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32화 (133/374)

132. 구라를 현실로(1)

결투가 끝난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시끄러운 언론과는 달리 1, 2, 3학년 간에 다툼이나 마찰이 있진 않았다. 3학년이 자중하는 분위기라, 1학년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실상, 생각 외의 반응이었다.

3학년의 공개 결투를 분기점으로 삼아 의협단은 성운맹으로 탄생했다. 성운맹주, 의협단주, 의협단 부단주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할 줄 알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흐름을 타지 못하면 흐지부지되어 사라지곤 한다. 이러면 3학년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부단주가 방송까지 나서서 대립 관계를 확전했던 것과는 명백하게 대비되었다. 대외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운 아카데미의 교장과 교관이 자중하라고 경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쩌면 어린 생도들이 세간의 집요한 관심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특히 성운맹의 창설에 지대한 공이 있는 의협단의 부단주는 파파라치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었다.

심적으로 힘들 만도 했다.

“……부담은 무슨!”

“선배, 아직도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향이 있네요. 주력이 왼손이라 특이점이 있기는 해도 패턴이 익숙해지면 반격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는 너도 원패턴이잖아!”

“억울하면 저보다 빠르고 강하면 됩니다.”

패턴이란 습관을 뜻하며, 익숙해지는 순간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전투의 교과서적인 대답이었다.

이러한 정석적인 역학관계가 무진에게 통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투력의 차이에 있었다. 개미가 아무리 빨라도, 사람보다 빠를 수는 없듯이.

“밟고 싶네요.”

“야, 인마…… 헉!”

무진이 허공을 낮게 밟았다. 일반인의 발걸음이라면 지면에 발자국만 남겠지만, 무진의 일보는 특별했다. 밟아 가는 힘의 여파가 가공할 중력을 발생시키며 권역을 형성한다. 잠식된 일대가 족히 100m는 되었다.

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거야?

우우우웅, 풀썩!

경천의 압력에 수면이 밀려가듯 파도가 역으로 밀리며 바닥을 드러냈다. 바닥조차 견디지 못하고 거대한 발자국을 만들었다. 지면에 새겨진 거대한 발자국 아래 나이스 마크가 선명하다.

“나이스.”

“나는 안 나이스하다고!”

후배한테 맞는 것도 서러운데, 밟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갯벌에 박히면 빠져나오기도 힘들었다. 겨우 무거운 몸을 질척이며 일으켜 세우면 다시 밟았다. 매번 고개를 숙이다 못해, 땅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바닥 뚫은 사내의 비애였다.

“이거 천마군림보 아냐?”

“단군왕검봅니다.”

“아! 조상님의 발걸음이시네.”

하도 밟혀서 그런가, 헛소리가 다 나오네.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데, 인정하고 지랄이었다.

“근본을 잊으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근본을 왜 찾아?”

무진은 초식의 이름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무진류의 발걸음에 지나지 않았다. 위력, 속도, 형태에 따라서 다르지만, 결국은 무진보였다.

“선배, 어서 일어나세요.”

“죽겠어, 오늘은 그만하면 안 될까?”

“학기 말이 되면 3학년이 가만있진 않을 겁니다. 눈치가 있다면 조만간 선배가 구라 친다는 것도 알게 될 테고요.”

“악마 같은 녀석! 넌 위아래도 없냐?”

“아래만 없애 줄까요?”

“……?”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에 태수는 얼어붙었다. 옆에서 골골거리는 선배들도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외면했다. 친구를 위해 후손을 버릴 순 없잖아. 우리의 우정은 미래의 단란한 가족 다음이었다.

“쓸데도 없으면서.”

“……쓸데가 왜 없어! 많이 있거든!”

태수가 발끈해서 소리쳤을 땐 이미 늦었다. 무진의 개수작에 넘어가 일어선 상태였다. 더는 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력이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은 굳건해 보이겠지만, 선배의 구라가 걸리는 순간 모래 위에 지은 성이 될 겁니다.”

