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77화 (278/374)

277. 체질 개선(3)

“너무 퍼 주는 거 아냐? 이러다 우리 가문보다 강해지면 어쩌려고 그래!”

“거봐, 시너지 효과도 있잖아.”

“……아!”

자기 일 아니라 이거구나!

어차피 강해진다 한들 무진이 구축한 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지지고 볶든 말든, 권왕가와 정령가의 사정이었다. 더욱이 무진의 강함은 한국이 좁아터진 지 오래였다. 원한다면 능히 세계 제일의 각성자가 되고도 남는다.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 사람의 마음은 갈대처럼 얄팍해. 이럴 때일수록 주변에 라이벌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죽어라 굴릴 심산이구나!”

“원효대사께서 말씀하시길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다른 거라고 했어.”

“그러는 너야말로 라이벌이나 만들지 그래!”

“나도 그래서 참 슬퍼.”

“나는 왜 쳐다봐! 눈깔 안 돌려!”

화가 나서 질렀던 지수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말로만 안 했을 뿐, 네가 라이벌이 되어 주면 안 되겠니? 아주 불손한 눈깔이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할아버지와 합공했는데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날파리처럼 쳐 내 버렸었다.

그날의 황당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충격을 회복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몸만 강해질 뿐,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무진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맛있는 건 나중에 먹어야 한다고.

“성좌와 계약하면 다르다며.”

“나만 계약해? 너도 계약할 거잖아.”

“나야 미래를 모르니까.”

“모르면 그냥 하지 마!”

잘못했다가 사도가 되면 골치가 아플 수도 있었다. 솔직히 무진이는 지금처럼만 해도 된다. 암중 세력이 강하긴 해도, 무진의 성장 속도는 미쳐 있었다.

아마 조만간 세상은 무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런데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을 테니까.

응?

이러면 흑막하고 다른 게 뭐지?

슈유유웅, 푸아앙!

허공에서 내리찍는 권격, 능히 유성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직선으로 내리찍히며 떨어진 신형이 급히 물러섰다. 파괴의 범위에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얼굴색이 이미 죽어 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소민성은 개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모두가 권왕의 무위를 인정하는데도, 자신은 과거의 시절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까마득한 격차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차이라니, 인정하기 어려웠다.

‘벌써 숨이 찬다고.’

정령왕급에 도달한 운뢰와의 합신으로 자신이 있었거늘. 단 두 방이었다. 직격도 아니고, 스쳐 맞았다. 운뢰의 비명이 뇌리를 가득 메웠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체력이 약해졌네.”

“네놈이 무식하게 강해진 거지!”

엘프의 체력은 인간보다 월등하다. 하물며 오랫동안 훈련을 통해서 종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자부했다. 무진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꼴이 우습게 됐지만, 권왕에게도 속수무책일 줄 누가 알았으랴.

‘젠장!’

내가 동네북이었을 줄이야!

수백 년을 살아온 엘프로서의 삶이 허무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짧은 수명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한 줄 알았더니, 진실은 냉혹했다. 무진과 권왕의 10년이 자신의 100년보다 가치가 있었다.

‘그나마 버티는 것도 이 녀석 때문이잖아.’

훈련이라고 해 봤자 며칠 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 훈련의 가치가 수백 년보다 빛을 내고 있었다. 만약 훈련받지 않았다면 권왕에게 체력에서부터 밀려 꼴사나운 몰골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하체가 약하구나. 민성이 형!”

“닥쳐랏!”

엘프의 뼈대를 무시하는 소리였다. 하체가 약했으면 가문을 세우지도 못했다. 가문의 화석이자 시조로서 아내를 먼저 보내긴 했어도, 여전히 굳건하다.

권왕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이제는 내 세상이야.”

“네놈의 제자 세상이겠지!”

순간 반박하지 못한 권왕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곧 죽어도 입만 산 시조새가 아닐 수 없었다.

형이라 대우해 줬더니.

-신화천권 무형식 패도무쌍.

