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인류최강 남사친-134화 (135/374)

134. 주인님(1)

성운맹에 가입하려는 연유는?

-인생을 바꾸려고. 이대로 순응하며 살고 싶지 않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새끼들을 용서할 수 없어!

-강해져서 강남 부자가 될 거야. 가난한 건 질색이야!

-상위 서열이 돼서 인기를 누리고 싶어!

-건방진 1학년생에게 선배의 무서움을 보여 줘야지!

무진은 면접 같은 자백을 통해서 꿍꿍이를 알아보았다. 아이템이나 스킬로 정신을 방어할 순 있겠지만, 질의를 공개한 이상 큰 의미는 없었다.

연유, 스텟, 속성, 희망을 물어 방향성을 결정하는 잣대로 삼았다. 가진 능력을 정확히 살피지 않고선 나아갈 토대를 만들기 어려웠다.

‘스텟을 숨긴다면 그에 걸맞게 대접하면 그만이니까.’

무진은 본심을 숨기는 생도에겐 맹원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력한 환술을 걸기보단 최면에 가까운 수준으로 선을 그었다. 환술을 거는 과정을 일일이 녹화한 연유도, 나중에 문제가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생도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고, 예상치 못한 답변도 많았다. 대의보다는 개인주의가 강했지만, 중요한 건 맹규(盟規)를 지키려는 의지였다.

-유지수하고 사귀고 싶어서.

-천혜진하고 만나고 싶어서.

-소유정하고 결혼하고 싶어서.

아주 솔직한 녀석들도 꽤 있었다.

면접관으로 있던 지수, 혜진, 유정의 콧대가 한껏 올라가는 걸 봐야 했다.

지수와 유정은 그렇다 쳐도 로봇에도 감정이 있었나? 혜진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럴 때마다 상원은 유정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선배의 멱살을 잡았다.

“유정이는 나하고 결혼할 거야! 무려 두 살이나 많은 노땅이! 경찰에 신고한다!”

“끌어내.”

상원은 4인방에 의해서 질질 끌려 나갔다. 사지를 잡아서 밖으로 내던졌는지는 알 필요 없었다. 관람은 허락하나, 면접에 방해가 되는 짓은 용납하지 않았다.

유정아~~~!

끌려가는 내내 유정이를 간절히 불렀으나, 공허한 외침이었다. 유정이는 연신 콧방귀를 뀌며,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내가 보여 줄 때 보라는, 어딜 감히 넘보냐는 마인드였다.

“냉정하네.”

“내 스타일 아냐. 난 크고 단단한 사내가 좋아.”

크흠!

지수하고 어울리더니 얘도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다. 잘못 들으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키가 크고 근육이 탄탄한 스타일을 바란다고 정정해서 듣기를 바란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대형 사고를 유발한다.

무진은 과거에도 불쌍하고, 현재도 불쌍하고, 앞으로 불쌍할 상원을 위해서 한 번은 친(親)상원이 되었다. 아주 친하진 않아도, 아는 사이에 건의(建議)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열 번 두드려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어.”

“친구로선 받아 주지만, 사귀는 건 다른 문제야. 난 애를 키우는 취미는 없거든.”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한다면, 유정은 상원을 안 보고 살아도 그만이었다. 순수한 우정이라면 또 모를까. 징징거리든 아니든, 최소한 키는 맞아야 했다.

키가 작아도 잘생기면 된다는 애들도 있지만, 유정은 자기 스타일이 확고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들이댄다고 다 받아 줄 순 없잖아. 연애는 상호작용으로서 서로의 뜻이 같은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거다. 어느 순간 상원이 남자로 느껴질 수도 있지.”

“그건 그때 가 보면 알겠지. 지금부터 단정할 필욘 없잖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거야.”

유정이가 무진을 보며 살포시 눈을 흘기는 찰나 지수가 얼굴로 막아섰다. 눈을 마주치는 시간을 단속했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자, 의도치 않게 무진은 지수의 뒤통수를 보는 구도가 되었다. 지수와 유정 사이로 혜진이가 잠깐 눈에 띈 건 우연이겠지.

열일곱 살에 지고지순은 말도 안 되고, 그 나이 때 사랑이 전부라고 여겼던 남녀의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부분 결혼은 다른 사람이랑 할걸.

