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니 건 내 거, 내 건 내 거(2)
장미의 분노.
블러드 크레이지 익스플로전.
마혈을 한계초월로 증폭하여 위력을 수배로 늘리는 수법이었다. 전력을 일순간 몇 배로 상승시키기에 사용 후 과부하와 반진력을 무시할 수 없다. 후유증이 커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제는 여력을 남길 때가 아니었다.
방향을 예측하지 않는, 천지 사방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천지사방, 어디로 피해도 범위에 속한다. 이번에는 방금처럼 능수능란한 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다.
‘보여라.’
이 한 수로 끝나지 않았다. 로즈는 폭발을 일으킨 순간, 지수의 디펜스를 무력화할 회심의 일수를 준비했다.
핑거 캐논.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핑거 캐논에 가이던스를 걸어 목표물을 추적 요격한다.
어?
한계초월로 인한 폭발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대응하지 못하거나, 물러서야 마땅하거늘.
파고들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폭발을 무시하고 들어와 핑거 캐논이 발동하기 전에 권공을 폭발시켰다.
꽈아아아앙!
부르르르!
준비하고 있던 핑거 캐논과 천절격의 충돌로 인한 폭발은 일대를 거칠게 흔들어 놓았다. 사방으로 퍼지는 거센 파장은 지면의 거죽을 벗겨 내며 산산이 부수어 가루로 흩어 낸다.
커어억!
폐부에서 올라오는 걸쭉한 비명이 로즈의 상태를 짐작하게 했다. 밀려 나간 후 바닥을 구르진 않았지만, 내부에서 신음을 질러 댔다.
부르르르!
일정의 타격을 예상하고 날린 회심의 수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차라리 역공을 펼치지 않으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너…… 대체 뭐…… 젠장!”
“안 궁금해.”
로즈로선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하기엔 지수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본인이 받을 타격을 아랑곳하지 않은 과감한 공격이었다. 생도라면 결단하기 힘든, 전투의 판세를 가르는 순간에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 승기를 완전히 잡았음에도, 지수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는, 완벽한 무력화를 위해서 권공의 기본과 절기를 적절히 사용했다.
파파파팟, 타앗!
지수와 로즈의 전투가 펼쳐지는 가운데, 무진은 일본 생도들을 살폈다. 내부로 파고든 마녀의 기운이 운신의 통제를 방해했다. 카즈마와 하야토의 상태가 아까보다 더 나빠진 건, 마녀에게 입은 상처를 무시하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기 살기도 바쁜 현실에서 불효자를 감수한 살신성인의 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이는 일본의 대중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전체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미련한 짓이었다. 남의 눈이 두려워서 진심을 속여야 하니까.
무진은 그들의 내부를 휘젓고 있는 기운을 해소하고, 물약을 내어 주었다.
하아아!
미츠키, 하야토, 카즈마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았을 것이다. 긴박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목숨을 구원한 무진이 달리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좋은 놈이구나.’
마녀를 도발할 때는 미친놈 같았지만,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면 전략적 선택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정서를 고려하면 구해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국가를 떠나 사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인정받아야 마땅했다.
시게노 교관과 황실 친위대가 쓰러지기 전에 와 줬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걸 논하기에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의 희생은 황실을 통해 보상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와 줘서 고마워. 위험했었거든.”
“생도끼리 돕고 사는 거지. 너희도 잘 싸웠어. 아까 보니까 할 수 있는 대처는 다 했더라고. 그만하면 어디 가서 욕먹을 정도는 아냐.”
“우리가 한 게…… 어? 잠깐, 싸우는 걸 봤다고?”
“어, 그런데.”
“보고 있었다고?”
“다 봤지.”
“근데, 왜 지금 나타난 건데?”
“그래야 고마워하지.”
무진의 당연한 응수에 미츠키는 물론 하야토와 카즈마도 말문이 막혔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구해 준 감동적인 스토리가 한순간에 폭파되었다.
“이 자식, 그걸 말이라고 해! 죽을 뻔했잖아!”
“안 죽었으면 된 거지.”
“교관님과 친위대는?”
“그건 어쩔 수 없었어. 공간에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
습격이 벌어졌을 때 무진은 두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상대의 노림수는 한·중·일의 회합을 방해하는 데 있었다. 당연히 한국보다는 중국과 일본 생도를 노릴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 생도의 생존을 먼저 챙겨야 했었다.
중국 생도에게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미츠키를 따랐다. 지수에게 미츠키의 납치 미수를 듣기는 했지만, 황실 친위대가 따르는 이상 시간은 끌 수 있을 줄 알았다.
‘씁쓸하네.’
살릴 수도 있었지만, 확률을 따져야 했다. 그로 인해 시게노 교관과 황실 친위대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게다가 방금 결계를 끊어 내고 들어오는 데도 예상보다 시간이 소요되었다.
전말을 알게 된 미츠키는 반감과는 별개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구명지은을 입은 주제에 늦게 구해 줬다고 타박해 봐야 적반하장일 뿐이었다.