병풍 뒤에서 향내를 맡고 싶다면야.

권왕은 빠꾸 없이 신화천권의 마지막 오의를 꺼내 들었다. 심권의 영역에 들면서 권공의 총화를 담았다. 이것이야말로 제자를 패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화천권의 극의였다.

“뒈져랏!”

“……이 미친놈이!”

패도무쌍이 아니라 거의 패륜무쌍이었다. 제자의 청출어람을 고깝게 여기는.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소민성은 운뢰와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는 낙엽보다 못한 최후였다.

철퍼덕!

***

“그렇게 됐다.”

일련의 사정을 다 듣고 난 수왕은 기가 찬지 말문이 막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됐다는 건가? 말 그대로라면 가문을 통째로 무진에게 갖다 바친 격이다.

더욱이 본때를 보여 주기는커녕 커다란 혹까지 달고 왔다.

권왕이 소파에 앉아서 건들거리고 있었다. 이젠 제자도 부족해서 사부까지 찾아와서 유세를 떨었다.

권왕의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마제도 대화하다 목덜미를 부여잡았다지.

이를 증명하듯.

발동이 걸렸다.

“내 제자한테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사람이라면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암암.”

“은혜는 갚을 걸세, 그래도 이건 과하지 않나!”

“민성이 형도 이제 다 됐네. 가문의 큰 어른이 한 결정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말이야. 정령가는 위아래가 형편없구나.”

“시비를 거는 게 아니면 말조심하게!”

수왕은 하도 어이없는 말을 들어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대체 누구보고 위아래가 없다고 하는 건가? 적반하장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개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한 권왕이 예의를 논하고 있었다.

‘시조님,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말씀하셔야지요!’

개소리를 얌전히 듣고 있는 시조님이 수왕은 맘에 들지 않았다. 잠시 부침이 있기는 했어도, 가문의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됐다고 했다.”

“시조님이라도 가문의 중대사를 독단으로 처리할 순 없습니다.”

시조의 일방적 통보가 수왕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대로라면 권왕가에 가문을 통째로 갖다 바치게 된다. 같은 칠대가문이 아닌, 분가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이제는 좀 분가의 심정을 알겠지?”

“가문의 일이다. 외인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

권왕의 비아냥거림이 수왕의 의표를 찔렀다. 반란을 일으킨 분가가 괘씸하면서도, 역지사지였다. 가문을 위해서라지만, 알게 모르게 차별당했던 분가의 반란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단체의 수장으로서 개별적인 사안을 전부 받아들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권왕의 전대 가주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기는 개뿔!

일찍이 가문의 중대사를 아들에게 맡겼고, 기회가 생기자 신속히 가주 위까지 넘기고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럴 때는 굉장히 빨랐다. 아들조차도 자기가 가주가 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신세를 지고도 발뺌하다니, 신의의 수왕답지 않네그려.”

“신의는 중요하나, 가문보다 우선할 순 없지!”

“뻔뻔하게 나오시겠다.”

“정도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세상 사람에게 물어보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

수왕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기에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 권왕가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가문의 위신이 떨어진다. 가주로서의 평판도 신경 써야 했다.

가뜩이나 분가의 반란으로 인해 본가의 체면이 많이 무너졌다. 대외적으로 볼 때 본가와 분가를 따로 분리하진 않는다. 결국, 본가의 체면이 손상되면 정령가에 대한 세간의 평판도 떨어진다.

“게다가 저 녀석을 네가 키웠다고 자신할 수 있나? 조사해 보니 고작 해 봐야 1년 남짓이더구먼.”

“100년을 배우든, 하루를 배우든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이지 않나. 나는 제자를, 녀석은 스승을! 상기할수록 감동적이구먼.”

날먹이 무슨 갬성을 찾아!

수왕도 알아볼 만큼은 알아봤다. 무진은 생도의 기준을 한참이나 넘어섰다. 말이 좋아, 생도지. 현재 국내에 무진을 이길 녀석이 있기나 할까? 나라를 빛낼 희대의 천재로 불렸던 검신가의 가주도 무진의 나이 때엔 애송이를 갓 벗은 수준에 불과했다.