“내가 구라 친 것도 아니잖아!”

“동조한 게 더 나쁩니다.”

“내가 걸리면 너는 좋을 것 같아!”

“의협단은 남아 있겠죠.”

……그러네.

성운맹주는 따지고 보면 허울뿐인 명예직에 가까웠다. 지금이야 정우철을 일격에 이기면서 맹주의 혼이 담긴 구라가 통하겠지만, 전말을 알게 된다면 맹신하긴 글렀다.

반면 의협단은 1학년의 동호회에 지나지 않았다. 선배를 위해서 명예를 양보한 아름다운 미덕을 남기게 된다. 실제로 1학년이 3학년에게 진다고 흠도 아니고.

“시궁창에 처박힌 채 손절당하고 싶으면 맘대로 하세요.”

“넌 꼭 지옥 갈 거다!”

“성운맹주의 지위를 잘만 이용해도 성운 그룹은 선배의 것이 될 수도 있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알았어! 하면 되잖아!”

태수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정우철을 이긴 건 요행에 가까웠다. 다시 붙는다면 일격으로 승부를 보긴 어려웠다.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창황가의 비법을 아는 거야?”

“정우민이 하는 거 보고요, 별거 없던데요.”

와, 죽이고 싶네!

태수와 친구들은 말문이 막혔다. 오만하고 잘난 체가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젠 숨기지도 않는다. 세간에 알려진 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자신들만 알고 있어서 답답해 죽겠다.

그래서 소름이 돋았다.

‘진짜로 한두 번 보고 알아챘다는 건가?’

‘그럴 수가 있나?’

‘가문의 오의는 스킬처럼 익힐 수 없다고 했는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인 거냐?’

설령 농담이었다고 해도 문제다. 창황가가 미치지 않고서야 가문의 오의를 타인에게 알려 줄 리 만무했다.

그것도 적대 가문인 권왕가의 수제자에게.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데려온 건가?’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발을 들인 지 오래였다. 후회를 해 봤자 늦었다.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왔다. 발을 빼는 순간, 지금까지 누린 영광과 권리를 모두 잃게 된다. 결국, 무진이 만든 무대에서 광대로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만 때려 줄까요?”

“아니, 더 때려 줘!”

“이제야 선배답네요.”

“말 참 요상하게 하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본 의협단의 전신을 기리는 겁니다.”

아, 마조군단이었지.

이 무인도에 우리만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화의 단면만 녹화해서 인터넷에 유포되면 그날로 성운맹주는 마조에 변태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설마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태수와 친구들은 멈추지 못했다. 피 말리는 훈련의 연속이지만, 강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진이 손을 놓는 순간, 자신들은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몰랐는데, 내 손주가 성운맹의 맹주라더군.

-자네 손주는 요즘 어떤가?

-친목회의 단순 명예직이니 그리 대단치는 않다네.

손주 사랑이 극진한 나의 할아버지, 진 회장께서 동네방네, 경영계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 나불거리셨다. 소문이 쫙 퍼져서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앞에서 전부 구라였다고 어떻게 말하냐고!

예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다행이지, 세간의 외면은 물론 가문에서도 쫓겨날 수 있었다.

언제든 뒤통수를 노리는 백부, 숙부, 백모, 숙모, 자식들까지 이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실상, 이 녀석이 할아버지를 부추기는 바람에 일파만파가 되었다.

그러고선 자기는 쏙 빠졌다. 지금 이렇게 숨죽이고 있는 것도 모두를 속이기 위한 빌드업에 지나지 않았다.

이호영, 전희수, 박재진, 조산림, 채영기도 태수의 친구들답게 설레발을 쳤다. 가장 중요한 연애 사업과 연계도 되어 있고. 부모님들도 덩달아 춤을 추시는 바람에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쳐야 했다.

하아, 완전히 낚였어!