의도치 않게 잡담이 길어졌다. 선배를 세워 놓고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면 곤란했다.

“면접에 방해되니까, 다들 나가.”

“너희들 무진이 말 들었지, 방해된다잖아. 어서들 나가.”

지수가 두 팔을 골반에 올리며 유정이와 혜진이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자기 집이라 이건가?

“너도 나가.”

“머리통 잡지 마!”

무진의 손이 큰 걸까, 지수의 머리가 작은 걸까? 어쨌든 한 손에 잡히긴 했다. 친절하게 머리통을 잡아서 연무장 밖으로 내보냈다.

후우!

시끄러웠다.

친구들을 내보낸 후에야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면접의 비율은 반반이었다. 반은 환술에 저항하거나 걸리지 않았고, 반은 순순히 응했다.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예상했던 수치였고, 그만하면 비교하기 딱 좋았다.

면접을 끝낼 때쯤에 문자로 약속을 잡은 선배님이 찾아왔다. 지수, 유정, 혜진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계좌 이체 부탁해.”

“돈도 많으면서.”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방 4개를 잡지.”

“……?”

언젠가는 친구들과 같이 제주도에 가기로 했었다. 여행 가서도 일인일실(一人一室)이기에 돈은 필수였다. 요즘 제주도의 살인 물가를 고려하면 동남아가 싸긴 했다.

부글부글!

사람을 앞에 세우고 딴짓을 하자, 예슬은 억누른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이야?”

“선배님이 온다, 안 온다로 내기를 했습니다.”

“예슬아, 내가 뭐랬어! 아주 돈독이 오른 것 같아. 나도 당했다고!”

“……?”

기어이 따라온 철화의 훈수에 예슬은 골이 지끈거렸다. 자기 때문에 잃었다고 징징대기에 10만 원을 계좌 이체 해 주기까지 했다. 손해는 내가 봤는데, 왜 자기가 앙탈인지!

“날 가지고 놀고서 무사할 것 같아!”

“보디캠 촬영 중입니다.”

“……그런다고 내가 쫄 것 같아.”

“잘 안 들립니다.”

영상 촬영은 사전에 공지된 사안이라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찾아온 연유를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무능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예슬은 둘이서 담판을 짓자고 요청했다.

너도 사내라면 도전을 받으라는, 제법 도발적이었다.

“선배만 빼고, 다들 나가 있어.”

“또? 둘이서 뭐 하려고?”

지수의 물음에 유정과 혜진이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남녀가 유별한 시대(?)에 땀을 흘리는 장소인 연무장에 둘만 있겠다니, 충분히 의심이 갈 만했다.

“도 선배는 내 스타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가. 나도 얼굴과 몸매를 보는 사람이야.”

“하긴. 안심했어. 다들 나가자.”

지수, 유정, 혜진이 순순히 인정하고 얌전히 연무장을 나갔다.

남겨진 예슬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눈치 빠른 철화가 은근슬쩍 애들과 묻어 나가 더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 생전 들어 보지 못했던 막말이라 반박도 못 하고 병풍처럼 가만히 있었다.

발끈해 한다는 소리가.

“너도 내 스타일 아니거든!”

“후우, 안심했습니다.”

무진의 안도하는 한숨에 예슬의 이마에 핏줄이 잡혔다.

어째서 생도들의 반응이 극단적인지 이해가 되었다. 무진을 따르는 부류는 광신도에 가까운 반면 싫어하는 부류는 칠색팔색 했다. 대화를 꼬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데도, 전부 욕으로 들리는 건 착각일까?

“보디캠도 껐고, 환술도 제거했으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세요.”

“정말이야?”

“그럼요, 연무장의 결계도 쳤으니 대화가 새어 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나 호흡으로 심신을 다스린 예슬은 본래 성격으로 돌아왔다. 뱅뱅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

“성운맹을 위해서 선배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제물로 쓴 거야?”

“그렇습니다. 한데, 그게 문제가 됩니까? 선배도 자기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태수 선배를 이용하려고 했으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누가 더 효과적인 수를 쓰냐의 문제였고, 선배는 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헐!

