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37화 (238/374)

237. 성좌의 선택(1)

아카데미 생도에게 있어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중요하다. 각성, 입학, 간택으로 이어지는 아카데미 과도기의 화룡점정에 해당하였다.

성좌의 선택.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엘리트 생도로서 캠퍼스를 영위해도 선택이 잘못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나, 스텟과 잠재력에서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선택 실패를 노력으로 극복하기란, 확률을 따지면 1,000에 1도 많았다.

일례로 교류전 때 교관을 상대한 1~3학년 생도는 선전했다 할 수 있었다. 비록 생도가 한·중·일의 엘리트에 교관이 현역과는 거리가 멀긴 해도.

저학년과 고학년을 교관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힘들어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성운맹 창설로 시끄러웠던 당시에도 고학년이 개입하지 않은 연유였다. 선배의 참교육이란, 최대한 긍정적으로 포장해도 고학년이 저학년을 괴롭히는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내막을 따져 보면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성운맹의 대의가 워낙 거창하고 의로웠다. 명분에서 밀리는 와중에 딴지를 걸어 봤자 얻는 것도 없이 욕이란 욕은 다 처먹었을 판이었다.

생폭을 근절하자는데, 고학년이 반대한다고 해 봐라.

그 즉시 생도로서의 일상은 하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더더군다나 당시 성운맹을 주도한 핵심 생도들은 고학년도 함부로 건드리기 껄끄러웠다.

가문이나 길드의 힘으로 누르기에도 성운맹의 배후가 만만치 않았다. 권왕가, 무극 길드, 성운 그룹이 똘똘 뭉쳐서 판을 키워 놨으니 아카데미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런 특수한 소수를 제외하면 저학년과 고학년은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따라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이 시기야말로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내내 괄시받았던 생도도, 찬사받았던 생도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기로였다.

그런 만큼 성좌의 선택을 위한 탑의 여정은 최대한 조용히 진행된다. 부정을 타는 미신적 요소도 있지만, 외부 요인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생도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 데다가 잘못됐을 경우 항의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는 앞날이 창창한 생도의 장래였다. 자식의 미래에 눈이 뒤집히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간혹, 자식을 성공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기는 해도.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부차적인 문제긴 했다. 탑의 마나가 안정적인 편이나, 주변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건 금물이었다.

더욱이 교류전 테러로 위험부담이 커졌다.

인파가 몰릴수록 사고가 발생했을 시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수 초 차이로 희비가 갈리는 성좌의 선택에서 사소한 문제라도 용납할 수 없다.

대신, 여론의 관심을 해소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영상을 생방송으로 방영했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료가 남는 이상 시시비비를 따지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번엔 누가 간택을 잘 받으려나?

-간택을 받는다고 알겠냐? 자기 성좌 까발리는 건 비기를 광고하는 병신 짓이지.

-숨긴다고 될 사안이냐, 어차피 4학년 초에 평가가 나올 거야. 적응 기간도 필요하고.

-순진한 새끼들 많네, 어차피 선택은 정해져 있어. 여태 빗나간 경우가 얼마나 될 것 같아?

-성좌도 보는 눈이 있는 거지.

-더러운 세상, 각성의 시대도 결국 약육강식의 빈익빈 부익부는 매한가지네.

-모두가 잘사는 이상적인 공산주의보단 빈익빈 부익부가 현실이고 최선이야.

-누구나 잘사는 건 힘들더라도, 최소한의 삶은 보장해야지.

-복지 국가, 말은 좋지. 한데, 경쟁이 없는 국가는 도태되기 마련이야. 그건 각성의 시대도 마찬가지고. 어떤 세상이건 경쟁은 중요해.

-경쟁 없이 돈은 누가 벌고, 세금은 누가 내냐.

-하아, 정치병 환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 아니, 무슨 성좌 선택을 얘기하다가 끝에 가선 매번 정치냐고! 카테고리 분명히 안 할래!

-정치만큼 재밌는 분야도 없지, 현실은 다 정치와 연결된다고. 크크크크.

-어차피 얘들도 답 없다는 거 알아, 그냥 싸우자는 거야.

-다들 개천용을 바라지만 될 턱이 있나. 인생은 원래 실망과 후회 속에서 사는 거야.

