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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최강 남사친-176화 (177/374)

176. 하나만 걸려라(2)

퍼어엉, 투아아앙!

벼락과 천둥의 관계처럼 뒤늦게 들린다. 저 멀리, 아득히 먼 거리에서 굉음이 포효하다, 지척에서 불을 뿜는다. 사전 동작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빠르다 보니 서로의 잔영을 파괴했다.

실제와 허상, 환과 변, 경중이 결합하여 전혀 다른 파괴력이 현신한다. 일대가 현실이었다면 파장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권과 권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균열이 발생하며 수행 던전이 견디지 못하는 듯 위태로웠다. 내외력에 권능이 합일하여 권극과 조우한 결과였다.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이 격돌한다. 권역이 점점 격렬해지며 전력이 극한으로 치달아 갔다.

내지르고, 가르고, 부수고, 누르고, 폭발하고, 분쇄한다. 일격 일격에 실린 무진과 무신의 결의가 가볍지 않았다. 격돌한 후, 떨어져 내리는 편린조차 낭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거력이 담긴 권형에 태산이 무너지고, 바닥을 찍는 진각에 지진이 일어나며, 무형기로 형성된 칼날이 수백 장을 난도질했다.

호풍환우, 지진해일의 아수라장이었다.

우우우웅, 두드드드드!

현란하다면 현란할 수 있으나, 세상을 붕괴시킬 멸절의 파괴력이었다. 소멸의 권능이 담겨 닿기는커녕, 주변에 있기만 해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슈욱!

무신결의 극의로 발동한 일로무극권.

파괴적이고, 현란하고, 변화무쌍한 공수와 달리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하나, 자신과 동등한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 한 막지 못한다.

그것이 무신의 의지였다.

타앗!

쳐 낸다.

무신의 팔이 들렸다.

불신이 깃들었다.

무한의 고련으로 완성된 정권이었다. 이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100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화의 정점에 이르자, 정권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의 시발점, 근원으로 되돌아온 무극권이야말로 무신의 진의였다.

퍼어억!

휘청!

고개가 젖혀졌다가 돌아왔다. 선풍도골의 선인을 연상케 하는 무신의 신색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분쇄하지 못한 경력이 육신에 남아 흔적을 남겼다.

“네놈이 어떻게?”

“지수에게 배웠습니다.”

“제자에게도 전수하지 않았거늘, 나를 지금 놀리는 게냐!”

“방금 가르쳐 주셨잖아요. 무신결의 극의와도 일맥상통하고요.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네요.”

“그딴 궤변을 변명이라고 해!”

“진실을 궤변으로 호도하진 마세요. 제게 그럴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깨친다. 그걸 두고 세상은 하늘에서 내린 만년지재라고 칭했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녀석은 천재였다.

직시한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했다. 천재가 아니라고 한들, 제자를 보내고 다시 던전이 열린 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렇지.

가르쳐 주지도 않은 무신결의 총화를 펼쳤다. 100년의 세월을 쏟아부어 겨우 완성한 무신결을 하루아침에 홀라당 털린 것이다. 밀려오는 허탈감과 자괴감에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선 버티지 못했다.

“어르신도 경험해 봤을 텐데요. 믿고 싶은 대로만 믿으며, 사술로 치부한 범재들.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한 머저리들과 어르신은 다르잖아요.”

“……그렇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무신은 속이 뜨끔하다 못해 헛바람을 겨우 삼켰다.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닐 텐데, 정곡을 찔리다 못해 난도질당했다.

-제왕검형을 대체 언제 익힌 것이냐?

-이럴 수가, 내 혼신의 역량을 집합한 용살마황참을 이리 간단히 시전하다니!

-백보신권…… 감히 본사의 무공을 훔치고 무사하리라 보느냐!

-천마군림보를 어떻게?

무신의 뇌리로 수많은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만 해도 모자란 놈들의 유치한 투정으로 치부해 버렸다. 부족한 본인의 자질을 탓하지 않는 무지렁이들의 한탄으로.

무진의 말을 부정하는 순간, 무신은 그동안 힐난했던 자들과 같은 부류가 되어 버린다. 지존광대한 무신의 고고했던 자부심이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 입으로만 부정한들, 본인을 속이는 짓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렴요.”

무진의 히죽거리는 미소를 무신은 봤어야 했다. 간만에 사력을 다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흥겹다. 그뿐이랴, 환경도 받쳐 주었다. 일반적인 수행 던전과 달리 불사의 저주가 걸려 있었다. 이 안에서는 절대 죽지를 않는다.