무진의 솔직한 발언과 묵직한 팩트에 예슬은 어떠한 반박도 못 하고 망부석이 되어야 했다. 말 한마디 했다고, 일방적으로 열 방을 처맞는 격이다.

“이익! 아카데미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이상한 말을 하는군요. 저는 아카데미 규칙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교장 선생님이 가만히 있을 분입니까? 선배가 말한 규칙은 아카데미의 교칙이 아닌 그저 생도 간의 암묵적인 관행에 불과합니다. 혹, 구태의연한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저를 탓하는 겁니까?”

말로는 이겨 낼 재간이 없음을 예슬은 직시했다. 차라리 꿍꿍이를 숨기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추궁하여 물고 늘어지기라도 할 텐데, 속을 시원하게 드러내서 억장이 무너졌다. 반박을 해 봤자 수 싸움에서 졌다는 패배 선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아카데미 교칙을 전부 읊어 드릴까요?”

“됐어, 너 잘났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의문이 풀리셨다면 이만 나가시겠습니까? 제 시간은 값싸지 않습니다.”

“싫어!”

여기까지 와서 말만 하고 나간다? 그것도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서!

도저히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저 여유 만만한 얼굴에 근심·걱정을 새겨 주어야 했다.

“좀 있다 사부님 오실 텐데, 소개해 드릴까요?”

“끼욧! 진작 말했어야지!”

권왕의 귀가에 예슬은 조바심이 생겼다.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런 한가한 소릴 할 때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해도 문제고, 말을 안 해도 권왕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제자 앞에서 땡깡 부리는데, 가만있을 사부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난장의 대가로 불리는 권왕이었다.

망할, 이 자식 나와바리를 너무 생각 없이 찾아왔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황당한 소문과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앞뒤를 재지 않았다.

“오시긴 하는데 4시간 있다 오십니다.”

“이 자식이 날 놀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남의 귀중한 시간 빼앗지 말고. 제가 언제까지 도 선배의 앙탈을 받아 줘야 합니까?”

“앙탈?! 너 말이면 단 줄 알아! 좋아, 결투다!”

“호오? 권왕가와 전면전이라도 하시겠단 말씀이시군요. 무극 길드라면 사부님도 좋아하시겠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 권왕의 광기가 예슬의 눈앞에 영화처럼 그려졌다. 가문과 길드의 마찰을 고려해서 심사숙고는 무슨!

“흐엑! 아냐! 지금 누구 죽일 일 있어!”

“녹음했습니다.”

“껐다며?”

“거짓말입니다.”

예슬은 위기감을 느꼈다. 등에서 샘솟는 식은땀이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며 엉덩이를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이 망할 놈의 후배와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인생이 참 주옥처럼 버라이어티해졌다.

‘이게 아니잖아!’

원래는 ‘네 죄를 알렸다’로 시작해서 변명으로 일관해야 마땅했다. 그것이 후배의 덕목이거늘. 하나부터 열까지 해명하고 있으니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따지기에는 빈틈이 안 보인다. 마법사의 날카로운 관점에서도 이 후배 놈은 보통이 아님을 경고했다.

철화가 왜 그토록 뜯어말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 씨! 좀 더 말리지!’

이제 와 철화를 원망해 봤자 늦었다. 물러선다고 해도 이 녀석이 얌전히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닐 게 확실하다. 게다가 당하기만 하고 후퇴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고로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베라고 하지 않나.

“나보고 대체 어떻게 하라고?”

“마법사는 궁구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저를 설득할 근거라도 있으면 마음이 동할지도 모르겠네요. 예를 들면 무극 길드의 S급 마법 장비나 아이템 정도면…….”

“이 미친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대신 절 이기면 여태까지의 모든 일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예슬은 콧방귀를 뀌었다.

“꼴랑, 사과?!”

“누가 사과하느냐에 따른 관점의 차이죠.”

이토록 얄미운 놈이 있을 수 있을까? 예슬은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도록 패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어차피 갑과 을은 정해져 있었고,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기 마련이다.

“내가 이기면 내 밑으로 와.”

“호오, 노예빵이군요.”

“사라진 구태의연한 반상의 법도를 배우게 될 거야.”

“강상죄를 누가 범할지 재밌겠네요.”

무진도 이쯤에서 허락해 주었다. 노예가 되기를 간청하는데, 후배로서 선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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