모두의 예상대로 이변이 일어나는 예는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바란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희망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수시와 로스쿨은 취지와 걸맞지 않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수단을 짓밟았다. 되레 부자들만 가는 특수가 되었다.

애초에 돈과 시간이 없이는 자식을 뒷받침할 여력이 되지 않는 데다, 시작부터 벌어지면 따라가기 벅찬 부조리한 현실이다. 그나마 정시와 고시가 정당한 경쟁인 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성좌의 선택을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3학년은 각자의 부푼 꿈을 안고 탑을 바라보았다. 교장과 교관이 서서 순번대로 생도를 입장시켰다.

생도의 인생을 결정하는 변곡점이지만, 탑 등반 자체는 간결했다. 탑의 출입구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순서의 반복이었다. 시간도 매우 짧은 편으로 대다수는 1분을 넘지 않았다.

교관은 시간 체크를 철저히 했다.

55초에서 1분을 넘는 수 초가 성좌의 선택과 잠재력의 상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좌의 선택을 받았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지만, 스텟 상향은 시간에 의해서 결정이 되었다.

-58초네, 저 정도면 중급은 되겠다.

-이번엔 59.7초야. 이 정도면 중상급이 아닌가?

-1,000분의 1초 차이로 급이 달라지면 존나 억울하겠다.

-뭔가 대단한 걸 바라지만, 인생은 매번 그 작은 차이로 달라지는 거야. 과거 서울연고대 애들 점수 보면 알걸.

-와, 62초잖아! 저건 성운맹주네!

-씨발, 또 되는 놈만 되는구나!

-이번엔 61.9초야, 무극 길드의 천재 마법 소녀답네.

-63초! 이름이 장구용이라고?

초 단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감추기엔 아직 어린 생도였다. 환호하는 생도와 허탈해하는 생도로 나뉘었다.

선택받지 않은 생도들은 수 초의 여분을 간절히 염원했다. 다만, 1분을 넘겼다고 만능은 아니다. 어떤 성좌의 선택을 받았는지도 중요하다.

-55초네, 큭! 불쌍하다.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누굴 불쌍하다고 동정하냐. 쟤들은 그래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어. 던전만 출입해도 최소한 중산층 이상이지.

-그래. 부모 등골 빼먹지 말고, 나가서 동네라도 돌아. 파오후처럼 살만 뒤룩뒤룩 쪄서 더럽게 땀 흘리지 말고.

-다들 자기들은 아닌 척하는 거 역겹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야.

-59.9초, 아깝네. 60초만 됐어도 가문이나 길드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했을 텐데.

-시간이 전부는 아냐. 성실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노력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다. 아무나 되는 줄 아네.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고, 평가하는 행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해 봤자 삶은 평가의 연속이다. 세간의 평가를 무시하고 본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시청자는 고작 1분 사이에 인생이 갈리는 비극과 희극을 즐겼다. 놀랍게도 평일 대낮인데도 시청률이 낮지 않았다. 대충 촬영해도 평타 이상을 치니 방송국으로선 최고의 쇼였다. 인간극장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태평양 무인도.

분주한 도심과는 다른 한가로운 섬의 낭만이 있었다. 모래사장의 비치 의자에 누운 무진과 지수는 쏟아지는 햇살에 광합성을 즐겼다. 바람, 파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조화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았다.

그렇다고 단조롭지는 않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혈투는 잔잔함과 대비되어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재미가 있었다.

꽈아아아앙!

허공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 같은 강기.

빛과 빛이 더해지며 용접 시 맨눈의 아다리처럼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마구잡이식으로 날아가는 듯하나, 실상은 정밀 유도 타격이다.

강기에 눈이라도 달렸을까?

당하는 처지에선 최악이다.

“이젠 거리끼지도 않고 막 갖다 쓰네.”

“사부님이 초상권 허락했잖아.”

“그래도 저건 반칙이지, 마나 무한은 선 넘은 거라고.”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야.”

따지려면 네 아버지에게 따지렴.

개떡 같은 선물을 주고선 생색을 어찌나 내던지.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잘나서 얻은 무한 변형 아이템이었다. 애초에 16갑자가 없으면 지랄 육갑에 지나지 않았다.

“선물도, 초상권도 다 좋다 이거야. 그래도 저건 너무하잖아.”

“저거라니, 선배님들인데.”