지가 강태공도 아니면서, 캐스팅할 때마다 족족 낚인다. 어쩌겠어, 우리 불쌍한 배스들은 충성하는 수밖에. 현지화했으니 외국산 물고기라고 국산과 차별하진 않겠지.

무진은 일주일 동안 태수 선배와 친구들을 꼼꼼히 두들겼다. 창황가는 발칸을 통해서 오의를 완벽히 숙지했다 쳐도, 가지각색의 스킬과 속성을 지닌 3학년들을 상대로 맞춤 전략은 불가능했다. 결국, 본인의 전투 능력을 끌어 올려야 맹주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단기간에 될 일은 아니지.’

도예슬을 필두로 한 3학년의 핵심들이 알아서 자중해 주는 바람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성좌의 선택 이후를 노리려는 모양인데, 그게 맘처럼 될까?

고학년이 바보라서 저학년과 결투를 벌이지 않는 게 아니다. 성좌의 선택으로 스텟이 오른 상태가 되면 저학년과 고학년의 전투력이 확연히 달라진다.

애초에 급이 달라지는 데다가 혜택까지 받은 상태로 저학년을 이긴다고 해서 득이 되지 않는다. 그걸 고학년의 대표들은 알고 있었고, 성좌 선택을 받지 않은 3학년을 충동질한 것이다. 3학년도 자기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걸 원치는 않았을 테고.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닌데, 한시가 급한 자기들 처지를 모르고 있었다. 되레, 성운맹이 강해질 시간을 주었다.

‘성좌가 대단하긴 해도, 전투 능력까지 주진 않아.’

생도나 헌터나 성좌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 주는 힘이 매력적이고, 강력한 건 부정하기 힘드나, 자기가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줄에 묶인 피노키오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성좌의 선택이 예상보다 대단할지라도, 그 힘을 받기 위한 본인의 주체를 지킬 최소한의 역량은 있어야 했다. 그런 기반조차 만들지 않고 성좌의 선택에 기댄다면 미래는 보나 마나였다.

그렇기에 무진은 선배들의 기반을 쌓는 데 최선을 다했다. 최소한 자신을 지킬 여력은 갖추어야 한다.

많이 부족한 선배들을 위한 시간이니만큼, 강해질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뻐엉, 뿌거거걱!

나 죽어!

무진이 대충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태수의 금강불괴는 깨지고 부서졌다. 담금질 작업의 일환으로. 부러진 뼈가 더 단단해지듯, 금강불괴도 부서질수록 강해졌다. 본인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부서진 적이 없기에 연약했다.

“패배를 겪어 봐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는 너는?”

“저는 되돌아볼 기회라도 있는 선배가 부럽습니다.”

“천인공노할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자긴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왜 우리만 돌아보게 하는 거야?

자기가 무슨 회전목만가!

끄덕!

던전 틈새로 무인도에 도착한 지수는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지금까지 무진은 돌아보기는커녕 앞만 보고 직진했다. 어그러진 미래를 되돌리기 위해서 돌아왔지만, 무진의 미래가 마냥 부정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장담은 못 하지만, 질 것 같진 않아.’

미래나, 현재나 무진은 완전무결해 보였다. 현재까지 자신은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다시 보기 위해서 돌아온 게 되었다.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무진의 실체를 알아 가면서 흐려졌다.

‘안 되지.’

나약한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때도 무진은 강하지만, 결여된 부분이 있었다. 미래의 무진은 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무진은 나이가 어렸다. 그런 단점을 보좌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밖에 없어.’

이 막중한 임무를 함부로 나누어 줄 수 없다. 세상을 위해서라도 무진에게 다가오는 년들은 가만둬선 안 된다.

‘나 혼자만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었어!’

어? 소성(小成)을 얻었다.

마음먹기를 달리했더니,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미인장수(美人長壽), 얼굴이 예쁘면 복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대단치는 않았으나, 한 꺼풀 벗겨 낸 지수는 무진의 빈틈을 발견했다. 지금이야말로 대의를 보여 줄 차례였다.

신화천권 괴멸식 패왕멸.

