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41화 (242/374)

241. 계산된 역공(2)

던전에 도착했다.

정부 요원, 구역 관리 길드가 일대를 통제하고 있었다. 던전의 등급이 매겨진 후, 판매된 입장권의 순서대로 진입했다.

우리 순서는 5번째였다.

던전에 들어갈 채비를 마칠 때쯤, 정부 요원이 다가왔다. 인원 확인서를 받는 모양새지만, 우릴 관찰하려는 의도가 비쳤다.

던전 관리 요원 6급, 고청기.

그에 대한 신상 명세를 토대로 제인 누나가 조사를 해 놓았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자의 등장 자체로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도움이 되긴 하네.’

일전에 구해 준 백의산의 조력이 있었다. 그에게 교류전을 비롯한 정보를 내어 주고, 정부 내에도 암중의 흑막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이후로 필요할 때마다 정부의 은밀한 동향을 알려 주었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고청기는 의도를 굳이 숨기진 않았다.

“찾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누가 물어보라고 하던가요?”

“수차례나 같은 구역 내 던전을 공략하지 않았습니까. 딱히 소득이 없는데도 말이죠.”

“공략에 대해 말해 줄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고청기의 불순한 의도를 탓하기에는, 작게나마 이슈가 되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를 찾는다는 걸 확인한 것으로 만족했다.

혼선을 주려고 한 모양인데,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혈천 길드가 상급 던전 공략에 분주하긴 해도.

‘그런 엄청난 포션을 만들어 놓고, 아닌 척해 봤자 숨겨질 사안은 아닐 텐데.’

여러 차례 던전을 공략하면서 의도를 감추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나,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더욱이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고 해도, 포션의 가치를 안 이상 결과는 자명했다.

목적을 달성한 고청기는 환하게 웃으며 건투를 빌어 주었다. 오늘만 볼 것도 아니고,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공무원다운 처사였다.

“부디 원하는 걸 얻었으면 합니다.”

“고맙네요.”

고청기의 탐문에 제인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서로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과시했다. 당연하게도 고청기는 움찔하며 물러섰다. 정부 요원과 틀어지면 좋진 않지만, 길드장의 권위를 무시할 순 없다.

“가시죠.”

“그래.”

무진은 제인 누나와 함께 던전으로 향했다.

쉐도우 길드에서 선별한 핵심 길드원이 뒤를 따랐다. 기세를 숨기지 않았기에 더는 시비 걸지 않았다. 실상, 하급 던전에서 쉐도우 길드보다 강한 길드는 없었다. 전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거리를 두거나, 피해 다녔다.

던전에 들어오자, 제인 누나가 본성을 드러내며 투덜거렸다.

“참 나, 이제는 그냥 막 대놓고 물어보네.”

“적당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보통은 걸려도 징계는커녕 주의받는 선에서 끝나니까.”

“나 때는 숨기는 척이라도 했는데 말이야. 요즘 세대는 참.”

“하긴, 그때는 그랬겠다.”

“굉장히 거슬리는 말인데? 나 아직 한창이야.”

“그래.”

사실 젊음을 과시할수록 나이가 들었다는 방증이었다. 어리면 굳이 젊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아!

제인은 이 요망한 녀석의 화술에 혀를 내둘렀다. 무력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말발도 장난 없었다. 집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저런 괴물이 나왔을꼬? 무진을 더 잘 알게 될수록 그 아버지가 더욱 신비했다.

[수림 던전]

-보스, 정글 코볼트 전사.

-미션, 정글 코볼트 제거.

던전은 하급답게 코볼트 사냥이 미션이었다. 코볼트의 전투력은 고블린과 비슷했다. 일족의 왕이나 주술사도 아니고, 전사가 보스라면 처리에 애를 먹을 일은 많지 않았다.

다만, 코볼트는 집단행동을 하며, 단체 사냥을 즐기는 종족이라 전투력만 믿고 설치는 행위는 어리석었다.

코볼트, 고블린, 오크는 오우거나 트롤과 비교하면 전투력에서 비교 불가의 하급 마물이긴 해도 제법 머리를 쓸 줄 알았다. 함정을 파고, 암기를 쓰고, 차륜전을 하는 정도는 된다. 자기를 과신하여 달려들다 힘이 빠져서 당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무진과 제인 일행은 순조롭게 수림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코볼트의 지능을 고려하면 기세만으로도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숨어서 감시, 배회하는 족족 쉐도우 길드 전사단의 먹잇감이 되었다.

솨악, 꾸웩!

서걱!

20명으로 구성된 쉐도우 전사단은 암살, 침투의 전문가답게 은밀하고, 정확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번갈아서 교대해 체력, 마나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정글 코볼트가 하급 마물임에도, 일말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에헴.

그 능숙하고, 완벽한 합격에 제인 누나의 콧등이 하늘을 찔렀다. 그간의 성과물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진의 인정이었다. 매번 무진에게 의존했기에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걸 확인받으려는 보상 심리였다.

“그럭저럭, 방해가 되진 않겠어.”

“좋았어!”

“반응이 과한데?”

“너한테 그 정도면 특급 칭찬이니까.”

제인은 완벽하단 평가를 바라지 않았다. 무진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 족했다. 실제로 워낙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지닌 무진이다. 기준점을 무진에게 완벽히 맞출 바에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는 편이 수월하다.

“그렇다고 만족하는 건 아니지?”

“일단은 나만의 소확행이거든. 이런 거라도 있어야 내일을 살아가지.”

