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계산된 역공(1)
으으으으웅!
휴대전화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린다. 무진은 발신자를 확인했다. 국제전화와 모르는 번호는 받지를 않는 편인데, 연락처에 있었다.
[도모다찌]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왜?”
-왜긴, 우리 사이에! 이럴 거야, 나 많이 서운해.
“네가 서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그러지 말고, 우린 이제 한배를 탄 형제나 마찬가지잖아.
“너 같은 걸 형제로 두느니 접싯물에 코 박고 죽는 게 낫지.”
-……말이 심하다.
“심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맞아, 나 같은 게 언감생심 형제를 논하겠어! 그러니 그 포션 좀. 가격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정말?”
-……말이 그렇단 거지.
전화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의례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했다. 겸손과 거절은 없었다. 무진에게 가격 책정을 위임했다가는 대중화의 기둥뿌리가 뽑혀 나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더욱이 어디 가서도 생전 들어 보지 못한 막말과 허접한 대우였다. 자신을 이런 식으로 대한 놈은 네가 처음이라고 하기에는 울화가 치밀었다.
중국의 주석 아들이면, 최소한 황제의 아들과 매한가지였다. 이 자식은 황제를 뒷집에 쌀 파는 아저씨 정도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억울해? 대답이 늦네.”
-아냐, 난 듣는 걸 좋아해서 기다렸을 뿐이야.
“통화 도청되면 나가리 될 텐데.”
-내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 그럴 줄 알고 보안 전화를 썼다고. 우리나라가 다른 건 몰라도 대포와 명의 도용은 최고거든. 세계 제일의 금융 대국임을 잊지 말라고.
언제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삶을 살아 봤던가. 평생 안 하던 짓을 해야 하는 장위로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럼에도 무진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바지 끄덩이를 잡아서라도 매달려야 할 판이다.
다만, 돈 좋아하는 녀석이면서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장위로선 생전 만나 보지 못한 미지의 생명체였다.
“억울하면 끊든가.”
-아냐, 뭐든지 할게! 제발 끊지만 마! 너 아니면 난 죽는다고!
착해진 중국인을 선호하는 무진과 달리 착해지고 싶지 않은 장위에겐 마지막 구명줄이었다.
중국 내 장위의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외면해 봤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은 두고두고 회자하였다.
근래에 중국의 위상을 말아먹은 최악의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가뜩이나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데, 끓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여론에도 장위가 태평 무사한 연유는 전적으로 아버지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버팀목이 되지 않았다면 천안문 광장에서 몰매를 맞고 뒈질 수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분노를 가라앉힌 아이템을 무진이 건네주었다. 만약 포션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았다면 아버지한테 개처럼 처맞았을 것이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너도 알잖아.”
-알지, 그래서 사정하잖아. 제발 남는 게 있으면 팔아 줘, 부탁이야. 아버지한테도 말해 뒀으니까 자금이 부족하진 않아!
“누가 들으면 마약인 줄 오해하겠어. 마약은 자고로 청나란데.”
-……그렇지. 우리가 마약 하면 최고지!
아부의 제왕이 되어 버린 장위였다. 영상통화가 아니라 표정만 안 보일 뿐 바닥을 기고 있었다. 암담한 현실에 자괴감이 들 법도 한데,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할 수는 없었다.
장위도 마냥 엇나가기만 하진 않았다. 하나, 진짜 실력이 뽀록날 걸 매일 두려워하다, 답답한 마음에 즐겼던 일탈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처음에는 잠깐의 기분 전환이지만, 타인을 억누르는 쾌감에 중독되었다.
더는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받고, 살아남으려면 무진과 거래를 터야 했다.
“살고 싶어 발악하는구나.”
-나는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야.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선 그 난리를 친 거냐?”
-인정할게, 내가 잘못했어. 이젠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야.
“네가? 못 믿겠는데.”
-하루하루 반성하며 살고 있다고! 어떻게 하면 믿어 줄 거야. 네가 영상과 사진을 뿌리기만 해도 난 끝장이잖아. 그런 내가 허튼짓을 벌이겠어?
