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11화 (212/374)

211. 속은 놈이 병신(3)

교류전의 승리를 위해서 협잡을 했던 중국과 일본으로선 이 사태가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설령 중독을 치료했다고 해도, 한국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구나!’

그나마 치료를 해 준 것도 감지덕지거늘, 차 교관은 분한 감정이 앞섰다.

억울하긴 하나, 저들의 말을 부정하려면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일본과 중국이 작정한 이상, 벗어나기 힘든 함정이 되었다.

‘이걸 노렸었나?’

단순히 협공을 의심했지만, 저들이 한 수 더 나아갔다면 발뺌하기도 어려운 외통수였다. 독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증거를 찾기도 어려울 테고. 일·중 생도들이 우릴 위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을 해 줄 리 만무했다.

후후후후.

왕우와 시마타는 속으로 웃었다.

사태가 예상과는 다르긴 해도, 일거양득의 기회가 찾아왔다. 막무가내로 우긴다 한들, 한국이 할 수 있는 조처는 한정적이다. 그마저도 중독된 생도가 증언하면 끝나는 사안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 때문에 일을 망칠 뻔했구나.’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군.’

처음의 계획대로라면 생도들이 죽어 있어야 했다. 한데, 모두가 살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역으로 이용할 기회가 생겼다.

이제 어떤 변명을 한들, 대세는 변하지 않는다.

“한국 생도는 독을 쓰지 않았습니다.”

“맞아요, 한국이 한 짓이 아니에요.”

……뭐?

교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생도의 발언이었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나, 그 말을 한 대상이 일룡과 미츠키였다.

자국의 생도들이 한국 생도를 옹호하며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애초에 논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국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했다는 거야?”

“제삼의 세력이 한국과 우릴 이간질하려고 수를 쓴 것 같습니다.”

“중독으로 인해 분별력이 떨어졌나 보군.”

“시마타 교관님, 제 신분을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

중독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사태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렷한 눈빛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절대 한국이 한 짓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세력이 분명합니다.”

일룡과 미츠키뿐만 아니라 다른 생도들까지 합세해서 한국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왕우 교관과 시마타 교관도 더는 한국에 죄를 물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자국 생도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끝까지 우긴다면 의도했던 것처럼 비칠 수 있었다.

‘이런 멍청한 것들이!’

‘다 된 밥에 초를 쳐도 유분수지!’

설령 아니란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좋은 기회를 허공으로 날려 버리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교류전의 우승국으로 결정된다. 그것을 바라는 거라면 명백한 오판이었다.

아까운 기회가 날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쉽지나 않지.

왕우 교관과 시마타 교관도 더는 어쩔 수 없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그제야 차 교관도 안도했는지 긴장이 풀렸다.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 아카데미에서 책임질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날 뻔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본과 중국의 생도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다. 우리 잘못이 아니긴 하나, 반론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일룡, 진정 아니더냐?”

“사실입니다. 본사의 명예를 걸겠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하나, 독은 치료가 됐어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해독이 완전히 됐는지 살펴봐야겠구나.”

“그러실 필욘 없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혹여 나중에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어. 어서 등을 돌려 보거라.”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초지종을 알았으니, 교관으로서 생도의 안전을 돌보긴 해야 했다.

‘안타깝지만, 죽어 줘야겠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으면 협조했어야지. 상부의 명이 떨어진 이상, 아무런 소득도 없이 물러설 순 없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일룡에게 있었다. 애초부터 눈치 없이 한국을 옹호하진 말았어야 했다.

일룡의 운기요상을 도와주는 척 왕우는 은밀히 검결지에 기운을 모았다. 이대로 일룡의 머리 뒤쪽 뇌호혈을 친다면 즉사였다. 시간을 끌어선 안 되는 상황이라 최대한 신속히 끝을 내야 했다.

슈욱!

타아앗!

오른팔이 하늘로 들린 왕우는 물러서고 말았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크억!

암혼검혈지(暗魂劍血指)를 막은 원흉은 발차기였다.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하늘에 기둥을 새기듯 팔목을 올려 찼다. 어찌나 강력했던지 팔에 백만 볼트의 전류가 흘렀다.

찌리리릿!

의도를 간파당한 왕우가 놀라서 상대를 돌아왔을 땐, 이미 늦었다. 기습적인 발차기를 한 대상보다 정면을 봤어야 했다.

