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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최강 남사친-276화 (277/374)

276. 체질 개선(2)

“사인했네요.”

“그래, 했다.”

마법 계약서를 찢었다. 절대마도의 권능이 담긴 황금색 휘광의 륜이 무진과 소민성의 영혼에 각인이 되었다.

이제 내기를 물릴 수 없다.

계약이 성립되자, 무진은 고우림을 불렀다.

대기하고 있던 고우림이 거실로 들어왔다.

굉장한 미모였다.

인간적이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여아이돌이나 연예인도 명함을 내밀기 힘들었다.

후후.

소민성은 무진을 보며 웃었다.

뭔가 대단한 수가 있는 줄 알고 긴장했더니, 미인계라도 쓰려고 했더냐. 한때는 불교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른 자신을 잘못 알고 있어도, 한참을 잘못 알았다.

“네놈다운 아주 치졸한 수로구나.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자신 있게 말하려고 했던 소민성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엘프처럼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엘프?”

“숲의 일족인 고티아예요.”

변형 아이템을 풀자, 고티아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쫑긋 세운 귀,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피부, 금발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럴 수가!”

소민성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한 엘프였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지 않는다. 모든 엘프에게 있어 신성시되는 하이엘프였다.

“월광의 일족인 나프티엔입니다.”

소민성도 변형 아이템을 풀었다. 그녀에겐 본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이 세상으로 떨어진 후, 하이엘프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에 감격적이었다.

“어떻게 넘어오신 겁니까?”

“성년이 되지 않았으니, 말씀을 편하게 하세요. 저도 이젠 동방예의지국의 한 사람입니다.”

“차차, 하겠습니다. 귀인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도 그래요.”

무진은 소민성과 고우림이 회포를 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소민성이 무진을 돌아봤다.

어떻게든 하이엘프를 가문으로 모시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불태웠다. 엘프라면 당연히 그리해야 했다. 하이엘프는 이 차원으로 떨어진 엘프를 모을 구심점이었다.

“본가로 모시고 싶구나.”

“고티아가 원한다면요.”

“그 말, 진심이겠지?”

“우리나라는 중세 판타지가 아닙니다.”

씁쓸하지만, 소민성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인종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고향은 유사 인종을 노예나 가축으로 대했었다.

“안 가요.”

“저를 따라오시면 대정령목을 볼…… 예?”

당연히 따를 줄 알았던 소민성의 기대는 통하지 않았다.

고우림이 본가로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너무 완강하게 거절하자 소민성은 이 모든 게 무진의 수작으로 봤다.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암시를 걸었을 수도 있었다.

“이 녀석,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고티아에겐 막중한 임무가 있습니다.”

“하이엘프는 종족을 올바르게 다스릴 의무가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게냐?”

“물론이지요.”

“그게 대체 무엇이냐?”

무진은 고티아를 향해.

“설거지 좀 부탁해.”

방금 뭔 소리를 한 거지?

점입가경으로 설거지 끝나면 방 청소를 하란다. 소민성은 무진이 하는 짓을 지켜보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티아 님에게 이따위 하찮은 일을 시키다니!”

“집안일이 어째서 하찮은 일입니까? 그건 전국의 가정주부를 모독하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소민성은 울화가 치밀었다. 엘프에게 있어 하이엘프는 숭배해야 할 고귀한 신성이었다. 그런 분에게 가사일을 시키다니, 도저히 참아 줄 수 없다.

하나, 소민성은 대한민국은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인정했었다.

그것도 바로 전에.

“나프티엔 님이 절 위하는 마음은 알지만,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이쯤 하세요.”

“하지만…… 알겠습니다.”

화를 내려던 소민성은 힘이 빠졌다.

가사일에 꽤 능숙했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그러니 화를 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따지고 보면 하이엘프의 보호자는 무진이다. 초대받은 손님 주제에 주인보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없다.

더욱이 고티아의 선택이었다.

‘당장은 힘들겠구나.’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고티아 님의 의지가 너무 확고했다. 강제로 데리고 가겠다고 해 봤자, 반감만 살 뿐이다.

한편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이 세상에 유일할 수도 있는 하이엘프를 두고 돌아서기가 쉽지 않았다.

“이래도요?”

“……그렇다면?”

무진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소민성은 힘을 냈다. 이놈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록, 하이엘프를 설득하기가 만만친 않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된다. 가문의 대정령목을 본다면 생각이 바뀔 테니까.

“어쩔 수 없지요. 고티아, 오랜만에 나무에 물이나 같이 줄까?”

“그래요.”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았던 무진이 나무에 물을 주겠다고 하자, 소민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을 끌어 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더욱이 하이엘프를 잡일에 동원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이라도 고티아 님을 챙겨야 했다.

오늘 이후로 고티아 님의 일은 정령가의 몫이었다.

“내가 하마.”

“그러세요.”

소민성은 물을 직접 주라는 무진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이야 스프링클러를 쓰면 되었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휴대폰과 연동하면 밖에서도 물을 줄 수 있었다. 중세 판타지가 아니라면서 본인은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야 하거늘.

아~!

정작 나무를 본 소민성은 감히 스프링클러로 줄 수 없었다.

직접 해야 마땅하다.

“……세계수!!”

썩을, 당했다!

소민성은 무진이 어째서 그런 황당한 내기를 하자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승률 100%라더니,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승부였다. 세계수를 눈앞에서 봤는데, 오지 말란다고 오지 않을 엘프가 어디 있는가.

고티아가 거절한 이유가 있었다.

