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의협단(3)
무엇보다 현재는 아카데미 교장에게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다. 집단 폭력을 가한 의협단의 설립에 교장이 관여했는지가 관건이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책임을 지고 교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며, 법적인 처벌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론의 성화에 못 이긴 아카데미 교장은 일정을 잡아 공식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여론은 더욱 집중되었다. 세간은 분명한 해명은 물론, 사과와 반성을 기대했다.
-증거와 증인이 이리 명확한데, 무슨 해명이야! 사퇴해야지!
-사퇴로 끝날 일이야, 범죄단체 교섭인데!
-피해자는 피해 다니고, 가해자는 얼굴 들고 다니고! 세상 참 거지 같네!
-나랏돈 가지고 하면서 아카데미를 이딴 꼴로 만들고, 교장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풍신은 한때나마 우리의 우상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세파에 찌들어 버렸네!
교장에 대한 질타는 젊은 시절의 행적마저 곡해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약속한 날이 되자, 아카데미 정문에 인파가 몰렸다. 브리핑은 대형 스크린이 있는 실내 연무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익단체, 기자, 피해자의 학부모를 비롯해 많은 관계자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끄응!
사람들이 모이는 광경을 교장은 상황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약조한 시간이 되면 실내 연무장의 단상에 올라야 했다.
하아~~~!
교장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말년의 신세를 한탄했다. 옆에서 나는 모르겠다는 듯 앉아서 간식을 처먹는 녀석이 어찌나 얄미운지.
“너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냐?”
“한 번쯤 겪어야 할 성장통이자, 어른이 되어 가는 통과의롑니다. 언제까지 방치할 순 없잖아요.”
무진의 교과서적인 대답에 교장은 울화가 치밀었다. 누군 도덕과 소양을 몰라서 이러냐고. 자기 일 아니라고 말 참 쉽게 한다.
책임 없는 미성년이라 이거냐? 이런 법꾸라지 같은 녀석! 하루속히 연령대를 낮추기를 바라나, 현실은 또 그리 녹록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의협단의 전신이 마조군단이었단 소문까지 나면서 연신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 이름 바꾸려고, 다른 이름을 지어 줬더니 대대적인 광고를 한 꼴이다.
평생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해 보지 않았는데, 이놈 때문에 3주 연속 1위였다. 이쯤 되면 골든컵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이건 너무 노땅인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막나가면 나보고 어쩌라는 게야?”
“교장 선생님은 제가 써 준 대로만 하시면 별 탈 없을 겁니다.”
“아주 그냥 내 머리 꼭대기서 놀려고 하는구나!”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셨으면 왜 그러세요? 이 모든 것이 아카데미를 위한 필요악입니다.”
“옳은 일을 하려면 과정도 정의로워야 하는 법이다. 마지못한 일은 핑계에 지나지 않아!”
“저는 그런 유토피아를 본 적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약 처먹은 것도 아니고, 무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교장은 입맛이 썼다.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사회를 만든 건 전적으로 어른의 책임이었다. 옳고 그름을 몰라서가 아닌, 사회의 흐름에 물이 든 것이다. 다만, 이놈은 다 알면서 이딴 말을 지껄이고 있으니 속이 터졌다.
싸우지 마라, 교칙에 따라라, 생도 간에 화합해라!
원리원칙을 거론하기에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사회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관계의 복잡성과 법적인 논리를 따지면 시원한 정답은 없었다. 실제로 소설이나 영화처럼 사이다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이 녀석은 그냥 사이다도 아니고, 탄산 10,000% 사이다였다. 먹다가 뿜는 것도 부족해 터지겠다. 이쯤 되면 사이다 핵폭탄 아닌가?
“하지만 이번뿐이다.”
“교장 선생님은 제게 빛 그 자체이십니다.”
“말이나 못하면.”
“발렌타인 50년산을 구했습니다. 이거 김영란법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허물이 없는 법이다.”
뇌물이 아니란 거군.
그래도 위험하니 같이 마셔서 공범이 되기로 했다. 무진은 교장 선생님과 대작할 날을 기대했다.
발렌타인인지, 발 냄샌지 구분 안 될 때까지 마시는 겁니다.
술은 어른에게, 가즈아~~~!
시간이 되었다. 교장과 무진은 상황실에서 나와서 지하 통로로 실내 연무장을 향했다.
웅성, 웅성!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아카데미 교장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교장이 모습을 보이자 플래시가 터지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팡팡!
교장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도 필요한 말은 공식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윽고♫ 단상에 올랐다.
“의협단은 아카데미의 공식 단체가 아닌, 생도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든 동호횝니다. 여론에 알려지기로는 집단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는 없습니다. 의협단은 생도 간의 정보 교류와 훈련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허!
