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성좌의 선택(2)
“근데 저거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대략적인 지시를 내리면 나머지는 인공지능이야. 자아가 있다곤 할 수 없어도 명령 수행은 확실하지.”
“에러 나면?”
“다시 개입하면 돼.”
“지금 개입해야 할 거 같은데!”
셋으로 분리했더니, 원격 지정 명령이 살짝 늦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지만 멀쩡하면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투콰꽝!
사람 살려!
진태수, 도예슬, 장구용의 구슬픈 외침이었다. 강기 다발로 인한 스콜에 휘말렸다가 폭우처럼 쏟아 내리고 있었다.
푸아앙!
폭격이 멈췄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미사일 폭격 후, 지상군 투입은 전장의 상식이듯. 허공에서 내려선 피스트킹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적의 말살을 확인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킬링머신이었다.
흐어어억!
태수는 살인기계의 추적이 왜 그렇게 무서운지 실제로 체감하고 있었다. 별의별 수를 다 썼지만,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다.
금강불괴지신의 극의를 발동하여 회심의 일격을 선사했음에도 초 단위로 회복했다. 일부러 막지 않고 관통하여 흘려보낸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순간 재생은 너무하잖아!”
예슬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인도에 올 때만 해도 비키니를 뭘 입을까? 고민했는데. 이젠 그딴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비키니고 나발이고, 촌각의 망설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서리 마도가 6계식을 넘어 7계식에 도달했지만, 어림도 없다.
“기뢰 폭경은 선 넘었지!”
내지른 주먹의 직선적인 움직임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방으로 내력을 퍼뜨려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반경 10m가 영향권에 있었다. 자칫 휘말렸다가는 온몸이 꽈배기처럼 비틀리며 으스러졌을 것이다. 바닷물이 솟아오르듯 소용돌이를 치다 하늘과 기둥을 이루는 광경은 거짓말 같았다.
쿠다다당!
장구용은 태수나 예슬이보다 훨씬 처참했다. 전력상 둘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발휘된 강신은 예상 밖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굉장히 능숙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
장구용은 강신을 통해서 스텟과 전투력을 조절했다.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상황에 맞추어서 강신하고 있었다. 다만, 강신의 대상에 따른 시간의 한계가 존재했다.
강신에는 등급이 있으며, 상위 개체일수록 시간이 줄어든다. 이 부분은 꾸준한 강신을 통해서 늘려 나가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헉, 늦었…… 커억!”
퍼억!
명치에 일격을 허용한 장구용은 포물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수면에 소닉풍을 일으켰다. 어찌나 멀리 날아가는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어딘가에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피스트킹은 해상 구조에 일가견이 있었다.
“구용아~~~~!”
고기 방패…… 아니 동료를 잃은 태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잠깐, 나한테 왜 이래?”
-아아, 통신보안! 스텟 좀 올랐다고 우쭐했잖아.
“통신보안은 개뿔! 이건 등급이 너무 높잖아!”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어.
태수는 반박은커녕 입을 다물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성좌의 탑을 통한 선택이 1분이 넘어가면 스텟과 잠재력이 대폭 상승한다. 상향된 능력치만큼이나 자신감도 대폭 올라왔었다. 그러나 개미는 강해져 봤자, 전투 개미에 불과했다.
“나는 우쭐하지 않았다고~~~!”
-예슬 선배, 자신을 속이지 마.
“네가 내 거대한 마음을 봤어? 본 다음에나 말해!”
-지수가 은근슬쩍 찌르지 말라는데.
“……아니야, 오해야, 지수야!”
태수는 금강신, 예슬은 서리여제, 구용은 신령왕의 선택을 받았다. 각자의 속성대로라 스텟과 속성이 대폭 상향되었다. 특히 구용은 사령왕이 아닌 신령왕을 받아 예지력이 생겼다.
무진은 선배의 예지력을 키워 볼 심산이었다. 잘만 하면 새로운 히든카드로 쓸 수 있었다. 적의 허점을 찌르기에 예지만큼 좋은 수단도 없지.
“성좌와의 연결을 강화하면 사도가 된다던데, 어떤 식으로 발동하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무진의 말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기는 했다. 이전까지는 성좌가 내어 주는 혜택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인생은 등가교환이었다. 성좌가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인간에게 무한한 자비를 내려 주었다고 하기엔 지수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어디 용기 있게 도전해 볼 사람 없나?”
