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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최강 남사친-167화 (168/374)

167. 수확의 계절(3)

그냥 죽이기는 조금 아까웠다. 사룡비에 심장이 찔리고도 여태 살아 있었다. 예상보다 더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살려 주면 어쩔 것이냐?”

“……따르겠습니다, 제발!”

“네놈의 영혼을 걸겠느냐?”

“……그건!”

“싫다면 그만 죽어라.”

“……알겠습니다, 영혼을 걸겠습니다! 그러니 해독제를!”

이제껏 거만하게 행동했던 놈이 살려고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니, 강 교관은 그간의 고통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짜로 바랐던 상황이다.

어차피 죽이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놈을 이용해 성운맹까지 먹어 치운다면 일전의 연이은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나의 노예가 되거라.”

“……주인이시여.”

독백을 하듯 희열에 몸부림치는 강 교관을 공터의 반대쪽에서 무진은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독에 중독된 것치고는 너무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옆에는 장구용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강 교관이 자신을 부를 때도 고개를 갸웃했었다. 뇌리의 무언가가 반응했다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무진이 주입한 씨드가 발동하여 사령을 잡아먹은 것이다.

“어떻게 한 거야?”

“극락정토를 보여 줬지.”

“대체 언제?”

“공터에 들어올 때부터야, 선배의 역할이 컸어.”

“내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무진은 환술총론을 전해 주기 전부터 강 교관을 의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가 보인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의도된 듯했다.

일관된 언행만으로 무턱대고 몰아가진 않았다. 차분히 준비한 증거와 함정이 강 교관에 대한 의혹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그가 아카데미에 파견된 암중 세력의 주구임을.

“선배는 나가 있을래?”

“내가 보면 안 되는 거야?”

“당장은 모르는 편이 나아.”

“알았어.”

무진은 ‘바퀴벌레 색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용 선배를 강 교관에게 보냈었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 수차례나 검토했지만, 예상된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세한 사정을 알려 주지 않았었다. 구용 선배를 위한 일이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이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욕을 하지.’

군말 없이 따라 준 구용 선배의 믿음에 보답을 해 줘야 했다. 후일 맞춤형 기연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충성은 일방적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인 관점이나, 관계가 원만할수록 합당한 대가를 주어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금제의 발동 조건을 제한하기는 했는데.”

강 교관만 처리할 거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최대한 암중 세력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작금의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서 권왕가, 창황가, 성운맹, 아카데미를 활용했다.

압박감을 못 이긴 생도를 위로하는, 교관과 사제의 훈훈함을 빙자한 함정이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이중 전략이었고, 강 교관은 무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극락을 맛봤으니,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됐지.”

강 교관은 치밀한 성격으로 빈틈을 드러낼 만큼 허술하진 않았다. 무진은 그러한 성향을 역으로 이용했다. 본인이 판을 짜도록 유도한 후, 확신을 주었다. 제아무리 완벽주의자라도 승리한 직후라면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무진은 극락정토의 술식을 이해한 후, 흐름을 바꾸었다. 그러자 강 교관은 환희에 찬 얼굴로 비밀을 술술 토해 내기 시작했다. 자기가 짠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금제의 발동을 제한할 수 있었다.

“교류전을 노리고 있었네.”

짐작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지령이 떨어지진 않았다.

환술에 특화되어 전투력은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강 교관은 이제까지 만난 주구들과 달리 아는 바가 꽤 있었다. 암중 세력의 체계를 일부나마 파악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들이었잖아.”

이제까지 처리한 자들도 나름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들조차 암중 세력에겐 언제든 쓰고 버릴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강 교관은 생도들을 세뇌하여 조직에 알선해 온 일개 브로커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건 일전에 해치운 조던 정도인데, 그마저도 중간 간부도 되지 않았다.

“어디.”

무진은 극락정토를 통제해서 강 교관과 연관된 아카데미의 세작들을 확인했다. 간단하지는 않았다. 자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금제가 발동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멍청한 놈들이 네놈의 방수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냐? 그게 맘대로 될까? 아카데미의 의협으로 불리는 정검협조차 내 명을 따르고 있는데.