어릴 때부터 발군인 데다가 권왕가에서 집중적으로 키웠다고 한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1%라도 있을 텐데, 고작 1년이란다. 어릴 때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고 해도, 절대경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1년 만에 제자가 스승보다 강할 수도 있는 건가?’

나이가 들어 순리대로 청출어람을 했다면 또 모를까. 권왕은 여전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전성기보다 강해진 권왕과 자웅을 겨루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학생이었다니.’

중학교 때까지 평범하게 다녔다고 한다. 각성을 하기 전부터 엘리트 코스를 받은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의 자식들과는 달랐다.

비밀리에 키우는 전략 병기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럴 거면 아카데미에서 그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겠지. 지금은 그마저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가문의 큰 어른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거야?”

“들어줄 수 없는 약속이다.”

수왕이 하도 강경하게 나오자, 권왕은 한발 물러서며 타협안으로 대결을 제안했다.

“10초 어때?”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할 거야, 말 거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능글거리며 웃는 권왕을 보고 있자니, 수왕은 주먹이 부들거렸다. 맘 같아서는 10초가 아니라, 비 오는 날 먼지가 날리도록 두들겨 패고 싶었다.

심경과는 별개로 권왕은 심권의 경지에 이른 고수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8계식의 마도를 구사한다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했다. 아무리 인생은 60부터라지만, 성장 속도가 말도 못 하게 빠르다.

‘그게 다 저 녀석 때문이겠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무진의 학대는 효과가 있었다. 권왕도 제자에게 자극받아서 예전보다 월등히 강해진 것 같았다.

권왕의 10초 제안. 예전이라면 받고 더블을 외쳤겠지만, 무진을 겪어 본 후 함부로 약속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뼛속 깊이 체감했다.

“가문을 책임져야 하는 가주는 약속을 쉬이 하지 않는다.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나가 주게.”

“내가 아니라 내 손녀인데도?”

“그 무엇이 됐든…… 뭐, 이 새끼야!”

“내 손녀를 10초 안에 제압해 보라고. 그럼 이제까지의 약속을 물리고, 1,000억을 위자료로 내주마.”

권왕의 10초를 받는 것과 지수를 10초 안에 제압하는 것. 언뜻 보면 전자가 쉬워 보이지만, 실제는 압도적으로 후자였다. 각성자의 기준으로 봐도 성인과 생도의 차이는 크다. 하물며 본 가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초인에 속했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을 물먹이려는 권왕의 수작이었다.

‘하나, 무진이도 생도지.’

권왕의 손녀도 그럴까? 분위기를 보면 실력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권왕이 1,000억을 약속한 것도 그렇고. 자신을 꾀려는 짓이 분명한데,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나중에 실력을 숨겼느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해 주는 거다. 내 손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세. 그러니 방심하지 마라.”

“고양이 쥐 생각 해 주는군.”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니까 싫다면 거절해도 돼. 단, 나도 모르게 소문은 나겠지.”

“권왕, 그대의 솜씨가 아니구나!”

애초부터 거절은 염두에 두지 않은 걸 보면, 무진의 계략이 분명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사부와 여자 친구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아마 거절하는 순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겠지.

사람들이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문이 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더욱이 권왕이 비록 개망나니긴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절대고수다. 마냥 허튼소리로 치부하진 않겠지.

“3초 안에 끝내 주마.”

“그럼 3초로 계약서를 작성해도 되겠지.”

“어림도 없는 수작!”

“……너도 보통은 아니구나.”

권왕은 얼씨구나 좋다고 7초를 날로 먹으려 했지만, 수왕도 안면 몰수를 기본 옵션으로 깔고 있었다. 개수작은 이제 통하지 않았다. 약속의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이다. 빠져나갈 빈틈을 주면 안 되었다. 쉴 틈 없이 몰아붙여서 이득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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