“소확행치곤 꿈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제인 누나의 목적이 본인을 내치고, 죽이려 했던 가문에 대한 복수였다. 일전에 무진에게 얻은 아이템은 진실을 알기 위한 도구로, 내막을 알고선 얼마나 분노했던가.

소소한 행복이라고 하기엔 대상이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상대를 최대한 비참하게 끌어내리려고 한다면, 현실에 만족해선 안 되었다.

쉐도우 전사단을 살펴본 무진은.

“나중에 검형과 검진을 다듬어 줄게.”

“나야 고맙지.”

무진과 제인이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어리석은 정글 코볼트의 시체는 늘어만 갔다. 던전의 공략이 아니라, 산책 같은 평온함이었다.

실력 차를 알면 도망쳐야 하는데, 겁 많은 코볼트치곤 이상했다. 쉐도우 전사 1호가 다가왔다. 정글 코볼트의 생리와는 다르기에 보고했다.

“주술사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어렵나?”

“문제없습니다.”

“그럼 됐네.”

햇빛을 가리는 빽빽한 숲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

수림을 방패막이로, 정글 코볼트는 조악한 화살, 돌비수, 가시나무를 집어 던졌다. 대단치는 않지만, 숲의 어둠과 맞물린 데다가 수효가 적지 않았다. 단독 공략이었으면 곤란할 수도 있었다.

다만, 쉐도우 전사단은 돌발 변수에도 익숙한 편이었다. 마치 알고 있다는 듯 효율적으로 정글 코볼트를 사냥했다. 방어와 공격의 간격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일방적인 학살을 불러왔다.

‘우린 강하다.’

‘우린 패배하지 않는다.’

‘우린 방심하지 않아.’

제인은 암습을 당한 이후로, 최정예 길드 요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길드의 특성상 인원이 너무 많아도 곤란하기에 적은 수로 최적의 전력을 구상해야 했다. 더욱이 기대치가 높은 무진이 옆에 있었다. 짧은 시간 쉐도우 전사단을 육성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길드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쉐도우 전사단의 프라이드는 굉장히 높았다. 아직 무진의 정체를 정확히 몰라서인지, 나쁘지 않다는 칭찬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번에야말로 쉐도우 전사단의 위용을 확실하게 새겨 줄 요량이었다.

“근질근질한 것 같은데?”

“나름대로 자신감을 어필하긴 해도,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지금이 그럴 때는 아니긴 해.”

“온 거야?”

“그래.”

제인은 급히 쉐도우 전사단에 은밀히 신호를 보냈다. 겉으로는 신호를 보내는지 알 수 없는, 사전에 정해진 암어였다.

-투척해.

대화는 하지 않는다.

제인이 신호를 보내자, 위치를 파악한 쉐도우 전사단이 숨기고 있던 전략 병기를 사용했다.

꽈아아아앙!

후화앙!

투척은 좀 전과 같았지만, 위력은 전혀 다르다. 병기를 일반 단검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수를 읽히지 않도록 했다.

실상, 상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놈들은 정글 코볼트를 몰이하여 습격을 유도했고, 숨어서 방심할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푸아아앙!

화르르르르!

쉐도우 전사단은 전략 병기를 시차를 두어 사용했다. 이제 끝났다고 방심하는 틈을 역으로 노린 것이다. 매복자의 대응 방식을 예측한 심리전이었다.

호오.

제인 누나의 호언장담대로 쉐도우 전사단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본인을 드러내고 싶은 의욕과는 별개로 전투에선 굉장히 냉철했다. 이것이 단순히 전사들의 능력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쉐도우 전사 1호와 조장들이 지배력을 발휘했다.

“컨트롤 속성이야?”

“분별없이 날뛰는 건 질색이거든.”

“자신할 만하네.”

“뒤통수 맞는 건 한 번으로 족해.”

적이든, 아군이든.

그레이 길드가 위축되긴 했어도, 쉐도우 길드는 그간 너무 튀었다. 그 결과 블랙마켓 내에서 고립된 상태였다. 이대로 시간을 끌며 협상을 통해 규모를 늘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해가 바뀌고 나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쉐도우 길드에서 내놓은 포션은 치료 회복에 관해서 기존의 질서를 어지럽힐 파급력을 가졌다. 만약 이 포션이 대량으로 풀린다면 작금의 구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가격이 비싸긴 해도, 창렬하진 않았다. 그만하면 충분히 비용을 감수할 만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들이 취급하는 치료 회복 포션으론 대응이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른다면 더는 고사 작전과 자금력만으로 쉐도우 길드와 대치하기 힘들어진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연준으로선 쉐도우 길드가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포션을 만들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꼬리를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 영악한 년이 정보를 교란하며, 재료를 숨겼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숨긴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던전 이끼로 시선을 돌린 후, 하급의 밀림이나 수림 던전에서나 발견되는 눈깔 나무를 수집했다. 눈깔 나무는 기괴한 형태의 소목으로 생김새와 달리 효과가 없어서 방치되었었다. 흔하진 않아도, 종종 발견되는 눈깔 나무가 포션의 재료가 분명했다.

하나, 재료를 안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포션이란 여러 재료의 혼합물이다. 재료를 모두 구해도 정확한 혼합 비율과 최상급의 연금술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쉐도우 길드를 바로 노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레이 길드가 속절없이 당했으며, 다른 블랙마켓 길드가 배후를 노리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그 영악한 년은 그러한 구도를 알고 있기에 거리끼지 않고 포션을 판매한 것이다. 어차피 혼자서는 노릴 수 없다는 현재의 대치 국면을 이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