-……그럴 수가!

극락정토에 갇힌 강 교관은 고무되어 떠벌리고 있었다. 그동안 무던히도 괴롭혔던 무진의 굴복에 도취했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찰나, 반전을 선사했기에 통쾌함에 젖었다. 패배한 무진에게 승자로서 위대함을 알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이다. 또 아느냐, 네가 조직의 은혜를 입게 될지. 하나, 그 모든 영광은 바로 나로 인해서 얻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무진은 흐름을 조작해서 더욱 비굴한 모습을 투영했다. 강 교관이 원하는 이상향을 만들어 놓고, 술술 토하도록 자백을 유도하고 있었다.

너무 잘 통해서일까?

방심을 떠나, 강 교관의 눈치도 보통은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게 말수도 많아졌고, 하지 않아도 될 사족이 늘었다. 비록, 무진을 굴복시켰다고 해도 상부의 체계를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상함을 감지하자, 위화감이 번졌다.

-……설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시던 말씀 계속하시죠.

-네놈, 그럴 리가 없는데.

-저는 교관님의 종입니다. 어서 조직의 위대함을 설파해 주십시오.

-이놈, 헛수작을!

-칫, 눈치 깠네.

한껏 고무되었던 강 교관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부정하고 싶었다. 본인조차 설득이 되지 않는 비현실의 극치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모든 상황이 환술이었다고? 그런 줄도 모르고 희열에 젖어 자백한 꼴이었다.

“이럴 순 없어! 네놈이 환상일 리 없어!”

“거짓이란 걸 알면 달라지나?”

투영된 환상이 사라지며 오만했던 무진으로 돌아왔다. 아니 원래부터 변한 적이 없었다. 강 교관 혼자서 자아도취에 빠져 승리를 확신했을 뿐이다.

속았다는 걸 깨닫자.

“이 시건방진 애송이가 감히 나를 농락해! 죽여 버리겠어!”

“추하네. 환술로 졌으면 인정해야지. 다른 분야로 해 봤자 어차피 상대가 안 되잖아.”

무진은 강 교관의 심상과 현실을 멋대로 오가며 가지고 놀았다. 아직도 긴가민가한 환상을 부숴 버리면서도, 지속해서 유혹했다. 알면서도 환상에 사로잡히도록 강제해 버렸다. 환술사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패배였다.

“자, 더 말해 봐.”

“네놈 뜻대로 될 성싶으냐?”

“버텨 봤자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야, 차라리 내가 만든 극락정토에서 행복하게 살지 그래.”

무진은 강 교관이 했던 말을 순도 100%로 되돌려주었다. 자기가 했던 말이니,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확실히 인간의 본성은 내로남불을 기저에 깔고 있었다.

“네놈의 수작에 더는 넘어가지…… 흐억!”

“단꿈이 아닌 악몽을 원한다면야, 하는 수 없지.”

무진은 환술식을 빨리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금제를 발동하지 않는 선에서 이보다 훌륭한 밀폐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고문실을 제공한 강 교관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크아아아악!

강 교관의 심상에 공포를 심어 주었다. 그는 조직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했다. 이는 마치 직장인이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와 같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자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공포가 아닌가. 비슷하지만 더 최악인 곳이 바로 군대다. 재수 없는 선임과 종일, 잠을 자도, 내일도 같이 하게 된다. 이걸 18개월 동안 하게 되면 온전한 정신을 가지기 힘들다. 군대가 바캉스인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보내 줘야 했다.

“……살려 주십시오…… 이건 제 뜻이 아닙니다! 잠깐, 넌 진짜가 아니라고…… 크아아아악!”

현실이 아니라는 걸 인지해도, 정신은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색이 된 강 교관의 팔다리가 반대 방향으로 꺾이며 자동으로 분골착근을 일으켰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는, 흡사 오도독뼈를 씹는 기분이었다.

“안 되지.”

리커버리, 힐!

무진은 만신창이가 된 강 교관의 신체를 억지로 회복시켰다. 누군지는 몰라도 분골착근을 제대로 할 줄 알았다. 극심한 공포에 함몰된 강 교관은 칠공에서 오물을 토하고 있었다.