하이엘프와 세계수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세계수를 놓고, 본가로 오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수의 가지를 흡수한 대정령목의 자부심이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 집에서 나가세요.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고요.”

“……내가 졌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립니다.”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기는 개뿔, 받아들이는 순간 이산가족이 멀리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면 환장할 수밖에. 욕이 절로 튀어나오는 현실이었다.

“내가 졌다고! 됐느냐!”

“진작 그리 나오실 것이지.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요. 바로 체질 개선에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그럼요.”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무진은 사부님과 지수를 불렀다. 사부님과 지수는 기다렸다는 듯 찾아왔다.

권왕은 소태 씹은 표정의 소민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정이야 뻔하니 모를 수가 없다.

“민성이 형, 오랜만이오.”

“……누가 네 형이야!”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편하게 삽시다.”

“제자나 사부나, 예의는 밥 말아 처먹었구나!”

“우리 사이에 예의는 이거뿐 아니겠소.”

권왕이 솥뚜껑만 한 주먹을 들어 올리며 과시하자, 소민성은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근래 충격이 너무 커서 잠시 권왕의 성격을 잊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막무가내였다. 이 인간은 절대 바뀌지 않는 불변이 분명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놈을 대체 어떻게 키운 거냐? 네 제자가 맞기는 한 거고?”

“어허, 딱 봐도 내 제자가 맞는데, 노안이 온 거 아니오?”

“아무리 봐도 네놈이 그 정도는 아니었어!”

“민성이 형,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봐야 맛을 아나? 딱 보면 견적이 나오잖아. 일선에서 물러나더니 감이 많이 떨어졌구먼.”

“네놈은 안 본 사이에 혓바닥만 매끄러워졌구나!”

무진은 사부님과 시조의 언쟁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려고 부르지 않았다. 좋은 주먹을 놔두고, 말로 싸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보는 사람도 재미없게 입으로만 싸울 겁니까?”

“노인네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데.”

“누가 노인네야, 네놈이 이젠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사부님과 소민성은 다루기가 편했다. 말 몇 마디만 던져 주면 알아서 활활 타올랐다.

초면엔 상극인 줄 알았더니 동류였다.

이러면 동종 혐온데.

“감을 잃었으면 찾게 해 줘야지. 민성이 형, 오늘 좀 맞자. 맞다 보면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번 기회에 존장에 대한 예우를 단단히 가르쳐 주마!”

이럴 때 쓰려고 만든 연무장이었다. 사부님과 시조께서 초반부터 전력을 끌어내며 불이 붙었다.

‘내가 어쩌다가!!’

평소의 소민성이었으면 권왕의 도발에 응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왕에게 예의를 거론하는 건 일말의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진의 노림수에 제대로 걸려들어 가문을 통째로 들어다 바치고 말았다. 이 울화를 풀지 못하면 화병이 도져서 몸져누울 것 같았다.

꽈아앙, 푸아앙, 쩌어엉!

사나운 기파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무진의 옆으로 지수가 다가왔다.

“결국, 정령가를 먹었구나.”

“상스럽기는, 같이 잘해 보자는 거지. 이게 나만 잘되자는 게 아니잖아.”

“할아버지를 불렀다는 건 서열 정리를 하겠다는 건데, 아닌 척하긴.”

“정령가의 고질적인 문제를 이제는 알 때가 됐지.”

일반적으로 칠대가문의 정령소가를 약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하나, 더 강해질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정령가는 정령술과 정령합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령을 사용하지 못했을 때의 약점이 뚜렷하다. 더욱이 엘프의 피를 이어 신체적으로도 인간보다 월등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피지컬이 약하다는 거야?”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정령가의 시조, 소민성은 강하다. 정령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신공에 필적하는 무력을 갖추었다. 이렇게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수왕과 장로들은 정령을 제한받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민성 역시도 정령합신을 이루었을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물론, 정령사가 정령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흔치 않았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구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준비가 되고, 안 되고는 차이가 컸다.

만약 그날을 예견하여 대비하지 않았다면 정령가는 놈들의 손에 장악되었을 것이다. 본가의 고위급 정령사가 사라지고, 분가만으로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더 나아가 정령가가 칠대가문의 회합에 고춧가루를 뿌린다면 그간의 준비가 허사가 된다. 남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판을 망가뜨리려고 하는데, 가만있을 순 없지.

이는 대척점에 있는 암중 세력도 마찬가지일 테고, 지금쯤 약이 바짝 올라 있을 것이다. 슬슬 폭발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길 봐, 견적이 딱 나오잖아.”

“할아버지가 강해진 거지.”

“육체를 완성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선전했을 거야.”

“정령가의 직계는 벌모세수 한 상태로 태어나서 정령과의 소통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거라고 했어. 저기서 환골탈태까지 필요하단 거야?”

“자연적인 상태가 만능은 아니야. 특히 정령투법은 정령술을 전투에 맞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잖아. 그렇다면 육체도 그에 걸맞게 훈련해야 하는데, 정령가는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어. 더욱이 정령투법이 무공에 필적하긴 해도, 권왕가의 신화천권과 비교할 순 없어.”

무진의 의도를 알아챈 지수는 오싹했는지 몸을 떨었다. 정령가의 체질 개선이 가볍지 않았다. 온전히 무진의 의도대로 된다면 권왕가보다 강해질 수도 있었다.

정령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무공까지 극의에 이른다면 굉장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마법사가 무공을 쓰는, 마권사보다 더.

정령가가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유정이도 단련이 된다. 후일,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

요즘 너무 안일했구나.

견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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