복용했다.

아버지를 출근시키고, 청소를 했다. 무려 4박 5일 동안이나 집을 비웠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폐 건강에 좋지 않기에 항상 흡자결을 이용해서 제거해 주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도 쌓이게 두면 찌든 때가 된다.

“별다른 일 없었지?”

-야옹!

요나의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크림이의 경례 자세가 완벽했다. 무진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지만, 말년 병장처럼 발로 받아 주었다.

쉬엇!

날이 갈수록 애교가 늘고 귀여워지는 크림이었지만, 우리 동네 아파트에선 백수의 왕이었다. 크림이가 저음으로 야옹! 만 해도 아파트가 숙연해졌다. 소음 없는 조용한 아파트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조용하긴 한데, 지린내가 나는 것 같단 말이야.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역지사지는 중요한 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조용히 키울 자신이 없으면 단독주택으로 이사해야 마땅했다. 공동주택은 같이 사는 공간으로서 남의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만 귀여우면 다라는 식의 적반하장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세태다. 아니면 진법이나 결계를 쳐서 소음과 충격을 없애든가.

어쩌면 결계와 진법이야말로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소양이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요즘처럼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만연한 세태를 고려하면, 죽기 싫으면 배워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칼 안 들어가는 몸을 만들든가.

‘죄를 짓는 것들이 나쁜 거지만.’

선하고, 착하다고 해서 복을 받는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아니다.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친개에게 물리면 답도 안 나오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싫으면 귀찮더라도 해야지 별수 있나.

5분이나 걸려 청소를 끝내고,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 성분과 그윽한 향이 좋았다.

-요나, 지지!

“이게 어른의 맛이야. 어서 성숙한 정령이 되렴.”

소녀가 되었음에도 아직은 더 자라야 하는 요나였다. 커피의 맛을 모르다니, 안타까웠다. 지금이야 질색하지만, 상급 정령이 되면 커피를 달고 살 거다.

커피의 요정, 요나!

베란다의 의자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했다. 날씨가 흐리기에 권역을 발동해 일대를 안정화했다. 일순, 흐릿한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리며 무진의 아파트만 맑은 날씨가 되었다.

“역시, 좋네.”

무진은 틈틈이 권능을 시험하며 만물의 이치를 의지대로 변화시켰다. 뻘짓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하면 할수록 영역의 밀도가 높아지고, 넓어졌다. 권능도 장인의 손발처럼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눈이 좋겠다.”

사계절을 시험하는 중이다. 이상 기온으로 인해서 사막에도 눈이 온다고 하니, 이제는 특이한 현상까지는 아니었다. 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뜨뜻해지고 있으니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인간이 먼저고 자연은 다음이었다.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단체가 되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연을 지키려고 애를 써 봤자, 모두가 협조하진 않는다. 과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 중국과 인도의 태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무진도 정의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개인이 아닌 단체, 그 이상의 국가가 되면 정의란 오롯이 힘으로 대변이 된다. 힘이 약하면 정의를 부르짖을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진이 바라는 정의로운 세상은 강함을 갖춘 우리나라였다.

“흠, 권역이 강해질수록 반발력도 세지네.”

내가 만들어 내는 권역을 이미 만들어진 세상이 거역하고 있었다. 흐름을 비틀 때마다 되돌아오는 반발력이 상당했다. 천기를 읽으면 영혼과 육신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진다고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천기를 예측한다고 알려진 이들의 체력부터가 문제였다. 책상머리의 고상하신 씹선비의 나약한 체력으론 당연히 버티지 못하지.

“체력이 있어야 천기누설도 하지.”

운동은 하지도 않고, 책만 읽으며 천기를 살피니 몸이 남아나나. 권역을 만든 것도 아니고, 슬쩍 엿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정도로 탈이 난다면 전적으로 허약한 본인을 탓해야 했다.

‘어쨌든 심사숙고할 문제긴 해.’

차후에 예지나 예언 비슷한 속성을 가진 각성자를 스카우트한다면 육체 훈련부터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예언과 예지가 나오는 법이다. 오래 사용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였다.

권왕가, 쉐도우 길드, 성운 그룹, 아카데미.

아버지를 필두로 하여 연관된 세력을 살폈다. 이제부터는 무작정 세력을 넓히기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했다. 체계를 공고히 하고, 신뢰를 쌓으며, 전체적인 스텟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칠대 가문과 대형 길드는 물론 정부와 재벌가도 안심할 수 없겠어.’

창황을 움직였다면 그 이상도 가능했다. 섣불리 행동해 전략을 드러내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적절하게 의도를 감추고, 세력을 강화하면서 우리나라만큼은 사수해야 했다.

‘남의 나랄 걱정할 땐 아니지.’

멀리 보는 안목과 대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발아래의 가시를 외면해선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다. 세계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조국을 지키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사는 이루어지고 있을 테고, 시일을 얼마나 끄느냐가 문젠데.’

별장에서 제거한 놈은 우리나라를 관리하는 중간책으로. 암중 세력으로선 교두보를 마련해야 할 관리자를 잃은 것이다. 곧바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중간책을 다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중간책이 어떤 지시를 내렸느냐에 따라서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했다. 그래서 시간 싸움을 거론한 것이다.

‘전부 솎아 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배신자를 전원 색출하기 위해 들쑤셨으면 적들은 중간책 이하를 물갈이할 수도 있었다. 실상 완벽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지수 아버님의 말씀대로 역으로 그들을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처럼 솎아 내지 않은 이들이 특이 사항을 보이지 않는다면 체계가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할 테니.

‘그렇다고 얌전히 있을 순 없지.’

섣부른 판단과 행동은 위험하나, 작금의 기회를 좌시할 순 없다. 최대한 힘을 빼 놓고, 시선을 여러 곳으로 분산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다음 계획을 정리할 때쯤, 지수가 찾아왔다.

대뜸 묻는다.

지수답게 전후는 가뿐히 잘라먹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뭐가?”

“여기만 이상기후가 일어나잖아!”

“온난화 현상 때문이야. 지구가 어찌 될는지 원, 재활용을 생활화해야 할 텐데.”

“내가 병신에 호구로 보여? 적당히 해라!”

“과연 지혜의 목걸이야.”

무진의 인정에 지수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던전이 오픈되었다면 또 모를까? 자기 맘대로 기후를 조종했다는 소리였다. 상식적인 경지가 아님을 새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강한지 볼 때마다 새롭다.

“조화만물경에 이르면 돼. 너도 조금만 노력하면 될 수 있어.”

“아무나 된다는 식으로 말하지 좀 마!”

누가 들으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겠다. 조화경은 개뿔, 순리를 거역하는 역천경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권역을 완성했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건 신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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