다들 혀를 내둘렀다. 어느 정도 해명과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단호박일 줄이야.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정신이 든 사람들이 거칠게 입을 열었다. 최소한 반성을 하거나, 의협단의 집단 폭력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했다. 아예 모르쇠로 자기 잘못을 회피하다니, 풍신의 위명은 옛말이 되었다.
“증거가 이리 확실한데도 발뺌을 하는 겁니까?”
“우리 아이가 다쳤어. 그것도 여럿이 두들겼다고! 집단 린치가 얼마나 무서운 죈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의협단의 전신이 마조군단이란 해괴한 집단이라면서요?”
“교장이 이러니까, 애들이 그 모양이지!”
기자는 자극적인 기사를 원했고, 부모들은 어떻게든 피해자로서 보상을 바랐다. 그러니 한국인답게 목소리가 커졌다. 승자는 항상 목청부터 키워야 했다.
모두의 시선이 교장을 난도질해 댔다. 눈빛으로 죽일 수 있으면 능히 가능하리라.
피해자의 처벌과 합당한 보상을 원했다. 이딴 말을 들으려고 오지 않았던 부모들은 목청을 키우며 화를 냈고, 기자들은 판을 키울 목적으로 둘 사이를 이간질했다.
“증거라, 말 잘했습니다. 일단 화면을 보십시오.”
분노가 들어차고, 욕설이 정점에 이를 때를 기다렸던 교장이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두웅!
신호를 받은 무진은 스크린에 신원 미상의 누군가가 전해 준 영상을 틀었다.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나, 선한 목적이 있었다.
웅성, 웅성!
잘못을 빌거나, 도게자를 해도 부족하거늘! 사람들은 교장의 적반하장에 이은 뻔뻔함에 분노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말 돌리지 말고, 의협단인지 뭔지한테 당한 내 아들 어쩔 거냐고?”
“우리 딸이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 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아!”
“피해자 부모님들의 원성이 들리지 않는 겁니까?”
교장이 시선을 돌리고 답을 회피한다고 여겼는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래선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었지만, 무진은 처음부터 스피커를 최고로 올려놓았다. 더욱이 내부엔 스피커가 10개나 달려 있었다. 스피커도 최신형의 대형 스피커였다.
-동생 데리고 오란 말 못 들었어!
-혼자만 먹지 말고, 같이 좀 나누자!
-야 이년아,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았어야지!
-애들아, 벗겨! 사진 좀 찍자!
-신고해 봐. 그럼, 네 알몸이 전국적으로 팔릴 거야.
처음에는 영상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대화가 자극적이다 못해 지나쳤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교장이 아닌 대형 스크린으로 향했다.
영상에는 생도들 여럿이 한 생도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단순히 생도들 간의 언쟁이라고 하기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음담패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이런다고 교장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할 순 없습니다!”
“다른 생도가 폭력을 저질렀다고, 의협단의 집단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습니다!”
“이건 생폭 피해자와 그 부모님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윕니다!”
기자들이라고 학폭과 생폭을 모를까? 요즘 고딩과 생도가 예전과 같다고 보면 오산이었다. 이보다 더한 짓거리를 하고도 남을 잔인성과 폭력성을 보였다. 사회부 기자들에게 이 정도는 논란거리도 아니었다. 기자들이 피해자의 부모를 거론한 건 교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
부르르르!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바랐던 피해자의 부모들이 눈을 부릅떴다. 하나같이 충격받았는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에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왜 이래?’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아까하고는 다르잖아.’
‘뭔가 있나? 혹시?’
대형 스크린에 비친 폭행 생도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얼굴을 다 가려서 보통은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부모가 돼서 자식 목소리와 체형을 모를까? 평소 하는 행동거지를 부모가 아예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언성이 커지고, 욕설이 난무하고, 음담패설이 섞이자 피해자의 부모들은 갈팡질팡했다.
기자들은 눈치가 빨랐다. 부모들의 반응만으로도 스크린에 나온 생도들이 자식들임을 알아챘다. 그러자 다른 방식으로 교장을 압박했다.
“불법적으로 영상을 촬영한 거 아닙니까?”
“이건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입니다.”
“불법 영상을 누가 촬영한 건지 밝혀 주십시오!”
기자들은 영상의 적법성을 걸고넘어지며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도록 극딜을 넣었다. 부모들도 그제야 기가 살았는지, 불법 영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애초에 자기 자식을 알고 있었고, 보상을 위해 철판을 깐 위인들이었다. 잠시 위축되었지만, 어느새 기고만장해졌다.
하나, 뒤이어 나오는 영상에 다시 침묵했다.
-의협단이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 거예요.
-그때는 한강 물이 따뜻한지 수온 체크도 했어요.
-애들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예요! 아니 악마보다 더해요!