“그럼 이제라도 네가 괴롭힌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그래야 형식적이더라도 네 변화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한데 받아 주겠어?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 내가 정말 개새끼는 맞거든. 용서받기 힘든 짓을 많이 했어.
“강제로라도 받게 해야지.”
-아, 이미지 쇄신이구나. 그렇지만 그게 효과가 있을까? 가식 떤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가식도 들키지만 않으면 돼.”
무진은 장위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기를 바라진 않았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질 않는다. 당장이야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굽신거리지만, 여유가 생기면 언제든 뒤통수를 노릴 것이다.
‘여유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그럴 줄 알고 무진은 [신의 정화]의 열화판을 희석한 포션을 내어 주었다. 완전히 해독하려면 최소 10병 이상 마셔야 하고, 중독에 대한 면역이 없다. 이번에 10병을 마셨음에도, 장위가 안절부절못하는 걸 봐선 내부의 첩자를 잡지 못한 것이다.
‘나쁘지 않아.’
좋은 일이었다. 중독되고, 치료하고, 악순환의 반복이 이어질수록 중국 내부의 혼란은 극으로 치달아 가게 된다. 특히 암중 세력이 장 주석을 노린 이상, 실패를 좌시하지 않을 테지.
그 전에 장위의 평판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본인 마음이야 달라지든 말든 상관없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개과천선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래야 장 주석을 적절하게 활용할 카드로 쓸 수 있었다.
‘이놈을 장자방으로 쓰지 뭐.’
장위가 전면에 나설 중국을 생각하니, 무진은 괜히 뿌듯해졌다. 이런 녀석은 중국 내수용이었다. 평생 밖으로 나돌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위한 진정한 애국이었다.
“좋아, 돈부터 보내.”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아 참, 깜빡했다. 네 아버지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포션을 마시기 전에는 독인지도 몰랐을 테지만, 이제는 알게 됐지.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증상이 나온다면 답은 정해진 거 아니겠어.”
-……그렇구나!
“설마, 내가 약 팔아먹으려고 효과를 떨어뜨렸다고 오해하진 않았겠지?”
-아냐, 절대로!
정곡을 찔렸는지 장위의 목소리가 굉장히 떨리고 있었다. 한편으로 작금의 대화만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무진의 통찰력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어째서 아버지가 다시 부탁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의심을 단숨에 해결해 버리고, 명확한 신뢰를 주었다.
“이래서 너랑은 거래하고 싶지가 않아. 사람을 이렇게나 못 믿어서야.”
-믿고 있었다니까!
“이것도 알아 둬. 이번에도 독이 통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수를 쓸 수도 있어. 그러니 다음 거래까지 살아 있으려면 조심해야 할 거야.”
-아니, 무슨 말을 해도!
뚝!
할 말을 마친 무진은 시간 낭비하지 않았다. 재차 벨이 울리진 않았어도, 장위의 다급함은 충분히 전해졌다. 자고로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굳이 장위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놈일수록 거칠게 대할 필요가 있지.’
좀만 풀어 줘도 주제 파악을 못 하는 놈이다. 전혀 잘해 줄 이유가 없기에 막 대했다. 더욱이 장 주석이 장위의 말만 믿고 있을 리 없다. 아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국의 대빵이라 이건가.’
장위를 봐선 믿음이 가진 않지만, 장 주석의 판단력과 추진력은 무시하지 못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설픈 자였다면, 약을 내어 줄 가치가 없었다.
‘사람을 붙이지 않은 것도 칭찬해 주지.’
어설픈 감시로 들킬 바엔, 확실한 신뢰를 구축하는 편이 나았다. 장 주석은 나름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줄 알았다.
***
무진은 지수와 함께 쉐도우 길드를 찾았다.
제인 누나가 연락했다.
올해부터 주기적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원래 구역이 아니라, 입장권을 사야 했다.
하급 던전이기는 해도, 정부와 구역을 관리하는 길드와 협상을 해야 하기에 비용이 적지 않았다. 던전 부산물의 연구 개발로 신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더더욱 각광을 받게 된 것도 한몫했다.