[광폭화 4단]

“죽엇!”

제발 한 대만 맞아라!

크흠! 어쨌든 대의야. 모두의 바람이긴 하잖아. 저 자식은 여태 제대로 한 대도 안 맞아 봤다고.

맞아 본 사람이 자기를 되돌아본다고 했으니, 자기 말을 지켜야 할 때였다.

정의구현, 자업자득!

사필귀정, 권선징악!

꽈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적!

핵이 지척에서 터지면 이런 소리가 날까? 인간의 귀를 찢어발기다 못해 녹여 버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규격을 깔끔하게 넘어 버리는 신위.

저 일격을 맞고 멀쩡할 수 있을까?

허!

멀쩡하잖아.

빈틈을 노리고 사각에서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패도무상의 권격이었다. 격노한 패왕의 일격을 보지도 않고 막았다.

어, 왔어!

반기기까지.

“제법인데.”

“아직 멀었어!”

“과연, 인류의 구원자다워.”

그 인류의 구원자를 위해서 같이 점심 먹고, 영화 보고, 밤에는 좀 쉬었다 가도 괜찮잖아.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도 몰라?

“대우부터 해 달라고!”

“책임부터 다해.”

선분양, 후분양의 대결이었다. 옳고 그름은 전적으로 분양가에 달렸다. ‘돈부터 내라, 만들고 나서 줄게’의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파파파팟, 퍼어엉!

지수와 무진의 신형이 교차할 때마다 호풍환우가 무인도를 뒤덮었다. 바람이 일고, 파도가 치며, 대기가 일그러진다. 부딪히는 순간 뇌기가 번쩍하며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쩌저저저적!

하늘이 갈라진다고 해야 하나? 균열이 번지면서 던전이 열릴 듯 괴랄한 현상이 일어났다. 무인도라 다행이지, 도심 한복판이었으면 재앙 그 자체였다.

“이대로면 조만간 스승님을 넘어서겠는걸.”

“잘했으면 소원 들어줘. 제주도 4박 5일이라든가.”

“널 어떻게 믿고?”

“나도 쉬운 여자 아니거든. 어쨌든 돈 아껴야 하니까 방은 하나만 잡아. 손만 잡고 잘게. 이 누나를 믿으라고.”

“열일곱 살이 받아들이기 힘든 대화네.”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이었다. 골드미스와 비슷한 정신연령은 되어야 공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연륜이 차신 누님의 대화는 열일곱 살 순진한 사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금단의 영역이었다.

퍼퍼퍼퍼펑, 푸아아앙!

쩌어엉!

대결은 여전히 치열했다. 공수의 연결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도 건전한(?) 대화가 이어지는 걸 보면 신비하다. 낙엽만 떨어져도 웃음이 나올 시긴 아닐 텐데.

휘이잉, 추우우울렁!

사나운 기파에 거대한 해일이 덮쳤다. 천재지변의 한복판에서 시시덕거리며 전투를 즐긴다.

너와 나, 우리밖에 없는 듯이.

“……사랑싸움은 제발 우리가 없는 데서 하라고!”

“태수야, 그러게 빨리 도망치자고 했잖아!”

“아, 씨발! 지금 도망친다고 될 일이냐고! 망할! 해일 또 온다!”

너희만 있냐!

우리도 있다고!

태수와 친구들은 죽을 맛이었다. 혹독한 훈련에서 벗어나는가 했더니, 훈련장이 지옥의 한복판으로 변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중이다. 싸움의 여파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무인도란 한정된 공간이었다.

“뭔 놈의 1학년이 저러냐?”

“얘들은 그냥 규격 외야, 우리 같은 평범한 생도가 아니라고!”

“아카데미는 왜 온 거지?”

겨우 무진을 이해했더니, 지수가 나타났다. 1학년 서열전 1위라고 해도 실력 차이는 크지 않을 줄 알았더니. 그마저도 제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둘이 쌍으로 미친 연놈들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