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유령(2)
“그것 좀 줘 보세요.”
“여기 있습니다.”
무진의 요구에 백의산은 주저하지 않고 아내의 유품인 [천사의 맹세]를 건넸다. 한시도 떼어 놓지 않았던 걸 아는 요원들이 봤다면 놀랄 일이었다.
‘공덕을 쌓으니 보상을 받네.’
백의산이 제압당하지 않은 장면부터 무진은 보고 있었다. 다른 요원들과 달리 정신력이 강하긴 했어도, 유령의 혼력을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령의 혼기가 닿는 찰나 빛이 발산했고, 잠자고 있던 아이템이 발동했다.
무진은 바스타드 모양의 펜던트를 잡고 유령의 몸을 찔러 보았다.
쿡, 쿡!
부르르, 부르르!
홀드 마법에 걸린 듯 꼼짝을 못 하는 유령은 죽을 맛이었다. 찌를 때마다 암흑혼력이 흩어지고 있었다. 육체에 가하는 충격이 아닌 암흑혼력을 관통하기에 충격이 훨씬 컸다.
“직접 닿을 때 효과가 더 좋구나.”
일부러 육체 외부의 흐름은 차단하고, 내부는 자유롭게 해 주었다. 요원의 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유령이 반응하는지를 확인했다.
쿡! 쿡!
부르르르르르!
아이템과 암흑혼력의 상호작용을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무진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결과를 내기 위한 탐구욕은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저기?”
“말씀하세요.”
“언제까지 제 팀원을 찌를 건지?”
“이게 죽지를 않네요.”
백의산은 더는 따지지 못했다. 유령의 발버둥이지만, 팀원의 육체였다. 고문을 가하는 것 같아서 말려 보려고 했으나, 죽지를 않는다니 방법을 찾을 때까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무진은 30분간 찌르고, 두드리고, 찢고, 패는 스마트한 검사 후에야 펜던트와 유령의 인과를 증명했다.
“감옥과 죄수의 관계와 비슷하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펜던트는 특정 기운, 즉 유령을 가두는 일종의 감옥이에요. 이걸 대체 어디서 얻은 겁니까?”
“죽은 아내가 아버지에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감옥의 요건을 갖춘 펜던트에게 있어 유령은 탈옥한 죄수였다. 펜던트는 유령을 안으로 끌어들여 가두는 성질이 있었다. 그러니 유령은 닿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며 거리를 두려고 한 것이다.
무진은 펜던트의 기운, 임시로 광영기(光榮氣)라 명명한 후 흐름을 강화했다. 사용법은 펜던트에 새겨진 문양에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항마의 무공을 익힌 자가 새겨 넣었을 가능성이 컸다.
동시에 유령을 강제했던 허공섭물의 일부를 개방했다.
-이놈!
이때를 놓치지 않고 유령이 요원의 몸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물이 가득 찬 둑 일부를 무너뜨린 것처럼 통로가 정해져 있었다. 일순 흐름이 빨라지면서 암흑혼력이 광영기에 의해 빨려 들어갔다.
일방통행으로 잘못 들어온 김 여사처럼, 유령은 당황했다.
-……이건, 안 돼!
“죽은 척해 봤자 소용없어.”
힘이 빠진 척 연기를 했지만, 무진은 애초에 속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기에 일부러 허점을 드러냈을 뿐이다.
결국, 기횐 줄 알고 얼씨구나 도망친 유령은 펜던트에 갇히고 말았다.
“감옥의 목적은 교화에 있지.”
범죄자를 가두는 역할이 일차적이라면, 교화야말로 감옥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무진은 광영기를 증폭하여 유령의 어둠을 희석했다. 원래라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광영기가 너무 강해서 유령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상관없지.”
범죄자의 인권처럼 유령이 저지른 죄를 상기하면 곱게 소멸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어딜 감히 죄를 짓고, 감옥에서 편히 살려고 그래.
“흡입력 죽이네.”
광영기는 증폭할수록 몇 배로 흡입력이 좋아졌다. 자주 사용하면 흡입력이 떨어지는 무선청소기와는 정반대였다. 이래서 귀찮더라도 유선청소기를 사용하는 편인데, 실제로는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를 주로 쓴다. 그럴 거면 무선청소기의 배터리 빼고, 터빈만 쓰는 게 낫지 않나?
솨아아아!
-……안 돼!