파파팟!

지법에는 지법이라고.

별안간 돌아선 일룡의 검결지가 왕우의 가슴팍을 노렸다. 단전, 양태, 중정의 혈자리를 노린 소림의 금강지였다.

커억!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 되었다. 독을 해독했다곤 해도, 내력을 온전히 사용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거동조차 불편해서 흐느적거렸던 일룡이 반격을 해 올 줄은.

허를 완벽하게 찔린 패착이었다. 하물며 아직은 사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일 텐데, 교관을 향해 암습을 가했다.

퍼엉!

파앗!

왕우와 마찬가지로 시마타도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낭패한 기색이 완연했다. 일거에 혈자리를 짚이는 바람에 운신의 자유를 잃었다.

“……자네가 어떻게?”

교관과 생도의 대치로 가장 놀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차 교관이었다. 그와 같이 왔던 류낙현이 주저하지 않고 등을 노렸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 교관의 돌연한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동생처럼 여겨 동고동락했던 류낙현이었다.

살아온 세월을 부정당한 차 교관은 망연자실한 채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꽈아아앙!

진효명과 사카모토도 왕우의 신호를 받고 기습했지만, 생도들에게 주변을 포위당했다. 1대1로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생도들은 사전에 마치 진형을 갖추어 놓은 듯 일사불란하게 막아섰다.

“썩어도 교관이라 이거지.”

“다들 각오 단단히 해.”

역으로 허를 찌른 기습에도 교관을 완전히 제압하진 못했다. 교관과 생도 간의 격차도 있겠지만, 이전에 알고 있던 전투력과는 차이가 컸다. 배신자들답게 알맹이를 잘도 숨기고 있었다. 실제로 드러낸 무위는 기습에도 타격을 입지 않고 간격을 두었다.

차작!

우웅!

60명의 생도가 교관을 에워싸듯 포위했다. 처음 기습을 시도한 생도들은 한·중·일의 핵심 수뇌부였다. 약속한 대로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즉시 기습하는 동시에 포위 진형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멸살검진은 강력한 마물이나 빌런을 사냥하는 전술로, 교관에게 배운 대로였다.

부르르!

왕우의 동공은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흔들렸다. 처음부터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완전히 엇나가리라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대응하기는 불가능했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모르기에 왕우는 답답했다.

세력 내에 배신자가 있었던 건가?

“대체 어떻게 알았지?”

“당연하니까.”

“당연하다고?”

“군사부일체라고 했어. 생도를 가까이서 가르치고 보살피려면 교관이 아니고선 불가능하잖아. 공자한테 헛배웠네. 더더군다나 일반 생도도 아니고,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국가의 인재들인데, 검증되지도 않은 외부 인사를 너라면 쓰겠어?”

왕우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생도들 모르게 중독을 시키려면 지척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거늘, 당황하는 바람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해독했다고 했을 때부터 의심해야 했었다.

하나, 가장 중요한 의문이 남았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무혈지독은 독공의 고수조차 해독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해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치료하더라도 부작용이 심했다.

“무혈지독은 해독이 불가능해!”

“엘릭선데.”

“……너 설마?”

“운이 좋았어. 만약을 대비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거든.”

“그럴 리 없다! 최상급 엘릭서라고 한들 이렇게 빨리 정상적으로 활동하진 못해!”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왕우의 완고한 부정에 무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일본과 중국 생도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 갔다. 작금의 사태도 감당하기 힘들어 죽겠는데,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차라리 입을 다물든지, 그도 아니면 그냥 인정할 것이지!”

“아주 그냥 병신들 나셨네!”

“이대로면 우린 파산당하고 말 거야!”

“이게 다 저 교관들 때문이라고!”

“용서 못 해, 우릴 개방으로 만들었겠다!”

일본, 중국 생도들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교관들을 향해 살기를 분출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배신도 부족해서 사채까지 덤으로 얹어 주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갑자기 살기를! 이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배신자 주제에 궁금한 것도 많네. 내가 맘이 넓어서 얘기해 주는 거야. 잘 들어. 내가 분명히 엘릭서보다 비싼 약이라고 했거든. 그런데 얘들이 안 믿는 거야. 하긴, 액수가 장난 아니긴 해. 그래서 네가 보증해 준다고 했지. 어때, 아주 괜찮았지?”