“파워업!”

“그게 무슨 뜻이냐?”

“전력을 2배로 올린다는 의미입니다. 기합이라고 편하게 생각하세요.”

“별 시답지도 않은…… 뭐라고?”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라고 하기에는 확연히 달라진 무진의 기세였다. 단순히 말로만 떠벌리는 허풍쟁이와는 차원이 다른, 사실을 적시하여 무신을 경악하게 했다.

“……잠깐!”

무신의 다급한 외침은 무진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예로부터 싸울 때는 귀부터 닫으라고 했으니.

안 들려.

그건 반말이라고 외쳐 보지만, 무신은 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다.

뿌걱!

무진의 주먹을 막은 팔이 부서졌다. 생전 당해 보지 못한 극심한 통증이었다. 강호를 평정할 때도 부러진 적이 없던 팔이 덜렁거렸다. 무신은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부서진 팔을 역으로 휘둘렀다.

파아아앙!

부서졌던 팔은 원래대로 돌아온 듯 멀쩡해 보인다. 내외력을 집중하여 부서진 뼈를 지탱한다.

뿌거걱!

다만, 이번에는 역으로 부러졌다. 관절이 완전히 어긋났고, 뼈가 살가죽을 뚫고 나왔다.

허억!

이놈이!

팔을 잡고 눈을 찌른다. 본인의 팔꿈치 뼈에 눈알이 뚫릴 것 같은 공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안 당해 봤다면 말을 마라.

황급히 고개를 틀자.

퍼어억!

무진의 무릎이 무신의 옆구리를 쳤다. 정신없는 타이밍을 노린 회심의 수였으나, 무신도 본능적으로 반격을 취했다.

크윽!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무신은 내부를 파고든 암경에 휘청거렸다. 그 짧은 공방에서 암경을 발출하여 오장육부에 충격을 주었다.

무신이 아니었다면 오장육부가 견디지 못하고 타격 즉시 터져 버렸을 것이다. 장출혈로 사망해야 마땅할진대. 무신결을 파산결로 변환하여 내부의 기경을 밖으로 배출하며 무진을 향해 권파를 발출했다.

푸아아아앙!

권과 권, 각과 각.

각 부위마저 공수를 위한 적수공권의 연계였다. 내지른 주먹이 검결지로 바뀌어 요혈을 노렸고, 직선의 발차기가 횡, 단, 사의 변화무쌍한 궤적을 그렸다.

정공과 역공이 수시로 변화하여 위협했다.

크윽!

격돌할 때마다 내부에 암경이 계속 쌓이고 있었다. 다급해진 무신은 발경으로 발출해 보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했다.

멈칫!

명백한 실수다.

멈춰선 안 되었다.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아차 싶을 때, 박자가 맞지 않았다. 엇나가는 박자 속에 늘어 가는 타격감이었다. 팽팽했던 균형이 한순간에 기울자 일방적인 양상이 되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무진은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전투는 압도적인 전투력도 중요하지만, 기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전력이 비슷하다면 전투의 목표와 융통성의 간극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숨긴다면 모를까, 변수의 발생에도 목적을 위해서 나아간다면 수를 파악당하게 된다.

무진의 수는 정해져 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서 변화했다. 무신의 대응이 늦자, 연계한 플레이를 단축하여 속전속결로 나아갔다.

퍼억, 크어어억!

기회를 잡았기에 권격에 위력을 더한다.

무신은 기력이 숭덩숭덩! 빠져나가는 걸 체감했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본신의 역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역공을 취했지만, 되레 반격을 허용해 타격이 컸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평생 누군가에게 꿇어 본 적도 없거늘, 무신은 믿기 힘든 현실에 치를 떨어야 했으나, 그보다 앞서 턱을 보호해야 했다.

뻐어억!

수그리는 무신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차 버리는 무진이었다. 발로 찬 후, 날아가는 발목을 잡아 바닥에 찍고 등을 팔꿈치로 재차 찍었다.

커어어억!

한 움큼의 피를 토했던 무신은 분노하여 이성을 잃었다. 없는 원한도 이쯤 했으면 불구대천이었다. 대련을 실전처럼 한다고 해도, 정도를 지나쳤다.

“이놈…… 억!”

휙, 뿌거거거거걱!

뒤에 있어야 할 무진을 정면으로 봤을 뿐, 반격하기엔 육신이 식어 갔다. 목이 백팔도로 부족해서 두 바퀴를 돌았다. 한 번으로 안심이 안 됐는지 마구 돌린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이러면 보통은 죽어야 하는데, 불사의 저주가 발동했다. 살아나면 목이 꺾이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그만해…… 이 미친놈아!’