“그걸 누가 해!”
“하긴, 어쩔 수 없지. 내가 해 보는 수밖에.”
“……하지 마! 미쳤어! 네가 잘못되면 다 끝장이라고!”
지수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무진이 사도로서 성좌의 아바타나 화신이 된다고 상상을 해 봐라. 성좌의 의도에 의해서 세상의 중심은 바뀔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는 아무런 동향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세계가 암암리에 성좌의 사도를 배척하는 연유였다. 자기들도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일방적이라서 찜찜한 것이다.
철퍼덕, 바르르르!
3구의 선배들이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덩그러니 남은 하체의 경련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모래를 주식(主食)으로 삼았던 선배들은 흐느적거리며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왔다.
빠드드득!
일광욕을 즐기는 무진과 지수의 느긋함에 이를 갈았다. 충성스러운 구용조차도 이번에는 참기 힘들었다. 천당과 지옥의 대비가 극명했었다.
푸엣!
카악, 퉤엣!
모래를 두 사발쯤 걸쭉하게 토한 태수, 예슬, 구용은 전의를 다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만하긴 했다.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신이 났었다.
스타병을 예로 들면 정답이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주변에서 잘한다고 연신 떠받들면 부지불식간 세뇌가 되고 만다. 상식적이지 않은 부조리함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었다.
선배들이 정신을 차리자, 피스트킹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각개전투는 됐으니까, 이제부터는 대인합격술이야.
“우리도 비장의 기술이 남아 있다고, 우습게 보지 마!”
태수와 예슬이 투지를 불태우며 앞장서고, 구용이 조용히 뒤를 받쳤다. 삼각 편대는 단언컨대 피라미드처럼 완벽해 보였다.
선배들의 합격에 피스트킹이 멈칫한다.
허를 조금은 찔렀다.
지금까지는 아무 이유 없이 계속 처맞기만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우리가 멍청하게 당하기만 하는 족속이 아님을 무진에게 보여 주었다.
평소에는 데면데면했던 태수, 예슬, 구용도 오늘만큼은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무진은 선배들의 우정을 가만두지 않았다. 전투에서 우정만큼 소모적인 감정도 드물었다.
-피스트킹 합체 변신
“……?”
3기로 나누어졌던 피스트킹이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며 머리, 다리 부분을 잇는다. 서로 이어 놓기만 하는 거면 말문이 막히지는 않을 텐데, 합체하면서 거대화로 기변했다.
두둥!
차악!
질량보존의 법칙 따윈 깡그리 무시한 로봇태권제트 다이칸의 재림이었다. 피스트킹이 근원으로 돌아가며 어린이들의 동심을 일깨운다.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태권 펀치?”
“……저건 엑스 광선이잖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하면 또 몰라, 내력이 16갑자였다. 무한 변형으로 증폭, 중첩하여 위력은 더 강력했다.
푸아아아아앙!
성난 물기둥이 버섯처럼 튀어 올라 하늘을 놀라게 했다. 최소 진도 7.0 이상의 지진 강도였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새하얀 물보라가 무인도를 뒤덮으며 무지개를 형성한다.
무진과 지수는 제삼자로서 스펙터클한 광경을 즐겁게 관람했다. 이 정도면 최소 아이맥스급 이상이었다. 돈 내고 볼만한 장면이 연속해서 펼쳐졌다.
“저거 타고 우주로 가도 되겠다.”
“원격조종이면 몰라도, 짝퉁이라 안 돼.”
보기에만 비슷할 뿐, 모든 에너지는 내력을 기반으로 했다. 그럴듯한 외양만 믿고 우주로 갔다가는 산소 결핍으로 사망할 수 있었다. 인간이 지구가 없으면 곤란한 연유였다.
유치한 발상임에도.
‘권능으로 권역을 형성하면 되려나?’
지구가 사라진다는 가정은 해 보지 않아서 확신은 서지 않았다. 지수의 천진난만함이 극한의 사태를 대비할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아공간의 거대화라면.’
인벤토리와 아공간은 생명체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나, 아공간의 거대화를 통한 차원의 생성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어려운데.’
차원의 형성은 창조의 영역이었다. 단순 파괴라면 모를까, 무에서 유의 창조는 불가능했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성좌든, 시스템이든 존재할 필요가 없겠지.