해마다 오르는 물가 상승도 요인이겠지만, 마나 광석은 기간 시설, 사회 제반을 바꾸는 제5의 마나 혁명을 가져왔다.
“한 달 동안 7번이면 많은 편이겠지?”
“당연한 걸 뭘 물어, 혈천 길드에서 대놓고 비용을 높였어. 자기들도 찾아보다 별거 없는 걸 확인한 후, 가격을 올리면서 간을 보는 게 분명해.”
“실패한 보람이 있구나.”
“하여간 능구렁이 같다니까. 생도다운 면이 없어! 애초에 이럴 줄 알았던 거잖아.”
하급 던전이 돈이 되긴 해도, 입장권 비용을 고려하면 적자였다. 하물며 7차례나 연속으로 공략에 실패하며 입장권을 날렸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혈천 길드는 던전을 샅샅이 훑었었다. 그러나 딱히 비용과 시간을 들일 만한 특이점을 찾지 못했었다.
그나마 수상한 점을 찾자면 던전 수림에서 이끼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던전 이끼의 성분과 효과는 연구 분석된 지 오래였다. 다른 재료와 같이 썼을 때면 모를까.
물론, 실효성과는 별개로 남자에게 좋은데, 말할 수는 없는 재료라고 했다면 던전 이끼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혈천 길드가 이쯤에서 손을 뗀 건 의외긴 해. 멍청한 데다 욕심 많은 아들놈을 봤을 때 부전자전으로 아비란 작자가 과욕을 부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같이 엮으려고 한 걸 눈치챈 건 아닐 거야. 때마침 근처에 상급 던전이 열렸거든.”
“a등급이긴 해도, 길드 전체가 나설 일은 아니잖아.”
“요즘 들어 던전 각성이 빈번해지는 데다 가문과 길드에서 희생자가 급증하면서 공략에 신중을 기하고 있어.”
작년에 길드 각성으로 피해를 본 혈천 길드로선 상급 던전 공략에 전력을 집중해야 했다. 괜히 하급 던전에 신경을 쓰다가 공략에 실패하면 확정 구역을 노리는 다른 가문과 길드에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번 던전의 자료야.”
지수는 사진과 영상을 보며 기억과 차이가 있는지 살폈다. 워낙 큰 사건이라, 아닐 가능성은 희박했다. 실제로 들어가 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맞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맞는 것 같아.”
“하긴 투자 비용을 수거할 때가 되긴 했지.”
“그러다 안 오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단 걸 누나도 알잖아.”
“하아, 이번엔 또 얼마나 깨지려나? 복구하는 게 만만치 않은데.”
“아니다 싶으면 이쯤 하고.”
“누가 또 그렇데.”
거절하기에는 이번 제안으로 얻을 이득이 너무 크다. 욕심을 부리면 패가망신을 당하기 마련이나, 무진이 같이하는 이상 확률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이번에도 같은 그림이 나오면 다들 무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건데.’
교류전도 변수가 있긴 했어도, 결국 이득을 확실하게 챙겼다. 무진이 은근슬쩍 보여 준 통장 계좌의 액수를 보고, 제인은 혀를 깨물 뻔했다. 열여덟 살 생도가 대기업 회장보다 돈이 많았다.
그런 데다 액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지가 캐시카우의 돈 나무도 아니고, 돈을 복사한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다. 사소한 역할이라도 전체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알아야 했다.
“지수는 형들을 부탁해.”
“걱정 붙들어 매시라니까.”
“교장 선생님께 연락이 오면 움직여. 서두르지 말고. 아, 신분 들키면 곤란해.”
“알았다니까, 내가 애냐고!”
강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무진은 지수가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랐다. 평소엔 전략대로 움직이다가도, 간혹 성깔을 부리다 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일은 최대한 정체가 들통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지수가 전면에 드러나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우린 각자의 역할대로 움직였다.
무진은 제인 누나와 함께 쉐도우 길드의 정예를 이끌고 던전으로 향했다. 사전에 권왕가와 연계하여 던전 주변의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