보증 겸 원금의 2배는 기본 옵션이었다. 배신당한 데다가 갑자기 원금의 2배가 되어 버렸으니 일본, 중국 생도들이 열 받는 것도 당연했다.

부들부들!

전말을 알게 된 왕우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놈으로 인해서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필이면 만능 치료제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데, 그 앞에서 자신이 직접 치료제가 엘릭서보다 훌륭하다고 보증을 해 주었다. 보증은 가족도 들어 주지 않는 일이거늘. 저 얄미운 놈이 뭐가 예쁘다고 해 주겠는가.

왕우로선 무진의 장단에 완전히 놀아난 것이다. 하물며 기습적으로 팔을 올려쳐 일룡의 금강지에 점혈까지 당했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날 찢어 죽이기 전에 당신 신상부터 챙겨야 할걸. 나보다 더 죽이고 싶어 하는 애가 바로 앞에 있는데 너무 안일한 거 아냐.”

믿고 의지했던 교관에게 제대로 통수를 맞은 일룡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무진의 친절한 설명에 현혹되어 정작 원한 관계를 잊은 것이다.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무진의 현묘한 화술이었다.

일룡이 서늘하게 말했다.

“왕 교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당신은 이제 끝장이야!”

“건방진 애송이가 한 수 득을 봤다가 까부는구나!”

“금강지에 당한 주제에 말이 많군.”

“소림 방장이라도 나를 점혈할 수 없어!”

왕우도 어수룩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대화를 유도하면서 비공으로 점혈된 부위를 풀고 있었다.

진기타혈의 이혈대법은 비장의 수였다.

파파파팟!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무진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왕우가 일룡에게 다시 신경을 쓰자, 그 틈에 등에다가 경력을 주입했다.

크억!

내부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듯한 대응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룡의 금강지는 왕우를 완벽하게 점혈했다. 이를 강제로 풀었으니 반진력이 어떻겠는가. 그런 가운데 흐름을 끓어 낸 무진의 경력이 치명적이었다.

쿨럭, 주르르르르!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했다.

왕우는 기혈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걸 깨닫자 치를 떨었다.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당할 만큼 자신은 약하지 않았다. 정당한 대결이었다면 이딴 애송이들이 전력으로 덤빈들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이 비겁한…… 크억!”

“공정을 원했으면 처음부터 얕은 수작을 부리지 말았어야지. 자기는 할 거 다 하고, 우린 얌전히 당하고만 있으란 건가? 나이도 찬 새끼가 현실을 자기 멋대로 재단하네.”

혼란 속에서도 왕우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진은 왕우가 내력을 돌릴 때마다 싸대기를 후렸다.

촤악, 쫘악!

고개가 좌우로 휙휙, 귓방망이가 시원했다. 이 정도면 강남 클럽에서도 환영받을 귓방망이일 것이다. 물론, 생도로서 모범이 되어야 하기에 가 보진 않았다.

퍼억!

간간이 단전 부위를 발로 톡톡 건드려 왕우의 평정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더는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다. 스킬을 쓰기도 어려워진 상태로 주화입마가 왔다.

빠드드득!

왕우는 무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 두 대 더 맞고 쓰러져야 했다.

퍽, 퍼억!

털썩, 부르르르!

주화입마로 경련을 일으킨 왕우는 의식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저 죽일 놈이 히죽이는 걸 마지막으로 보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허!

일룡은 헛바람을 삼키며, 아미타불을 속으로 외쳤다.

방금 왕우가 보여 준 기세는 섬뜩함 그 자체였다. 자신이 죽더라도, 죽이고 말겠다는 소름 돋는 살의를 풍겼다.

더욱이 금강지를 해혈하면서 뿜어진 내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룡도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금강반야신공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었다.

‘이렇게 간단히!’

방심을 틈탄 왕우의 반격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우연으로 치부하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상대를 깎아내려 봤자, 작금의 상황을 반전시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어이, 땡중! 지금 그렇게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도로 아미타불 되기 싫으면 어서 움직여.”

“그러는 너는?”

“나는 한숨 자야겠다.”

“……뭐?”

“농담이야. 긴장 좀 풀라고.”

금강반야신공의 부동심이 무너질 뻔했다. 적아는 물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를 타고났다.

장위가 병신이라서 당한 줄 알았더니, 충분히 당할 만했다. 이렇게나 속을 잘 긁는데, 참을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장위로선 불가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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