-말을 안 들으면 드럼통에 넣고 생으로 콘크리트를 붓겠다고 했어요. 실제로 반은 채웠고요!
-그때 만약 사진을 찍혔다면, 아직도 끔찍해요!
-의협단이 있어서 편안하고 행복해요.
-의협단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갈 희망을 보여 줬어요!
생폭을 저지른 생도들은 모자이크가 된 반면, 맞고 있던 피해자는 얼굴을 드러냈다. 그 생도가 직접 인터뷰를 하는 영상이었다. 얼굴에 멍이 든 상태로 울면서 인터뷰를 했다.
이어서 생폭 피해자를 구한 과정이 영상에 나왔다.
-동작 그만!
-넌 또 뭐야?
-의협단의 부단주다, 무고한 생도를 괴롭히지 마라.
-어이구, 정의의 용사들 나셨네!
-생도 간의 폭력은 잘못이다. 반성하라.
-요즘 후배들은 다 이러나! 죽을래!
영상은 끝까지 나오진 않았다. 의협단이 나타나서 중재하는 아주 유리한 장면까지만 나왔다.
다음 영상은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다. 과정일 뿐, 폭력이 있었단 건 알려졌다. 그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증거자료였다.
“영상의 출처가 어딥니까? 상황을 고의적으로 유도하여 찍지 않고서야 저런 영상이 나올 순 없습니다.”
“출처는 모릅니다. 얼마 전에 제 이메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확인해 봤는데, 없는 주소더군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후로 영상이 풀린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노모로요.”
“……노모라니!”
자기 자식 아니라고 발뺌하려던 부모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상도 이것만 있지 않다고 했다. 노모로 된 풀영상이 얼마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기자들이 불법이라고 말하지만, 영상의 출처를 모른다고 하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죄를 밝히려고 해도 누군지를 알지 못하면, 처벌은 불가능했다.
그런 가운데 교장이 쐐기를 박았다.
“생도 간의 폭력은 있어선 안 되겠지만, 저는 불의를 보고 외면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죄라면 저는 교장 자리를 관두겠습니다.”
“……?”
교장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기자, 부모들, 이익집단의 인사들까지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반론을 제기하면 상황이 이상해질 수 있었다.
폭력을 옹호해선 안 되겠지만, 피해자의 증언이 너무나 확실했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학부모들이 가해자가 되었으니 후폭풍을 피해 가기 힘들었다.
응?
교장이 내려가자 바통을 터치하듯, 생도가 단상에 올라섰다. 기자 중 일부가 생도를 알아봤다.
“권후의 호위무사!”
“서열전 2위!”
“의협단의 부단주!”
스크린 속 의협단으로서 나선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니, 무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대체 왜 단상으로 올라왔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의협단의 부단주긴 해도, 생도가 관여해서 해결될 사안도 아니고, 교장이 사태를 진전시켜 놓은 상태였다. 굳이 나서서 일을 더 키울 필요가 있는지 알 순 없다.
“의협단은 성운 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권왕가와 협조하여 생폭을 저지르는 생도를 올바르게 계도하겠습니다. 이상 의협단의 부단주였습니다. 아, 의협단의 마스코트와 협찬이 정해지지 않았답니다.”
“……?”
너무 노골적이잖아!
의협단은 건드리지 마라. 또한, 생폭을 저지르면 성운 그룹과 권왕가가 나서서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들렸다.
실상, 말꼬리를 잡아 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문장 자체는 건전한 아카데미를 위한 적극적인 조력이었다. 생폭을 계도하겠다는데, 하지 말랄 수도 없지 않나.
이면에 숨어 있는 뜻을 감히 비꼬기도 어렵다. 상대는 칠대 가문의 권왕가이며 우리나라 재벌 서열 5위의 대기업인 성운 그룹이었다. 피해자의 부모들이 항변한다고 달라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영상이 유출된다면 파급력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건 명백한 횡포야!”
“칠대 가문이면 다냐고!”
“대기업이면 다야?”
“영상을 유출하면 고소할 거야!”
피해자라고 자칭한 부모들의 외침은 굉장히 공허했다. 기자들도 이번에는 호응하기가 어려웠다. 이 안에서 누가 나섰는지, 이제는 서로가 적이었다. 괜히 편을 들었다간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걸 떠나, 신상이 털릴 수도 있었다.
‘우리한테 하는 협박이기도 하잖아!’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건가?’
‘아니 무슨 아카데미 교장이 협박을 해!’
누가 봐도 월권이자 권력 남용이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정황 증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항변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당했다!’
기자들과 부모들은 교장의 흉계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승패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어쩐지 피해자로 분류된 부모들 상당수가 자리하지 않았다. 실내 연무장에 나온 자칭 피해자의 부모들은 사전에 영상을 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