소멸의 고통도 억울한데, 정체성마저 잃어 가다니. 유령으로선 복장이 터졌다. 어떻게든 존재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광영기는 갈수록 증폭했다.
-……살려 줘, 제발…… 노예라도 될게!
“증거를 보여.”
-……영혼각인을 하면 돼!
“해 봐.”
-그 전에…… 이 빛을 좀…….
“아니면 말고.”
실력 이상으로 고액의 FA를 노리다가 미아가 된 야구 선수의 말로를 모르나?
아쉬울 게 없는 무진의 어투에 유령은 다급해졌다.
이대로 소멸하거나, 정체성을 잃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영혼각인을 걸었다. 다른 걸 염두에 두기에는 한시가 급했다.
-그만…… 했잖아!
“어, 그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냐?
“이제 알았어. 잘 가.”
-……절대…… 용서…… 크아아아아!
영혼각인을 한 이상 노예나 다름이 없지만, 무진은 용서하지 않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고. 어차피 소멸 아니면 완전한 교화, 둘 중 하나였다.
음.
백의산에겐 유령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강 부장 혼자서 말하는 것만 들었다. 그런데도 유령의 억울함이 생생하게 들리는 걸 보면 신기했다. 평소 소신과는 맞지 않으나, 역으로 당해 봐야 깨닫는 바가 있었다.
솨아아아아!
광영기의 포화에 유령은 휩쓸려 버렸다. 어둠은커녕 한 점의 잡티도 없는 백치가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살아는 있는데, 유령이라 생명력이 뛰어나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나는 누구?
“시끄럽고.”
무진은 기억상실 한 유령을 이용해서 제압한 요원들의 어둠을 빨아들였다.
기억을 하든, 안 하든 중요하진 않았다. 유령의 성질을 이용하면 어둠을 빨아들이기 수월했다. 애초에 그런 용도였기에 이름을 지어 주지도 않았다.
-나는 누구…… 크악!
“닥치라고.”
***
하아아!
백의산은 팀원들이 무사하단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신의 피로가 극에 이르렀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팀원들을 챙기느라 정작 본인 몸은 건사하지 못했다.
“괜찮습니까?”
“아, 저는 괜찮습니다.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는군요. 저와 팀원들을 구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일단 이거부터 마시고 얘기하죠.”
“그럼 염치 불고하지만,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물약을 거절하기에는 백의산도 너무 지쳐 있었다. 이 상태로는 던전에서 나가는 데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럴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회복하는 편이 돕는 것이다. 염치는 던전을 나가고 난 후에 차려도 되었다.
꿀꺽, 꿀꺽!
물약을 마신 백의산은 두 눈을 부릅떴다. 마시자마자 효과가 나타났다. 외상은 물론, 내력과 체력까지 회복을 시켜 주었다.
이토록 뛰어난 회복력을 가진 물약은 절대 평범할 수가 없다. 최소한 중상급 이상의 물약이 분명했다.
‘반발력도 거의 없어.’
물약은 효과와 반발이 적을수록 하급으로 취급한다. 그렇기에 효과가 좋고, 빠를수록 약발에 의한 후유증이 컸다.
그러한 단점을 감수하고도 상급 물약을 원하는 건 완전한 치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반발에 의한 구토와 울렁증 등등의 후유증은 고욕이긴 했다.
“저희 길드에서 새롭게 만든 무반발 물약입니다.”
“같은 가격이면 폭발적이겠군요.”
가격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 반발이 없다고 해도, 시장가치를 논하기엔 무리였다. 물약 자체가 고가인 데다가 중급을 넘어가면 가격도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 이미 고가로 분류되는 중상급 물약을 더 비싸게 팔면 누가 사겠는가.
“이번에 돈 좀 벌겠군요.”
“허!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겁니까?”
“다행히 기존 재료에서 특별히 더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원한다면 정부에는 좀 더 싸게 납품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러시다면 제가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시중가격보다 저렴하다면 정부 차원에서 사들일 수도 있었다.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판매 가격보다 비싸게 산다면 국정감사에서 유착 관계를 의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시중가와 효과가 중요했다.
“샘플로 드릴 테니 가져가서 확인해 보세요.”
“여러모로 신세를 집니다. 강 부장님 아니었으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제가 확실하게 보상하겠습니다.”
“공무원이 얼마나 번다고요. 됐습니다.”
“제가 공무원이긴 해도, 제법 법니다.”