“……차라리…… 죽여!”

“아는 걸 말하면.”

“그리드4 죽음의 장미…… 허억! 아닙니다. 이건 제 의지가 아니라고요!”

“그래, 다 알아.”

무진은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했다. 강 교관은 환술을 부정하면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악몽과 저주에 시달렸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사정해 봤자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한 반복으로 이어지는 공포에 끝내 자살을 기도했다.

크억, 털썩!

불교와 기독교를 믿는 무진은 자살을 용납하지 않았다. 쓰러진 강 교관의 의식을 되돌려 환술을 심었고, 2차, 3차, 4차로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먹었다. 차라리 육체적인 고문이 그나마 나았다. 영혼에 새겨진 각인은 육체와 이어져 이중 삼중으로 괴롭혔다.

“제발…… 이제 그만해…… 다 말했잖아! 나는 더…… 몰라!”

“알면서 왜 이래.”

무진은 안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끝까지 강 교관의 영혼을 헤집어 놓았다. 버티지 못한 영혼이 붕괴하여 죽어 가기 시작했다. 중심에 다가설수록 금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허억, 허억!

생기가 저절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떤 식의 금제인지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당장은 불가능했다. 지금보다 고차원적이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금제였다.

무진은 죽어 가는 강 교관을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고통에서 해방되어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나를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살고 싶진 않아?”

“……네놈은 더욱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면전에서 악담을 하면 곱게 보내 줄 수가 없어. 말을 곱게 하지 그래. 아니면 다시 살리는 수가 있어.”

“……이미 늦었다, 나는 회생 불능이야!”

“확신해?”

무진이 넌지시 고개를 내밀며 웃자,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빌미를 제공해 준다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난 죽는다, 이제 1분만 있으면 끝이야!”

“그 1분이 무한일 수도 있지. 강 교관은 알잖아.”

환술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에 가해지는 고통을 무한으로 반복할 수 있었다. 실제 시간은 1분일지라도, 대상자가 느끼는 시간은 무한 전생일 것이다.

“……이 악마 같은 놈!”

“말 곱게 하라고 했다.”

이제 곧 죽는다. 죽기 전엔 추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강 교관은 일그러지는 인상을 펴며 사정했다.

“……네가 이겼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

“악인이면 추하게 가야지.”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연함을 무진은 용납하지 않았다. 악인에겐 그조차도 사치였다. 지금까지 강 교관이 해 온 일들은 차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 이는 지수의 미래로 검증이 되었다. 남의 미래는 지옥으로 처넣고 자기는 곱게 가려고? 그런 꼴은 못 보지.

무진이 마음을 먹자 강 교관이 원하는 죽음의 카운터는 멈추고 말았다. 공포와 고통의 무한 반복이 이어지자 강 교관은 버티지 못했다.

“잔인한…… 넌 분명 지옥…… 크아아악!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은 성인군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냐.”

“……개 같은…… 카아아…… 효자입니다!”

“호오, 제법이야.”

갈 때 가더라도 말은 곱게 해야지.

자고로 악인은 죽음 앞에서도 자존심을 세워선 안 되었다. 멋진 악인, 그런 것에 열광하는 세상은 잘못되었다.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선인도 문제지만, 멋있는 빌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빌런이 왜 빌런인지를 깨달아야 했다.

무진은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눌렀다. 최후의 방점을 찍어 주기로 했다.

“교장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너야말로 어떻게 됐느냐?

“별거 없던데요. 정협검이 간자인 거 빼고요.”

-그래, 별거…… 그게 가장 중요한 거잖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교장의 목소리였다.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공터를 선명하게 울렸다.

부르르르!

강 교관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완전히 놀아났다는 것을. 그런 강 교관을 무진은 마지막까지 유린했다.

“잠깐은 행복했지?”

“……죽여 버리겠다!”

“내가 말했지, 곱게 가고 싶으면 말 똑바로 하라고.”

“이 악마……!”

10초가 남았는데, 무한 고통을 당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욕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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