“미안, 다그치려고 한 건 아냐.”
“괜찮아. 한데, 뭘 보고 납치하려고 한 걸까? 딱히 대단치도 않은데 말이야.”
“……내가 어디가 어때서? 나 정도면 나쁘진 않잖아!”
“저길 보고서도?”
“저건…… 젠장! 잘났다, 정말!”
지수와 로즈의 살벌한 전투에 미츠키는 반박은커녕 순식간에 몰입했다. 자신이 해야 했던 전투를 완벽히 수행하는 지수였다. 가까이서는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허!
하야토와 카즈마도 같은 심정이었다. 지수의 전투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 닮아 있었다. 가공할 전투력보다,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과 센스가 실로 놀라웠다. 저토록 능숙한 전투는 처음 보았다.
“우리 지수가 좀 하지?”
“저렇게 잘 싸우는데 도대체 왜 진 거야? 너희들 짜고 쳤구나!”
“그래서 말하려고?”
“내가 언제 말한다고 했어!”
지수의 전투는 완벽해 보였다. 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인전에서 우승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그런데도 졌다면 둘이 짜고 쳤다는 말밖에는 안 나오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싶었다.
개인전의 우승은 영광스러운 자리다. 더욱이 MVP가 된다면 막대한 보상을 받는다.
“대체 왜 그런 짓을?”
“가위바위보로 이겼거든. 이긴 사람이 우승하기로 약속했어.”
“……씨발!”
뭔가 대단한 연유라도 있는 줄 알았던 미츠키는 욕이 튀어나왔다. 그럼 뭐냐고?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이 무진과 지수에겐 장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저럴 수가 있나?”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리 강해!”
“나도 궁금하다. 저건 생도의 수준이 아니다.”
미츠키, 하야토, 카즈마는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들을 가지고 놀며 유린했던 마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단순히 기습으로 우위를 점했다고 하기에는 이후의 전투가 경이적이었다.
교관이라고 저럴 수 있을까? 절대 못 한다. 십대검가에서도 장로급 이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조차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지수의 전투력은 생도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막막함이었다.
쯧쯧쯧!
무진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왜 너희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텐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희들도 충분히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잖아. 그런 주제에 나보다 월등히 앞서면 말이 안 되는 일인 거야? 그런 틀에 박힌 소릴 하니까, 나아가지 못하지.”
“그 말은 쟨, 우리와 차원이 다르단 거야?”
“말투만 보면 중2병 말기 같은 답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망할, 재수 없어!”
“평소 그런 말을 듣도록 노력해.”
재수 없다? 다른 말로 해석하면 잘났다는 의미가 된다. 능력도 없이 입만 턴다면 모를까, 지수는 본인의 전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물약은 최상급이었어.”
“돈독이 올랐네! 받아먹은 게 얼만데, 너무하는 거 아냐.”
“누가 돈 달라나, 그냥 알고는 있으라는 거지.”
“그래, 알고만 있을게.”
“나중에 광고라도 해 주면 더 좋고.”
“와! 진짜. 이 와중에 장사를 다 하네!”
일본의 공주와 십대검가의 후손이 물약의 약효를 증명한다면 불티나게 팔릴 건 불을 보듯 자명했다. 작은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그림을 크게 그렸다.
‘얘도 확실히 정상은 아냐!’
미츠키가 보기엔 지수의 괴물 같은 전투력 못지않게 무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방금도 그렇다. 결계가 쳐져 있는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주변을 돌아봐도 원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한데, 집중해서 살펴보니 공간이 분리된 채, 각인된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잡다한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정도면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전투 능력도 검증이 되어 있고, 한국의 장래가 밝다고 해야겠지.
‘밝겠지?’
속에 능구렁이 수천 마리를 품고 있는 걸 보면 희망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본인들은 몰라도, 주변은 골머리깨나 썩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능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이런 능력을 한국을 위해서만 쓴다면 곤란하긴 하다.
“긴장의 끈은 놓지 말고. 밀리는 와중에도 저 마녀는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어.”
“우릴 인질로 잡으려 한다는 거지.”
“딱 봐도, 너희들은 너무 약하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사람 열 받게 하는 건 도가 텄구나!”
구함을 받았는데도, 고맙기는커녕 화가 치미는 걸 보면 확실히 제정신처럼 보이진 않는다.
“요나, 나오렴.”
-요나, 등장!
요나를 소환한 무진은 동화력을 극대화한 후, 워터 밤을 선사해 주었다. 더운 여름날 물대포만큼 시원한 것도 없을 테니. 다만, 위력은 철판을 뚫어 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맞고서 죽지 않으면 굉장히 시원할 것이다.
슈우웅, 푸앙!
무진과 요나는 하나가 되어 마녀의 빈틈을 정확히 노렸다. 지수가 공세를 펼칠 때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도록 했다.
“다음 지점은 여기, 요기, 저기다.”
-요나, 접수 완료.
둘이서 잘들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