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45화 (246/374)

245. 무단 침입(3)

‘뭐 이런 무례한 인간이 다 있어!’

엘프가 비록 인간을 배척하긴 해도, 다짜고짜 숲으로 쳐들어와서 공격하지는 않는다. 실상, 첫인상의 엘프는 무적에 가까웠다. 보통은 엘프를 보자마자 무차별로 폭행하진 않았다. 더욱이 말을 들어 보니, 자신들을 설득하려고 온 것 같았다.

“뒤에서 구시렁대지 말고 앞에서 얘기하지.”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초면부터 반말이세요?”

“종족이 다르잖아. 아니면 할머니라고 불러 줄까?”

“……이씨! 됐거든요!”

엘프의 긴 인생을 고려하면 예의를 지켜야 하나, 무진은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았다. 종족도 다르고, 아직은 같은 인간으로 대우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분히 미션 수행을 위한 절차적인 관계였다. 실상, 누구의 미션인지 주어가 나오지 않았다. 설정상 이들이 맞겠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둬야, 나중에 얼굴 붉히지 않지.’

살려 주려다 미션이 엘프의 멸살이면 곤란하잖아. 더욱이 친분을 만들어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차원이 다르니, 공략 후 다시 만날 일도 없고.

다행히 엘프로선 구사일생이었다. 미션이 뜨면서 무진은 의심을 불식시켰다.

우웅!

무진은 아공간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 엘프 마을 주변에 배치했다. 세계수로 가는 길목에 엘프 마을이 위치했기에 여기서 막고 있으면 되었다.

습격을 기다리는 동안 엘프 마을을 구경했다.

원래라면 경계하며 막아섰겠지만, 초면부터 개지랄을 떨었더니 막지를 않는다.

안내자로서 고티아가 무진의 옆에 있었다. 한껏 앙탈을 부린 것과 달리 안내는 순조로웠다.

“친절하구나.”

“누가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아요!”

“억지로 할 필욘 없어. 대장로한테 내가 말해 볼게.”

“날 말려 죽일 심산이에요!”

고티아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하이엘프였다. 그러나 성년까지는 대장로와 장로들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당장은 대장로가 마을의 최고 어른이자, 명령권자였다.

대장로는 무진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경험했기에 그나마 말이 통하는 고티아에게 일임해 버렸다.

“엘프도 엘프를 죽이는구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죽이긴 누가 죽여요! 자꾸 이상하게 꼬아서 우리를 모독하지 말아 주세요!”

“저거 세계수 맞지?”

“아니라고 하면요.”

“캠핑용 장작으로 써도 되지?”

“흐엑! 세계수 맞아요!”

어색한 분위기를 풀 겸 무진은 농담을 했지만, 고티아에게는 진담처럼 들렸다. 이 무식한 인간이라면 능히 그리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무진은 엘프에게 확실한 인상을 새겼다. 최소 1,000년 각이다.

“요나 나와.”

-요나 등장.

“세계수랑 놀고 있어.”

-요나, 알았음.

갑작스러운 정령의 등장에 고티아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곧 요나의 정령력을 확인하고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최상급이잖아요, 어떻게 인간이?”

“인간이 뭐?”

“인간은 최상급 정령을 다룰 수 없으니까요.”

“그쪽 세계는 그런가 보군.”

“……당신들! 다른 세계의 사람이군요?”

“맞아.”

고티아는 테임네스 숲 전체가 영역 던전으로 갇혔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던전이라면 미션을 깨야만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신이 미션을 공략하면 우린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겠지.”

“적극적으로 협조할게요.”

“어서 빨리 꺼지란 거지.”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당신이 거짓말을 해도, 안 해도 우린 못 막잖아요!”

무진의 폭력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였다. 믿음을 강제할 수 있어, 귀찮게 설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압도적인 강자만이 누리는 권리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정령왕을 부를 수 있나?”

“그분이 부른다고 나오면 우리가 당신한테 그렇게 맥없이 당했겠어요!”

“호오, 보기보다 논리적인 엘프였구나.”

“우릴 자꾸 모욕하지 마세요.”

일반 엘프는 정령왕을 부르지 못한다. 최소 하이엘프는 되어야 했다. 자질을 놓고 본다면 고티아만이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 가능성일 뿐, 실제로 정령왕과 계약하는 예는 많지 않았다. 역대 정령왕과 계약을 맺은 하이엘프의 수만 봐도 답은 나와 있었다.

더욱이 정령왕과의 계약은 세계수의 중재가 필요했다. 세계수가 온전히 자연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며, 엘프는 교감력의 극의에 도달해야 한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령왕이 먼저 손을 내미는 일도 있으나, 전설에 불과했다.

“세계수에 문제라도 있어?”

“알 거 없잖아요!”

“알려 주면 고맙겠어.”

“……어느 순간부터 세계수가 점점 말라 가고 있어요. 사실이니까 때리지만 말아 주세요!”

주먹을 들지는 않았다. 그냥 쥐락펴락했을 뿐인데, 고티아는 자발적으로 협조했다.

“세계수가 수명이 따로 있을 것 같진 않고, 누가 독이라도 풀었나?”

“그것까지는 저도 몰라요.”

무진도 자세히는 묻지 않았다. 미션이 세계수의 치료가 아닌 이상,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당장은 침입자의 처리에 집중했다. 미션만 해결하면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갈 테니, 세계수의 치료는 엘프가 해결할 일이다.