백작급 헌터를 고용하는 데 일반 공무직 월급을 주진 않는다. 최상위 길드원처럼 대우할 순 없어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이 많았다. 1% 무담보 대출이라든지, 학자금 전액 지원이라든지, 대중교통 무료 이용이라든지 등등.
“아, 이거 잘 썼습니다.”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품이라면서요. 활성화해 놓았으니 범인들 자백을 시킬 때 써도 좋고, 악기를 흡수해서 마나로 전환할 수 있을 겁니다.”
“예?”
“능력치를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아내의 유품을 돌려받고 상태를 확인한 백의산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활성화된 [천사의 맹세]의 등급이 무려 S급 성장형이었다. 그런 보물을 아무렇지 않게 돌려주다니, 강 부장의 배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수십 년을 요원으로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무인과 길드원을 겪어 봤다. 눈앞의 이득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세 손가락도 많았다.
하물며 S급의 성장형 아이템이었다.
혼자만이 아닌 팀원 전체가 구명지은을 입었다. 그냥 달라고 한들 거절하지 못할 명분까지 쥐었다.
“저 욕심 많습니다. 그저 제 것이 아니니 돌려 드린 겁니다.”
“제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강 부장님 같은 분을 만나다니 말입니다.”
백의산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과 달리 부장의 품격이 전해졌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이지 않을까 내심 추측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오늘 던전의 공략은 모두 던전 관리팀이 해결한 것으로 했으면 합니다.”
“아니, 왜?”
“사실 던전 공략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길드원의 교육을 위해서 참가했거든요. 길드장님의 허락도 없이 나선 일이라, 알려지면 곤란합니다.”
“길드의 비밀이라 이거군요.”
“비밀 병기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렇게 다 밝혀도 되는 겁니까?”
“팀원들을 위해 희생하는 백 팀장님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될 것 같네요.”
백의산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에서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인정해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진심을 전해도 속을 숨기는 사람들 속에서 의를 나눌 만한 사람을 만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난처해지는 걸 각오하고 자신을 드러냈다. 그런 사람의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지요. 그래도 보상은 따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백 팀장님도 손해 보면서 사는 성격이군요.”
“손해라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요, 그저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아이템에 각인을 하나 넣었으니 연구를 해 보면 성과가 있을 겁니다.”
백의산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기실 무진이 준 각인은 가볍지 않았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일반적인 성과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네.’
무진은 고지식하고 미련해 보이는 백의산이 싫지 않았다.
같이 일하다 보면 답답한 경향도 있겠지만, 저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인연이다.
‘복수자가 된다고 했지.’
유령은 후일 흑령제로 불리게 되며 수많은 인간을 농락하고, 혼기를 갈취했다. 그런데 10년이 넘도록 아무도 유령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사람으로 이동하며 정체를 숨겼으니 찾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 유령을 죽인 사람이 바로 복수자 백의산이었다. 그는 오늘 던전에서 팀원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죄를 뒤집어쓴 상태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으며, 하나 남은 딸마저 유령에게 잃었다. 유령은 백의산의 모든 걸 집어삼키고, 철저하게 농락했다.
‘악운이 행운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유령의 악행이 세상에 밝혀진 것은 백의산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령을 가두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택했다. 복수를 위해서 목숨마저 버린 고결한 희생이 아니었다면 유령을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수가 기억할 정도면 대단했다고 봐야겠지.’
이번에 유령에게 당했을 희생자를 구해 냈고, 백의산이 죽지 않는 미래를 완성했다.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집념과 자질을 갖춘 정부 인사와 연을 맺었으니 나쁘진 않았다. 일하다 보면 정부와도 유기적으로 협력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암중 세력이 정부에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연관이 있었을까?’
유령이 급작스럽게 강해진 연유가 암중 세력의 개입이라면? 관계를 미연에 끊어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상, 던전 안이었기에 쉽게 죽였다. 이리저리 씨앗을 심어 팬텀존을 발동했다면 아무리 무진이라도 난적이었다.
‘좋은 일도 하고, 밭농사도 익혔으니 나쁘진 않네.’
사요공과 밭농사의 연계로 씨앗을 심어 세뇌를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강화된 사념으로 정신의 완벽한 장악도 가능했다. 꼭두각시를 만들어서 도구처럼 쓰기도 편하고.
‘어서 빨리 괜찮은 재료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선량한 사람을 실험할 순 없으니, 죽어도 괜찮은 악당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쓰고 버릴지라도, 세상을 구하는 데 일조했다면 괜찮은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