말을 하기도 전에 목을 돌리니, 무신으로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의식이 끊어지며 암흑이 찾아왔을 때마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사의 저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흐억!

어찌 된 연유인지 정지되었던 기억들이 돌아오자 무신은 기겁했다.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했더니, 도중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인사할 때부터 요상한 위화감이 있었는데, 역시나 미친놈이었다.

“어떻게 그런 놈이 있을 수 있지?”

“홀몸이 되신 아버지께서 훌륭하게 키워 주셨습니다.”

“……안 갔어?”

“어르신이 기절해 있는 동안 던전의 흐름을 살펴봤습니다. 아카데미, 아! 이곳에서는 학당이라고 하겠지요. 학당의 개당 기념일이 끼어서 3일은 시간이 됩니다. 던전의 시간으론 족히 1년은 가능합니다.”

사부님과 지수는 하루아침에 강해지지 않았다. 수행 던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더욱이 수행 던전은 마나를 쌓기에 효과적이었다.

이런 좋은 장소를 한 번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3일은 기본이고, 최대 일주일은 아카데미에 가지 않아도 된다. 도중에 문제가 되면 지수에게 언질을 줬기에 교류전 전까지만 돌아가면 되었다.

누가 그딴 거 알고 싶대.

알고 싶지도 않은 자세한 설명에 갓 의식을 회복한 무신은 다시 기절하고 싶어졌다. 아직도 자꾸 머리가 좌우로 돌고 있었다. 회전하는 장독이 멈춰도 안에 있는 물은 멈추지 않는 이치였다.

“그래서 안 가겠다고?”

“혹시, 겁나세요?”

……!

이런 개자식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비겁한 함정이었다. 겁이 난다고 뺐다간 두고두고 회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야 했다.

인정하고 본래의 무림으로 돌아갔으면 되었다. 괜한 자존심에 몸이 고생했다.

“파워업.”

“……?”

***

3일 후.

무진이 돌아왔다.

연무장에는 사부님과 지수가 대결의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무신의 혼과 투신의 혼까지 발동한 흔적이 연무장 곳곳에 남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훈훈한 대결로 봤다면 커다란 오판이었다. 사방에 튄 선혈이 전투의 살벌함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힐, 샤워, 클린.

무진은 치료, 목욕, 청소로 이어지는 독수공방 필수 3종 세트 마법을 발동했다. 나이가 들수록 추해지면 보기가 좋지 않았다. 항상 깔끔, 정직, 세련은 필수였다. 물론, 멀쩡한데, 혼자 살면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기는 했다.

후우우!

지수가 긴 숨을 내쉬었다. 무신의 진전을 이어받아 한층 강해졌지만, 할아버지와의 격차는 여전했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할아버지도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약간 아쉽기는 해도 마음이 놓였다.

“일찍 왔네.”

“그만하면 됐다고 하시더라고.”

“진짜? 무신 사부도 무공에 미친 사람이라, 여간해선 보내 줄 리가 없는데.”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할아버지한테 가위바위보로 지는 바람에 무진에게 양도하긴 했어도, 둘 다 임자 만나기를 바랐었다. 무진도 강하지만, 무신 사부도 강했다. 최소한 호적수가 되거나,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명승부로 끝나다니, 작전 실패였다.

‘너무 멀쩡하잖아.’

무신 사부에게 여러 번 죽었었다. 불사의 저주로 부활하기는 해도, 유쾌하지는 않았었다. 육체는 원래대로 돌아와도 정신적으론 피폐해진다. 죽음과 부활을 견뎌 내지 못하면 수행 던전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

“끝까지 간 거야?”

“만족스러운 대결이었지.”

무공광이 만족했다면, 무신 사부의 본신과 싸웠다는 의미였다. 100세는커녕 70세도 통곡의 벽이었다. 지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무진을 보았다. 좀처럼 한계를 드러내지 않아 끝을 모르겠다. 전투력을 측정할 때마다 실패였다.

“어르신이 무극권을 전수하라고 부탁했어. 나중에 꼭 확인을 해 보겠다고 하셨어.”

“나도 모르는 무신결을!! 알맹이만 쏙 빼먹었구나. 잠깐, 나중이라니 그건 뭔 개소리야?”

“한 번으로 끝내기는 아쉽잖아. 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템과 수행 던전의 흐름을 기억해 두었거든. 좀 더 연구해 보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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