때마침 드론이 습격자를 발견했다.

“왔네.”

“대체 뭐가 왔다는 거예요?”

무진은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공간에서 꺼낸 드론을 띄워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촬영된 영상이 화면에 나오자, 고티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자는?”

“아는 엘프야?”

“죄를 짓고 마을에서 추방된 자예요. 대장로님과 사사건건 다퉜었거든요.”

“추방자가 다크엘프가 되어서 돌아왔다면 답은 뻔하겠지.”

고티아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칼리아론은 숲의 대의를 버리고, 마계의 어둠을 따르는 다크엘프가 되었다.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세계수에 수작을 부린 것도 이놈 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작을 부리든 말든, 무진은 미션 수행을 나섰다. 엘프 간의 원한은 중요하지 않았다.

***

‘엘프의 세상을 위해 희생한 나를 감히 내쫓아!’

칼리아론은 인간적인 욕망이 강한 엘프다. 대장로가 되어 하이엘프에게만 주어지는 정령왕과의 계약을 원했었다. 하나, 규율에 얽매여 시험조차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몰래 시도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추방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젠 정령왕 따윈 필요 없다!’

어둠의 제왕께서 하사한 권능이라면 능히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 전에 자신을 배척한 엘프와 세계수를 제거해야 했다. 세계수를 처리한다면 어둠의 제왕께선 더욱 막강한 권능을 내려 줄 것이다.

‘하이엘프면 다더냐!’

하이엘프에게만 주어지는 세계수의 권능, 칼리아론에겐 용납하기 힘든 차별이자 역린이었다. 노력도 하지 않고 얻어진 핏줄에 불과했다. 그딴 걸 용인하고 받아들인다면, 전부 엎어 버리는 편이 나았다.

‘모두 부숴 주마!’

세계수가 변질되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겠다. 자신을 배척한 엘프에게 참혹한 절망을 선사할 것이다.

오백의 다크엘프.

오만한 엘프들에게 어둠의 위대한 권능을 보여 줄 차례였다.

다크엘프만이 오롯이 존재하리라.

응?

세계수의 결계가 없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엘프가 스스로 결계를 해체하진 않을 텐데. 이상한 일이긴 했다.

‘기다리고 있었나?’

세계수의 결계는 엘프에게 통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다크엘프가 되기는 했어도.

의심스러웠지만, 칼리아론은 멈추지 않았다. 엘프의 자존심을 고려하면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간다.”

쐐애애액!

어둠을 머금은 다크엘프들이 칼리아론의 뒤를 따랐다.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마을이 보였다.

추방당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칼리아론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에 다다를수록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었다.

‘인간?’

엘프라는 족속이 본인들에게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칼리아론이었다.

폐쇄적인 족속들이 인간과 교류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정도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랬다면 정령왕과 계약이라도 할 기회를 주었겠지.

‘진짜라고!!’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엘프와 인간이 같이 있었다. 칼리아론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고작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자신을 부정했단 말인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독이 바짝 오른 칼리아론의 광망이 대장로, 헤르아네에게 꽂혔다. 그녀에게 부정당하면서 자신은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었다.

“이 나를 배척하고 고작 버러지 같은 인간 따위와 교류를 한단 말이냐!”

“하이엘프가 아니라서 차별받았단 놈이 이제는 인간을 차별하네.”

백인에게 차별받은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다단계인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유사 인종을 막론하지 않았다. 이런 거 보면 성선설이야말로 개소리였다.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끼어드는 것이냐!”

“이러면 끼어들어도 되는 거지.”

무진은 엘프와 마찬가지로 설득하지 않았다.

스토리 던전의 경우 미션의 목표를 정확히 지정하지 않아서 퍼센트로 결정을 내린다. 보통은 50%가 넘으면 던전을 공략했다고 볼 순 있다. 100%로 스토리 던전을 공략한 예는 미래에도 손에 꼽혔다고 한다.

꽈아아아앙!

수림의 끝과 끝을 울리는 굉음이 번진다. 정면의 일부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진귀한 광경에 다들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발산된 파문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오싹, 부르르르!

소름이 돋는 기파였다.

드러난 참상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500의 다크엘프 중 300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릅!

그 앞에서 간신히 몸을 피했던 칼리아론은 오른쪽 어깨부터 팔이 허전했다. 폭격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해 팔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이게 무슨?

칼리아론은 팔이 날아갔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 경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제법 빠르네. 그래도 지금은 정신을 차려야지.”

“……잠깐?”

잠깐은 무슨!

무진은 칼리아론의 배후에 있었다. 돌아서기도 전, 주먹이 칼리아론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다.

퍼억, 화르르르르!

주먹을 내지른 무진은 극염극화의 화염을 발산했다. 마도와 권능이 어우러진 헬파이어였다. 머리를 잃은 신형이 허우적거리기도 전에 가공할 화염에 불타 재가 되어 날렸다.

헉!

다크엘프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방금 상황이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엘프를 처리하기 위해 마을에 도착할 때의 뜨겁게 타오른 분노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멍청하기는.”

무진은 망연자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권환을 발출하며 공간을 붕멸했다. 허공으로 나무, 숲, 지면이 솟구쳐 오르다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도망!”

“……살려!”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 미션을 위한 무진의 손 속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간결했다. 적에게 대화할 시간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빠른 선택지를 고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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