‘아예 새로운 차원은 어렵지만, 기존의 세계를 빌려 쓴다면?’
여러 가정을 세워 보았다. 창조는 모방에서 온다고 했으니 현 체계의 시스템을 낱낱이 파악한 후 흉내를 내 본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똑같으면 곤란할지도 몰라.’
현 시스템이 다른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그렇지 않으면 던전을 통한 차원 연결을 시도할 필요가 없어진다.
던전 침식으로 차원 변환이 되는 과정을 좀 더 연구해 볼 심산이다.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할 기우선 박사를 알고 있었다. 서로 공조한다면 효율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세상이 망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 봤지.”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럼 내가 돌아온 게 말짱 도루묵이 되잖아!”
다른 때와 달리 지수의 반응이 과격하긴 했다.
회귀 전의 트라우마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돌아왔는데, 망한다는 가정은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일 필욘 없어도, 최악을 상정해야 세상이 망해도 우린 살 수 있지.”
“우리라고!! 그럼 좋아.”
……?
설득이 어려워질 줄 알았는데, 너무 쉽다. 이해하기 어려운 인과지만, 알았다니 넘어갔다.
최후의 가정인 만큼 현재로선 암중 세력의 소멸에 중점을 두었다. 저들이 종말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은 분명했다. 놈들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훈련은 필수였다.
고작 성좌의 선택 따위로 스텟이나 속성 좀 강해졌다고 으스댈 때는 아니다. 현재 수준에서 최소 4배는 더 강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암중 세력이 조사한 기준에서 변수를 만들 수 있었다.
“다 선배들 잘되라고 하는 겁니다.”
“미래에도 거대화 로봇하고 싸우는 경운 없었어!”
“경험은 다양할수록 좋아. 변수에 대한 적응은 강해지는 지름길이지.”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네.”
“훈련은 내 권한이니 그만하고. 너는 미래의 기억이나 떠올려,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곤란해.”
“나도 훈련하느라 바쁘다고!”
무진은 지수의 지식이 필요했다.
전투력이야 사부님이 대신할 수도 있지만, 미래는 지수의 고유 특성이었다. 비록 대충 알고 있어서 허점이 많지만,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지수에게 정확한 정보를 바라는 건 과유불급이다.
“그 불손한 눈까리는 뭐야?”
“네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지.”
“이거 설마 무학대사가 한 말 인용한 건 아니지?”
“헉, 너 누구야?”
무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나마 무공 빼곤 기초 상식도 없는 지수답지 않은 교양이었다. 누군가 지수의 탈을 쓰고, 접근한 줄 알고 손을 쓸 뻔했다. 이렇게나 사람을 놀래키다니, 과연 지수였다.
부글부글!
이 새끼가 나를 대체 뭐로 본 거야?
본인은 항시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교양인으로서 역사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다. 마구니, 4달라, 홍시, 비인부전, 대물대인 정도는 기본 상식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으니.
푸아아앙!
역사 상식으로 무진을 눌러 줄 기회인 줄 알았거늘, 지수는 눈앞에서 펼쳐진 공상과학판타지무협액션에 함몰되었다. 반경 100m가 폭삭 가라앉으며 바닷물이 밀려들어 갔다가 채워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스르르륵!
무한 변형기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구덩이로 휩쓸렸던 태수, 예슬, 구용은 간신히 헤엄쳐 나왔다. 전력이 바닥나면서 재수 없었으면 익사당할 뻔했다. 주식인 모래를 바닷물에 말아먹었다.
허억, 쿨럭!
바닷물을 마셔선지, 불어선지 올챙이배가 되었다. 한참을 뱉어 내고서야 원래의 형태를 찾았다. 그래도 가시지 않은 짠 내는 내년까지 저염식을 해도 될 지경이다.
“쓰벌, 저 규격에 저 속도는 반칙이지!”
“마법저항까지 걸어 논 건 날 암살하려는 수작이 분명해!”
“주군, 저는 할 말이 많지만 입을 다물겠습니다.”
무진은 가벼운 앙탈로 받아들였다. 투덜거리는 선배들을 다물게 할 방법도 알고 있었다. 무인도 훈련은 지금을 위한 계단식 점검이었다.
“이거 받아.”
“마나 정수 따위로 화가 풀릴 줄 알아!”
“마셔 보고 나서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