“선배 대접이나 해 주고서 말해. 넌 진짜 양심이 없는 거 같아!”

“나만큼 양심적이고, 호구 같은 사람이 없어요.”

지수는 진심으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무진은 진정성 10,000%였다. 저러니까 내가 마치 오해한 것처럼 보일 수가 있었다. 멍청한 거면 이해라도 하지, 알면서도 저러니까 미칠 것 같다.

“요즘 들어 내가 많이 호구였지.”

“호구라는 개념이 요즘 들어 달라진 거니? 너 때문에 단어가 자꾸 이상하게 변질되잖아.”

“근거 없는 오해와 매도에도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퍼 주고 있어. 이게 호구가 아니면 뭐야?”

“내가 보기엔 아낌없이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각성자에게 전투력의 향상보다 귀한 선물이 어디 있어.”

“맞는 말처럼 하지 마라.”

“너는 성좌 선택당하지 마라.”

“……젠장!”

성좌 선택은 스텟 향상의 필수 옵션이며, 속성의 강화를 통해서 전투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었다. 지수는 반박은커녕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성좌를 받을 거냐?”

“그게 내 맘대로 되냐고.”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지. 회귀하면서 능력치가 달라졌잖아.”

“그래도 보통은 고유 속성을 따른다고.”

“성좌의 심보가 고약하구나. 그렇게 자신이 없나? 왜 기억을 지우지?”

“안 지우면 너처럼 골라 먹으려는 애들이 있을 거 아냐. 성좌가 미쳤다고 그런 걸 용인하겠어.”

성좌의 프라이드라 이건가?

선택은 무조건 자신들이 하겠다는 의민데. 이해는 가지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자기들이 뭔데, 사람을 선택하고 말고 하냔 말이다. 성좌면 단가. 각성의 시대와 시스템도 인간이 원해서 생겨난 현상이 아닐 진데.

그렇다면 인간도 선택권이 있어야지.

결국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불과했다. 성좌가 인간보다 우월하기에 선택권이 있다면, 더 강한 존재 앞에선 역제안도 가능하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실험을 해 보고 싶긴 한데.’

아무나 붙잡고 하기는 껄끄럽다. 내 인생이 아니라고 남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블랙리스트를 이용할 수밖에.’

생도 중에 있어 봤자 쓸모없는 하자품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유용하게 써 준다면 아름다운 재활용이었다. 도중에 목숨을 잃어도, 의인으로서 영예로운 죽음이 될 테고.

“대체 뭔 짓을 하려고?”

“아무것도.”

“방금 굉장히 사악했어.”

“선량한 생도들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야.”

“실험하겠단 소리네!”

지수는 무진의 기색만 봐도 이제는 알았다. 이 녀석이 지금 무서운 짓을 벌이려고 한다는 걸. 세상의 발전을 위해서라지만, 눈 밖에 난 3학년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 준상이가 많이 노력하고 있어.”

“그냥 네 맘에 안 드는 것들을 치워 버리겠다는 거잖아. 대체 언제부터 우리 준상이야!”

“멀쩡한 사람을 욕하면 벌받는 거지.”

“어디가 멀쩡한데?”

우리 준상이가 글쎄 반성운맹의 맹주로 추대되었다. 무진 타도를 위한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우면서 맹도의 지지를 받았다.

솔직히 진행하면서도 긴가민가했었다. 이런 정신 나간 짓거리가 통할까? 놀랍게도 사람은 항상 이성적이지가 않았다. 누가 감성의 민족 아니랄까 봐.

‘감투가 있으면 좋은 거지.’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준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고 하잖아. 우리 준상이라면 나를 위해서 살신성인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아니면 이중 스파이였다고 떠벌릴 거다.

반성운맹의 핵심 맹도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한 지 오래였다. 나에 대한 원한이 깊은 만큼 배신 후의 후폭풍이 상당할 듯싶다.

번아웃에 빠질 때마다 현실 자각을 시켜 주니, 우리 준상이는 순전히 자발적으로 열심히 조사, 통계, 분석 잘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만큼 우리 준상이를 염려하는 사람도 없네.

평소 하는 짓을 보면 빌런이 되고도 남을 인성이었다. 갱생할 기회를 내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가 아닌가. 약한 주제에 깝죽거리다가 어이없이 비명횡사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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